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핵 불능화는 파란불, 비핵화는 불확실

10인의 전문가 한반도 빅뱅을 말한다- 6자회담

북한 정권 수호의 수단… 완전한 포기는 어려워

김태우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핵 불능화에 대한 굿뉴스가 이어지고 있다. 북한은 2007년 2월 13일 6자회담 합의를 통해 핵 시설과 핵 프로그램을 폐쇄·봉인·불능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핵문제는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에 묶인 북한 돈 문제로 교착상태에 빠졌지만, 러시아의 개입으로 이 문제가 풀리자 북한은 곧바로 ‘핵 불능화 이행’ 의사를 표명했다. 7월에는 영변의 5㎿ 원자로를 폐쇄했고, 이어서 9월 1~2일 제네바에서 열린 북·미 관계정상화 실무그룹 제2차 회의에서도 ‘연내 핵 불능화’를 재확인했다. 11일에는 미·중·러 전문가들이 방북하여 핵 시설을 시찰하기도 했다. 모두 향후 6자회담이나 10월에 열릴 제2차 남북정상회담의 호재다. 이런 점을 종합할 때 적어도 금년 말까지는 ‘핵 불능화’를 향한 북한의 행보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핵 불능화 행보를 예상하게 하는 첫째 이유는 평양당국이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 부드러워진 미국에게서 원하는 바를 얻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점을 의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이 국제금융기관들에서 더 많은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미국이 지정하는 테러지원국 명단이나 대적성국교역법 적용대상에서 해제되는 것이 시급하며, 궁극적으로는 북·미 간 수교를 목표로 하고 있을 것이다. 미국이 어느 선까지 양보할지는 확실치 않지만, 부시 대통령이 전사자가 4000명에 육박하는 이라크전쟁이나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의 부활로 궁지에 몰려 있는 것은 사실이다. 현재 백악관의 분위기를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북한이 사고를 치지 않는 한 실용주의적 대북 자세를 견지하면서 자세한 관리는 크리스토퍼 힐 6자회담 대표에게 일임한다”라는 것이다. 북한이 이런 기류를 모르고 있을 리가 없다.

둘째, 핵 불능화는 기존의 핵무기를 폐기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어서 북한이 수용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이 적다. 2·13 합의는 “밝혀진 핵 시설과 프로그램을 다시 가동하지 못하게 한다”는 내용일 뿐, 보유 중인 핵무기와 플루토늄을 폐기하는 문제나 또 하나의 핵무기 제조경로인 농축 프로그램을 규명하는 문제는 담고 있지 않다. 이는 합의를 이행하더라도 북한이 여전히 핵무기 보유국으로 남게 됨을 의미한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을 위해서는 핵무기와 플루토늄을 언제 어떻게 폐기할지, 농축 프로그램의 존재를 어떻게 확인하여 어떻게 해체할지 등에 대한 추가적 합의가 나와야 한다.

핵 불능화는 북한의 선전논리와도 크게 상충하지 않는다. 2006년 10월 9일 북한의 핵실험 직후 유엔안보리가 결의문 제1718호를 채택하면서 북한을 압박했지만, 북한은 이를 거부하고 핵실험을 자축하는 대규모 군중대회들을 개최했다. 2007년 신년사도 “핵 억제력을 갖게 된 것은 불패의 국력을 갈망하여온 우리 인민의 세기적 숙망을 실현한 민족사적 경사였다. 위대한 김정일 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혁명의 수뇌부 두리에 굳게 뭉쳐 사회주의 강성대국의 높은 봉우리를 향하여 총진군하자”고 자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가 핵을 포기하는 결정을 내린다면 스스로 모순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북한이 기존의 핵무기와 플루토늄을 폐기하는 추가적 합의에 서명하지 않는 한 이런 모순을 우려할 필요가 없다.

셋째, 북한이 한국사회의 ‘보혁 분열’을 적절히 이용하여 이득을 취하거나 한국의 국내정치에 영향력을 미치려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은 그동안 미국과 평화협상 체결을 희망해왔고, 남한 내부에서도 김대중-노무현 정부 이래 조속한 ‘평화체제’ 정착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표면화되곤 했다. 북한은 핵 불능화 행보를 지속함으로써 이런 목소리에 좀 더 힘을 실을 수 있다고 믿을 것이다. 100일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를 원한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적어도 연말까지는 ‘파란불’일 것으로 예상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북한의 핵 불능화 행보를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과정으로 단언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북한은 국제적 고립과 경제난을 무릅쓰고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핵을 개발해왔다. 그만큼 체제와 정권을 수호하는 수단으로서 핵무기를 중시해왔다. 북한의 지배세력에는 “체제를 지켜내지 못하면 죽음에 직면할 수 있다”는 강박관념이 있다. 이런 북한이 완전한 핵 포기를 결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심중에 두고 있다고 하더라도 다양한 장애물이 기다리고 있다. ‘핵 불능화’의 정의와 방법 그리고 절차에 대한 상세 합의도 필요하고, ‘신고와 검증’ 절차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즉 북한이 국제사회가 우려하는 모든 핵 시설과 핵 프로그램을 성실히 신고하여 국제원자력기구(IAEA)로 하여금 폐쇄·봉인·불능화를 검증하도록 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현재 북한은 5㎿ 원자로, 재처리 시설, 핵연료봉제조공장 등을 불능화 대상으로 거론하고 있지만, 우리로서는 농축시설의 존재를 확인하는 일이나 핵실험 시설을 불능화하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 때문에 ‘연말 내 핵 불능화 약속’을 “연말 내에 모든 핵 시설의 불능화 및 확인·검증을 마치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무엇보다 북한이 원하는 것과 미국이 주려는 것 사이에 존재할 수 있는 이견차나 시차가 최대의 장애물일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미국의 자세다. 취임 초기에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 해체) 이외의 대안은 없다”고 주장한 부시 대통령이 2·13 합의를 전후하여 ‘실용주의 핵 외교’로 돌아선 것은 세계가 주지하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것이 핵 불능화로 북핵문제를 대충 덮고 가겠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우리에게는 심대한 안보문제를 남기게 된다.

2·13 합의를 이행하고 기존의 핵무기를 제3자에게 양도·판매하지 않겠다는 북한의 약속만으로 미국의 안보문제는 해결되지만, 단 한 개의 핵무기만으로도 엄청난 피해를 입을 처지에 있는 한국의 안보문제는 이와는 다르다. 북한이 핵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괜찮은 것이 아니다. 사용하지 않는 핵도 남북한 군사 균형을 무너뜨리고 한국을 주눅들게 만들어 일방적인 양보를 강요하는 수단이 되어, 남북관계를 심하게 왜곡시킬 수 있다.

이럴 때일수록 국민이 깨어 있어야 한다. 북한의 ‘핵 불능화’ 약속을 환영하되, 우리 안보와 관련해서는 여전히 “신을 신고 발바닥을 긁는다”라는 격화소양(隔靴搔痒)의 차원에 머물고 있음을 알고 있어야 한다. 현재의 파란불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로 가는 수순이기를 기원해야 하지만, 기존의 핵무기를 버리지 않으면서 ‘핵 불능화 이행 행보’를 통해 생색을 내고 한국과 국제사회에 평화공세를 펼치는 과정이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의식하고 있어야 한다.

영남대 경영학과
한국외국어대 통역대학원
미국 몬트레이통역대학원
미국 뉴욕주립대 석·박사
국제평화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
한세정책연구소 부원장
세종연구소 상임객원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