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민주주의가 안전에 취약하다고?

권위주의 정부에서 의회권력과 행정권력 견제와 균형 깨져…

정보 독점하는 정부, 세월호 참사 당일 오후 5시까지 현장 정보에 ‘깜깜’

세월호 참사는 민주주의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익숙했던 질문들을 다시 뒤집는다. 세월호 참사가 남긴 민주주의에 대한 몇 가지 질문들은 결국 민주주의가 안전에 깊고 넓게 관여돼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 정치에서 민주주의의 적은 줄곧 국회의원으로 여겨졌다. 관료들은 국회의원에 비해 믿음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정치권에 대한 주요 비판은 국회의원 특권 폐지와 같은 의회권력을 향했다. 18대 대선에서도 안철수 당시 대선후보는 ‘새정치’의 핵심으로 국회의원 특권 폐지를 들었다. 박근혜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 3월 20일 박근혜 대통령은 규제개혁 끝장토론에서 “의원입법을 통한 규제 양산을 막아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 사실상 의원입법권을 침해하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는 행정권력을 의회권력이 견제하지 못해 민주주의의 토대인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무너졌을 때 국민의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월호 참사 이후 쏟아져나오는 ‘해피아’와 ‘관피아’의 각종 비리는 한국 정치가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서 한참 벗어나 있음을 보여준다. 입법권까지 가지고 있는 행정권력은 정부입법을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시켜 왔다.

지난 5월 13일 열린 2014 초록연대 발족 및 생명 안전 정책협약식에서 정당 대표와 시민사회단체 대표 등이 ‘생명과 안전을 위한 약속공약’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 강윤중 기자

지난 5월 12일 경실련은 해양수산부, 해양경찰청이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선박의 안전점검을 제대로 하지 않아 문제기관으로 드러난 한국선급, 한국해양구조협회 등의 민간업체와 어떻게 유착돼 있는지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 한국선급, 한국해양구조협회 등 민간협회 단체 9곳에 총 47명의 퇴직공무원들이 주요 보직을 독식하고 있었다. 이들의 유착을 끈끈하게 만들어준 것은 이들에게 민간위탁 대행사업을 맡길 수 있도록 허용한 관련 법률이다. 15개 법률이 19번에 걸쳐 재·개정됐는데, 그 중 11번이 정부입법이었다. 예컨대, 한국선급이 선박검사를 대행할 수 있도록 허용한 법률 재·개정도 정부입법으로 이뤄졌다. 또한 세월호 참사의 직접적인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노후선박 규제완화 또한 정부입법이었다.

정부입법·과도한 시행령 폐해 심각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한국 사회가 관료주도형으로 성장하면서 정부의 의사결정 권한이 강해졌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행정부가 과도하게 의사결정을 하면서 엄청난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게 됐다. 그러면서 관피아가 생기고 관료에게 잘 보이는지 여부가 사업의 승패를 결정하는 풍토가 만들어졌다”고 말하면서 “정부입법이나 과도한 행정부의 시행령이 심각한 문제다. 국회가 행정부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는 부분은 비판받을 소지가 있지만, 그 이면에는 국회가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필요하다. 어떻게 보면 대통령과 행정부에 가야 할 비판의 화살이 국회로 갔던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는 ‘인권’과 ‘안전’이 서로 충돌한다는 국가권력의 주장에도 질문을 던진다. 안전과 인권은 민주주의 내에서 서로 충돌하는 가치로 여겨져 왔다. 박근혜 정부도 안전을 강조하면서 그 명분으로 검열·통제를 강화해 왔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안전을 강조한 정부에서 288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참사가 벌어졌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안전은 오히려 인권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안전이 ‘인간의 자유’와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자본의 자유’와 배치되는 것이다. 안전은 총체적 인권의 문제와 함께 고민해 나갈 때 풀릴 수 있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이와 관련해 ‘인권의 불가분성’이라는 개념을 들었다. 하나의 인권이 고립적으로 보장될 수 있는 게 아니라 서로서로 연관성이 있다는 뜻이다. 그런 맥락에서 노동자의 인권, 학생들의 인권, 인간에 대한 존중을 소홀히 한 상태에서 ‘안전’만 보장하겠다는 생각은 결국 위태로운 상황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세월호 참사를 ‘인권의 불가분성’과 연결시켜 본다면, 안전과 인권을 따로 떨어뜨려 놓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한국 사회의 인권과 관련된 지표는 최근 들어 점점 낮아졌다. 유엔 사회권위원회의 사회권 개선권고 추이를 보면, 2001년에는 30건에 불과했던 사회권 개선권고가 2009년에는 89건으로 늘어났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상황 실태조사 건수도 2002년에는 29건이었는데 2010년에는 7건으로 대폭 추락했다. 국제 언론 감시활동을 펼치고 있는 비영리 인권단체인 프리덤하우스의 자유도 순위도 2005년에는 ‘자유’에서 2013년에는 ‘부분적 자유’로 강등됐다.

안전, 총체적 인권문제 고민해야 풀려
반면 강력범죄 발생건수는 오히려 증가했다. 2005년 1만5000여건이었던 강력범죄는 2010년 2만5000여건으로 늘어났다. 각종 인적 재난사고 또한 2005년에는 2만5000여건에서 2011년에는 2만9000여건으로 증가했다. 홍성수 교수는 “이런 인권과 안전에 관한 특정 지표들이 직접적인 인과관계로 연결돼 있다고 볼 수는 없으나, 최근 10년간 인간의 존엄보다는 다른 가치가 우선한 경향성에 따른 관계가 있다고는 이야기할 수 있다”며 “세월호 참사 이후, 인간의 존엄과 권리가 무엇이냐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으로 나아갈 때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문제도 함께 강화되어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는 민주주의의 확대는 안전에 취약하다고 여겨져 왔던 관념에도 물음을 던졌다. 귄위주의 정부가 상대적으로 민주적인 정부보다 안전에 더 적합하다는 게 기존 관념이었다. ‘안보’와 ‘치안’ 등 안전의 가치가 보수적 가치로 여겨져 왔던 배경이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는 권위주의 정부가 안전에 더 취약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권위주의 정부의 특징은 정보 독점이다. 하지만 정보를 독점한 권위주의 정부는 오히려 정보에 어두웠다.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세월호 사건 발생 당일 오후 5시까지 대통령은 세월호 안에 승객들이 갇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세월호 참사는 정보를 독점하는 것보다 유통하는 것이 안전을 강화하는 데 더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류희인 NSC 전 사무처장은 참여정부에서 NSC 사무처가 신설되고 대통령이 국정원장과 독대를 하지 않으면서, 정보 유통이 가능해졌고, 그것이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한 요인이 됐다고 말했다. 류 전 처장은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국정원장, 검찰총장과 독대를 하지 않았다. 그러고 나자 위기관리에 필요한 각종 정보가 NSC 산하 정보관리실로 들어왔다”고 말했다. 대통령에 의한 정보 독점이 국가시스템에 의한 정보 처리로 전환한 셈이다. 그 결과 KBS 기자 피랍사건 등의 위기상황에서 첩보나 정보가 정보관리실로 바로 들어와 위기관리나 안전 강화에 도움이 됐다는 것이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