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스크린]주피터 어센딩-워쇼스키 남매의 블록버스터

워너브라더스코리아(주)

제목 주피터 어센딩

영제 Jupiter Ascending

감독/각본 라나 워쇼스키, 앤디 워쇼스키

출연 채닝 테이텀, 밀라 쿠니스, 숀빈, 에디 레드메인

개봉 2015년 2월 5일

상영시간 127분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클라우드 아틀라스>(2012)를 리뷰한 뒤 곰곰이 생각해보니, 평론 쪽이나 관객들이야 어떤 거창한 의미를 부여했을지 모르지만, 자기들끼리는 낄낄대면서 만들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배두나는 지구 멸망 후 숭배 대상이 되는 손미 451이기도 하지만 멕시칸 여자로 분장하고 나오기도 하며, 틸다와 메건의 엄마로도 나온다. 다시 라나/앤디 워쇼스키 남매의 후속작에 나오는 배두나. 이번에는 현상금 사냥꾼 라조다. 조연이다. 1980년대 펑키스타일의 머리를 하고 얼굴에는 문신이 가득하다.

신작 <주피터 어센딩>은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다. 주인공 소녀에게 주피터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아버지였다. 천체망원경으로 하늘을 관찰하는 것이 일이자 취미였던 아버지는 느닷없이 등장한 강도떼에게 죽임을 당한다. 미국으로 향하는 밀입국선 안에서 어머니는 딸을 낳는데, 생전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주피터’라는 이름을 붙일 것을 고집한다. 고상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지만 현실은 시궁창. 러시아계 이민자로 매일 새벽 4시45분에 일어나 화장실 청소로 살아가는 청춘이다. 이불 속에서 꼼지락거리면서 그녀가 중얼거리는 말은 이것이다. “나는 내 인생이 싫어.”

그리고 반전. ‘알고 보니’ 그녀는 우주의 지배자 아브라삭스 가문의 여왕 세라피의 환생이었던 것이다. 세라피가 죽은 이후에 우주는 그녀의 세 아이들, 큰아들 발렘과 둘째 딸 칼리크, 막내 타이터스가 나눠 지배하고 있었다. 지구에서 그녀가 환생한 것을 알아차린 아브라삭스 가문의 계승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배신과 음모.

앞서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라고 한 것은 순진한 주피터가 위험에 빠질 때마다 백마 탄 왕자님처럼 그녀 앞에 나타나 구원해주는 전직 군인 케인의 존재감 때문이었다. 이후에도 후속 시리즈가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더딘 주피터의 ‘각성’은 케인의 도움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까지 주피터의 존재 증명은 오직 케인이라는 마초 캐릭터를 통해서만 이뤄지는 것으로 묘사된다.

영화가 개봉하면 가장 많이 비교될 영화는 역시 이들 남매의 대표작인 매트릭스 시리즈(1999~2003)일 것이다. 알고 보니 인간은 사육당하는 에너지원이었다는 설정은 이 영화에서 업그레이드된다. 지구는 우주를 지배하는 왕족 가문의 산업에 이용되는 일종의 인간농장이었다. 인간의 생체에너지로부터 뽑아낸 엑기스는 이들이 수십만년을 노화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안티에이징’ 제품의 원료였다. 아브라삭스 가문이 ‘수확’이라고 표현하는 작업은 지구농장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입장에서는 인류문명의 대멸절이다. 공룡의 멸종이나 종말론 설화들, UFO의 출현, 외계인, 뱀파이어 전설의 기원, 신(神)이라는 믿음 등에 대해 영화가 취하고 있는 입장이 재미있다. 어떻게 보면 이전에 리뷰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프로메테우스>(2012)와 비슷한 포지션이라고 할 수 있는데, <프로메테우스>처럼 심각한 얼굴을 하고 주장한다기보다 상당히 가볍게 처리되고 있다.

터치스크린

돌이켜 생각해보니, 세라피가 어떻게 주피터로 환생하게 되었나에 대한 설명이 없다. 세라피가 다 사전에 계획한 것이라고 하지만 전작 <클라우드 아틀라스>에서 천착한 주제인 ‘환생’에도 어떤 우주법칙이 있다면 그것까지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들어간 예산에 비해 처음부터 끝까지 독립영화 냄새를 풀풀 풍겼던 전작에 비하면 이 영화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스타일이다. 관객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자못 궁금하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