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최소한의 인간다운 삶 보장 ‘생활임금의 작은 행복’

‘생활임금제’를 도입하는 지자체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생활임금 도입은 최소한의 생활비를 보장받은 노동자의 자존감을 높여 업무 역량을 올리는 효과를 가져온다. 서울시의 경우 시급 6687원으로, 최저임금에 비해 20% 정도 많아 근로자가 느끼는 정서적 만족감도 높다. 앞으로 생활임금제가 의미있는 역할을 하려면 민간으로의 확산이 관건이다.

2017년. 김지복씨(가명)는 요즘 일할 맛이 난다. 임금이 올랐기 때문이다. 건설회사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김씨는 늘 최저임금을 받았다. 매년 최저임금은 조금씩 올랐다. 반면 물가는 가파르게 올랐다. 김씨는 매일 새벽 첫차를 타고 일터로 나갔다. 부지런히 살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사는 건 점점 더 고달퍼졌다. 초과근무를 해도 월 150만원을 손에 쥐기 힘들었다. 사립대학 미화원으로 일하는 아내도 최저임금을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부부가 번 돈으로 노모를 모시고 아이들을 키우며 사는 것은 너무 빠듯했다. 그러나 요즘은 조금 숨통이 트인다. 김씨도 아내도 최저임금이 아니라 생활임금을 받게 됐기 때문이다. 김씨는 요즘 도서관 공사현장에서 일한다. 서울시 공사다. 공사를 앞두고 시는 공사를 진행할 시행사 입찰공고를 냈다. 입찰공고에는 부속계약이 붙어 있었다. ‘본입찰에 참가하고자 하는 자는 생활임금을 준수해야 한다.’ 생활임금 준수 규정은 하청, 재하청에도 적용됐다. 김씨의 원청이 시행사로 낙찰되면서 김씨도 생활임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김씨의 아내가 일하는 사립대는 얼마 전 해당 지자체와 업무협약을 맺었다. 협약 내용은 대학에 용역 등을 제공하는 기관 및 업체에 소속된 근로자에게 생활임금을 적용한다는 것이다. 김씨 부부는 기존보다 20% 오른 임금을 받게 됐다. 늘 빠듯했던 살림이 확 펴진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늘 최저임금에 허덕이던 김씨 부부에게 작은 여유가 생겼고, 삶의 질도 올라갔다.

2012년 청소노동자들이 홍대 앞에서 최저임금 및 생활임금을 보장하라는 시위를 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서울시, 2017년부터 민간까지 확대 계획
2년 후를 상상한 이야기다. 그러나 현실 가능한 이야기다. 서울시는 2015년부터 서울형 생활임금제를 도입했다. 서울시는 생활임금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교육, 문화, 주거 등 각 분야에서의 실질적인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고, 서울시의 지역적 특성을 고려한 임금.’ 서울형 생활임금제는 3인 가구 가계지출을 근간으로 하면서 서울시의 물가수준, 주거비, 사교육비를 반영해 책정한다. 그렇게 책정된 2015년 서울시의 생활임금은 시급 6687원, 월급여 기준으로는 139만7583원이다. 최저임금인 시급 5580원, 월급 116만6220원에 비하면 20% 가까이 오른 금액이다.

