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연세대 백양로 사업 백년지대계인가

정문~본관 도로 재창조 프로젝트… “씨 뿌릴 종자로 마을잔치 한 셈”

미로다. 구불구불한 길 양 옆엔 높다란 펜스가 세워져 있다. 학생회관 계단 앞에 섰다. ‘위험 추락주의’ 공사표지판과 그물이 가로막았다. 5m 남짓 계단 아래 ‘미로’를 지나가는 학생들. 계단이 전부 막혀 있으니 어떻게 내려갔는지 알 수 없다. 백양로. 연세대 정문에서 본관 앞 언더우드 동상까지 약 600m의 도로 이름이다. 과거 길 양옆으로 백양나무가 심어져 있어 붙은 이름이다. 백양로는 지금 공사 중이다.

“정문으로 들어오시면 안 되고요. 교문 옆에 보면 건물이 있지 않습니까. 그쪽 옆 출입문으로 들어오시면….” 임홍철 연세대 백양로 재창조 프로젝트 건설사업단장(건축공학과 교수)을 만나러 가는 날, 그는 구 공대건물(제1공학관)에 있는 자신의 연구실로 갈 수 있는 몇 가지 경로를 알려줬다. 선뜻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제1공학관의 정문은 현재 막혀 있다. 다른 건물 1층 로비를 가로질러, 반대쪽 문을 열고 제1공학관 뒤쪽 소로를 찾아가야 했다.

취재를 하게 된 계기는 2014년 연말,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가 보낸 안부 E메일 때문이었다. 메일 끝자락에 “백양로 ‘난개발’과 관련한 백서가 나왔다”는 언급이 있었다. 백서의 제목은 “백양로 대안은 있었다”다. ‘있다’가 아니라 ‘있었다’라는 과거형이다. “이제 우리의 백양로는 기억 속 공간이 되었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한마디가 너무도 무력해진 오늘, 그래도 기억을 이야기하는 이유가 있습니다.(중략) 백양로 난개발의 역사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되풀이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의 단면입니다.” 백서의 ‘프롤로그’에 제시된 공사가 끝나가는 마당에 ‘백서를 남기는 이유’다.

‘차 없는 백양로’를 목표로 한 연세대의 백양로 재창조 프로젝트는 올해 8월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사진은 공사가 진행 중인 연세대학교 백양로. | 정용인 기자

저지농성과 대안 묵살하고 공사 강행
백양로 재창조 사업은 정갑영 현 총장의 공약사업이다. 정 총장의 임기는 2012년 2월 1일에 시작해 2016년 1월 말까지다. 정 총장은 백양로 재창조 사업 홈페이지에 올린 인사말에서 “아시아를 대표하는 세계적 대학으로 우뚝 서는 ‘제3의 창학’에 걸맞은 교육연구 인프라 확충의 중심”으로 백양로 재창조 사업을 거론하고 있다. 차량과 주차를 지하화함으로써 지상은 친환경 보행로와 광장을 조성해 ‘차 없는 백양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주변에 같이 짓는 다른 건물들을 포함해 예산은 1100억원. 총장 취임 직후인 2012년 3월부터 TF팀이 구성되어 추진되었고, 본격적인 공사는 2013년 8월부터 시작되었다. 반발은 공사 시작 직후부터 시작되었다. 9월 ‘졸속 개발계획’을 비판하는 교수평의회(교평) 소속 교수들의 기자회견이 있었고, 벌목공사가 시작되자 중앙도서관 앞에 교수와 학생들이 천막을 치고 ‘저지 농성’을 했다. 천막은 강제철거당했다. 노숙자가 자러 온다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수들이 전체 투표를 해 투표 참가자의 압도적 다수(377명)가 본부안이 아닌 대안을 지지했습니다. 본부 측에서는 불법투표라며 인정하지 않았고요. 투표도 하고 여러 가지 자료집도 만들었지만 본부가 밀어붙이니 다들 동력을 잃어버렸어요.” 김용민 독어독문과 교수의 말이다. 그는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끝난 것이 아니고, 양쪽의 안이 나온 상태에서 한쪽으로 몰아붙인 것이라서 좌절감 내지는 절망감이 더 크다”고 덧붙였다. 학교 측의 개발계획에 대한 ‘대안’은 토목·환경 등에 전문성이 있는 공대 교수들을 중심으로 제시되었다. 백양로를 따라 얕고 길게 땅을 파는 대신, 대운동장이나 의료원 인근에 깊게 땅을 파 주차장을 만들면 본부측 안의 차량 수용 목표치와 얼추 비슷하게 나온다는 것이 골자다.

대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분들의 ‘대안’에 대해 딱히 코멘트하고 싶진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재창조 프로젝트라는 것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고, 과거 다른 총장 때도 마스터플랜을 만들어 실행하려 했지만, 기금 마련 등에서 어려움이 있어 못했던 것을 이제서야 하는 겁니다.” 재창조 프로젝트 건설사업단장을 맡고 있는 임홍철 교수의 말이다.

