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남북정상, 한반도 평화선언 바람직하다”

‘한반도 대해빙’ 전문가 좌담

남북관계가 본격적인 해빙 분위기를 타기 시작하면 한반도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용틀임하는 한반도의 정세를 진단하기 위해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신안보연구실장(오른쪽)과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교수를 초청, 특별좌담을 열었다. 좌담은 경향신문사 5층에서 1시간 30분 동안 진행했다.

김연철(왼쪽), 조성렬

좌담 참석자
조성렬 |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신안보연구실장
김연철 |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교수

조성렬 실장 | 2차 남북정상회담이 8월 말에 열렸을 때와 10월 초에 열리는 것에는 다른 의미가 있다. 한·미정상회담도 했고, 9월 중순 6자회담이 열린 후에 개최되기 때문에 국제 현안보다 남북관계에 초점이 맞춰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반도 평화체제나 비핵화 문제는 국제 현안과 맞물려 있다. 이 부분은 한·미정상회담과 6자 회담에서 상당 부분 진행됐다. 따라서 정상회담의 핵심은 남북관계의 내용이 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평화체제가 아니라 남북 간에 앞으로 더는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그런 한반도 평화선언이 담길 수 있다면 좋다. 다음으로는 남북 간의 경제 협력을 제도적으로 확립하는 것이다. 또 이산가족과 국군 포로·납북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이 부분에서 정상회담 이후 현 정부가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에, 가시적인 성과를 위해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납득을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김연철 교수 | 남북 대화에서 핵문제 논의가 맞지 않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쟁점이 발생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정상회담의 비중으로 치면 가장 중요하다. 한·미정상회담에서 나왔지만 평화문제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평화문제는 국제적인 프로세스가 있고 남북 간의 군사대화가 있다. 국제적인 프로세스, 즉 4자회담을 시작하는 것에 대해 남북한이 원칙적 공감을 표시할 수 있겠지만 평화협정이나 평화체제에 대해서는 남북한이 이야기할 수 있는 것보다 아무래도 국제적인 차원에 이야기하는 것이 더 맞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남북 간에 다룰 수 있는 평화문제, 즉 군사적 신뢰 구축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지금보다 조금 더 가시적인 성과가 필요하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는 ‘비핵화되면 평화협정을 맺을 수 있다’는 원칙적인 입장이 나왔다. 당연히 북한 핵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면 한반도 평화정착에서 제도적 성과와 맞물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때 가서의 평화협정보다, 지금 불능화단계에서 평화체제 논의가 하나의 선순환 구조를 이루면서 어떻게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 있게 하는 환경을 조성하게 할까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남북 간 군사적 신뢰 구축을 지금보다 더 진전시킬 필요가 있다.

조성렬 | 비핵화·평화체제·북미관계, 세 개의 축이 동시에 돌아가면서 함께 맞물려 있다. 선후의 문제가 아니라 비핵화· 평화체제·북미관계가 포괄적 해법의 틀 속에서 같이 작동된다. 김 교수가 방금 언급한 선순환 구조가 바로 그런 것이다. 하지만 세 가지의 궁극적인 문제를 가지고 정책을 세울 수 없다. 그 중간 과정을 설정해야 한다. 부시 대통령의 남은 임기 1년 반 안에 완전한 비핵화는 어렵다. 중간 과정에서 점검하는 자리가 필요하다. 그래서 종전선언을 먼저 하고 평화협정은 완전한 비핵화 후에 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 임기 내에 핵시설 불능화는 가능하다고 본다. 그 후에 국제법적 효율성은 없지만 종전 선언을 하고, 북·미 간의 연락 사무소 설치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불능화의 수준이다. 짧은 시간에 불능화할 수 있지만 그 불능화는 낮은 수준의 불능화다. 반면에 높은 수준의 불능화는 핵 폐기 수준의 불능화지만, 문제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부시 대통령 임기 내에 내년 상반기까지 본다면 높은 수준의 불능화도 가능하다고 본다. 그래서 부시 대통령으로서도 외교적 성과를 얻을 수 있다. 현 정부 내에서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어렵지만 높은 수준의 불능화, 북·미관계의 개선, 4자회담에서의 종전 선언까지는 가능하다고 본다.

남북정상회담에서는 종전 선언 자체를 할 수는 없다. 남북 정상이 할 수 있는 것은 앞으로 전쟁하지 않겠다는 한반도 평화선언 정도다. 6·15공동선언에서 이 내용이 초안에 들어가 있었지만 북한이 끝까지 반대해 빠졌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그런 내용이 들어갈 수 있다고 본다. 평화 항목이 들어갈 수도 있고, 합의문의 제목을 평화선언이라고 하면 더 큰 의미가 있다.

