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고건 대해부… ‘청렴성’ 높지만 ‘무임승차’ 눈총

고건 전 총리의 4대 강점과 4대 약점… 인관관계는 마당발, 병역면제 의혹 시비

고건 전 총리가 서울시장 시절 정몽준 월드컵 공동조직위원장 등과 함께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모형을 보고 있다. <김문석 기자>

고건 전 총리의 ‘진면목’은 이력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경기고,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고등고시 합격→내무부 새마을 담당관→강원부지사→전남지사→청와대 정무수석→교통부 장관→농수산부 장관 →국회의원→내무부 장관→서울시장 →명지대 총장→국무총리→서울시장 →국무총리→ 대통령권한대행.

남은 것은 대통령뿐이다. 고 전 총리가 오르지 못한 유일한 자리인 대통령직에 과연 오를 수 있을까. 국민은 지도자의 과거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과거가 내일에 대한 기대로 이어질 때 그 지도자에 대한 신뢰와 지지가 공고해진다. 고 전 총리의 과거는 ‘행정의 달인’이란 찬사와 ‘처세의 달인’이란 비판이 교차한다. 그 교차선상에 고 전 총리의 장단점도 놓여 있다.

장점1 풍부한 국정 경험

고 전 총리는 누구나 다 아는 ‘행정관료’다. 그는 능력 있는 관료로 차관급 고위직에서 무려 7명의 대통령을 모셨다. 행정관료로서 그의 능력도 탁월했다. 그는 사실상 새마을운동을 기획한 주무책임자로서 농촌부흥운동을 진두지휘했다. 새마을운동 성공이 그를 최연소 도지사(전남·37)로 만든 것이다. 세계 5대 지하철 교통망 구축, 난지도 생태공원 조성, 서울 도시고속도로건설, 한옥마을 복원 등은 ‘고건 서울시장’이 남겨놓은 업적이다.

고 전 총리를 돕고 있는 김용정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은 “서울시장으로의 업적도 이명박 전 서울시장에 못지않다”면서 “고 전 총리가 내세우길 좋아하지 않아 안 알려져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장관, 총리, 대통령권한대행까지 했으니 정부가 돌아가는 시스템을 훤히 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여야 후보, 아니 현재 생존한 인물 중 고 전 총리만큼 국정경험이 많은 사람은 없다고 할 수 있다. 참여정부에서 자주 거론된 ‘무능한 지도자’ 소리를 들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선거를 통해 서울시장이 된 경력도 있어 단순한 행정경험을 넘어 정무적 감각도 갖췄다.

김형준 국민대대학원부원장은 “대통령권한대행 임무 완수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청계천 복원,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박정희 딸’과 같은 정치적 퍼포먼스 효과를 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장점2 도덕적 청결성

고 전 총리는 “청렴은 사명감 이전에 나의 생존법칙이다”고 고백했다. 그의 고백이 아니더라도 그의 청렴성은 브랜드화됐다. 그는 오랜 공직생활 속에서도 스캔들이나 부정부패에 단 한 번도 연루된 일이 없다. 그가 행정의 달인이 된 배경에도 청렴성이 자리잡고 있다.

그는 1990년 2월 초 한보 수서택지분양 때 도덕성과 자리를 바꿨다. 청와대 등으로부터 여러 차례 수서택지분양 수의계약 압력을 받았으나 끝내 이를 거부했다. 이 사건이 서울시장(관선) 자리에서 물러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는 게 고 전 총리의 설명이다. 당시 수서특혜분양수사 결과 많은 사람이 구속됐으나 서울시 공무원은 단 한 명도 연루되지 않았다. 이로써 ‘클린 서울’의 명성을 얻었다. 그의 청렴성은 국제적으로 공인받기도 했다. 국제투명성기구는 1998년 그에게 세계청렴인상을 주었다.

고 전 총리의 부친(2004년 작고)은 고등고시에 합격한 아들에게 공무원으로 지켜야 할 3계명을 줬다. ‘줄서지 마라’ ‘돈받지 마라’ ‘술 잘 먹는다는 소문을 내지 마라’는 게 그것이다. 고 전 총리는 “아버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했다”면서 “그러나 술은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생맥주를 즐겨 마시지만 가까운 사람과는 맥주에 소주에 토마토주스, 후춧가루 등을 혼합한 독특한 칵테일을 돌려 마신다.

장점3 마당발 인간관리

2004년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고건’ 명의로 수여된 대통령상과 국무총리상.