대안을 제시한 교수들의 문제의식은 미래가치를 대비해 지하 개발은 최소한으로 하자는 것이다. 현재처럼 ‘얕고 길게’ 팠을 때 콘크리트 구조물의 사용연한은 50~60년인데, 그때가 되면 학교 측에서 내세우는 지상의 녹지공간도 모두 걷어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임 교수는 “지하 개발의 불가역성 주장 등은 잘 알고 있지만 원론적인 이야기”라며 “영국의 지하철이 150년 되었고, 서울만 하더라도 지하철 1호선이 1974년에 개통했는데 40년이 지났는데도 다시 파내야 한다는 이야기는 없지 않는가”라고 반문했다.

학교측이 제시하고 있는 공사 완료 후 조감도. | 연세대학교

공사비 1100억원 기금모집도 논란
이상호 연세대학교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는 ‘대안’ 작성에 참여했던 교수다. “물론 어떤 건축물을 50년 넘게 쓸 수는 있습니다. 흙의 보호를 받는 지하시설은 구조 안전성 측면에서 수명이 더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튼튼하게 지어진 아파트는 30~40년 지나도 구조적으로 안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부구조, 목욕탕이나 냉난방서비스 수준이 더 이상 만족스럽지 못하면 그 기능은 다한 것으로 봅니다. 구조물 사용연한은 안정성 수명뿐 아니라, 여러 가지 사용서비스 수준에 의해 결정됩니다. 누군가 100년을 쓴다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엄청난 유지보수비가 필요합니다. 그런 부분에서 경제성을 따져 초기부터 철저한 설계와 시공상의 품질관리가 있어야겠죠.” 결국 본부의 ‘재창조 프로젝트’는 100년, 200년을 내다보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단기적인 가시적 성과에 경도되어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평이 주도한 공청회 속기록에는 이런 ‘비유’가 나온다. “예를 들어 어떤 마을에서 크게 잔치를 하고 싶은데 마땅히 잔치를 할 음식이 없어 내년에 씨 뿌릴 종자 쌀로 잔치를 하겠다고 발표한 셈이다. 잘 모르는 아이들이야, ‘떡 많이 먹게 되니 좋다’고 할지는 모르지만, 결국 마을의 미래를 담보로 잔치하는 것 아니냐.”

기금도 논란 대상이다. 1100억에 이르는 공사비는 교비가 아닌 기금으로 충당된다. 학교 측은 기부금이 어느 정도 모였는지 구체적인 수치는 밝히지 않는다. 학교의 기부 안내 페이지에 따르면 1계좌(50만원) 이상이면 일반석에, 1000만원 이상이면 ‘명예의 전당’석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1억원 이상 기부하면 세미나실 명칭을 부여하며, 50억원 이상이면 동문라운지 명칭을 부여한다고 되어 있다. 대외협력처 관계자는 “모금 목표액 중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고 있으며, 모금으로 공사비를 충당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면서도 전체 공사비용 중 얼마나 기부를 통해 진행하는지는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임 단장은 “동문들의 기부 이외에도 교내 입주기관이 수익자 부담으로 분담금을 내서 진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대외협력처 관계자는 “동문 명패를 새기는 것은 이미 학교 노천극장 공사 당시(1998년)에도 시행했던 일이며, 그분들의 기여에 보답하고자 작은 성의를 보이는 것이 큰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백양로 재창조 프로젝트 공사는 올해 8월 완공 예정이다. 임 단장은 “순조롭게 공사가 진행되는 편이고, 딱히 난공사라든지 열악한 조건에서 이뤄지는 공사가 아니기 때문에 잘 마무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백서’에는 대안을 주장하는 교수들의 주장과 그에 대한 본부측의 ‘반응’이 골고루 실려 있다. 백서를 읽다보면 기시감이 든다. 이명박 정부 시절 추진되었던 4대강 사업이다. 지난해 12월 24일, 국무총리실 산하에 만들어진 4대강 조사평가위원회의 발표문에는 “홍수예방, 물자원 확보 등 애초에 내걸었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였으며, 왜 그 자리에 보를 건설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는 대목이 있다. MB 정부 시절 4대강 사업에 대한 비판에는 환경단체가 나서기 전 토목·물 전문가들의 비판이 있었다. 백양로 재창조 프로젝트도 특이한 것은 건축·토목 전문가인 공대 교수들이 대안에 힘을 실어줬다는 점이다. 8월에 완공되면 당장은 그림이 좋을지 모르지만 50년, 100년 후에는 과연 어떻게 될까. 50년 후면 현재 캠퍼스를 걷고 있는 20대가 사회생활에서 은퇴한 70대다. 만약 ‘대안’ 측의 우려가 현실화된다면 그 책임은 과연 누가 지게 되는 걸까. 취재하면서 ‘대통령 임기 내 완수된 4대강 공사’가 자꾸 떠오른 까닭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