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재판’ 왜 하필 이제야…

5~6년 지나 갑자기 출두명령, “세월호 진상규명 시위자들에게 경고 메시지?”

“제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책임을 지는 것이 맞겠죠. 하지만 도로교통방해라면 또 모를까, 형법인 일반교통방해죄를 적용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김원재씨(34·자영업)의 말이다. 김씨로부터 ‘일제히 재개된 2008, 2009년 촛불시위 재판’에 대한 제보를 받은 것은 지난 8월 하순. 벌써 5~6년의 시간이 흘러 잊고 있다가 법원으로부터 갑자기 출두명령을 받아 당황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저 같은 자영업자야 상관없는 일이지만, 회사생활을 하다가 통보를 받고 당황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때도 연행되면서 주위의 눈총에 회사를 그만둔 사람도 있는데, 당시의 고통스런 악몽을 다시 떠올리는 사람도 있고….”

그가 재판을 받은 날은 8월 22일. 검찰은 150만원 벌금을 구형했다. 김씨의 최종선고일은 10월 24일로 잡혔다. 형법 185조에 적시되어 있는 일반교통방해죄는 ‘육로 등을 손괴 또는 불통케 하거나 기타의 방법으로 교통을 방해하여 통행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하게 곤란하게 하는 일체의 행위를 처벌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법 위반자에게는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1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게 된다. 2008년과 2009년 촛불시위 참가로 기소된 사람들 대부분은 집시법과 일반교통방해죄 혐의가 적용되었었다. 야간 옥외집회를 금지한 집시법 10조는 지난 2009년 헌법불합치 판정을 받았다. 지난 3월 27일 다시 10조의 야간시위 금지와 벌칙을 담은 23조가 한정위헌 판결을 받으면서 집시법 적용의 근거는 사라졌다. 하지만 이틀 전인 3월 25일 헌재 일반교통방해죄와 관련해서는 전원일치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이번에 재개된 2008년 촛불재판은 헌재의 결정에 따라 속행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씨 등이 반발하는 것은 법 적용이 맞느냐는 것이다. 즉 “교통을 방해한 주체가 과연 촛불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이었느냐”는 것이다.

지난 2008년 5월 27일, 촛불시위 당시 촛불문화제를 마치고 행진을 하던 시민이 서울 명동에서 연행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일반교통방해죄 적용 벌금형 선고
이모씨(가명·39·회사원)는 그해 6월 27일 자신이 연행될 당시 시위에 참여하러 지하철역에서 나가니 이미 도로가 경찰차로 봉쇄되어 있었다고 말했다. “낮이었고, 아직 시위가 시작된 상황도 아니었어요. 경찰차로 도로가 봉쇄되어 있으니 사람들도 인도 쪽에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경찰이 치고 들어왔어요. 인도에 있는데 우리를 에워싸니 ‘우리는 인도에 있는데 왜 방해하냐’고 따졌습니다. 그래서 연행되었는데….”

약식재판에 넘겨진 이씨는 70만~80만원 정도의 벌금이 나왔다. 직장인이던 이씨는 차라리 벌금을 내고 정식재판을 하려 하지 않았다. 벌금형이 작다고 오히려 검찰 쪽에서 항고했다. 대법원까지 간 이씨는 최종적으로 지난해 무죄가 선고되었다. “아무리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오래 끌 일은 아니었습니다. 저 같은 경우 관련된 보도사진 등도 많이 수집해놓았고 해서 잘 끝났지만, 어떻게 보면 운수가 좋았던 것 같습니다. 저와 거의 똑같은 사례지만 지금까지 재판이 계속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문종석씨(44·온라인쇼핑몰 운영자)는 기자가 연락한 9월 24일, 막 선고를 받고 집으로 돌아가던 참이었다.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2009년 5월 2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오세훈 시장이 진행하던 하이서울페스티벌 행사가 중단되었습니다. 촛불 1주년을 기념해 모인 시민들이 있었거든요. 저는 단상에 올라가지도 않았는데 경찰들은 제 손과 목을 잡고, 시민들은 제 발을 잡고 실랑이하는 사진이 있어요. 업무방해까지 해서 검찰은 2년을 구형했고, 저는 다 유죄가 나왔습니다.” 문씨는 한 달 전 재판이 재개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출두하라는 날 가보니까 거의 모든 재판이 2008년, 2009년 촛불 관련 사건들 재판이었습니다. 아는 사람들도 꽤 만났어요. 진행되다가 중단된 사건 거의 대부분이 다시 시작된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그는 덧붙였다. “아무리 집행유예라고 하지만 화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벌써 5~6년이 흘러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내가 무죄라는 증거를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검찰쪽 주장대로 흘러가고 있으니…. 법규를 적용하려면 일반교통을 방해하려는 목적이 분명히 있어야 한다는 것이 증명되어야 하는데, 판사들은 그저 현장에 있었느냐 없었느냐, 참여했냐 안했냐만 묻고 그냥 유죄를 때리잖습니까.”