김연철 | 결국에는 정상회담에서 평화에 관한 비중이 높아졌는데 과연 어느 단계까지 높아질 수 있는가가 문제다. 평화문제에서도 단계적인 접근이 합리적이다. 조 박사는 중간단계로서 종전 선언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나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 평화문제도 6자회담 프로세스를 준용할 필요가 있다. 6자회담에서는 3단계가 있다. 첫째는 목표개념을 원칙적으로 설정하는 것이고, 둘째는 지금 현 단계라고 할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쉬운 거, 초기에 할 수 있는 조치를 하는 것이다. 그 동력으로 비핵화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평화단계도 3단계로 본다. 첫째는 평화선언이고, 둘째는 꼭 종전 선언이라고 하지 않더라도 평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초기 이행조치가 된다. 내용은 여러 가지 있을 수 있지만 군사적 신뢰 구축 같은 실질적인 내용이 들어가야 한다. 4자회담에서 군사적 긴장완화 분과위원회가 있었는데, 남북 간의 군사대화가 남북 간에 성과 있게 진행된다면 지금도 충분히 가능하다. 정상회담에서 4자회담의 개시를 선언하는 것이 필요하다. 앞으로 국제적인 차원에서 그 내용을 국제사회에 제시해야 한다. 그런 것이 하나의 평화선언이 된다. 그러면 평화협정을 맺기 위한 중간단계가 될 수 있다. 그리고 평화 프로세스도 비핵화 프로세스에 맞게 추진된다.

조성렬 | 그동안 남북경협의 사례를 모아 보면 대부분 실패라는 걸 알 수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이야기하면서 왜 합의한 것이 이뤄지지 않는지를 제시하면 김 위원장을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다. 새로운 제도나 내용의 합의보다 그동안 해온 제도적 장애를 제거하는 것이 더 좋다. 군사분야는 아직 더 논의해야 할 것이 많다.

김연철 | 전적으로 동의한다.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다. 경제협력에서 새로운 내용은 없다. 개성 공단 같은 경우 삽질한 지 언제인데 하며 서로 책임을 넘긴다. 지금도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하고 있는데 양을 늘리기는 어렵다. 경제로 평화를 산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평화는 평화에 대한 의지와 구체적인 노력이 보일 때 가능하다. 경제협력은 북한에 대한 일방적 지원이 아니라 경제는 경제로, 평화는 평화로 구분해서 바라보아야 한다.

조성렬 | 동북아 질서 재편은 북한 핵문제가 초래했다. 기존의 강대국 정책은 현상 유지 정책이다. 대만의 경우 대만이 독립만 추진하지 않으면 그대로 유지시키는 것이다. 문제는 한반도다.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한 것을 선언한 이상 이제는 덮을 수가 없다. 북한 핵문제를 풀지 않으면 현상 유지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인정하는 것이 된다. 북한의 평화체제와 북·미수교 요구를 미국이 받아들여서 현상 변경 과정이 시작됐다. 더는 현상 유지가 안 되는 것이다. 북·미수교와 북·일수교는 냉전구조의 해체를 의미하지만,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질서체제는 한반도 평화체제이고 동북아 다자 안보체제다. 앞으로 미래의 동아시아 체제가 어떻게 짜일지 알 수 있는 구도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2005년 8월부터 4차례에 걸쳐 미국과 중국이 고위급 안보전략 대화를 하고 있다. 여기에서 한반도 문제가 핵심 의제다. 1905년 가스라-태프트조약과 유사할 수 있다. 강대국의 이해조정으로 한민족의 운명이 결정되는 방식으로 가서는 안 된다. 핵문제의 해결 방향이 평화체제라는 점에서 긍정적이긴 하지만 또 다른 현상유지로 고착화되면 안 된다. 한반도 평화체제가 전쟁은 막을지 모르지만 점점 통일에서 더 멀어지는 구조가 될 수 있다. 이것은 한민족의 희망이기보다 미국과 중국의 바람이 될 수 있다. 본격적인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도를 남북이 주도한다고 표현하기는 그렇지만, 강대국의 이해를 절대적으로 훼손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남북이 끌어갈 수 있는 구도가 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정상회담은 이제 남북협력이 아닌 남북합작으로 넘어가야 한다. 과거 중국이 국공합작을 통해 일본에 대항했듯이 남북합작의 여러 경제·외교적 모델을 만들어서 남북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해 일본은 계속 자신의 발언권을 요구하고 있다. 평화체제에서 한국은 당사자가 아니지 않느냐의 구도로 가면 상당히 어려워질 것이다. 국내 정치가 뒷받침해주어야 남북이 주도하여 새로운 질서로 재편하는 구도가 될 수 있다.

김연철 | 내 생각도 마찬가지다. 한반도 평화체제가 통일 지향이냐 분단 지향이냐는 중요하다. 이것은 남북관계에 달려 있다. 남북관계가 신뢰를 쌓지 못하면 분단이 고착화될 수도 있다. 빅뱅 수준의 대전환이라 했을 때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제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북한 핵문제의 완전한 해결은 북·미관계의 해결을 의미한다. 평양에 성조기가 날리고 북·미가 우방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국내적으로 냉전시대의 사고방식을 송두리째 흔드는 것이다. 국내의 이념 구도에서 단순화하면 보수는 친미반북이고, 진보는 반미친북이다. 이제 이 구도는 유지될 수 없다. 북한과 미국이 관계를 개선하고 경제활동이 정상화되면 60여 년 동안 우리 사회를 지탱해온 이념 구도가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의 정치세력도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재정립해야 할 것이다.

