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스크린]드라큘라: 전설의 시작-‘드라큘라’의 평범한 비틀기

UPI KOREA

제목 드라큘라: 전설의 시작

원제 Dracula Untold

감독 개리 쇼어

주연 루크 에반스, 도미닉 쿠퍼

등급 15세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92분

개봉 2014년 10월 8일

브람 스토커가 <드라큘라>를 쓰면서 차용한 것으로 알려진 ‘꼬챙이 블라드’(Vlad the Impaler)에 대해 처음으로 읽은 건 1980년대 초반 무렵 매달 사보던 소년잡지에서였다. 요지는 이것이다. 루마니아 사람들에게 드라큘라는 무시무시한 흡혈귀 따위가 아니라, 외세에 맞서 싸워 나라를 지킨 민족적 영웅이었다고. 잡지에는 ‘꼬챙이 블라드’라는 고약한 별명의 원래 이름인 블라드 체페슈(Vlad Tepes) 또는 블라드 드라큘라라는 이름과 함께 역사문헌에 전해 내려오는 그의 얼굴 삽화도 실려 있었다.

영화 <드라큘라, 전설의 시작>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그 드라큘라 이야기가 아니다. 이 영화에는 신출내기 변호인 조나단 하커도, 그의 연인 미나도, 뱀파이어 사냥꾼 반 헬싱 박사도 나오지 않는다. 기자가 앞에서 언급한 그 ‘꼬챙이 블라드’에 대한 이야기다. 왜 꼬챙이 블라드냐고? 이 중세 루마니아의 ‘대공’은 우리에겐 돌궐로 더 유명한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 맞서 싸우면서 적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프로파간다를 즐겨 사용했다. 영화에서는 군인들만 당하는 것으로 묘사되었지만, 여자와 아이들까지 예외 없이 죽인 뒤 긴 꼬챙이로 항문을 꿰어 폐허로 변한 전장에 전시해놓는 것을 즐겼기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역사적 사실에 기반했다고 하는 이런 팩션영화의 보도자료를 보면 ‘꼼꼼한 고증’이니 하는 상투어가 나열되어 있지만, 다 헛소리다. 부인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남편, 아들을 지키기 위해 전쟁을 결심하고 동굴 속에 갇혀 있는 괴인을 만나러 가는 따위 등은 다 만들어낸 이야기다.

지난해 출간된 책 <주석달린 드라큘라>를 보면 브람 스토커의 소설 전후에 나온 비평·연구와 함께 다양하게 재해석되고 변주된 드라큘라 이야기가 집대성되어 있는데, 책에 언급된 연구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기자가 30년도 전에 접했던 역사적 인물 ‘꼬챙이 블라드’ 이야기도 별 관련이 없는 모양이다.

영화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한마디로 말하면 평범하다. 공장에서 찍혀 나온 공산품을 보는 느낌이랄까. 이 영화의 장르를 홍보사들의 자체 규정처럼 ‘판타지 액션 블록버스터’라고 한다면 딱 그만큼을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는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로부터 가장 멀리 나갔지만, 역시 그 영향권 내에 머물러 있다. 말하자면 브람 스토커의 원작에 기반한 또 하나의 변주이고 비틀기다. 사라 고든이 맡은 블라드 대공의 부인 이름은 ‘미레나’다. 하커의 연인 ‘미나’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하는 이름이다.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마호멧(한글 자막 번역에서는 종교를 의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술탄으로 번역한다)과 블라드의 대결 신은 여러 모로 흥미로운데, 흡혈귀가 은을 두려워하는 것을 아는 마호멧은 상납받은 은화더미 위에서 그와 대결을 펼친다. 공중에는 은화를 가득 담은 주머니들을 매달아놓고. 원래의 브람 스토커 텍스트에서 악을 물리치는 ‘선’의 도구(은으로 만든 십자가, 총알 etc)를 압제와 비열함의 알레고리로 비튼 것이다.

터치스크린

영화에 에피소드로 덧붙인 현재의 이야기도 생각해볼 만하다. 현대의 거리에서 다시 조우하는 주인공 남녀. 앞의 <주석달린…>에 실린 연구서들의 주장에 따르면 흡혈귀와 뗄래야 뗄 수 없는 또 하나의 민간 전승이 바로 죽지 않는 ‘생제르망 백작’ 이야기다. 영화의 원제는 Dracula Untold, 그러니까 ‘알려지지 않은 드라큘라 이야기’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