그의 인맥은 오랜 관료생활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는 부임하는 곳, 만나는 사람마다 모임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관료모임, 자문 교수모임은 물론 심지어 부임하는 부처의 출입기자와도 모임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심지어 YS정권 말기 DJ와 갈등을 빚을 때도 두 세력에 동시에 인맥을 구축할 정도로 고 전 총리는 인맥관리의 달인이다. 그리고 공직에서 퇴임 후에도 대학총장은 물론 각종 시민단체 등으로 넘나들며 인맥을 구축했다. 여기에는 본인 특유의 부지런함도 작용했다.

이 인맥은 자연스럽게 대선에서 자문그룹 혹은 지원세력이 되고 있다. 물론 비용도 안 드는 자발적인 조직으로 대선 같은 장기 레이스에 매우 효율적인 우군이 되고 있다. 그의 청렴하고 능력있는 이미지 관리도 오랜 기자와 인연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장점4 범여권의 ‘유일한’ 대안

한 의원은 “고 전 총리는 대선 본선만 남겨두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범여권에서 고 전 총리에 필적할 만한 대안을 찾기가 어렵다는 얘기이다. 고 전 총리는 지난 지방선거를 전후해서 대권예비주자 지지도에서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에 이어 3위를 달리고 있지만 범여권 후보군 중에서 압도적인 지지도를 보이고 있다.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도 “여권의 정계개편 논의는 사실상 ‘통합신당’으로 95% 이상 잡힌 것”이라면서 “그 이후의 문제는 결국 가임성(정권재창출 가능성)에 초점이 맞춰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향후 범여권의 정계개편 논의와 대권후보 선출에서 고 전 총리를 배제하기 어려움을 실토한 것이다.

물론 그가 여권의 유일한 대안으로 등장할지는 미지수다. 제3후보의 등장 가능성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대권 문턱이 ‘새로운 인물’을 수용할 만큼 낮지 않다”고 말했다. 물론 제3의 후보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박원순 변호사 등이 이미 대권 논의에 진입했다는 관측도 있다.

단점1 정체성 부재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고 전 총리를 향해 “정권마다 요직만 맡았다. 나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 후원회회장인 이기명씨는 고 전 총리를 ‘젓가락 정치인’이라고 혹평했다. 독재적 권위주의 시대, 민주화 시대, 그리고 대중정치 시대에도 통하는 ‘보편적 코드’를 가졌다는 지적이다. 그가 ‘무색무취한 관리형 지도자’ ‘정치적 아이텐티티가 없는 행정가’로 인식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 정치학자는 “관리형 리더십이 격변하는 한국 지도자로 부합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 언론인은 “고 전 총리는 미국 곤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같은 사람이다”고 말했다. 흑인인 라이스 장관이 철저한 ‘백인교육’을 받았다는 얘기로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김덕봉 전 공보수석은 1994년 국무위원 제청 1990년 한보 수서택지의 수의계약 거부 등을 예로 들면서 “고 전 총리는 결코 해바라기형 관료가 아니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은 “과거지사인 경력 문제보다는 미래의 비전을 위한 투쟁력이 부족한 것 같다”면서 “반한나라당 전선에 보다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단점2 무임승차 스타일

고 전 총리는 “1년에 1㎝ 움직이는 사람”이라고 불린다. 고 전 총리의 더딘 행정의 속도감과 책임성을 지적할 땐 원용되는 표현이다. 그는 자신이 결정할 사항도 위원회에 전가한다는 지적을 많이 받는다. 민선 서울시장 재직시 공식적인 위원회만도 총 50개, 연 예산이 2억6000만 원이나 들어갔다. 그와 함께 일을 해 본 서울시 공무원 중 그를 ‘왕미꾸라지’라고 혹평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대권행보 과정에서도 유사한 지적이 적지 않다. 고 전 총리가 창당선언을 했을 때 ‘고건파’인 신중식 의원조차도 “만시지탄”이라고 안타까워했을 정도다. 그러나 김용정 전 국장은 “고 전 총리는 많은 의견을 듣기는 하지만 결정은 매우 빠르고 정확하다”고 말했다.

또 고 전 총리는 전북 출신이라고 하지만 부모 고향이 전북일뿐 사실상 전북의 연고를 내세우기에는 취약하다는 것이다. 부모 고향을 통해 전북을 그냥 얻으려는 의도이고 전형적인 전북 무임승차론이라는 비판이다. 최근 상황에서 북한 핵사태에서 고 전 총리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과 우회적으로 차별화를 시도하는 것도 시류에 무임승차하려는 정치적 계산이 숨어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단점3 대를 이은 병역시비

고 전 총리는 병역의무를 하지 못했다. 대학 졸업 후 10년 동안 영장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고 전 총리측의 설명이다. 병적기록에는 영장이 발부되지 않은 ‘미하령(未下令)’으로 기록돼 있다.

