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동네 상권 장악한 유통 재벌들

슈퍼형 편의점·슈퍼슈퍼마켓(SSM) 등 ‘쓰나미’식 공략

대형 유통기업의 동네상권 싹쓸이가 거세다. 왼쪽부터 훼미리마트를 운영하는 보광훼미리마트의 홍석조 회장, 세븐일레븐을 운영하는 롯데그룹의 신격호 회장, GS25를 운영하는 GS리테일의 허승조 부회장.

동네 상권을 둘러싼 대형 유통업체와 동네슈퍼·재래시장 상인의 대립이 날로 확산되는 가운데 내수시장을 겨냥한 유통 재벌들의 이 분야 진출 또한 공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특히 대다수 중소상인들이 슈퍼슈퍼마켓(SSM) 입점을 경기 악화의 주된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지만, 대형 유통업체는 “대형할인마트와 같은 대규모 점포가 전국에 400여 개로 포화상태이며 유휴부지도 바닥난 상태여서 외형성장을 위해서는 골목골목으로 파고드는 슈퍼슈퍼마켓 사업 진출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대열에 편의점 업체들도 뛰어들었다. 대형마트들이 슈퍼슈퍼마켓 입점을 목표로 한다면, 이들 업체는 별개 슈퍼마켓을 내기보다는 ‘슈퍼마켓형 편의점’을 통해 사업에 뛰어들고 있는 모습이다. 슈퍼형 편의점은 기존 편의점 상품은 물론 청과류와 야채 등 신선식품도 취급하는 등 슈퍼마켓 모습을 띠고 있다.

유통기업은 그룹회장 형제·자녀 몫
훼미리마트는 지난달 슈퍼형 편의점인 남양주 호평점을 열었고, 바이더웨이도 같은 날 충북 청주시에 슈퍼마켓 모습을 한 100㎡(30평) 규모 충북대 월드점을 열었다. 2006년 슈퍼마켓형 편의점 사업에 뛰어든 GS25는 올해 들어서도 80여개 슈퍼형 점포를 출점해 슈퍼형 편의점 수를 모두 220여 개로 늘렸다. 경기침체기에 신제품 개발 등을 통해 시장을 확대하기보다 기존 시장을 지키는 데 주력하는 모습이다.

현재 편의점 업계 1위는 (주)보광훼미리마트가 운영하는 훼미리마트. 1990년 10월 업계 3번째로 매장을 연 훼미리마트는 지난해 기준 4159개의 매장을 확보해 전체 편의점의 33.3%를 차지했다.

1983년 10월에 설립돼 TV브라운관 부품 생산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사업의 모습을 갖추게 된 보광그룹은 이후 1989년 전문유통업체인 훼미리마트CVS사업과 1996년 보광그룹의 현 캐시카우로 자리 잡은 휘닉스파크 준공 등 유통·금융·서비스·제조업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하면서 중견그룹사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1999년 삼성과 중앙일보가 분리되는 과정에서 같이 삼성으로부터 분할한 보광그룹은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형제들이 계열사를 나누어 경영하고 있다. 둘째 홍석조씨는 광주고검장 및 인천지검장을 지낸 뒤 보광훼미리마트 대표이사 회장, 셋째 홍석준씨는 삼성 계열사인 삼성SDI 부사장을 역임한 뒤 보광창투 회장으로 자리 잡았다. 넷째 홍석규씨는 보광의 대표이사 회장이다. 막내딸인 홍라영씨는 리움박물관 수석 부관장과 삼성문화재단의 상무를 겸하고 있다.

GS25를 운영하는 GS리테일은 GS수퍼마켓, GS마트, GS스퀘어, GS왓슨스, 미스터 도넛 등을 운영하고 있다. GS리테일을 이끄는 허승조 부회장은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삼촌으로, LG상사에서 20여 년을 근무한 ‘상사맨’이다. 1978년 LG상사에 입사한 뒤 해외건설부, LA지사 등 해외관련 업무를 담당했고 97년 LG상사의 할인점 사업(GS마트)을 맡으며 유통업과 인연을 맺었다. 할인점 사업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허 부회장은 2000년 ㈜LG백화점(현재 GS스퀘어)의 대표이사를 겸임했고 지난 2002년 LG유통(현 GS리테일)과 LG상사의 LG마트(현 GS마트), ㈜LG백화점(현 GS스퀘어) 3사가 통합되면서 통합 법인의 대표로 재직하고 있다. 2007년 4월 일본 1위 도넛 브랜드인 미스터도넛을 국내에 들여와 성공적으로 사업을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GS그룹에서 GS리테일의 입지는 탄탄하다. 허창수 GS회장이 직접 나서 “유통도 에너지만큼 키운다”고 공언할 정도로, 향후 그룹 차원에서 유통부문 사업을 재정비하고 투자를 강화할 전망이다. 허 부회장은 지난해 가을 코스피지수가 1000포인트가 무너질 당시 장녀인 허지안씨와 차녀인 허민경씨가 GS홀딩스 주식을 각각 18만2000주, 17만1000주를 사들이면서 주목받기도 했다.

서민 먹을 몫도 남겨두라
세븐일레븐을 운영하는 롯데가의 유통사업엔 신유미라는 ‘숨겨진 딸’이 존재한다. 미스롯데 출신 서미경씨와 신격호 회장 사이에서 낳은 딸인 신유미씨는 비상장 식품제조회사 롯데후레쉬델리카를 통해 편의점 세븐일레븐을 비롯한 롯데계열 유통회사에 삼각 김밥과 샌드위치, 도시락, 햄버거 등을 납품하고 있다. 이 가운데 김밥과 도시락은 지난해 롯데계열인 세븐일레븐에서만 총 275억1400만 원어치가 팔렸고, 샌드위치와 햄버거류는 총 120억6200만 원어치를 판매하는 등 유통재벌 롯데를 배경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신유미씨는 영등포 롯데리아 등 몇 곳의 롯데리아를 독점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유기개발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고, 모친인 서미경씨와 롯데시네마 매점 수입을 맡고 있는 유원실업의 지분 100%를 확보하고 있다. 롯데시네마의 매점운영권은 신유미씨가 최대주주인 유원실업과 신영자 부사장이 최대주주인 시네마통상이 나눠 운영하고 있는데, 유원실업은 서울 경기 지역을, 시네마통상은 그 외 지역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편의점을 앞세운 이들 대형 유통기업들은 막강한 자본력과 그룹의 힘을 배경으로 소매점 영업을 싹쓸이하고 있다. 고사 직전의 일반 소매점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편의점으로 매장을 바꾸는 한편, 한강 등 공원의 매점들도 자본 논리에 밀려 쫓겨나고 있는 것. 서울시가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 일환으로 추진한 매점 현대화 사업은 한강변 노점상들을 쫓아내고 세븐일레븐을 운영하는 코리아세븐, 미니스톱을 운영하는 한국미니스톱을 매점 개선사업자로 선정했다.

전문가들은 “자영업은 사회적·경제적 약자가 영위할 분야”라고 강조한다. 자본과 정보, 기술과 지식, 그리고 연령 등의 열위자가 종사할 영역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그만 둔 사람들이 너도 나도 요식업에 뛰어들었다가 규모를 앞세운 거대재벌의 외식사업에 밀려났듯이, 현재 ‘구멍가게’ 역시 거대재벌들의 유통시장 독식에 설 자리를 빼앗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