서울형 생활임금제 도입 결과 생활임금을 받게 되는 대상자는 몇 명일까? 서울시는 2015년 생활임금 도입 대상을 본청 및 투자·출연기관 소속 직접채용 근로자로 결정했다. 그 결과 적용대상 인원은 266명에 불과했다. 적용대상 인원이 적은 이유는 서울시가 이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해서 7000명 가까이 정규직으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자연히 임금수준도 높아져 생활임금 대상자가 많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서울시는 2017년 생활임금을 민간으로까지 확산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다. 2017년부터 서울시와 조달, 용역, 위탁계약을 체결하는 민간기업에도 부속계약으로 서울시가 정하는 생활임금을 준수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가상의 임씨 부부의 이야기처럼 생활임금을 적용받는 대상자는 큰 폭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생활임금은 미국에서 처음 제도화돼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으로 확산됐다. 이들 또한 지자체에서 조례를 제정해 생활임금을 민간으로 확산시켰다. 생활임금제도가 처음 실시된 도시는 1994년 미국 볼티모어시다. 볼티모어시는 조례를 제정해 지방정부와 거래관계를 맺고 있거나 재정지원을 받는 민간업체는 노동자들에게 시간당 6.10달러(최저임금 4.25달러)를 지불해야 하고 1999년까지는 연방 최저임금보다 50% 높은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지금까지 140여개 지자체에서 생활임금 조례가 제정됐다. 생활임금 제도가 확산되면서 경비원, 가사·건강돌봄 노동자, 폐기물 관리 노동자, 주차요원, 식품공급 노동자 등 최저임금을 받는 근로 빈곤계층의 임금이 인상되는 효과를 낳았다.

서울 문래역 남자 화장실에서 여 미화원이 청소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에서는 경기 부천시가 2013년 10월 최초로 생활임금조례를 제정했다. 부천시를 시작으로 생활임금은 1년6개월 만에 28개 지자체로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경협 의원실의 조사에 따르면 부천시를 비롯한 18개 지자체는 이미 조례 제정을 했고, 서울 성동구 등 7개 지자체는 입법예고 중이며, 경기 성남시 등 3개 지자체는 조례안을 준비 중이다. 현재 8개 지자체가 생활임금제를 시행 중이고, 전북 전주시 등 12개 지자체가 하반기에 추가 시행하면 올해 말까지 20개 지자체가 생활임금제를 시행하게 된다. 인원으로 보면 공공부문 5342명이 적용대상이다. 현재 최저임금 수준의 노동자는 500만명에 이른다. 최저임금이 애초의 취지대로 근로 빈곤계층을 보호하지 못하면서 한국 사회에서 워킹푸어는 보편적인 현상이 됐다. 최저임금의 인상을 견인하며 저임금계층의 임금 하한을 높이는 대안으로서 생활임금제가 공공부문의 노동자에게만 적용된다면 큰 의미를 찾기 힘들다. 생활임금제가 의미 있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민간으로의 확산이 관건이다.

최초 도입한 성북구 2년 연속 우수 공기업
실제로 생활임금을 받고 있는 노동자들의 만족도는 높다. 생활임금 수혜 노동자들은 대부분이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로 고용 유연화의 최전방에 서 있는 경우가 많다. 성북구청에서 미화원으로 일하고 있는 박용범씨(61)는 30년 가까이 병원 보조원으로 일했다. 정규직이었다. 정규직 병원 보조원은 박씨가 거의 마지막이었다. 환자를 수술실로 운반하는 등의 보조원 업무는 IMF사태 이후부터 비정규직으로 대체됐다. 정년퇴직을 2년 앞두고 병원은 박씨에게 명예퇴직을 권고했다. 권고였지만 사실상 강제였다. 병원은 박씨에게 남은 2년치 기본급을 줄 테니 명예퇴직을 하라고 말했다. 일하지 않은 임금을 쳐주더라도 병원 입장에서는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을 더 채용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계산이었다. 2009년 퇴직한 박씨는 용역업체를 통해 성북구청 청사 미화원으로 재취업했다. 2009년 박씨가 받은 임금은 92만원. 당시 최저임금을 겨우 웃도는 금액이었다. 임금은 3년 내내 동결이었다. 박씨는 늦은 나이이기에 불안정한 노동에 최저임금이라도 일할 수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박씨에게 희소식이 들린 것은 2012년 4월 도시관리공단이 청사 청소업무를 간접고용에서 직접고용으로 바꾸면서다.

