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넷]MB정부에서 탄생한 마지막 ‘용자’

이 코너에서 MB정부에서 탄생한 ‘용자(勇者)’에 대한 이야기를 몇 차례 다룬 것 같다. 쥐그림 낙서의 주인공 박정수씨나 트위터에 ‘2MB18nomA’라는 닉네임을 사용한 송모씨 같은 경우다.

그런데 이번에 탄생한 용자는? 진짜다. 12월 19일 대선 당일 종로구 청운동 투표소에서 투표참관인으로 참가한 대학생이 대통령의 의례적인 악수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이 학생이 자신의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 따르면 악수를 거부한 이유는 “가카께 ‘당신에게 화난 사람이 있어요’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반응? 글에 따르면 멈칫한 대통령은 “젊은 사람이 긍정적으로 살아야지, 부모님 잘 모셔라”고 말했다고 한다.

정말일까. 보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 학생의 신상은 금방 털렸다. 어쨌든 궁금하다. 이 ‘용자의 일화’는 사실일까.

대선 하루 뒤, 보수 인터넷 커뮤니티에 털려 게재된 신상자료를 바탕으로 연락했다. 대학생 최모씨(25)다. “정확하게 센 건 아닌데 수백통 정도 온 것 같다. 선거 참관인을 하고 있으니 12시30분부터 6시까지 전화기를 꺼놨는데, 문자만 100개 가까이 된 것 같다.” 문자의 내용은 주로 협박이다. “대부분 발신번호 표시 제한으로 온 문자였고 일부는 아예 폰 번호 다 밝히고 걸려온 것도 있었다.”

12월 19일, 서울 청운효자동 제1투표소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제18대 대통령선거 투표를 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 최모씨의 ‘악수 거부 사건’은 직후에 벌어졌다. | 연합뉴스

최씨의 기억에 따르면 악수 거부 후 대통령의 ‘훈계’는 좀 더 길었다. 여러 말을 했는데, 그 중에 뚜렷하게 기억나는 두 문장만 쓴 것이다. 영부인이 째려봤다는 것도 옆의 다른 참관인이 이야기해준 것과 같이 ‘크로스 체크’된 사실만 SNS 상에 올렸다는 것이다. 최씨의 ‘행동’에 대한 주변 참관인의 ‘반응’은 제 각각이었다. “바로 옆에는 문용린 서울시교육감 후보 측 참관인이 앉았었는데 훈계는 아니고 걱정조의 이야기를 많이 해줬다. ‘그래도 어르신인데, 혹시나 다른 자리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였고, 이수호 후보 측 참관인은 동년배인데 아무 소리 안 했다. 문재인 후보 쪽 참관인이 제일 걱정이 많았다. “나중에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필자도 궁금한 바다. 대선 결과를 요약한다면 새누리당 정권이 연장된 셈인데 혹시 해코지라도? “설마 그러겠냐. 임기가 다 끝나신 분인데…. 취업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는 이야기를 하는데 이런 과거 행적을 문제삼는 곳이라면 대기업이라도 취직할 생각 없다.” 뭔가 패기(?)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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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는 꼭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영웅이 되고 싶었던 거냐’는 식으로 말하는 분들이 있는데, 전혀 그런 생각은 없었다. SNS 상에 연결되어 있는 사람도 얼마 안 된다. 아는 사람만 아는 폐쇄적인 커뮤니티에 자랑하려는 것도 아니고, 대통령이 한 말이 짜증나서 올린 것뿐인데, 보다시피 일이 커져 용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뻔히 커지면 신상 털릴 것을 아는데 누가 그걸 각오하고 미친 짓을 하겠느냐.”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그에겐 ‘MB정부에서 탄생한 마지막 용자’라는 칭호가 붙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