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행부 지자체에 일정비율 강요하는 문건 발송으로 부작용 속출
박근혜 정부가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 내놓은 카드인 ‘시간제 일자리’의 부작용이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에서 속속 드러나고 있다. 민주당에서 노동전문가로 꼽히는 은수미 의원이 “시간제 일자리가 효과는 없고, 오히려 부작용만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던 것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지난해 12월 3일 안전행정부는 서울시·부산시 등 17개 지자체에 ‘2014년 시간선택제 일반직 공무원 채용계획 통보’라는 문건을 발송했다.
본지가 입수한 이 문건에는 시간제 일자리에 대한 정부의 조급함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각 시·도에서는 내년도부터(2014년) 시행하는 각종 공채 및 경채 시험에 반드시 적용하여 주시고’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다.
핵심 내용은 이것이었다. ‘2014년 충원 수요 인원의 3% 이상을 시간선택제 일반직 공무원으로 반드시 충원할 수 있도록 조치(관내 시·군·구 통보 등)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2013년 11월 26일 박근혜 대통령이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시간선택제 일자리 채용박람회’에 참석해 구직 희망자, 기업 인사담당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맞는 직군 없어 채용담당자 고충 호소
2013년 12월 30일 대통령령으로 이뤄진 지방공무원임용령 일부개정안 제51조의 6(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의 임용시험 등)에서는 ‘선발 예정 인원의 100분의 1 이상 임용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고만 되어 있다.
원래 시간제 공무원 관련 규정은 따로 없었다. 대통령령에만 따라도 시간선택제 공무원을 선발 예정 인원의 1% 이상만 임용하면 됐다. 안행부는 시간선택제 공무원 하한선을 1%에서 3% 이상으로 높였다.
2%의 공무원은 일반 공무원으로 뽑을 수도 있었는데, 안행부 지침에 의해 졸지에 시간제로 바뀌게 된 것이다. 안행부의 공문에 드러난 ‘반드시’라는 표현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안행부의 강요 때문에 지자체 채용 담당부서에서는 시간제 일자리를 찾느라 고민이라는 하소연이 나오고 있다. 광역단체에서는 기초지자체로 시간제 일자리 할당 인원을 지정해주고, 자리를 만들라는 식으로 일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모 지자체의 ‘2014년 지방공무원 신규 임용시험 운영기준’ 문서에서 이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지자체는 공무원 공채와 경채를 합해 총 선발 인원이 33명 이하일 경우 전일제 1명을 대체해 시간선택제 2명을 채용하고, 선발인원 34~66명일 경우 전일제 2명을 대체해 시간선택제 4명을 채용하라고 지침을 내린 것이다.
정부가 시간제 일자리를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고 강요하면서, 전일제 공무원 수를 줄여 시간제 일자리 공무원을 선발하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올해 공채와 경채를 통해 2123명의 공무원을 선발하는 서울시도 시간선택제 공무원을 300여명 뽑는다는 공고를 냈다.
공무원노조 오성희 국제부장은 “안행부의 공문과 지방공무원임용령 일부개정안 때문에 시·도에서 기초지자체로 인원을 할당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면서 “담당자는 시간제 일자리에 맞는 직군이 없어도 억지로 끼워맞추기 식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3년 12월 안전행정부가 각 시·도 지자체에 보낸 공문에는 ‘반드시’ 시간선택제 일자리 인원을 3% 선발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시간제 공무원 일자리의 질도 문제다. 안행부도 시간제 일자리 공무원의 업무가 잡무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안행부가 예시로 내놓은 시간제 직무 가능 분야는 ‘전자문서 등 문서접수 분류’ ‘관용차량 운전’ ‘차량 등록’ ‘주·정차 단속업무’ ‘전화교환’ ‘지방의회 속기업무’ ‘농기계 수리’ ‘사서업무’ 등에 불과했다. 정부가 주장하는 ‘질 좋은 시간제 일자리’가 허상임을 알 수 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취업준비생들도 시간제 공무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대구에서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남모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올해 공무원을 많이 뽑아서 다들 시간제 공무원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다”면서 “똑같은 시험을 준비해야 하는데, 누가 시간제 일자리 공무원을 하겠다고 나서나. 젊은 청년들은 전혀 관심 없다. 청년 취업률 문제에 해결책도 안 되는 것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시간제 일자리 교사 선발 진행도 더디다. 전교조 서울지부 김성보 정책실장은 “2014년 신규교사 임용예정 인원 중 3%를 시간제 일자리 교사로 선발하지 않고 시간제 강사 TO로 남겨뒀다”면서 “교육부 지침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교육개발원은 시간제 일자리 교사와 관련한 포럼을 한 차례 열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포럼에 참가한 청중 중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시간제 일자리 교사에 대한 반감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간도 채용 순탄치 않아 정부 눈치보기
민간부문에서도 시간제 일자리가 순탄치 않다. 유통업계처럼 순조롭게 진행되는 기업이 있는 반면, 삼성그룹처럼 애초 약속했던 인원이 미달되어 2차 채용, 수시채용으로 범위를 넓히는 기업도 나오고 있다.
“시간제 일자리가 잘 맞는 분야도 있겠지만, 제조업에서는 솔직히 시간제 일자리가 어렵다”는 모 대기업 관계자의 말이 현장에서도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3월부터 24개 계열사에서 1000명의 시간제 일자리를 만든다는 현대차그룹의 발표에 대해 “기업들이 정부 눈치를 보는 것”이라는 논평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 11월 26일 코엑스에서 열린 ‘시간선택제 일자리 채용 박람회’에는 10개 그룹이 참여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축사를 통해 “앞으로 정부와 공공기관에서도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더 적합하다는 직종을 찾아서 성공사례를 많이 만들어주길 바라고, 민간으로 더욱 확산되도록 노력해주길 바란다”는 축사를 남겼다. 박람회에 참석한 삼성, LG, SK 등의 10대 그룹은 대통령의 축사에 화답이라도 하듯 시간제 일자리에 9900명을 선발한다고 약속했다.
성과는 여전히 미진하다. 삼성그룹의 경우 개발지원, 사무지원, 판매지원, 생산지원 등의 분야에서 6000명을 선발한다고 공고했다. 하지만 2월 현재 뽑은 인원은 1500명에 불과하다.
오전이나 오후 4시간 선택을 해야 하는 것과 서울이 아닌 지방에 사업장이 있다는 것이 경력단절 여성에게 맞지 않았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삼성 계열사가 내놓은 선발 인원이나 직무가 구직자들이 원하는 것과 약간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삼성은 2차와 수시채용으로 6000명을 뽑을 예정이지만 오전이나 오후를 선택하는 방침은 그대로 유지할 계획이다.
유통업계인 신세계, GS와 객실승무원·공항운송업무 등에서 인원을 뽑았던 한진그룹의 경우 약속한 채용인원을 선발했다. 하지만 제조업이 중심인 기업의 경우 삼성그룹처럼 선발 인원이 원래 약속보다 적은 경우가 태반이었다.
시간선택제 일자리의 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수요가 예상만큼 높지 않은 것도 당연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기업들에서 시간제 일자리는 먹지도 못하고 버리지도 못하는 ‘계륵’이 되고 있다.
한 기업 관계자는 “업무의 성격에 따라서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선발해야 하는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정 비율을 시간제로 채우라는 식으로 하니 형식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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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국민이 바뀌란 소리냐?
대통령 말씀에 또 답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