3년 동안 동결됐던 임금은 40% 가까이 올라 월 129만원이 됐다. 2013년에는 생활임금이 도입되면서 135만원을 받았고, 2015년 현재는 149만5000원을 받고 있다. 박씨는 “똑같이 청소일을 해도 사립대학 등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부러워한다. 일하는 데 만족도가 높아졌고 안정감도 생겼다. 다른 데로까지 확산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성북구는 지자체 최초로 생활임금제를 도입했다. 지자체의 생활임금제 도입은 구청장의 의지로 위에서 아래로 또는 시민사회의 논의를 바탕으로 아래에서 위로 이뤄지기도 한다. 성북구의 경우 지자체장이 이끄는 경우다. 행정명령으로 생활임금제를 시작했고, 2014년 추후 조례를 도입해 법적 근거를 만들었다. 생활임금은 지자체별로 다르게 산정되는데 성북구의 경우 ‘5인 이상 사업자 노동자 평균임금의 50%’에 덧붙여 서울시 물가를 반영해 58%를 적용해 산정한다. 2015년 기준 성북구 생활임금은 7150원으로 생활임금을 도입한 지자체 중 가장 높다. 박용범씨가 생활임금 도입 이후 업무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졌다고 말한 대로 성북구 또한 생활임금이 단순히 노동자의 임금 상승이 아니라 업무의 질적 역량까지 높이는 효과를 가져온다고 말한다. 성북구 도시관리공단은 ‘지방공기업 고객서비스 만족도 평가’에서 2년 연속 우수공기업으로 평가되는 성과를 얻었다.

김영배 성북구청장은 “생활임금은 노동자가 최소한의 생활비를 보장받고 자존감을 회복함으로써 공공부문에 제대로 된 서비스의 선순환을 실현시킨다”고 말했다. 성북구는 민간영역으로까지 생활임금제를 확대했다. 성신여대, 한성대와 ‘대학에 용역 등을 제공하는 기관 및 업체에 소속된 근로자에게 생활임금을 적용한다’는 내용의 업무협약을 맺었다. 성북구는 ‘모범 사용자’로서의 지자체의 역할을 강조한다. 김 구청장은 “의지만 있다면 생활임금의 민간부문 확산은 단계적으로 추진 가능하며, 임금 양극화 문제 해결을 위해 지방정부가 좋은 고용주로서의 선도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성북구청 관계자는 대학과의 업무협약을 관내 다른 대학으로까지 확대키로 했다.

‘노동의 정당한 대가’ 모색 계기 삼아야
성북구가 지자체장의 의지가 강한 경우라면 최초의 생활임금 조례안을 발의한 부천시는 시민사회의 논의를 출발점으로 하고 있다. 부천시 노사민정협의회가 주도했다. 노동계와 부천시 상공회의소 및 시민사회 대표들이 모여 공공부문 노동에 대한 실태조사를 하고 시 산하 비정규직의 임금 현황을 조사했다. 이들은 생활임금조례추진위원회를 꾸리고 해외 사례 등을 검토해 조례안을 발의했다. 조례안은 새정치민주연합 강동구 의원과 새누리당 의원이 공동발의했는데, 공동발의의 취지는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시민사회의 합의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지역 거버넌스의 성과물인 셈이다. 부천시청 토지정보과에서 근무하고 있는 생활임금 적용자 추지애씨(41)는 최저임금을 받을 때에 비해 한 달에 10만원 남짓 더 받는다. 적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10만원 인상이 주는 정서적 만족감은 크다고 추씨는 말한다.(박스 기사 참조)

