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와 문화]비정규직의 서러운 현실

인권 주제 단편영화 ‘나 어떡해’

홍기선 감독의 <나 어떡해>의 한 장면.

지난 1일 비정규직법이 발효되었다. 비정규 노동자로 2년 이상 일하면 해당 기업은 의무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비정규직 사용기간 2년 조항’의 적용이 시작된 것이다. 문제는 기업들이 인건비 절약 등을 이유로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2년이 되기 전에 해고하고 있는데, 이를 막을 길이 없다는 게 비정규직법의 맹점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당연하달 수 있지만 노동자 입장에서는 생계가 달린 문제다. 여당은 이런 관행과 관련해 비정규직법 적용을 일정 기간 유예하는 내용의 법개정안을 내놓았다. 보기엔 그럴 듯하지만 기업의 비정규 노동자 해고를 당연시하는 것이어서 ‘친기업적 발상’이라는 말을 듣고 있다. 야당은 이에 반대했지만 여당의 법개정안 날치기 상정을 막지는 못했다.

비정규직법 제정 이전에 기업들은 비정규 노동자들을 마음대로 해고했다. 이를 최소화하고 비정규 노동자 양산을 막기 위해 비정규직법을 제정했지만 기업들은 법의 맹점을 틈타 여전히 비정규노동자들을 해고하고 있는 것이다.

비정규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비정규직법이 발효되면서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해고되었거나 해고될 위기에 처한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한국노총의 74개 회원 조합의 비정규직 근로자는 6600여 명이고 이 가운데 600여 명이 7월 안에 계약이 만료돼 해고 위기에 처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미 지난 6월 한국노총 회원 200명의 비정규직 근로자가 계약 해지를 당했다.

계약해지뿐 아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비정규직 노사분규로 구속된 노동자가 한 달 평균 9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구속노동자후원회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비정규직이거나 비정규직 관련 노사 갈등으로 구속된 노동자는 전체 구속 노동자 143명 중 116명(올해 2월까지 집계된 수치)이다.

노무현 정권 시절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제작한 시선 시리즈라는 영화가 있었다. 6명의 감독이 인권을 주제로 단편영화를 만든 옴니버스 영화다. <세번째의 시선>에는 김현필·노동석·김곡 감독 등이 만든 여섯 편의 영화가 담겨져 있다.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 이야기를 다룬 <잠수왕 무하마드>와 가난한 소녀가장을 주인공으로 한 <소녀가 사라졌다>, 그리고 비정규 노동자의 고단한 삶이 담긴 <나 어떡해>가 그것이다.

시사와 문화

<나 어떡해>의 최씨는 물류창고에서 하역물건을 운반하는 기사다. “3년만 열심히 일하면 정규직으로 해주겠다”는 처음의 약속과 달리 5년째 비정규직이다.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지만 회사의 눈치를 보느라 어머니에게 갈 수가 없다. 성경책을 빌리러 도서관에 가지만 비정규직에게는 책 대여도 안 된다. 소란을 일으킨 최씨는 결국 해고되고,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는다. <나 어떡해>의 최씨와 같은 비정규 노동자를 이제는 볼 수 없을 것 같다. 그는 그래도 5년간이나 직장에 근무할 수 있었다. 앞으로 2년 이상 한 직장에 근무하는 ‘운좋은’ 비정규직은 대통령이나 장관 등 ‘고관대작급’이 아니면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하재봉<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