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TV]연극배우는 ‘드라마의 감초’

요즘 새로운 드라마를 기획하고 있는 연출자들이 필히 들르는 곳이 있다고 합니다. 어떤 PD들은 아예 이곳을 거점으로 삼고 하루에도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하죠. 그리고 지인을 만나 “괜찮은 배우 없느냐”고 물어보는 장소도 거의 이곳과 관련이 있습니다. 어디일까요. 바로 서울 대학로 연극판입니다.

연극배우들의 안방 진출이 활발합니다. 극적인 예가 최근 대단원의 막을 내린 SBS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입니다. 극중 서봄(고아성)의 엄마 역을 맡은 윤복인과 한정호(유준상)의 심복 양 비서 역의 길해연, 최연희(유호정)의 친구 중 한 명인 엄소정 역의 김호정, 최연희의 개인비서 이 비서 역의 서정연, 이밖에도 박진영, 김학선, 김정영, 전석찬, 이화룡, 허정도, 백지원 등 연극배우들이 대거 등장합니다.

풍문으로 들었소-서정연, 김학선, 김정영 | SBS

KBS2 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에서는 극중 김현숙(채시라)의 교사 나현애 역으로 서이숙이 등장했습니다. 그는 안 그래도 쟁쟁한 중견 여배우들이 진을 치고 있던 드라마에서 속물적인 근성을 간직한 강남의 사모님을 실감나게 연기했습니다. 또한 김지숙 역시 MBC 주말극 <여왕의 꽃>에서 방송사 여성국장으로 출연 중입니다. 극중 레나정(김성령)을 요리 프로그램에 투입하는 파격적인 선택을 하지만 레나정이 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자 그를 가차 없이 내칩니다. 서이숙은 지난 2월 드라마 촬영과 함께 연극 <바냐와 소냐와 마샤와 스파이크> <팬 프럼 어스>를 병행할 정도로 애정을 갖고 있습니다. 김지숙 역시 극단 현대 출신으로 극단 전설의 대표를 역임했죠.

사례는 끝이 없습니다. 최근 종방한 MBC <빛나거나 미치거나>에서 백묘 역으로 출연한 김선영은 연극 <안녕 모스크바> <연극열전-경남 창녕군 길곡면>에 출연했습니다. 지난해 MBC <왔다! 장보리>로 유명해진 뒤 드라마 <미스터 백>을 거쳐 현재 MBC <화정>, SBS <이혼변호사는 연애 중>에 출연 중인 황영희는 극단 골목길의 단원 출신입니다. tvN <미생>을 거쳐 <식샤를 합시다2>, SBS <가면>에 연이어 출연하고 있는 황석정 역시 연극배우 출신입니다.

서이숙, 황영희 | 경향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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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극장에 연극배우들의 진출이 시작된 것은 오래전 이야기이긴 합니다. 과거 배우들은 거의 극단에서 연기를 배웠고 방송사 공채 시험을 통해 배우가 됐습니다. 최근에는 연극배우들의 영화 출연이 활발해져 최민식, 설경구, 곽도원 등이 이러한 과정을 거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지난해 tvN 드라마 <미생>을 통해 연극배우들의 쓰임새가 만천하에 알려졌습니다. 당시 대리 역을 맡았던 김대명, 전석호, 태인호가 실감나는 연기로 극의 재미를 높였죠. 연극배우들은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얼굴이기 때문에 신선함이 있고, 오랜 극단생활로 탄탄한 연기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출연료도 톱스타들에 비해 저렴해 제작사 입장에서도 수지가 맞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대형 연예기획사에 소속돼 있지 않기 때문에 기획사에 수수료를 주지 않고도 영입할 수 있죠. 하지만 이들의 활약에는 정작 연극만 해서는 생계를 유지하기 쉽지 않다는 연극계의 그림자도 드리워져 있습니다. 물론 매체를 가리는 연기란 건 없겠지만, 연극을 좋아하는 배우들이 다른 매체 연기를 통해 돈을 벌어야 한다는 사실은 조금은 슬픈 이야기라는 거죠. 하지만 이들의 이동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된 듯합니다. 연기만 잘하고, 시청자들이 감동을 받는다면 어디 출신인들 뭐가 문제일까요.

<하경헌 경향신문 엔터·비즈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