고 전 총리는 “그 시절 시대상황은 4·19, 5·16이라는 특수상황 때문에 병역기피자를 대대적으로 단속해 45만 명의 병역기피자가 자진 신고를 하고 앞장서서 자원입대를 하는 바람에 17만 명이라는 사람이 뒤로 밀렸다”면서 “나도 17만 명에 포함돼 제1보충역으로 자동 편입됐다”고 말했다.

고 전 총리의 차남도 1987년 병무청 신체검사에서 ‘신경성 질환’으로 5급 징집면제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장남은 6개월 간의 기본군사훈련만 받은 채 전역했고, 3남도 현역이 아닌 단기사병으로 18개월 간만 복무했다. 집안 전체에서 제대로 현역을 마친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셈이다. 이같은 사실 때문에 고건 전 총리와 그 일가에게는 고의적인 병역기피 또는 병역면제 의혹이 꼬리를 물고 있는 것이다.

단점4 위기 때 처신에 대한 의혹

고 전 총리는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서거 당시 3일 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고, 1980년 5·17 비상계엄확대 조치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1주일 간 잠적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특히 이 부분은 2003년 2월 국무총리 인사청문회에서 집중적으로 의혹이 부각됐다. 그 의혹의 제기의 속내는 “당시 국가위기 때 처신은 국가지도자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 전 총리는 박 전 대통령 서거 때 3일 간 행적이 묘연했다는 주장에 대해 “터무니없는 음해”라고 주장했다. 10·26 때 최소한 국장을 준비하는 주무수석(정무)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10월 26일 저녁 효자동에 있는 ‘유선’이라는 음식점에서 저녁식사를 하던 도중 비상연락을 받았다며 “내가 가장 먼저 도착했다, (대통령)경호실 차장도 나보다 뒤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총무처 장관이 공석이기 때문에 정무수석의 역할이 중요했다”며 “그날부터 사흘밤을 꼬박 새면서 본관에서 빈소를 차리고, 분향소를 차리고, 영구차를 준비하는 등 국장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1980년 5·17 당시 행적도 미궁 속에 있다. 고 전 총리는 인사청문회에서 “5·17 비상계엄확대를 결정하는 비상국무회의에 배석하라는 지시가 있었지만 회의 참석은 곧 군정에 동참한다는 의미로 비쳐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며 이를 거절하고 당시 최광수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사표를 전했다는 것이다. 사표에는 한 편의 편지를 동봉했다. ‘이제 정무수석으로서 해야 할 일이 없는 것 같아서 사직하고자 한다, 사직 후에는 지병인 신장결석 치료차 입원하겠으니 날 찾지 말아달라’는 내용이다.

고 전 총리와 다른 주장도 있다. 인사청문회 증인으로 나온 신두순 당시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고 수석이 사표를 제출하려면 임명권자인 대통령에게 구두로 먼저 얘기하고, 서류는 비서실장에게 내는 것이 도리”라면서 “그러나 지금까지 최광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으로부터 고 수석이 사표를 냈다는 말을 전혀 듣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신 전 비서관은 또 “당시 정무수석의 행적은 고위공직자의 무단근무지 이탈이라고 생각했다”면서 “당시 최규하 대통령이 20여 일이 지난 뒤 청와대에 들어온 고 수석을 만나 아버지가 아들을 보는 마음으로 젊은이의 장래를 생각해 해임이 아니라 의원면직 처리해준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전두환 정권 자체가 ‘쿠데타로 집권한 군정이 아니었냐”면서 “비상계엄령 전국 확대를 ‘군정’으로 규정하는 것은 너무 자의적 해석”이라고 말했다.

또 그에게는 1987년 ‘6·10항쟁’ 당시 내무부 장관으로서 군을 동원한 강경진압을 요청했다는 비판이 있다. 이에 고 전 총리는 “당시 명동성당에 경찰병력을 투입해 강제해산을 하려던 방침을 내가 제지했다”면서 “내 생각이 결국 6·29선언의 토대가 됐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조종석 전 서울시경국장은 “상부에서 평화적 해결을 끝까지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전해 듣고 용기를 내서 전기환씨 등을 만나 대화를 통한 해결책을 건의했다”고 말해 고 전 총리와 다른 시각을 드러냈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