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절대맹주 사라진 충청 여당 빈손 구애에 ‘본때’

박 대통령 취임 후 영향력 감소 속 안희정·이시종 ‘소맹주’로 부상…

과학벨트 수정안 등 공약 뒤집기에 성난 민심, 야당에 ‘한 번 잘 해보라’ 기회 줘

6월 4일 오후 6시 후보자와 많은 유권자들이 초조하게 기다리던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새누리당 5곳, 새정치민주연합 5곳, 경합이 7곳이었다. 경합이 7곳이었지만 근소하게나마 우열이 표시되었다. 출구조사 결과에서 가장 충격적인 것은 충청권이었다. 출구조사의 예측이 맞아떨어진다면 새정치민주연합이 충청을 싹쓸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표 결과도 그랬다. 서울을 제외하고 새누리당이 경기와 인천에서 승리하며 수도권에서 발판을 만든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선거에서 충청권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영남과 호남의 지역주의가 뚜렷한 한국 선거에서 충청권은 선거의 최종 결과를 좌우하는 캐스팅보트 역할을 해왔다. 2002년과 2012년 초접전의 대통령 선거에서 충청권은 각각 노무현과 박근혜를 선택했다.(그림1) 두 사람은 모두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유세 도중 괴한의 테러를 당했다. 병상에서 일어나자마자 “대전은요”라고 충청권 표심을 걱정한 것은 두고두고 화제가 되었다. 한 유력 정치인의 염려 탓이었는지 제4회 지방선거(2006년)에서 충청권 세 곳 모두 한나라당이 휩쓸었다.(대전-박성효, 충남-이완구, 충북-정우택)

여당 구도·정책·인물 모두 밀려
2010년 지방선거에서도 충청권 세 곳 모두를 야권이 지배했다.(대전 염홍철은 자유선진당으로 당선된 뒤 새누리당으로 당적 변경) 이명박 정권 임기 후반기의 정권 심판론과 더불어 충청권 홀대론이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2년 총선에서는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이끄는 새누리당에 표심이 작동했고, 대통령 선거에서도 충청권은 당선에 일등공신이 되었다.

지방선구 출구조사 예측이 정확하게 개표 결과로 이어지자 충격에 사로잡힌 곳은 새누리당이었다. 바로 다음 총선과 대선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야권의 충청권 싹쓸이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 이유를 구도, 정책, 인물 세 가지 측면으로 분석하고 확인할 수 있다.

먼저 구도다. 2004년 총선에서 자민련의 몰락과 함께 지역의 절대 맹주 김종필의 영향력이 사라졌다. 김종필의 지역 영향력을 승계한 것이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충북 옥천이 외가라는 가족사와 대전 과학기술연구단지에 공을 들인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후광효과(halo effect)였다. 2012년 대선까지는 단언컨대 충청권은 박근혜 대통령의 독무대였다. 새누리당 소속의 이완구 전 충남지사가 부여와 청양의 보궐선거에 나올 때까지도 그 영향력은 그대로 이어졌다. 이 전 지사는 본인의 높은 인지도에 친박 후보임을 내세워 80%에 육박하는 고공 득표를 만들었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의 영향력이 그대로인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대통령 취임 이후 박 대통령의 충청권 영향력은 점차 감소되는 추세였다.(그림2)

반대로 2010년 선거에서 당선된 야권의 안희정, 이시종 지사는 지역에서 영향력을 계속 확대하는 추세였다. 말하자면 안희정, 이시종 지사가 지역의 ‘소맹주’로 등극하는 시점이었다. 한편 새누리당으로 당적을 변경한 염홍철 대전시장은 불출마를 선언했고, 박성효 전 시장이 국회의원직을 던지고 출사표를 던졌다. 결과는 2008년 총선(대전 중구)에서 친박 강창희 국회의장을 이긴 권선택의 또 한 번의 승리였다. 새누리당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박 대통령의 뒤를 잇는 지역 맹주가 없기 때문이다. 둘째로 야권이 승리한 이유는 지역 발전에 대한 우려와 분노 때문이다. 지난 총선과 대선 때 솜사탕같이 달콤한 황금빛 지역 공약이 판을 쳤다. 새누리당과 박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전과학벨트, 대전 엑스포 공원, 충남 아산과 당진 등의 공업단지, 충북의 오송단지 및 관광특구 개발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세종시 건설에 대한 원안 고수 및 추가지원 입장은 그 중 화룡점정(畵龍點睛)이었다.

하지만 지역 민심은 무엇 하나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특히 세종시 수정안처럼 지역 내 극렬한 반발을 일으킨 것이 과학벨트 수정안이었다. 대통령이 대선공약 말바꾸기를 했다며 규탄집회까지 열렸고, 지역 민심은 이반되기 시작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수도 이전 공약으로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인 도움을 받았다. 박 대통령 역시 ‘세종시 원안고수 및 플러스 알파 추가지원’으로 민심을 사로잡았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도전자의 입장인 새누리당은 이미 내놓은 공약을 이행할 의지마저 부족해 보였다. 결국 선물 없는 새누리당의 무한도전이 무모한 도전이 되어버린 순간이었다.

‘충청 얻는 자가 권력 얻는다’ 재확인
지방선거에서 야권이 충청권을 싹쓸이한 세 번째 이유는 인물 경쟁력이다. 지역 맹주와 박 대통령의 절대적 영향력이 사라진 충청권은 그야말로 각축장이 되었다. 출구조사 결과 세종을 포함한 4곳 모두가 경합지역으로 구분되었다. 선거 전 여론조사의 판세분석과 가장 차이가 많았던 곳도 충청권이었다. 세종과 대전은 새누리당 후보가 유리할 것이라는 전망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그만큼 다른 지역에 비해 부동층이 많았고, 마지막까지 예상 불가였다. 야권 승리의 요인은 현직 효과와 경쟁력 있는 대항마 선택이었다. 정당지지율은 낮았지만 안희정 지사와 이시종 지사의 도정에 대한 평가는 새누리당 지지율을 넘거나 일합을 제대로 겨룰 수준이었다.(그림3)

대전에 출마한 권선택 후보는 전 시장이었던 박성효 후보와의 승부에서 매우 전략적이었다. 상대적인 열세였던 인지도를 꾸준한 자기 알리기 전략으로 극복했다. 지역별로 차별화된 전략도 좋았고, 선거에서 성과로 나타났다. 박성효 후보에 대한 반감이 상대적으로 큰 서구와 유성구를 연일 공략했다. 그 결과 서구와 유성구에서 박 전 시장을 꺾고 승리의 발판을 만들었던 것이다.(그림4) 대전이라는 지역을 잘 알고 박 전 시장의 약점을 속속들이 파악한 결과였다. 세종에 출마한 이춘희 후보는 세종시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인물이다. 최근 세종시 거주자들의 가장 큰 불만은 애초 계획대로 교육기반 확충을 포함해 도시 건설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춘희 후보는 행복중심복합도시를 설계한 주인공이다.

지방선거 출구조사를 직접 진행해 보니 충청권 민심은 ‘다모클레스의 칼’(Sword of Damocles)처럼 보였다. 기회를 주었으니 한 번 해보라고는 하지만 잘못할 경우 시베리아 들판처럼 차가워지는 것이 충청권 민심이다. 그리고 또 한 번 확인했다. 충청을 얻는 자, 대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