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남북한이 당사자’ 확약받는 일 중요

10인의 전문가 한반도 빅뱅을 말한다- 종전선언

향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한결 수월해질 듯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2차 정상회담을 앞두고 노무현 대통령은 9월 11일 기자회견을 통해 평화체제와 남북경협이 핵심 의제라고 밝혔다. 노 대통령의 발언 내용을 따져볼 때 핵문제는 이미 6자회담에서 해결되고 있기 때문에 굳이 정상회담에서 따지듯 다룰 필요는 없으며 오히려 핵문제가 해결된 이후 전개될 한반도 정세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평화체제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 같다. 이미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남북 간 합의서에서도 2차 정상회담의 주된 의제로서 한반도 평화문제를 적시했고 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재확인된 상태여서 10월 초 평양에서 남북의 최고 지도자는 한반도 평화체제 관련 의제를 집중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문제는 현재의 불안정한 정전체제를 일련의 협정과 조약의 체결을 통해 항구적인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문제로 알려져 있다. 현재의 정전체제는 정전협정에 따라 유지되고 있으나 실제 북한은 1990년대 군사정전위원회에서 대표단을 철수시키고 중국 대표를 포함하여 북쪽 중립국감시위원회도 철수한 상태에서 가까스로 유지되고 있다. 따라서 그동안 한반도의 안정을 유지하는 데 기여해온 현 정전체제는 조만간 조건이 성숙되는 대로 전쟁의 법적·제도적 종식과 함께 새로운 평화협정 체결을 통해 항구적인 평화체제로 전환되어야 할 사안이다. 2차 정상회담에서 평화체제를 집중 거론하는 것은 그 필요성이나 시의성에 비추어볼 때 충분히 논의할 수 있는 주제지만 문제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평화체제를 다룰 경우 과연 어느 정도 수준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어떤 쟁점들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합의할 수 있을지에 있다.

현재 국내외적 상황을 종합해볼 때 한반도에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북핵문제의 해결과 한반도의 비핵화가 이루어져야만 가능할 것 같다. 이 점은 지난 해 베트남 하노이 APEC 회의기간 중 개최한 한·미정상회담과 9월 초 호주 시드니 APEC 회의에서 노무현-부시 대통령이 재차 확인한 사항이다. 아울러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는 지난 2·13합의에 따라 북핵문제가 본격적인 해결 국면에 접어들면서 주변국 사이에서도 적극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제2차 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남북한 정상이 논의를 하더라도 북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비핵화의 대전제하에, 미국 등 관련 국가들의 참여하에 6자회담 실무그룹회의, 그리고 6자회담 틀 밖에서 진행될 한반도 평화체제 포럼에서 실질적인 문제를 다룰 것이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언급한 종전선언의 문제나 북·미 평화협정에 관한 내용도 결국은 북핵문제와 한반도 평화체제를 연계한 것이며 중국 역시 한반도 문제의 남북 당사자 해결 원칙을 지지하면서도 전쟁의 종식과 평화체제의 구축과 관련해서는 4자회담이나 6자회담 등 다자간 협의체를 통해 해결될 것을 희망함으로써 자국의 영향력을 유지하려 한다.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한 논의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을 중심으로 할 것이다. 북핵문제 해결과 연계될 수밖에 없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문제는 핵문제가 해결되면서 자연스럽게 실무 차원에서 다룰 수 있으나 가장 중요한 쟁점은 북한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의 당사자가 남북한임을 인정할 것이냐 하는 문제다. 예상대로 제2차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평화체제에 관해 논의한다면 김정일 위원장에게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논의의 주된 당사자가 남북한임을 확약받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만일 김정일 위원장이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데 남북한이 당사자임을 확약한다면 향후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과 관련한 제반 논의가 한결 수월해질 수 있다. 정전체제가 수립된 후 지난 수십 년 동안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문제에서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지 못한 것은 무엇보다 북한이 남북한 당사자 역할에 대해 부정적이었기 때문이다.

2002년 판문점에서 열린 군사정전위원회 회담에서 유엔사와 북한 대표가 서해교전 사태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공동취재단>

반면 북한은 한반도 평화체제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으로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꼽아왔다. 그동안 북한은 한반도에서 주한미군만 철수하면 북한 주도의 연방제 통일을 달성할 수 있다고 믿어왔으며 6·15 공동선언이 발표된 이후에도 주한미군 철수 주장을 꾸준히 제기해왔다. 우리민족끼리 민족의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적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 주한미군이 우선적으로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주한미군의 철수를 관철하기 위해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을 일관되게 요구하고 있다. 실제 북한은 6·25 전쟁을 법적·제도적으로 종결하고 대미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한반도에서 더는 미군이 주둔할 명분도, 필요도 없어진다고 주장하면서 6자회담 틀 밖에서의 별도 포럼을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를 논의하되 궁극적으로는 북·미 평화협정을 통해 주한미군의 철수를 유도하려는 전략을 포기하지는 않고 있는 것 같다.

아직까지 북한으로서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미국과 체결하여 평화체제를 달성한다는 원칙과 전략을 수정하지는 않은 상태다. 북한은 남한을 정전협정 체결 당사자가 아니란 이유로 종전선언의 주체가 될 수 없으며 따라서 평화협정의 당사자도 될 수 없다는 입장을 바꾸지는 않은 것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 10월 초 개최되는 남북 정상회담에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첫 관문인 종전선언이 전격적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평화체제를 핵심 의제로 상정하면서도 실제 종전선언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논의는 하되 실질적인 문제들을 북핵문제 해결과 북한의 정책변화와 병행하여 다룰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있다.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은 더 분명하게 종전선언은 평화체제가 확립된 연후에 가능한 사안으로 규정하고 그 대신 이번 정상회담에서 남북 정상이 한반도 평화과정의 시작을 선언하는 소위 ‘평화선언’을 채택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제2차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가 거론되고,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제기될 모든 문제에 대해 남북한 정상이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이번 제2차 정상회담에서 남북한만의 종전선언은 법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평화선언의 경우에도 북핵문제 해결과 함께 추진되어야 하고 최소한 북핵 불능화 조치가 완결된 이후에나 그 실질적 의미가 있을 것이다. 종전선언이나 평화선언 모두 한반도에서 평화를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상징성이 매우 큰 조치들로서 북핵문제를 해결하거나 평화를 앞당길 수 있는 가능성은 있지만 냉엄한 국제현실에서 다루어야 할 법적·제도적 조치들임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

고려대 정외과 졸업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 정치학 박사
통일연구원 연구조정실장
고려대 행정대학원장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차기 북한연구학회 회장(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