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불만 쌓인 관가 “총리나 잘하세요”

유별한 공직기강 잡기에 인심 잃어… ‘토이 리’라 부를 정도로 신뢰도 추락

4월 1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차관회의. 추경호 국무조정실장은 “대통령이 순방을 떠났고, 여러 가지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만큼 업무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 달라”며 “공무태세가 이완되지 않도록 긴장감을 갖고 각종 현안을 차질 없이 추진해 달라”고 말했다.

비슷한 시각.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TV뉴스를 지켜보던 모 부처 한 서기관은 누구 들으라는 듯 이렇게 중얼거렸다. “총리나 잘하라지….”

‘성완종 파문’에 연루된 이완구 국무총리를 보는 관가의 시각이 차갑다. 공심(公心)은 떠난 지 오래다. 이 총리 취임 이후 두 달 만에 닥친 레임덕이다. 박근혜 대통령 해외순방 기간 중 대통령 직무대행을 하게 된 데 대해서는 “부끄럽다”는 얘기가 서슴지 않고 나온다. 그동안 서슬 퍼렇게 활동해온 국무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실도 면이 안 서게 됐다. 한때 ‘2PM’(이완구 Prime Minister)으로 불리며 큰 기대를 받았던 이 총리는 어쩌다 이렇게 망가졌을까.

파문이 겹치기 전부터 세종관가는 이 총리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이 총리가 취임과 함께 밀어붙인 공직기강 잡기 때문이다. 한 국장급 인사는 “공무원 사회의 부패는 바로잡아야겠지만 이 총리의 유별난 공직기강 잡기는 청문회 당시 흠집 났던 자신의 리더십을 되살리기 위해 악용한 것 아니냐”며 “정확히 말하면 공무원 기강잡기가 아닌 자신의 힘을 보여주는 군기잡기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지난 2월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직원들이 이완구 국무총리 취임식 준비를 하고 있다. 이 총리는 취임 직후 “공직기강 확립”을 외쳤지만 자신의 뇌물 혐의가 불거지면서 오히려 “총리나 잘하시라”는 비아냥을 받고 있다. | 정지윤 기자

공직복무관리관실의 과도한 ‘갑질’
이 총리는 지난 1월 인사청문회에서 혼쭐이 났다. 아들 병역특례 논란과 부동산 투기 문제, 부적절한 언론관이 드러나면서 낙마 직전까지 갔다. 가까스로 인사청문회를 통과한 이 총리로서는 공무원들을 다잡을 방안이 필요했다. 더구나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를 받는 ‘책임총리’라는 감투까지 씌워진 상태였다. 그의 세종 입성 첫 일성은 “공직기강 확립”이었다. 이 총리는 2월 17일 취임사와 23일 총리실 첫 간부회의를 통해 “기강이 해이하고 성과가 부진한 기관의 장·차관, 청장 등 중앙행정기관의 장에 대해서는 헌법과 법률에 의해 주어진 국무위원 해임건의건과 인사조치를 포함한 지휘감독권을 엄하게 행사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이 총리가 사정정국을 만들 수 있던 것은 자신이 경찰 출신이라는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1974년 행정고시 15회로 공직에 들어와 내무부와 경제기획원 사무관을 거친 뒤 충남경찰청장을 역임했다. 세종 제2정부청사에서 일하는 한 관료는 “경찰에다가 충남도지사까지 했으니 공무원 다루는 법을 누구보다 잘 알았을 것”이라며 “공무원을 치면 여론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잘 알았겠지만, 이를 과도하게 활용하려 하면서 공무원들의 인심을 잃었다”고 말했다.

때마침 국세청과 감사원 직원들이 서울에서 성매수를 하다 적발됐다. ‘사라진 김 과장 사건’도 터졌다. ‘사라진 김 과장’ 사건이란 기획재정부의 모 과장이 서울에서 업무를 보겠다고 해놓고 세종청사에 잘 드나들지 않다가 적발된 사건을 말한다. 사라진 김 과장은 출장을 핑계로 사라지는 공무원의 대명사가 됐다.

