[우정이야기]“쓰레기통이 아닙니다”

우정사업본부 블로그인 ‘우정마을’(http://blog.daum.net/e-koreapost)에 들어갔다가 한 기사에 눈길이 멈췄다. ‘93번 우체통의 소원’이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서울 강남역 입구에 있는 93번 우체통이 사람들에게 하소연하는 형식을 띠고 있었다. “제가 하는 일은 편지를 모으는 일이에요. 쓰레기통이 아니랍니다.” 전국 2만1000여개 우체통을 대변한 간곡한 호소였다.

쓰레기통이 아닙니다? 가만 있자… 데자뷰! 기억을 더듬었다. 몇 년 전 뉴질랜드의 어떤 우체통에서 보았던 문구가 그 비슷하지 않았던가. 하도 기가 막혀서 사진까지 찍었던 일이 떠올랐다. 다행히 그 사진이 있었다. 남섬 오클랜드에서 퀸스타운으로 가다가 한적한 작은 마을에 버스를 세우고 휴식을 취할 때였나 보다. 상쾌한 공기를 마시기 위해 밖에 나와 일행과 대화를 나누다가 옆에 있던 우체통에 시선이 멎었다. 우체통 색깔이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푸른색이고, 무심코 보면 쓰레기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생김새였다. 내 눈을 붙들어 맨 것은 그 위에 매직펜으로 써놓은 ‘우체통입니다’라는 한글이었다.

쓰레기가 투입된 서울 강남역 93번 우체통 내부(왼쪽)와 ‘우체통입니다’라고 한글로 써놓은 뉴질랜드 남섬의 한 우체통(오른쪽).

이역만리 우체통에 왜 한글 안내가 있을까. 누가 써놓았을까. 자세히 보니 단서가 있었다. 우체통 틈에 박혀 있는 담배꽁초 하나다. 혹시나 했는데 국산담배의 꽁초였다. 일행이 모두 혀를 끌끌 찼다. 한국 사람이 우체통에 쓰레기를 오죽 버렸으면 서툰 필체의 한글로 그렇게 써 놓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다 담배꽁초를 버린 것은 또 무슨 심보일까. 우체통에 쓰레기를 버리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1997년 12월 한 일간신문은 경기 의정부우체국의 우체통에서 커피가 담긴 채 버려진 종이컵, 담배꽁초, 빈 담뱃갑, 휴지, 영화표, 고장난 볼펜 등이 줄줄이 나왔다는 기사를 실었다. 서울체신청에 따르면 사람들이 담배꽁초를 함부로 버려 그해에만 3곳의 우체통이 불탔다는 내용도 있었다.

93번 우체통의 사정을 보면 15년 전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담배꽁초, 담뱃갑은 예사이고 종이컵이나 전단지, 과자나 아이스크림 포장지 등 다양한 쓰레기가 우체통에서 편지와 함께 나온다고 한다. 집배원이 편지를 담는 자루 외에 쓰레기봉투까지 갖고 다녀야 할 정도다. 우편물을 수거해서 배달하는 것만도 바쁜데 우체통 쓰레기 수거와 청소까지 해야 하는 집배원은 고달프다. 더욱 난감하기는 내용물이 남은 종이컵이나 캔을 버리는 경우다. 편지가 해어지거나 글자가 번져 배달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편지를 부친 사람에게 연락해 그냥 배달할지 반송할지 일일이 물어보아야 한다. 더 심한 경우도 있다. 서울 여의도의 한 우체통에 살아 있는 오징어를 넣은 사람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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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통에 쓰레기를 버리는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 고의라면 나쁘고 장난이라면 지나치다.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 곳은 사람이 많은 도심보다 주택가나 한적한 데의 우체통이라고 한다. 버리는 사람도 남의 눈은 두려워한다는 얘기다. 학교 주변의 우체통에는 아이스크림 막대나 과자 봉지가 많다고 한다. 장난삼아 했더라도 너그럽게 봐주기에는 너무 고약하다.
우편물 훼손죄와 우편전용 물건 손상죄라는 게 있다. 장난으로 담배꽁초를 버렸다가 우편물이 훼손되고 우체통이 불타서 손상된다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우편법(제48, 49조)에는 우편물을 훼손하거나 우편전용 물건을 손상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신동호 선임기자 hud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