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전방위 고소고발 남발…보수단체ㆍ당국 커넥션?

진보단체 모임에 뛰어들어 구호를 외치고 무차별적으로 쏟아내는 고발장, 검찰은 소환조사 등 즉각 반응으로 ‘화답’한다, 과거와는 다른 보수단체들의 이 자신감의 동인은 무엇일까?

“‘여기까지 들어와 저런 일을 하다니’라고 일선 정보과 직원들도 놀라워한다. 확실히 과거와는 뭔가 다른 양상이다.”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비상원탁회의(이하 원탁회의)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주제준 한국진보연대 정책위원장의 말이다. 구랍 22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는 원탁회의 실무회의가 열렸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의 발언이 끝나자 박완석 한겨레청년단 대표가 손을 들고 질문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말하시는데, 북한의 3대 세습독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주최 측의 저지로 끌려나온 박 대표 일행은 밖에서 간략한 ‘항의집회’를 열었다. 박 대표가 소리쳤다. “자신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폭력적으로 탄압하는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논할 자격이 있는가.” 원탁회의장 밖으로 나온 보수단체 인사들이 환호하며 구호를 따라 외쳤다.

기자는 약 6년 전 박완석씨를 취재한 적이 있다. 당시 박씨의 직함은 외국인노동자대책시민연대(외대연대) 간사였다. 한때 고시 준비를 한 적도 있다는 박씨는 막노동을 하는 자신의 친형 사례를 들며 불법체류자 추방의 당위성을 역설했었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어버이연합 사무부총장, 한겨레청년단 대표로 변신해 있었다.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에 대해 해산을 명령한 구랍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로터리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추선희 어버이연합 사무총장은 “박씨는 개인사업을 하다가 올해 초부터 본격적으로 합류, 일을 같이하게 됐다”며 “어버이연합의 평균연령이 80세인데, 남과 북의 젊은 청년들이 목소리를 내자고 만들게 된 것이 한겨레청년단”이라고 밝혔다. 한겨레청년단은 박 대표와 새누리당 조명철 의원 보좌관 출신 탈북자 정남씨, 역시 탈북자인 이소연 뉴코리아여성연합 대표가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박근혜 7시간 미스터리’ 보도와 관련해 산케이신문이 입주해 있는 경향신문사 건물 앞에서 가토 다쓰야 지국장 규탄집회를 주도한 단체다. 이 단체는 산케이신문을 검찰에 고발해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고발이 들어오면 검토를 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구랍 23일 중앙지검 관계자의 말이다. 전날 검찰은 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산결정(구랍 19일) 직후 활빈단과 엄마부대 봉사단, 통진당해산국민운동본부 등 보수 3단체가 낸 이정희 당대표와 당원들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고발을 공안1부에 배당했다.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배당한 것이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중앙지검 관계자의 말이 길어졌다. “대부분의 사건은 당일 배당을 하는 것이 원칙이다. 밖에서는 의미를 부여할지 모르지만, 며칠이 걸리는지는 거의 의미가 없다. 통상적으로 대공이나 선거는 공안1부가, 노동은 공안2부, 집단행동이나 시위는 3부가 담당하는데, 이 건은 비교적 뚜렷한 사안이 아닌가.”

정윤회 조사도 보수단체 고발로 시작돼
보수단체의 고소·고발은 ‘전방위적’이다. 구랍 4일 검찰은 정윤회 국정농단 의혹사건과 관련해 박관천 전 도봉서 정보과장을 소환수사했다. 법적 근거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중앙지검 관계자는 “보수단체 활빈단의 고발이 있었다”고 답했다. 서울남부지검은 구랍 19일 최근 대한항공 청탁 파문을 일으킨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에 대해 “한겨레청년단이 공직자 윤리법 위반 혐의로 18일 고발장을 제출해옴에 따라 사건을 형사6부에 배당했다”고 밝혔다.

