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넷]9개그 유머짤, 누가 만드는 걸까

지난해 수능으로 기억한다. 한 디시인사이드 사용자의 시험 답안지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문제는 이거다. “그림과 같이 1부터 연속된 자연수를 화살표 방향으로 순서대로 배열할 때, 89는 i행, j열의 수이다. 이때, i+j의 값을 구하시오.” 그리고 밑에는 체크무늬의 박스가 그려져 있고 숫자가 나열되어 있다. 보통 일반적인 수능생이 구사하는 편법 ‘스킬’은 밑에다 그림을 그려 숫자를 대입해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용자의 창의성은 달랐다. 아예 체스판을 연상한 듯, 여기에다 오래된 성과 낡은 체스 장기, 그리고 구름 속의 달을 그려놓은 것이다. 그냥 언뜻 보기에도 대단한 정성이다. 이건 다시 말하면 시험을 포기했다는 뜻. 이 사용자가 여기에 붙여놓은 인증짤(자신이 직접 사진을 찍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으로, 흔히 해당 사이트에서 자신이 사용하는 대화명이 붙은 포스트잇 등을 같이 찍는 것을 말한다)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오늘부터 와갤러. ○○○○(닉네임)” 그러니까 시험을 포기하고 다시 게임 와우갤러리에 상주하는 잉여로 돌아왔다는 뜻이다. 이 게시물은 디시인사이트에서 당시 히트 갤러리 게시물로 선정되었다.

이른바 ‘9개그 소시짤’ 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9개그 캐릭터와 소녀시대 멤버 대비 사진.

서론이 길었다. 오늘 이야기는 ‘잉여로운’ 한 와갤러 이야기가 아니다. 남아있는 기록에 따르면 그로부터 약 반 달 뒤, 이 게시물은 국제적으로 유명세를 탄다. ‘Funny Exam Answer’라는 제목으로 한 외국 여학생이 답안지 그래프에다 사람을 그려넣는 그림을 먼저 제시한다. 이 그림에 위의 와갤러의 인증짤이 도전하는 형식이다. 와갤러 그림은 타이틀을 거머쥔다. 이름은 Mother of Exam입니다. 의역하자면 “니가 짱입니다요!” 정도일까.

이 그림이 게시된 사이트는 9개그(9gag)라는 사이트다. 소개한 동영상 등을 보면 ‘나인개그’라고 읽는다. 인터넷에 선출고한 기사를 통해 “광동어로 ‘making fun’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와 비슷하다고 하는데, 한자어가 뭔지는 모르겠다. 혹시 아시는 분은 살짝 알려주시길” 이라고 적었다. 1992look이라는 네이버 사용자가 답을 줬다. 숫자 ‘9’는 광동어 ‘尻(가우, 속어로 엉덩이)’와 발음이 같다. 이 사용자가 홍콩 친구에게 물어본 결과 “시도 때도 없이 발기되는 페니스”의 뜻도 있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최근 들어 국내 유명 커뮤니티에도 9개그의 콘텐츠가 자주 소개된다. ‘썩소’를 날리거나, 놀라 경악하는 9개그의 과장된 얼굴 그림은 아마 인터넷 게시판 등에서 한 번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조금 수상하다. 베지터 닮은 꼴을 소개한다든가, 애니메이션 소개를 하는 것을 보면 적어도 한국 내지는 아시아 누리꾼과 유머코드가 상당히 비슷하다. 아니면 한국 누리꾼의 유머코드가 상당히 국제화되어 있거나.

그런데 의외로, 9개그가 뭐하는 사람들인지 소개하는 글은 찾기 어렵다. 그래서 찾아봤다. 컴퓨터 전문 인터넷 사이트에 짤막한 인터뷰가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창업자는 아시아계다. 공동창업자 래이 챈(Ray Chan)은 동료 3명과 함께 지난 2008년 홍콩에서 이 사이트를 만들었다. 인터넷을 매개로 한 창업. IT벤처다.

처음 이들이 창업하려고 했던 아이템은 ‘싱보드(singboard)’라는 이름의 온라인 노래방 애플리케이션이었다. 결국 ‘9개그’가 히트하면서 계획은 수정된다. 원래 홍콩TV 직원이었던 챈은 한 인터넷 매체에 다음과 같이 9개그의 비전을 소개했다. “사람들이 시간을 보내거나 웃고 싶을 때마다 방문할 수 있는 사이트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솔직하다. “그래서 세상이 보다 행복한 곳이 되길 원합니다.” 나름대로의 철학이 엿보인다.

언더그라운드.넷

생각해보면, 국내에 이런 계통의 사이트가 없지는 않지만, 9개그처럼 국제적 유명세를 떨치는 곳은 아직 없다. 차기정권에선 ‘9개그’ 같은 창업 IT벤처를 볼 수 있게 될까. 그러길 바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