박용범씨와 함께 성북구청 미화원 일을 하며 생활임금을 받는 유재숙씨(51·가명)는 늘 첫차를 타고 출근한다. 택시기사를 하는 남편과 대학생 자녀 둘이 있다. 생활임금으로 소득이 조금 나아졌지만 살림은 늘 빠듯하고 빚은 자꾸만 늘어간다. 첫차에는 유씨보다 나이 많은 어르신들도 있다. 다들 청소일로 최저임금을 받는 일을 하러 아침 일찍 출근하는 길이다. 하루하루 먹고 사는 데 바빠 노후대책은 꿈도 못 꾸는 유씨에게는 그들의 모습이 자신의 미래다. 유씨는 다른 이들에게도 생활임금이 확산돼 조금이나마 삶에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첫차를 타며 유씨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게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한다. 새벽부터 일어나 열심히 일하고 흥청망청 쓰는 것도 아닌데 살림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유씨는 좀 여유롭게 살아보고 싶다는 고민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유씨의 고민처럼 최저임금보다 조금 오른 생활임금이 워킹푸어와 뿌리 깊은 소득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키는 결코 아니다. 김종진 한국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생활임금은 진보 및 시민사회가 선점한 프레임이다. 물론 이것을 실현하는 게 최고 목표는 아니다. 생활임금도 여러 정책 중 효과를 낼 수 있는 사회정책의 하나다. 어떻게 적극적으로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비정규직의 낮은 최저임금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생활임금을 시작으로 노동의 정당한 대가에 대해 한국 사회가 여러 합의점을 모색해야 할 때다.

“한 달에 10만원 정도 늘어, 매달 보너스 받는 기분”

부산시청 토지조사과 추지애씨 / 이상훈 선임기자

10만원. 적다면 적은 돈이다. 그러나 빠듯한 살림살이에서는 큰 돈이기도 하다. 경기 부천시청 토지정보과에서 사무보조 일을 하는 추지애씨(41·표지인물)는 생활임금이 경제적으로는 물론 심리적으로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다음은 추씨와의 인터뷰.

근무하신 지 얼마나 됐나.
“부천시청에서 일한 지 한 달 됐다. 결혼 후에는 가사일만 했다. 아이들이 크면서 새로운 소득이 필요했다. 경력단절이 13년이다. 일할 수 있는 데가 없더라. 처음에는 집 근처 약국에서 일하다 한 달 전 공고가 나 지원을 하게 됐다.”

생활임금으로 얼마를 받고 있나.
“시급 6050원을 받는다. 약국에서는 최저임금을 받았다. 5580원이다. 첫 월급으로 121만2000원을 받았는데, 최저임금 받을 때보다 10만원 정도 많다. 내 경우는 아니지만 약국이나 개인 업체에서 일하다 보면 최저임금조차 못 받거나 시간외 근무수당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생활임금을 받으면서 달라진 점은.
“최저임금보다 많이 받으면서 매달 보너스를 받는 기분이다. 기분 좋게 일할 수 있다. 아이들하고 휴일에 영화관에 가서 영화관람을 할 수도 있고, 아이들이 축구를 좋아해 축구를 보러 가기도 한다. 추가급여가 생기면서 추가지출을 할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고 할까. 아이들하고 시간도 더 보내게 되고 대화도 많이 할 수 있게 됐다. 아이들과 갈등이 줄어들었다.”

아이들을 키우며 노후대책을 세울 수 있나.
“남편과 맞벌이를 해도 저축은 거의 못한다. 식비만 해도 120만원이 넘게 든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아들만 셋이다. 해마다 공공요금도 오르고 식비도 오르는데 생계비가 좀 부족하다는 생각을 아무래도 할 수밖에 없다. 조금씩이라도 저축을 하려고 하는데 노후준비라고 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내년도 최저임금이 6030원으로 결정됐다.
“당연히 좀 부족하다. 특히 최저임금은 1인가구 기준으로 설정하지 않나. 나는 부양가족이 많다 보니 생활비용도 훨씬 많이 든다. 아이들 교육비도 그렇고 시어머니 용돈도 드려야 한다. 1인가구로 산정한 금액이라 더 와닿지 않는다. 그보다 훨씬 많이 부족하다는 걸 체감한다.”

최저임금보다 10만원 정도 많은데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적다면 적은 돈이겠지만 경제적으로 심적으로 도움이 된다. 위안이 된다. 민간에서는 생활임금 적용을 안 한다고 하더라. 좋은 제도인 만큼 더 많이 시행돼 여러분들이 도움을 받으면 좋겠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