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보수는 왜 혁신학교를 멀리하나

“혁신학교를 왜 혁신학교라고 부르나. 이것이 정상 학교인데.” 지난 8월 20일, 서울시의회가 서울시청에서 개최한 ‘서울교육 혁신방안 토론회’에서 청중으로부터 가장 많은 박수를 받은 학부모 발언이다. 서울 암사동에 있는 선사고 1학년 학부모라고 자신을 밝힌 김성희씨의 ‘혁신학교’ 경험담은 이렇다. “아이를 학교에 보낼 때 사실 한 달 가까이 고민했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는 편이라서 특목고나 자사고를 넣어볼까 고민도 했지만, 아이가 원해 혁신학교를 선택했다. (중략) 사실 경이로웠다. 진짜로 다 그대로 이뤄지고 있었다. 체벌도 없고 욕도 없다. 벌을 받아도 웃으면서 받는다. 그래도 한 학기가 지나면 짜증도 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아직까지 어떤 선생님도 야단을 치거나 욕하는 선생님을 못봤다.”

이날 토론회는 서울시의회 정책연구위원회가 이윤미 홍익대 교수팀에게 의뢰해 서울형 혁신학교 61개교의 학교운영이나 교육과정, 수업, 학생평가, 생활지도, 교육복지 등 교육성과 분석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설문조사와 질적 연구를 통해 이 교수팀은 “일반학교에 비해 혁신학교가 특히 학교 만족도, 교육혁신 등에서 인식차가 확연히 나타나고 있고, 특히 혁신학교의 경우 학업 수행에 대한 자신감을 의미하는 ‘학습 효능감’에서 높게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은 당장의 학업성취도만으로 드러나지 않는 잠재력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고 결론을 냈다. 지난 2011년 시작된 ‘서울형 혁신학교’가 상당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는 연구 결과다.

지난 1월, 서울시의회 김형태 교육위원(오른쪽)과 윤명화 시의원(가운데)이 문용린 서울시교육감을 방문, 혁신학교 추가지정이 이뤄지지 않은 것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문용린 교육감의 혁신학교 평가의도는
이날 방청석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상당수는 혁신학교에 자녀를 보낸 학부모들이었다. 혁신학교 학부모들이 평일 오후에 열린 토론회에 모인 까닭은 무엇일까. 이른바 ‘보수’ 교육감 체제가 들어선 뒤 전임 교육감이 내놓은 혁신학교 정책을 사실상 폐기하는 수순을 밟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기존에 만들어진 혁신학교에 대한 문용린 교육감의 정책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문 교육감은 학교당 평균 1억4000만원씩 지원되었던 혁신학교 예산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등을 검토한 뒤 일정한 평가과정을 거쳐 혁신학교 정책을 재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그 평가의 적절성이 문제였다. 김형태 서울시의원은 “서울교육청이 평가를 의뢰한 교육개발원(KEDI)의 연구용역 책임자는 친정부단체인 국민행복교육포럼의 공동대표이며, 연구위원 역시 국민행복교육포럼의 공동대표를 맡았거나 새누리당에 공천을 신청했던 사람이 포함되어 있다”며 공정성 문제를 제기했다. 평가지표 개발에 혁신학교 교사가 전혀 없다는 점도 평가에 정치색이 드리운 것이 아닌가 의심을 받는 이유다.

그래서일까. 이날 토론에서 질문은 토론자로 참여한 서울시교육청 학교혁신팀 배남환 장학관에게 집중되었다. 배 장학관은 “혁신학교라고 하는 것은 어떤 정해진 수업 형태가 아니라 다양한 수업 형태를 의미하는데, 무조건적으로 외국의 교육과정을 도입하는 것은 우리의 현실과 맞지 않다”며 “혁신학교를 추구하는 목표가 반대쪽 의견을 무조건 잘못된 것으로 치부하기보다는 혹시 혁신학교 안에 어떤 문제는 없는지 이야기를 들어서 반성하는, 즉 혁신학교 2.0의 시대를 넘어 3.0의 시대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론에서 직접적인 반박은 없었지만 문 교육감의 혁신학교 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높았다. 권태선 한겨레신문 편집인은 “혁신학교에 근무하거나 아이들을 보내는 경우를 직접 만나보니 ‘학교 가는 것이 즐겁다, 선생님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고 놀랐다”며 “선생님들이 밤 10시까지 일하면서도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 사회에서 교사들의 자발성이 이렇게 살아난 적이 있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경기도의 경우 혁신학교가 도입된 지 4년이 되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평가가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서울은 이제 만 2년이 되었기 때문에 충분히 자리 잡았다고 보기 힘든데도 이런 식으로 사태가 발전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며 “배 장학관이 혁신학교에 대한 비판을 고깝게만 생각하지 말고 받아들이라고 하는데 거꾸로 혁신교육을 비판하는 분들도 마찬가지로 장점이나 성과는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혁규 청주교육대학교 교육연구원 원장은 “사실 교육제도를 개선하는 것도 어렵지만 교사 문화를 바꾸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라며 “혁신학교는 실로 어렵게 일어난 교사들의 자발적인 변화 노력인 만큼 그 성과를 소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보수교육감이 혁신학교를 싫어하는 것이 혹시 혁신학교라는 이름 때문이라면 중립적인 이름으로 바꾸는 것을 추진해보는 것도 의미 있지 않겠나”라고 제안했다.

혁신학교에 정치적 색깔 씌우기?
배 장학관은 “혁신학교가 행복학교라면 일반학교는 불행학교이고, 일반학교가 경쟁위주 지옥이라면 혁신학교는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 학교라는 식의 기본 전제가 문제”라며 “일반학교도 잘하고 있는데, 혁신학교는 이것을 더 잘한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혁신학교가 진정으로 교사의 자발성을 기초로 운영되었다면 평가 후 재지정 여부와 상관없지 않으냐”며 “만약 혁신학교가 지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과거로 다시 돌아간다면 교사의 사명감이 있지 않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북서울중학교에서 혁신부장을 맡고 있는 강민정 교사는 “기존의 교육정책이 단기적인 성과 위주의 보여주기에 집착하는, 위로부터의 전시성 정책이었다면 혁신학교는 아래로부터 자발적으로 일어난 학교 현장의 변화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며 “혁신학교를 추진하고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진보와 보수의 이념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데도, 문용린 교육감 측이 마치 전임 서울시교육감이 이념적으로 추진한 정책처럼 색깔을 덧씌우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