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우리는 자유로운 세계를 위해 싸워왔는데, 우리가 맞서 싸우는 상대방은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만개한 나라로 이야기하는 미합중국의 거대 기업들이다. (중략) 그리고 우리를 돕겠다는 나라는 사람들의 생각을 제약하고 정보 접근을 봉쇄하는 것으로 유명한 정부다.”
3월 4일(한국시간), ‘평양’발 뉴스가 전 세계 인터넷을 달궜다. 스웨덴의 유명 토렌트 검색사이트인 파이어럿 베이(pirate Bay)가 단속을 피해 서버를 북한으로 옮기는 ‘사이버 망명’을 했다고 발표했던 것. 공식 홈페이지와 페이스북 등의 공지 글에서 글을 올린 곳은 ‘평양’으로 표시했다. 이 날짜로 홈페이지에 사용하던 해적선 로고도 돛을 북한 국기로 바꿨다.
토렌트 공유사이트 파이어럿 베이가 3월 4일(한국시간) “평양으로 서버를 옮겼다”며 올린 북한 국기가 그려진 로고. 파이어럿 베이 측의 주장은 짓궂은 농담으로 드러났다.
파이어럿 베이의 ‘사이버 망명’ 주장은 꽤 관심을 끌었다. 주요 외신들이 이 평양발 속보를 전했다. 국내 언론, 특히 IT계열 언론도 비상한 관심을 표시했다. 뉴스를 접한 한국 누리꾼의 촌평. “조만간 ‘토렌트는 종북좌파와 궤를 같이한다’는 요설이 등장한다는 데 한 표 던집니다.”(클리앙 blowtorch)
그런데 이 공지 글을 뜯어보면 뭔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눈에 띈다. 북한으로 망명한다고 했는데, 나라 이름을 ‘Republic of Korea’라고 표기했다(DPRK, 즉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라고 써야 맞다).
결론은 하루만에 드러났다. 짓궂은 농담이었다. 파이어럿 베이 측은 다시 페이스북에 공지를 내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는 돈 때문에 이 사이트를 운영하는 것이 아니며, 돈에 환장한 적들이 우리가 세상이 가장 싫어하는 독재자와 손잡았다고 공격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며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그 어떤 ‘사실’ 주장에 대해서도 좀 더 비판적인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흔히 ‘어둠의 경로’라고 불리는 토렌트 파일 공유는 한국의 저작권법 상으론 사실상 불법이다. 저작권과 파일 공유 문제는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적인 이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벨기에, 덴마크, 영국, 인도, 말레이시아 등 세계 15개 나라에서 ‘파이어럿 베이’ 사이트는 접근이 봉쇄되어 있다. 지난해 9월에는 ‘아나카나’라는 닉네임으로 알려진 이 사이트의 개설자 갓프리드 스발톰이 캄보디아에서 체포돼 스웨덴으로 압송된 뒤 1년형을 선고받고 투옥됐다. 북한으로 서버를 옮겼다는 성명에서 이들은 “우리는 이곳에서 북한의 지도자들을 설득해 북한 주민이 우리 서비스를 쓸 수 있도록 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만약 이게 진짜였다면 이후 상황 전개는 정말 흥미진진해질 뻔했다.
궁금한 점은 남는다. 만약 파이어럿 베이가 정말 서버를 북한으로 옮겼다면 국내에서는 차단 대상? 현재 차단되어 있진 않다. 방송통신위원회 네트워크윤리과 관계자는 “최종적으로 차단 여부에 대한 결정은 정부가 아닌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한다”며 “접근 차단조치의 판단기준은 서버의 위치 여부에 따라 내려지는 것이 아니라 해당 사이트의 내용이 불법인지 여부”라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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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커지는 채 상병 의혹
‘이채양명주’ 의제로 올려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