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TV ]‘고품격 갑질’ 블랙코미디

SBS 월화극 <풍문으로 들었소>의 시청률이 8.7%(이하 닐슨 코리아 전국 가구 기준)를 넘었습니다. 첫 방송이 7.2%, 3회가 6.5%인 걸 생각하면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거죠. 방송 기사를 쓰려면 인기 있는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의 시청은 필수입니다. 보통은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를 택해 1회부터 시청을 시작하곤 합니다.

<풍문으로 들었소>를 고른 이유는 안판석 PD와 정성주 작가의 조합 때문이었습니다. 먼저 안판석 PD의 연출작부터 읊어보겠습니다. <짝> <장미와 콩나물> <흥부네 박 터졌네>…. 여기까지만 이야기하면 ‘가족극에 강한 연출자구나’ 생각하실 겁니다. 그러나 2007년부터는 분위기가 바뀝니다. <하얀거탑> <아내의 자격> <밀회>…. 정성주 작가의 작품도 열거해보겠습니다. <우리들의 천국> <장미와 콩나물> <아내의 자격> <밀회>…. 그렇습니다. 두 사람은 종합편성채널에 편성됐지만 세간의 큰 화제를 모았던 드라마의 주역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종편이라는 다소 좁은 틀을 벗어나 지상파에서 시청자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SBS 월화극 <풍문으로 들었소>./SBS 제공

<하얀거탑>에서부터 안판석 PD의 연출 스타일은 선명한 색을 냈습니다. 병원에서 연애하는 이야기를 ‘메디컬 드라마’라고 생각하던 고정관념을 깨고 병원 내 권력을 향한 암투를 조명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내의 자격>은 강남 입시 경쟁에 휘말린 평범한 엄마에게 찾아온 치명적인 사랑을 다뤘습니다. <밀회> 역시 예술재단 기획실장과 천재 피아니스트인 연하의 남성이 음악적 교감에서 신체적 교감까지 나누는 과정을 밀도 있게 그렸습니다.

그가 이번에 선택한 드라마는 ‘블랙 코미디’입니다. 안 PD는 멜로를 하면서도 지식인이나 사회지도층, 이를 테면 의사, 음대 교수, 강남 고소득층의 허위의식을 꼬집었는데 이번에는 대한민국 상위 0.01% 입지를 가진 로펌 대표의 집안을 다룹니다. 드라마를 보면 기본적으로 헛웃음이 나는 상황이 많습니다. 대형로펌 대표인 한정호(유준상)와 역시 어마어마한 배경을 가진 아내 최연희(유호정)는 아들 한인상(이준)을 자신과 버금가는 상류층으로 만들 계획을 착착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인상은 교육 관련 캠프에서 만난 서봄(고아성)과 불같은 사랑에 빠지고 결국 출산을 앞둔 여자친구를 집으로 데려옵니다. 대한민국 권력까지 주무르던 한정호 일가의 희극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이들은 최선을 다해 서봄의 출산 소식이 새나가는 걸 막습니다. 음악을 크게 틀어 출산 소리를 막고, 친구들에게도 수시로 거짓말을 합니다. 그리고 몰래 비서를 보내 서봄의 부모에게 합의금을 제안하기도 합니다. 물론 서봄에게는 격식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최선의 배려를 합니다.

SBS 월화극 <풍문으로 들었소>./SBS 제공

‘고품격 갑질’에는 그만큼의 노력이 들어갑니다. 한정호, 최연희 부부는 서봄의 존재가 소름끼치도록 싫지만, 지금껏 쌓아온 입지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애써 분을 삭입니다. 여기서 나오는 그들의 각종 어색한 행동이 분노가 아닌 웃음을 줍니다. 탈모가 생길까봐 수시로 정수리를 내려치고 툭하면 ‘플랜 A’ ‘플랜 B’를 내뱉는 한정호의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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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는 주중 미니시리즈 치곤 긴 30회로 편성됐습니다. 이 덕에 드라마는 치밀하게 설정을 쌓아올릴 수 있게 됐습니다. 안 PD 특유의 어두운 색감과 재벌집을 몰래 보는 듯한 앵글, 그리고 정성주 작가 특유의 필치가 몰입을 돕습니다. ‘안판석 매직’이 어떤 결과물을 낳을지 궁금합니다.

<하경헌 경향신문 엔터·비즈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