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친박의 ‘변신’은 유죄?

2000년대 후반부터 한 배 탄 계파… 10년도 못 가 뒤틀린 정치적 운명

“우리가 어찌 이래 됐노!”

7월 8일 새누리당 의원총회가 끝난 뒤 김무성 대표가 유승민 전 원내대표에게 이 말을 했다는 사실이 동석 의원의 전언에 의해 한 일간지에 보도됐다. 사퇴가 불가피하다는 의총의 결론을 이끌어낸 김 대표가 유 전 원내대표에게 이 말로 미안함을 대신하고 포옹했다는 것이다.

이 말은 박근혜 대통령과 김 대표·유 전 원내대표, 세 정치인의 얄궂은 운명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김 대표와 유 전 원내대표는 2000년대 후반 박근혜 대통령(당시 한나라당 대표·대선 후보·의원)과 동고동락한 원조친박이었다. 한때 한 계파의 좌장과 두 최측근이었던 관계가 10년도 채 못 되는 2015년 7월 8일 ‘운명의 날’에 묘하게 뒤틀렸다. 대통령은 여당 원내대표의 사퇴를 압박하고, 여당 대표가 이에 굴복해 여당 원내대표에게 의총의 사퇴 결론을 전달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2005년 1월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서울 염창동 당사에서 신임 당직자들과 악수하고 있다. 왼쪽부터 유승민 비서실장, 박 대표, 김무성 사무총장, 전여옥 대변인. 이들이 원조친박으로 활동했다. / 경향신문

‘친박’에서 ‘탈박’ 거쳐 ‘배박’까지
이렇게 얄궂은 운명이 될 줄 세 정치인 자신은 물론 다른 정치인들도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박 대통령이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패배한 후 실린 한 기사에서는 한 원조친박 의원에 대해 ‘박 전 대표(현 박 대통령)가 가자는 길은 지옥이라도 따라갈 사람이라는 평가를 들어왔다’는 내용이 눈에 띈다. 이때 이 기사의 표현은 이 정치인뿐만 아니라 당시 박 전 대표 주변에 있었던 김무성 대표와 유 전 원내대표 같은 원조친박 모두에게도 해당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지옥이라도 따라갈 사람’들 중에서 많은 정치인이 원조친박?탈박의 과정을 거쳐 박 대통령의 맞은 편에 섰다. 박 대통령과 친박은 이들에게 ‘배신자’라는 딱지를 붙였다. 그래서 ‘탈박’이라는 표현 대신 ‘배박’이라는 표현이 이들의 이름 앞에 붙여졌다.

흔히 ‘원조친박’은 박 대통령이 당시 여의도 엔빅스 빌딩 5층에 대선후보 캠프 사무실을 두고 있었을 때 모였던 멤버를 말한다. 이 사무실이 문을 연 것은 2006년 9월쯤이었다. 유정복 전 한나라당 대표 비서실장(현 인천시장)과 김선동 박 전 대표 비서 부실장(전 의원), 이정현 전 한나라당 부대변인(현 의원), 구상찬 전 부대변인(현 상하이 총영사)이 첫 시동을 걸었다. 박 대통령은 2006년 6월 한나라당 대표직에서 물러난 후 2007년 8월 당내 대선후보 경선을 준비하고 있었다. 박 대통령의 한나라당 대표 시절 사무총장과 비서실장·부대변인을 비롯해 친한 의원들이었던 ‘친박’이 이 곳에 모이기 시작했다.

김무성 전 사무총장(현 새누리당 대표)과 이성헌 전 의원(현 민화협 상임집행위원장)이 캠프에서 조직을 맡았고, 유승민 의원(전 새누리당 원내대표)이 정책, 이병기 여의도연구소 상임고문(현 청와대 비서실장)이 기획, 유정복 의원이 일정을 맡았다. 김재원 의원, 이정현·구상찬 부대변인이 공보 분야를 맡았다. 김기춘·이혜훈·한선교·김태환·서상기·서병수·진영·김병호 의원도 이 캠프에서 활약했다. 문고리 3인방(현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정호성 부속비서관·안봉근 국정홍보비서관)도 이 캠프 사무실에서 일했다. 당시 이 캠프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최근 원내대표 사퇴와 관련해 “당시 정책을 담당한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계속 홍보 라인과 박자가 맞지 않자 이 업무를 총괄했던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한테 박 대통령에게 보고해 시정해줄 것을 요구했다”면서 “이 비서실장이 자신은 박 대통령에게 보고를 할 수 없다고 고개를 흔들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당내 대선후보였던 박 대통령에게 이 비서실장이 보고를 제대로 못할 정도였는데 지금 대통령에게 제대로 보고를 할 수 있겠느냐고 이 인사는 설명했다.

상처만 남은 원조친박의 갈등
2007년 1월 3일 엔빅스 빌딩에서 열린 신년인사회는 대선 출정식과 같은 모습을 연출했다. 이날 신년인사회에는 당시 김무성·김기춘·허태열·유승민·유정복·이혜훈·곽성문·최경환 의원 등 원조친박 정치인을 비롯해 한나라당 의원 46명이 참석했다.

당시 원조친박이었던 허태열·김기춘 의원은 박근혜 정부에서 나란히 초대·2대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실세가 됐다. 김무성 의원은 여당인 새누리당의 대표가 돼 여당의 최고 실세가 됐다. 유승민 의원은 여당 원내대표로 활약하다 7월 9일 사퇴하면서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여권 내 1위 대선후보로 떠올랐다. 유정복 의원은 인천시장이 됐고, 최경환 의원은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됐다. 곽성문 의원은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사장이 됐다. 김병호 의원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으로 박근혜 정부에서 활약하고 있다.

원조친박에게는 영광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전여옥 의원은 맨 먼저 친박에서 벗어났다. 김무성·유승민·이혜훈·진영 의원은 하나둘씩 본인의 뜻과 관련없이 친박이 아닌 비박으로 분류됐다. 김무성 대표-유승민 원내대표 체제를 말하는 ‘K-Y라인’은 박 대통령·친박과 맞서는 구도로 설명됐다. 박 대통령은 유 전 대표의 활동에 대해 ‘배신의 정치’라고 이름 붙였다. 이병기 비서실장과 최경환 경제부총리, 이정현·김재원·김태환 의원 등은 박 대통령의 편에 섰다. 양쪽에서 당내 의원들에게 전화를 돌려 설득전을 펼쳤다. 원조친박들 사이에 2주일간 권력다툼이 벌어졌다. ‘친박’이 승리하고 ‘탈박’이 패배했지만 양편으로 갈라섰던 원조친박 정치인들에게는 상처만 남았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