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한국경제 숨겨진 뇌관 ‘에듀푸어’

가계 적자에도 교육비 평균 이상 지출로 빈곤하게 사는 집 82만 가구 넘어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주부 이모씨(40)는 1년 전부터 동네의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자녀가 자랄수록 감당이 안 되는 교육비 지출 때문이었다. 이전까지는 시댁의 도움을 받았지만 더 이상은 손 벌리기 어려운 사정 때문에 직접 돈을 벌러 나설 수밖에 없었다. 중학교 2학년인 큰딸에게 들어가는 학원비와 과외비가 한 달에 55만원, 초등학생인 둘째도 새해부터 태권도 도장까지 보내면 얼추 30만원까지 내야 한다. 일을 하기 전까지는 남편이 벌어오는 월급으로만 따지면 적자인 채로 2년 넘게 가계부를 쓴 적이 있다. 아파트 대출금에 생활비가 ‘빵꾸’가 나도 교육비는 한푼도 포기하지 않았던 게 이씨는 은근히 뿌듯하다.

의·식·주 분야 소비는 평균 이하
높은 수준의 대학 등록금을 졸업을 미뤄가면서까지 납부하는 한국 학부모의 교육열은 자녀의 초·중·고교 시절부터 만들어진다. 이씨의 경우처럼 가계에 빚이 있고 다달이 적자가 나더라도 평균 이상의 교육비를 지출하는 ‘에듀푸어’ 가구만 82만4000가구, 305만명 규모에 달한다. 자녀 교육비 지출이 있는 전체 가구의 13%에 해당하는 수치다.

교육 빈곤층이란 용어로도 불리는 ‘에듀푸어’ 가구는 높은 사교육 의존도와 사교육비 지출규모를 동시에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보고서 ‘국내 가구의 교육비 지출구조 분석’에 따르면 에듀푸어는 ‘부채가 있고 가계가 적자상태인데도 평균보다 많은 교육비 지출 때문에 빈곤하게 사는 가구’로 규정된다. 자녀 교육비 지출이 있는 가구의 평균 교육비는 소비지출의 18.1%인 데 비해 에듀푸어 가구의 교육비 비중은 28.5%에 이른다. 이에 상당하는 금액이 적자가 된다. 소득의 22%인 약 68만5000원이 에듀푸어 가구의 평균 가계수지 적자였다.

서울 양천구 목동 학원가에서 학원수강을 마친 학생이 귀가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에듀푸어 가구는 소득수준이 높아지는 속도가 교육비 지출 증가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며 확산되고 있는 양상이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도시 2인 이상 가구의 월평균 교육비는 1990년 4만9653원에서 2013년 29만2359원으로 5.9배 늘어난 데 비해 같은 기간 월평균 소득은 93만8133원에서 420만3326원으로 4.5배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 기간 소득 대비 교육비 비중은 5.3%에서 7.0%로, 소비지출 중 교육비 비중은 8.2%에서 11.7%로 각각 커진 것이다.

교육에만 집중한 나머지 이뤄지는 불균형적 소비는 생활을 기형적으로 만든다. 에듀푸어 가구에서 교육을 제외한 의·식·주 등 다른 분야의 소비는 모두 평균 이하로 줄어든 특수한 소비행태를 보인다. 에듀푸어 가구는 전체 소득 중 의식주에 29.4%를 소비하는데, 이 수치는 평균인 32.4%보다 3%포인트 낮다. 그밖의 필수적인 소비부문인 보건·교통·통신 등으로 나간 지출규모도 에듀푸어 가구에서는 평균보다 7.0% 낮았다.

이씨의 가구 역시 시부모로부터 지원받은 생활비를 제외하면 적자가 지속되던 상황에서 가장 먼저 허리띠를 조른 항목은 식비였다. 이씨는 “친정 식구들에게서 받는 반찬을 아껴 먹는 자린고비 식단을 해왔다”면서 “패스트푸드점 일을 하게 되니 마감시간에 남는 음식을 안 먹고 들고 와서 애들 먹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겨울철 난방비 역시 절약의 대상이다. 겨울이 돼도 보일러를 온수 전용으로만 바꿀 뿐이다. 대신 창문마다 뽁뽁이와 문풍지를 붙이는 건 물론 식구마다 침낭에 들어가 자는 게 일상이다.

에듀푸어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가계부채 가운데서도 증가 속도가 가장 높다는 점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가계의 교육비 관련 부채규모는 2013년 말 기준 28조4000억원에 이른다. 전년 대비 12.3% 증가한 수치로 같은 기간 전체 가계부채 액수가 늘어난 폭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전세자금대출 액수가 약 60조원 규모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 절반에 가까운 교육비 관련 가계부채 역시 한국 경제의 숨겨진 뇌관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에듀푸어 가구의 적자가계가 장기간 유지될 수는 없다. 때문에 에듀푸어 가구의 교육비 지출은 이씨처럼 기혼여성 일자리 문제로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최형재 고려대 교수(경제학)는 ‘자녀 교육과 기혼여성의 노동공급’이란 논문에서 기혼여성의 소득활동 참가율이 자녀의 나이가 올라가고 사교육비 액수가 커질수록 높아진다고 분석했다. 미취학 자녀를 둔 어머니(43.5%)에 비해 막내 자녀의 나이가 초등학생(59.4%), 중학생(65.3%), 고등학생(66%)으로 점차 올라갈수록 일하는 어머니들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교육비 관련 가계부채 증가율 가장 높아
더 들여다보면 소득수준에 따라서도 차이가 나타났다. 월평균 60만원 미만의 사교육비를 지출하는 저소득층 가구에서는 어머니가 돈을 벌러 나가는 비율이 70.1%에 달했지만, 사교육비로 월평균 60만원 이상을 쓰는 중산층 이상 가구에서는 이 비율이 53.9%에 그쳤다. 종합하면 소득이 낮고 빚이 많은 데다 가계 적자규모가 클수록 에듀푸어를 겪을 뿐만 아니라, 가정에 있던 어머니가 낮은 질의 일자리로 나서는 비중도 높아진다고 할 수 있다. 최 교수는 “당장 급한 사교육비 부담으로 기혼여성들이 열악한 일자리도 받아들여 하향 취업하는 경향이 있다”며 “사교육비 부담을 줄여야 여성들이 저임금·비정규직 직장에 취업하는 요인도 줄어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근본적인 원인과 해법은 공교육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교육비 지출이 지속해서 증가하는 첫 번째 이유로 공교육 관련 전체 지출 가운데 민간 부담 비율이 높다는 점이 꼽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민간 부담이 0.9%인 데 비해 한국의 민간 부담은 2.8%로 1.7%인 일본이나 0.5%인 프랑스보다 높다. 조호정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학력이 낮으면 능력이 있어도 성공할 수 없다는 생각이 고정관념으로 박힌 탓에 가계부채를 안고 사는 가구들조차도 자녀 교육에 과도한 지출을 한다”며 “과다한 교육비 부담을 완화하는 것은 공교육이 내실을 갖추도록 교육재정을 확충해야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