최근 재개된 촛불재판의 전체 건수는 얼마나 될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이 파악하고 있는 총피고인 수는 862명이다. 그 중 민변이 전담하고 있는 건수는 250건 내외다. 하지만 전체 인원이 얼마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예를 들어 노조파업과 같은 사건이라면 조직적인 참여이기 때문에 파악이 될 수 있지만, 시민들의 비조직적·자발적 참여로 촉발된 2008년과 2009년 촛불시위에서 전체 연행자 수나 처벌받은 사람들의 정확한 통계를 잡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대부분 150만원에서 300만원 사이의 벌금형이 구형되고 있고, 10월 말 정도까지 1심 선고가 내려질 예정이다.

특정재판부에 몰려 ‘기계적 판결’ 우려
민변 촛불변호인단의 주심변호사를 맡고 있는 이상희 변호사(법무법인 지향)는 “민변에서 자체 분석해보니 법원 단독재판부 중에서도 특정 재판부에 사건이 쏠려 있어 과연 제대로 재판이 진행될 수 있는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한꺼번에 사건을 진행하다보니 ‘기계적인 판결’이 남발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2008년 당시 ‘촛불 연행자’로 <주간경향>이 인터뷰했던 강은경씨(45·여·시나리오 작가)는 최근 재개된 자신의 촛불재판에 대한 심경을 담은 글을 한 인터넷언론에 기고했다. 현재 지리산에 내려가 있어 재판이 있을 때마다 서울 서초동으로 올라오는 ‘수고’를 해야 하는 그 역시 10월 1일 선고를 앞두고 있다. 그는 <주간경향>에 이렇게 말했다. “아마 유죄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데, 저도 그렇고 변호사도 그렇게 예측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벌금은 내지 않을 겁니다. 벌금을 내면 내가 잘못했다고 인정하는 것이 되잖아요. 사실 제가 폭력집회에 참여한 것도 아니고, 연행하는 것도 말도 안 되는 일인데 기소하는 것은 더 황당한 것이 아닌가요.” 벌금을 안 내면 노역형이 기다린다. “도망갈 생각은 없습니다. 벌금을 내면 제가 그걸 승복하거나 인정한다는 것이 되는데, 그럴 생각이 없으니 아무 때나 와서 잡아가라고 할 생각입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그럴 작정이라고 밝히니, 친구들이 웃더군요.”

<주간경향>에 촛불재판 재개를 제보한 김씨나 당사자들은 재판의 갑작스런 재개에는 어떤 ‘정치적 함의’가 있는 게 아닌지 의심했다. 문종석씨의 말. “결과적으로 ‘꼼짝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말 아닙니까. 2009년 이후에 지방으로 이사를 왔는데, 최근 세월호 관련해 나름대로는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재판을 받는 입장에서 아무래도 움츠러들 수밖에 없을테니까요. 현재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해 힘쓰는 사람들에게도 ‘너희들도 나서면 이렇게 된다’는 일종의 협박이고….”

촛불재판을 담당하고 있는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논란이 되었던 법리와 관련,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의 판례에 부응해서 빨리 판단을 내려 피고인 신분을 벗는 것이 사건당사자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일 것”이라며 “현재 진행 중인 재판에서 무죄를 받은 케이스도 없지 않은데, 기계적인 판결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참여연대와 민변은 10월 초를 예정으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촛불재판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