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와 문화]해외 유명 뮤지컬의 ‘재구성’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한 장면.

우리 말로 볼까, 원어로 볼까.
예전 같으면 고민거리도 되지 않았을, 아니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던 일이지만, 요즘엔 사정이 많이 다르다. 세계 공연가의 최신 히트작들이 앞다퉈 라이선스 뮤지컬로 국내에서 막을 올리는가 하면, 아예 아시아 지역을 대상으로 한 투어 뮤지컬이 급속히 늘어나면서 이런 딜레마가 대두되고 있다. 우리의 공연 시장과 글로벌 뮤지컬 마켓의 시차(時差)가 눈에 띄게 좁혀지면서 생겨난 재미난 현상이다.

최근 국내 배우들의 번안 무대로 시작된 <스프링 어웨이크닝>도 전형적인 경우다. 2007년 토니상 8개 부문을 휩쓸며 일대 파란을 일으켰던 이 뮤지컬은 말 그대로 ‘따끈따끈한’ 브로드웨이의 최신 흥행작이다. 사춘기를 겪는 10대들의 방황과 성적 호기심,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 등을 얼터너티브(주류 음악시장 규칙과 관습적 사운드를 거부하는 음악태도)나 락 발라드 같은 ‘요즘’ 젊은이들이 즐기는 음악 형식에 담아냈다. MTV로 음악을 소비하고, PMP로 문화를 향유하는 신세대를 겨냥한 파격적인 형식의 근작 히트 뮤지컬인 셈이다. 영어 종주국인 영국 런던에서도 지난 2009년 1월에야 막을 올렸고, 우리보다 몇 갑절 규모가 크다는 일본에서도 최근에야 공연을 시작했으니, 한국 번안 뮤지컬 시장의 콘텐츠 조달 속도는 이제 가히 세계적이라 인정할 만하다. ‘유령’으로 인기를 모았던 브래드 리틀의 <지킬 앤 하이드>나 오리지널 캐스트가 대거 참여하는 <렌트>의 아시아 투어 공연도 빨라진 한국 시장의 속도감을 실감케 해주는 사례들이다.

하지만 좁혀진 시차가 바로 시장의 성숙을 의미하는가 라고 묻는다면 섣불리 답하기는 힘들다. 민감하게 글로벌 트렌드를 좇고 있다는 의미는 될 수 있겠지만, 사실 얼마만큼 빨리 소개되는가 못지 않게 얼마나 한국적 환경과 문화적 맥락에 맞게 재구성되는가가 문화산업에서는 중요한 화두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마켓을 선도하려는 실험들의 등장은 그래서 반갑고 또 기대가 된다. 브로드웨이 공연에 앞서 월드 프리미어로 시도된 한미 합작 리바이벌 뮤지컬 <드림 걸스>나 아시아 판권을 확보해 중국으로 수출할 예정인 프랑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우리말 번안 공연 등은 그래서 더 바람직한 시도들이다. 단순한 소비시장으로서의 위치를 넘어 새로운 유형의 중계무역으로까지 역할을 확장해 보려는 발상의 전환은 기발하고 또 신선하다.

시사와 문화

소비 시장의 획일화를 의미하는 글로벌화가 아닌 적극적이고 생산적인 의미에서의 이른바 글로컬화(Glocalization)가 성공적으로 이뤄질 때, 비로소 문화는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해외 유명 흥행작의 국내 유입은 속도전 못지 않게 질적인 완성도도 함께 고려되어져야 한다. 저작권 확보의 출혈 경쟁보다 시장의 탄력을 함께 고민하고 공동으로 대응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문화산업의 경쟁력이란 바로 이런 고민과 과정을 거쳐야 확보될 수 있는 궁극적인 목표다.

원종원<순천향대 신방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jwon@sch.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