공직복무관리관실은 탄력을 받았다. 국무총리실은 출장이 많았던 상위 20%에 대해서는 출장사유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또 출퇴근과 점심시간을 정시에 준수하지 않은 공직자에 대해서도 사유서를 요구했다. 정부세종청사는 출입카드가 있어야 오갈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출입 기록이 데이터로 저장돼 있다. 컴퓨터 부팅시간도 조사해 갔다. 컴퓨터가 언제 켜졌는지, 꺼졌는지를 체크한 뒤 이상한 점이 발견되면 역시 사유서를 내도록 했다. 점심시간은 예외없이 1시까지 돌아와야 했고 늦으면 역시 사유서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간부 공무원에 대해서는 개인정보 조사에 따른 동의서까지 받아갔다.

이 총리 경질 기정사실화 분위기
여기까지는 공무원들도 납득을 했다. ‘공심’이 급속도로 악화된 것은 공직복무관리관실의 과도한 ‘갑질’ 때문이었다. 서울 가는 KTX를 타는 오송역에서는 정체불명의 인사들이 공무원들에게 다가가 “출장명령서는 썼느냐”고 묻곤 했다. 경제부처의 한 공무원은 “상대가 암행어사인지 민간인인지 알 수가 있느냐”며 “다짜고짜 인적사항을 밝히라고 접근하면서 출장 여부를 캐물을 때는 굴욕감마저 느꼈다”고 말했다. ‘정체불명의 인사’들의 암약은 청사 내 사무실에서 더 심했다. 복수의 모 부처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하루는 양복을 입은 정체불명의 신사가 다짜고짜 국장 방에 들러 “국장 어디 갔느냐”고 여직원에게 물었다. 여직원이 “당신이 누구냐”고 묻자 “알 것 없다. 국장 어디 갔는지만 말하라”며 몰아쳤다. 여직원은 “누군지도 모르는데 말할 수 없다”고 버텼고, 결국 언성이 높아지면서 사람들이 몰려들자 정체불명의 인사는 마지못해 물러났다. 또 다른 부처의 경우는 정체불명의 인사가 사무실에 불쑥 들어와 비어 있는 과장 자리를 보고 “출장 어디로 간 거냐”고 물었다. 직원이 황당해 하며 “누구시냐”고 묻자 “알 것 없다”며 출장 여부를 재확인했다. 그 직원은 “저 자리는 내 자리인데, 자료 들여다볼 게 있어 잠시 이 자리에 앉아 있는데 이것도 문제냐”고 항의하자 슬그머니 사라지기도 했다. 사무관급 관계자는 “자신이 누구인지도 밝히지 않고 들어와 암행어사 노릇을 하는데, 이런 식으로 감찰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며 “정권 3년차에는 원래 공직기강을 앞세우지만 이번의 경우는 과도했다”고 말했다.

세종 공무원들은 국무총리실의 이 같은 감찰 이면에는 이 총리의 사적 욕심이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포청천’ 이미지를 곧추세워서 국민 여론을 얻은 뒤 차기 정치적 행보를 도모하려 했다는 것이다. 실제 이 총리는 내년 4월 출마가 점쳐졌다. 이와 함께 강도 높은 공직기강 잡기는 공무원연금 개혁 등을 앞두고 공직사회의 기를 죽이기 위한 포석으로도 봤다.

이런 와중에 이 총리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총리는 성 전 회장으로부터 ‘비타500’ 상자에 든 돈 3000만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이 총리의 해명이 오락가락하면서 공직사회는 이 총리 경질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분위기다. 술좌석에서는 이 총리를 ‘토이 리’(이완구 총리의 이름 ‘완구’를 장난감(toy)으로 비꼬아 부르는 별명)라고 부를 정도로 이 총리에 대한 신뢰는 떨어졌다. 경제부처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9월 30일부터 올해 3월 20일까지 출장과 출퇴근 기록을 모두 소명하라고 하는데 미칠 지경”이라며 “수첩이나 휴대폰에 저장된 일정이 아니라면 어떻게 다 기억하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는 날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말해야지 별 수 없지 않느냐. 그래도 뭐라고 하면 총리도 ‘생각이 안 난다’고 답변하지 않았느냐고 반박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