구랍 23일 오전 중앙지검 허위사실유포전담팀에서 ‘박근혜 불륜설’을 퍼뜨린 김모씨를 구속기소했다. 중앙지검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진정이 들어오거나 당사자에게 수사단서가 생기면 수사는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진정을 낸 사람이 누군지 밝히지 않았다. 다만 “대통령 명예훼손은 친고죄가 아니라 반의사불벌죄인데,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청와대의 요청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다음날 인터넷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에는 ‘데니스다’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인사가 “김씨를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한 사람은 본인”이라는 글을 올렸다. 지난해 9월 28일 자신이 고발을 했고, 10월 22일 2시간 고발인 조사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무차별적으로 선동한 행위는 법적 조치를 받아 마땅하다. 더 이상 국민들이 이러한 어이없는 허위선동에 현혹되지 않도록 사법적 판단을 받아야 할 것이다.”

‘데니스다’라는 닉네임으로 일베에 글을 올린 사람은 SNS 기반의 보수단체 새마음포럼의 데니스 김 대표다. 일베나 수컷닷컴과 같은 인터넷커뮤니티에서는 심심치 않게 보수단체 활동가들이 직접 올린 활동소식을 볼 수 있다. 서북청년단 대표 배성관씨(전 멸공산악회 회장)는 실명을 닉네임으로 사용하고 있고, 정함철 대변인은 ‘바른생활M’이라는 닉네임으로 글을 올리고 있다.

“그렇게 해야 뜬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일종의 노이즈마케팅으로 고소·고발을 남발하는 것 아니겠느냐.” 최근 서북청년단 등과 고소·맞고소 싸움을 벌이고 김인수 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 대표의 말이다. “안두희가 과거 서북청년단 소속이었다. 서북청년단을 계승한다고 하다보니, 그런 테러활동이 문제가 되자 ‘김구는 김일성의 꼭두각시였다’고 일베 게시판에다 글을 올렸다. ‘김구 선생을 그렇게 보는 것이 정신병자와 같다’고 인터뷰에서 말하니 그것을 근거로 명예훼손으로 맞고소가 들어온 것이고.” 그는 “이 사람들의 행태를 보면 과연 보수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존경할 만한 우파 지도자가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익명을 부탁한 한 보수단체 대표의 말이다. 그는 덧붙였다. “일단 종북에 반대한다고 하니 다 모이지만, 그 실체를 알면 웃지 못할 일이 많다.” 이 인사는 여러 사람들의 경우를 말했다. “다 무슨 단체 대표니 하는 직함을 달고 있지만, 다 허깨비 짓에 불과하다. 경향이나 한겨레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지만, 코미디 같은 일이 너무 많다. 하버드대를 졸업했다고 주위에 말하고 다니는 A씨는 영어를 한 마디도 할 줄 모른다. B씨는 자신이 경기도 모 지역의 주먹 출신이라고 자랑하고 다니지만, 실제 모 목사 경비원들에게 맞아 쫓겨나는 것을 보니 그것도 말짱 거짓말이었다. 세월호 농성장 철거하라고 이야기해 물의를 빚었던 C씨는 MB정부의 멘토로 알려진 모 목사와 가까운 사이다. 한나라당 대선 경선을 할 때는 거품을 물며 박근혜 욕을 하다가 정권이 바뀌니 입을 싹 닦고 자기 과거 발언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존경할 만한 우파 지도자 없다”
이른바 ‘전향 386’ 그룹으로 분류되는 한 뉴라이트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서북청년단이 보수우파 내에서 받는 지지를 보면 과거 좌파의 모습을 답습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최근 황선·신은미 콘서트와 관련해 고등학생의 황산테러를 영웅적인 행위로 칭송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1980년대 말 주한 미대사를 납치하겠다고 사제폭발물을 들고 점거계획을 세웠던 학생들이 생각났다. 둘 다 혈기왕성한 학생들의 한때 과격한 생각일 수 있다. 문제는 돈이 있고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사람들이 그것을 부추기고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보수단체 인사는 이렇게 ‘우려’를 보탰다. “문제는 누가 활동자금을 받는다고 그것을 막을 수 없다는 점이다. 다 각각 따로 1인 1단체가 되어 있으니 말이다. 국정원 활동비 중 상당액이 국회의 통제도 받지 않는다. 만약 이런 돈이 흘러들어간다면? 선거를 통해 정권은 바뀔 수 있다. 정권이 바뀐 뒤 그 검은 커넥션이 드러난다면 애국운동이 받을 타격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다른 보수단체 사람들이 답해야 할 차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