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좌담ㅣ2030세대는 왜 정치에 무관심한가?

“경제대통령 뽑으면 청년실업 해결해 주실 건가요?”

20대, 30대, 40대가 한 자리에 모였다. 올 2월 대학을 졸업한 99학번 이재민씨(26·취업준비중)와 92학번 한진씨(33·사회복지사), 85학번 남희웅씨(41·변호사)다. 전혀 다른 사회 조건에서 대학생활을 한 이들의 가치관은 어떻게 다를까. 특히 학생운동이 정점에 달한 1980년대에 대학생활을 한 386세대의 눈에 요즘의 대학생들은 어떻게 비칠까. 좌담은 주로 2030세대의 대선 투표 의지와 정치참여의식, 그리고 2007년을 보내는 그들의 고민과 희망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40대 남희웅씨 뉴스메이커의 여론조사 결과, 이번 대선 투표에 참여하겠다는 20대와 30대가 각각 86.3%, 89.6%로 나온 것은 의외다. 그것만으로 보면 상당히 긍정적인 현상이다.

20대 이재민씨 오해하면 안 된다. 20대는 정치에 관심 있는 게 아니다. 경제를 부흥시킬 수 있는 대통령을 뽑으면 20대의 최대 고민인 취업난을 해결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에서 투표하겠다는 것이다.

30대 한진씨 같은 맥락에서 이명박씨가 경제대통령 이미지 때문에 뉴스메이커 여론조사 결과에도 20대와 30대에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것 같다. 하지만 비정규직 문제의 원인이 경제적 상황에서 비롯한 것이고 만약 이명박씨가 대통령이 되면 이 같은 문제는 더욱 심화할 게 뻔한데 많은 사람이 이를 간과하는 것 같다.

20대 이재민씨

이재민 사실 20대는 정치가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깊게 들여다보지 않기 때문에 대선 후보들이 어떤 공약을 내걸었는지도 모른다. 솔직히 정치적 색깔이나 사상은 고려하지 않고 이미지로 누구를 지지하겠다는 이들이 대다수다. 신문을 꼼꼼히 읽거나 TV 뉴스를 열심히 보는 친구들도 없다. 물론 통일에 대한 관심도 없다.

한진 30대도 통일에 대한 관심은 없다. 정치에 대한 기대감도 거의 없다. 그래도 선거에는 참여하겠다는 반응이 많더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정치 참여라는 게 대선이나 총선이 있을 때 투표를 하는 것인데, 문제는 현실 참여 인식이 실종됐다는 점이다. 내가 참여해 사회를 바꾸어야 현실 참여의 의의가 있는 것인데 지금은 그런 기대감이 없다는 얘기다. 40대는 자신들의 참여로 사회를 바꾸면서 성취감을 느낀 경험이 있지만 20대와 30대는 그런 경험도 많이 부족하다. 그래서 정치에 대한 관심도도 386세대에 비해 현격히 낮다. 얼마 전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니 요즘 청소년들은 성공 기준을 물질적 풍요로 삼는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이는 요즘 신세대들의 사고방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물질적 풍요를 우선시하는 세태에서 어떻게 정치 참여도가 높겠나. 대학도 취업을 위한 전진기지로 전락해 1학년 때부터 영어성적 관리에만 신경 쓰는 상황에서 이들에게 정치와 사회에 대한 관심을 가지라고 하는 것은 무리다.

이재민 맞다. 요즘엔 대학생을 가리켜 고등학교 4학년생이라고 한다. 괜찮은 기업에 취직하려면 학점관리와 자격증 취득 등이 중요하기 때문에 다른 데 신경 쓰기 어렵다. 정말 취업난이 심각하다. 적지 않은 학생이 일부러 졸업시기를 늦춘다. 입사지원을 할 때 아무래도 졸업생보다 학생 신분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대학원에 진학해 취업을 준비하는 기간을 더 확보하기도 한다.

한진 솔직히 난 이번 대선에서 투표하기 싫다. 이런저런 공약을 발표하지만 막상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모두 딴소리를 하기 때문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지금보다 크게 나아지는 게 없을 것이므로 답답하다. 그나마 후보들이 내건 공약을 비교해보고 차악이라도 뽑아야 하나 고민 중이다.

