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해야죠 첫 투표, 20년 기다렸는데”

올해 처음으로 한 표 행사하는 만 19세 유권자들… 60만 명 안팎 될 듯

2005년 이전에는 만 20세 이상의 국민에 한해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권을 주었다. 하지만 선거법 개정으로 이제 투표권은 만 19세 이상으로 확대되었다. 이번 대선에서 투표권을 갖는 만 19세는 60만 명 안팎이다. 2002년 대선에서 57만여 표 차로 당락이 결정된 것을 생각하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숫자다. 이번 대선에서 처음 투표권을 가지는 만 19세의 젊은이들 역시 자신의 한 표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뉴스메이커가 실시한 ‘청장년층 대선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번 대선에서 투표하겠다’는 20대가 86.3%로 예상보다 훨씬 높게 나왔다. 이번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만19세 젊은이들의 투표율도 상당히 높게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그들은 설레는 마음을 안고 대선 투표일(12월 19일)을 기다리고 있다.

“남은 기간 후보공약 잘 살펴볼것”

대학희망 회원들이 이대 앞에서 만 19세 학생의 투표 참여를 권하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

올해 처음 투표권을 행사하는 동국대 사회복지학과 박고은씨는 “일단 처음이기 때문에 설렌다”면서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투표하는 모습을 보고 투표를 해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박씨는 여느 대학생과 달리 이번 대선에 나온 후보들의 이름을 줄줄 외울 정도다. 심지어 이번에 대선 후보로 나온 한국사회당의 금민 대표도 알고 있다. 아직은 대선 후보의 모든 것을 알지 못하지만, 남은 1개월 동안 후보들의 공약을 잘 살펴볼 것이라고 한다. 특히 전공 때문에 ‘복지 공약’을 가장 눈여겨본 후에 투표할 계획이다. 박씨는 “후보들의 복지 공약 중에서 가장 충실한 사람이 문국현 후보다”면서 “유한킴벌리 대표까지 지내서 그런지 공약과 이미지가 가장 좋은 것 같다”고 말한다.

감리교신학대에 재학 중인 장소망씨 역시 대선 투표일을 기다리고 있다. 아직 대선주자 중 이명박, 이회창, 정동영, 이인제 후보만 알고 있을 정도로 정치에 큰 관심은 없지만, 이번 대선에서 첫 투표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약속한다. 장씨는 “투표하려고 20년을 기다렸는데, 하지 않으면 많이 억울할 것이다”면서 웃는다. 하지만 정치권에 그리 후한 점수를 주지는 않는다. 뉴스에 나오는 국회의원들은 항상 싸우는 모습만 보여줬기 때문이다. 주위에서 절실한 기독교 신자인 후보를 지지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지만, 종교 때문에 후보를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털어놓는다.

투표권 행사에 좀 더 적극적인 학생들도 있다. 만 19세 대학생들의 투표참여운동을 하고 있는 대학희망의 회원들은 “투표는 소중한 권리다”라고 말한다. 건국대 인문학부의 김가영씨는 “내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 매우 좋다”면서 “개인적으로 고등학생도 투표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또한 “고등학생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기 어려운 것이 문제인데, 그것은 잘못된 교육 때문이다”라고 덧붙인다. 하지만 김가영씨의 친구들은 이번 투표에 별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 대선과 투표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친구들에게 투표에 참여하자고 설득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300여만 명이나 되는 대학생 유권자의 한 표 행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친구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도 처음에는 무관심하다”면서 “하지만 논리적으로 설명하면 대부분 수긍하기 때문에 희망이 보인다”며 웃는다.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회원인 성공회대 김해민씨(사회과학부) 역시 투표권을 가지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김씨는 “‘내가 벌써 이렇게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됐구나’라는 생각이 든다”면서 “투표권을 가지면서 사회에 대한 고민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고 말한다.

“아는 것 없어 후보 이미지에 좌우돼”

만 19세 젊은이는 대부분 이번 대선에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을 뿌듯해하고 있다. 하지만 ‘투표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라는 구호에는 의문을 표시하기도 한다. 박고은씨는 “내가 누구를 뽑느냐에 따라서 세상은 바뀔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면서 “하지만 투표로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고 해서 투표를 안 하는 것보다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장소망씨 역시 “투표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아직 실감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중앙선관위 직원들이 선거상황실에서 투표함 등을 점검하고 있다.

이에 반해 적극적인 투표권 행사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는 학생도 많다. 이번 대선에서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하는 연세대 경영학부의 천대웅씨는 “투표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요즘 젊은이들이 정치에 무관심하다는데, 내 친구들을 보면 나름대로 정치에 대한 생각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얼마 전 7개 대학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투표를 하겠다는 학생이 70%를 넘었다는 사실을 예로 든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여전히 대학생들의 이런 생각에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한다.

또한 투표와 함께 사회에 참여해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김해민씨는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했던 젊은이들이 후회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젊은이들이 직접 사회에 참여해 바꿔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주장한다.

대선 후보를 선택할 때 부모님과 매체를 통해 나오는 뉴스, 그리고 공약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김해민씨는 “후보의 공약을 보고 선택한다”면서 “후보가 과거에 어떻게 살았는지도 선택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김가영씨도 “우선 공약을 살펴보고, 대세론이라는 말은 웬만하면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한다. 장소망씨는 “대선 후보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다 보니 대선 후보의 이미지에도 큰 영향을 받는다”고 털어놓는다.

2002년 대선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 논란이 됐던 “투표를 하지 않는 것도 정치적인 행위다”라는 말에 대해서는 대체로 인정하는 편이다. 하지만 첫 투표이니만큼 투표를 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 옳은 행동이라고 설득하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60여만 명의 만 19세 유권자의 선택이 이번 대선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자못 궁금하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