이것의 정치적 효과는 무척 클 것이다. 한반도 냉전체제의 종식은 그것이 평화체제나 핵문제나 외교적으로 여러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결국에는 우리 내부적으로 보통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본다. 이제는 평화시대의 상상력이 중요하다고 봐야 한다. 국가보안법은 남북관계에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민주주의에 관련된 문제다. 국제 인권기구에서도 그렇게 보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한국 민주주의 차원에서 종식해야 한다.

조성렬 | 국가보안법 문제가 나왔지만 평화체제로 가기 위해서는 NLL문제가 가장 크다고 본다. 유엔사령부 해체, 국가보안법 등은 파급되는 문제이지 전제조건은 아니다. NLL, 전쟁의 책임과 배상, 국군 포로 문제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국군 포로는 북한에서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파급되는 문제이지만 유엔사령부 해체 문제도 주한 미군 철수 문제와 얽혀 대두될 것이다.

김연철 | 관계 정상화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외교관계 정상화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관계 정상화다. 외교관계 정상화는 쉽다. 그러나 경제관계 정상화가 어렵다. 경제 제재를 해제하는 데 북한도 자세를 바꿔야 한다. 미국의 특혜 관세를 부여받기 위해서는 북한은 경제체제를 바꿔야 한다. 특혜 관세를 받는 조건은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등의 조건이 있다. 다시 말하자면 평화체제·비핵화·관계 정상화는 지금의 북한 체제에서 가능한 문제가 아니다.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북한도 개방적인 체제로 바뀌어야 실질적인 이득을 얻을 수 있다. 한반도 대전환은 북한도 국제사회에 참여할 만큼의 변화가 전제돼야 한다.

평화시대의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지금 현재의 상황에서 그 상태까지 가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평화협정과 평화체제는 다르다. 중동도 오래전에 평화협정을 맺었지만 그것으로 평화가 온 것은 아니다. 실질적인 평화를 위해서는 더 좋은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예를 들어 동·서독처럼 이산가족에 한해 자유의사에 따라 이주를 허용한다든가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지금 상황에서는 무척 어렵지만 점점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만 많은 단계가 있어야 하고, 점진적으로 나아질 것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조성렬 |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군비를 통제해야 한다. 일단 남북한이 기습공격 능력을 배제해야 한다. 남북한 모두 군대를 전방에서 후방으로 재배치해야 한다. 상상력을 발휘하면 휴전선에서 남북한 주민들의 이동을 지금은 군이 통제하고 있는데, 나중에는 이를 한국의 경찰과 북한의 사회안전부가 담당하는 형태가 된다. 군인과 경찰은 다르다. 충돌이 있을 때 군은 무조건 총을 쏘지만 경찰은 다른 방식으로 해결한다. 이산가족이나 사업의 경우 좀 더 자유로운 이동이 남북간에 가능하도록 할 것이다.

김연철 | 통일문제 같은 경우에도 즉각적인 통합이 능사는 아니다. 사실은 지금 엄청난 경제적 격차가 존재한다. 남북간보다 이질성이 적었던 동·서독에서도 아직도 통일 후유증을 이야기한다. 즉각적인 통일보다 그동안의 분단체제에서 이질화된 격차를 충분히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교류를 활성화하고 경제·정치·문화적 이질성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통일이 후유증 없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현재의 중간단계에서 차이를 좁히기 위한 노력이 굉장히 중요하다.

조성렬 | 연방제와 연합제의 문제에 대해서는 서로 통일을 생각하면서 구체적인 정책이나 안을 논의하는 상황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남북간에 여러 가지 회담의 형태가 있는데 이러한 여러 형태를 통합하는 것이 좋다. 제도적으로 가칭 ‘민족협력위원회’를 만들어서 남북한의 모든 현안을 다루는 상설 기구가 필요하다. 일종의 남북간 준내각이 되는 것이다. 민족통일기구일 수도 있는데 북측에서 이런 것을 제안할 가능성도 있지 않나 생각한다.

김연철 | 6·15공동선언에서 남북한이 통일문제를 점진적·단계적으로 합의했다고 본다. 그 정도의 합의면 굉장히 바람직하다. 다만 여러 가지 남북관계의 현안을 제도적으로 논의해나가기 위해서 통일기구보다는 남북기본합의서에서 합의한 4개의 공동위원회를 이번 기회에 다시 가동했으면 좋겠다. 군사·사회문화·화해·경제 공동위를 가동하면 실질적인 통일문제에 접근할 수 있다. 먼 미래의 통일 방안보다 현재 직면하고 있는 공존과 공영을 어떻게 구체화하고 제도화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올바른 통일 접근법이 될 것이다.

<정리·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
<사진·김세구 기자 k39@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