이재민 공약이라는 것도 그렇다. 최고 엘리트라고 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공약이라는 게 실질적 방안이 아닌 땜질식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예를 들어 문국현 후보는 계속 치솟는 등록금 문제 해결방안으로 국고에서 빌려주는 등록금 대출이자를 낮추고 상환기간을 늘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등록금이 계속 오르는 상황에서 이는 실질적 방안이 될 수 없다. 대학을 졸업한다고 취직이 된다는 보장도 없는데, 등록금 대출이라는 빚만 잔뜩 지면 학부모나 학생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나.

남희웅 내가 대학에 다니던 1980년대는 정치가 우리 사회에서 압도적 이슈였다. 경제상황이 괜찮아 돈이 흔했다. 국민의 욕구를 좌절시킨 것은 정치였다. 박정희가 죽고 다시 군부가 장악하면서 광주민주화항쟁이 터졌다. 1987년엔 박종철·이한열 열사가 각각 고문과 최루탄으로 사망했다. 정치적 격동의 시대에 대학생들은 데모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면 지금은 많이 민주화하여 대학생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도도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지금은 우리 세대도 술자리에서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싫어한다. 2002년 대선 때 우리의 이상을 실현해줄 사람을 노무현으로 보고 반짝 집결했지만 결과적으로 노 정권에 대한 실망감이 커지면서 정치에 대한 관심 자체가 사라졌다. 이번 선거에서 40대는 선택의 폭이 넓어질 것이다. 386세대는 전통적으로 야당, 개혁, 좌파를 선호해왔지만 지금은 꼭 그런 것도 아니다. 나라의 현안을 잘 해결해줄 수만 있다면 그가 재벌이든 우파이든 또 설령 좀 부패했다고 하더라도 대통령으로 선출하겠다는 이도 적잖기 때문이다.

이재민 말씀대로라면 40대는 진보와 보수 등 선택할 수 있는 스펙트럼이 넓어진 반면 20대는 선택의 폭이 좁아졌다. 내게 일자리를 주고 내가 처한 경제적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사람만 보이기 때문이다.

한진 정치운동이 활발하던 시기는 형식적인 민주화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때다.

30대 한진씨

우리 손으로 대통령을 뽑기 시작한 것도 1987년부터였으니까. 그런 환경이 사람들을 하나로 결집할 수 있게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경제적인 면에서는 지금이 1980년대보다 나을 게 없다. 실업난 등 생활 여건은 더 나빠졌다. 형식적인 민주화의 내용을 채울 수 있는 분배의 평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양극화는 더 심해졌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한데 뜻을 모아 뭉치는 힘은 약해졌다는 것이다. 노동운동만 봐도 그렇다. 예전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지 않았을 때는 노동계의 힘이 잘 결집된 반면 비정규직이 크게 증가한 지금은 정규직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함께 나서지 않는다. 현재는 정규직이라고 해도 비정규직 문제가 언젠가 자기 자신의 현실적 문제로 닥칠 수 있는데도 비정규직과 연대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시도는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이재민 대학교의 총학 선거도 투표율이 굉장히 낮다.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총학 선거에 관심 있는 건 출마한 당사자와 참모진, 그리고 이권이 개입된 이벤트 회사뿐이다. 딱 그들만의 잔치다. 운동권과 비운동권이 있지만 운동권은 힘을 상실한 지 오래다. 많은 대학이 한총련에서 탈퇴하고 비운동권을 선언했다. 총학 선거 공약을 보면 진짜 재밌는 게 많다. 여학생 휴게실 리모델링 이런 게 공약으로 나온다. 과거 선배세대의 투쟁이나 쟁취, 이런 용어는 없다. 대다수 학생은 총학생회장이 누구인지조차 모른다. 총학생회장이 전체 학생 앞에 얼굴을 내미는 것도 일 년에 몇 차례 안 된다.

한진 나도 얼마 전 경향신문에서 총학 선거 공약으로 하이힐을 신는 여학생들을 위한 발 마사지기 도입, 남학생들을 위한 남성 전용 휴게실 도입 등을 내걸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대학이 점점 보수화·실용화되고 있다는 것인데 이런 공약을 낸다고 해서 총학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어쩌면 이런 공약이 나오는 것은 학생들이 원하는 것을 제대로 찾아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는 게 아닌가 싶다.

남희웅 우리는 학창시절에 학업이나 개인적인 취미활동을 하지 못했다. 의무적으로 사회과학서적을 읽고 집회에 참석하는 등 늘 집단을 중시했다. 돌이켜보면 20대 시절을 너무 정치적인 이슈에 치우쳐 소모한 것이 아닌가 싶다. 반면 지금의 대학생들은 개방적이며 자율적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 같아 부럽기도 하다. 반면 한편으로는 취업 고민이 심해 측은하기도 하다. 기업들이 외형을 키우던 시절이라 웬만한 대학만 나오면 취업은 쉽게 할 수 있었던 우리 학창시절과는 상황이 크게 다르다.

한진 맞다. 우리 때만 해도 상고 나와서 은행에 정규직으로 취업하는 게 가능했다. 반면 지금은 은행도 모두 대졸자만 뽑지 않느냐.

이재민 요즘 20대들은 경제 개념이 확고하다. 학생 신분으로 주식을 하는 친구도 많다. 또 공기업을 포함해 각 기업의 연봉도 꿰고 있다. 직장 선택의 우선순위는 연봉이다.

40대 남희웅씨

남희웅 우리가 20대일 때는 먹고사는 것은 문제없다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보수는 좀 낮더라도 자기가 꿈꾸는 직업을 좇았다. 하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돈에 대해 민감해진 것 같다. 20대가 돈에 대해 눈을 뜬 것은 부모 세대인 50대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수 있다. 시골에서 농사짓던 우리 부모세대와 달리 지금의 50대는 1970~80년대를 거치면서 부를 형성한 세대다.

이재민 부동산값 폭등으로 월급쟁이들이 집을 사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20대도 알기 때문이다. 내가 직장에 들어가 월급 200만 원씩 꾸준히 저축해 강남에 집을 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대학생들이 주식 투자에 관심을 갖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어느 정도 목돈을 만들어놓고 시작하겠다는 생각일 수 있고, 월급쟁이로는 결혼하고 애 낳고 서울에 집 사서 살 수 없겠다는 판단이 들기 때문에 요행을 바라는 것이다. 주식투자 동아리도 있고, 모의주식투자대회도 있다. 돈이 돈을 벌게 한다는 것도 우리는 일찍부터 깨달았다. 요즘 20대는 시사에 관심이 없다. 군인들도 휴가나 외박을 나가면 남성을 위한 패션잡지를 사온다. 시사보다 옷이나 자동차,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많다.

남희웅 20대는 우리 세대와는 많이 다른 것 같다. 지나치게 외모나 유행 그리고 돈을 좇는 것 같아 세대 간 위화감을 느낀다. 그렇지만 직접 부딪치면 20대에게 배울 점도 있을 것 같다.

한진 지금 20대에서 보이는 특성은 20대 고유의 특성이라기보다 사회적 분위기나 여건 속에서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어떤 면에서는 취업난 속의 20대는 우리 사회의 피해자라는 생각이 든다. 안쓰럽다. 하지만 그들이 지금 당장은 철없어 보일지 몰라도 충분히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복지관에 실습 나온 대학생들의 교육을 통해 경험했다. 난 20대와 30대 그리고 40대는 단절되지 않았다고 본다. 취업, 주택 마련, 육아와 사교육비 문제 등 경제적 조건의 어려움을 동일하게 느끼는 일직선상에 서 있기 때문이다.

이재민 차기 대통령에게 바라고 싶은 것은, 출발이 어느 지점이든 비전이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가령 지금은 고생하면서 밑바닥부터 시작한다고 해도 열심히 하면 누구나 안정적이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끔 실질적으로 시스템을 정착해달라는 말이다.

한진 우리나라 역사상 노무현 대통령이 탄생한 것은 굉장한 함의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 한 사람의 변화로는 사회의 전반적 개혁을 이끌어낼 수 없다는 것을 이번 노 정권을 통해 깨달았다. 따라서 차기 대통령은 스스로 정책의 주체가 되고, 국민은 개혁적 대통령이 실제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희웅 명분보다는 실리, 이념보다는 현실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 또 나랏일을 참모에게 맡기기보다 직접 챙기는 실무가형 대통령이어서 지금의 이 어려움을 잘 타개해주면 좋겠다.

<글·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사진·김세구 기자 k39@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