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보이지 않는 손’ 당·청 이상득 계보

박희태-임태희-주호영 당 핵심라인 장악

"친박이 아니면 모두 이상득 계보로 봐도 된다.” “이상득 계보는 없다.”
이상득 계보에 대해 한나라당에서 나오는 말이다. 이상득계는 계보가 있는 듯하지만 실체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상득 의원의 정국 장악력을 놓고 일각에서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실체는 드러나지 않지만 결과론적으로 보았을 때 이 의원의 힘이 미치지 않는 데가 없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 스스로 이상득계라고 나서는 사람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이병석, 강석호, 정종복, 주호영, 임태희, 박희태(위 왼쪽부터 시계방향).

대구·경북의 TK지역에서는 대부분 친박 의원이 포진해 있다. 다만 포항 지역을 중심으로 이상득계 정치인들이 있다. 같은 포항 지역구인 이병석 의원(포항시 북구)은 이명박 대통령의 고려대 후배다. 이상득 의원과 그렇게 친한 편은 아니었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당 후보로 떠오르면서 이 대통령과는 대학 선후배로, 이상득 의원과는 지역적 이해관계로 얽히면서 자연스럽게 대표적인 이상득계 의원으로 부각됐다. 18대 국회에서 3선의 이병석 의원은 원래 야당 몫인 국회 지식경제위원장을 원했으나, 여당 몫인 국토해양위 위원장으로 낙점받았다. 여기에는 포항 지역 관련 예산을 챙기려는 이상득 의원의 이해관계가 잘 맞아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병석 의원은 국토해양위 위원장에 임명되자마자 한국철도공사 등의 국토해양부 산하 기관에 동해안 도로·철도망 낙후 문제를 제기했다.

이병석·강석호·정종복 대표적
경북 영양·영덕·봉화·울진이 지역구인 강석호 의원도 ‘이상득계’라고 스스로 인정할 수 있을 정도로 이상득 의원과 가깝다. 이 의원과 16대 선거에서 자민련 후보로 대결했던 그는 이후에는 이 의원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영양·영덕·봉화·울진 지역 현역의원으로 친이 의원이었던 김광원 전 의원이 갑자기 불출마를 선언한 것도 이 의원의 영향력으로 해석하는 사람이 많다. 김 전 의원은 정치권 일각의 예측대로 한국마사회 회장이 됐다. 강 의원은 고향이나 다름없는 영양·영덕·봉화·울진의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했고, 김 전 의원은 정계에서 은퇴해 마사회 회장이 된 것이 모두 이상득 의원의 구상대로 됐다는 것이 지역 정가에서 나도는 이야기다. 강 의원은 국회 농림수산식품식품위원회와 예결위원회의 위원이다. 이병석 의원을 국토해양위 위원장으로, 강석호 의원을 예결위 위원으로 배치한 것을 두고도 지역에서는 포항 관련 예산 통과를 위한 절묘한 구상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하지만 강 의원은 쌀 직불금 사태가 터지자, 예결위원직을 그만두고 직불금 국정조사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포항의 인근 지역구인 경주의 정종복 전 의원 역시 이상득계의 대표적인 정치인이다. 4월 총선 때 원내 사무부총장이었던 정 전 의원은 공천심사위원회의 간사로 이상득 의원의 의중을 반영했다고 할 수 있다. 김일윤 의원(무소속)에 패한 정 전 의원은 김 의원의 선거법 위반으로 내년 재·보궐 선거에서 여의도 재입성을 노리고 있다. 하지만 경주에서 지지도가 낮다는 평가가 그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정 전 의원의 재공천 여부가 이상득계의 위상을 가늠해볼 수 있는 척도”라고 말했다. 정 전 의원이 한나라당에서 공천을 받으면 이 의원의 영향력이 그만큼 막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된다는 것이다. 정 전 의원은 제2기 청와대 멤버가 구성되기 전 민정수석 후보감으로 이름이 오르내렸으나 주위의 반발에 부딪혔다.

이병석·강석호·정종복 등 3명의 정치인 외에 이상득계라고 표방하는 의원은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현재 당·정·청에서 고리 역할을 하는 핵심 인물에게는 이상득계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대표적인 인물이 박희태 대표다. 5선급 전직 의원인 박 대표를 계보 의원으로 표현하기 힘들지만 이 의원의 뜻과 잘 맞는 대표라고 할 수 있다. 이 의원은 7월 전당대회에서 친이 계보를 총지원해 박 전 의원을 한나라당 대표로 앉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내대표단에서는 임태희 정책위 의장이 이 의원 계보로 분류된다. 이 의원은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폭넓은 포용력으로 중간 지대에 있던 한나라당 인사들을 대거 친이로 끌어들였다. 친이 직계들을 한 걸음 뒤로 물리면서까지 이들 인사를 전진 배치한 것이다. 임 의장이 이런 구상에 잘 들어맞은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춘식·조해진 등 안국포럼 멤버도
원내 수석부대표인 주호영 의원은 원래 박근혜 전 대표와 친했으나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의 손을 들었다. 불교쪽에서 마당발인 주 의원은 불교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 이 의원과 손발을 자주 맞췄다. 주 의원 측은 “언론에서 이상득계로 분류하고 있더라”며 이상득계로 분류되는 데에 특별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박희태 대표-임태희 정책위 의장- 주호영 원내 수석부대표로 이어지는 라인은 사실상 한나라당의 국정 운영을 이끌어가는 핵심 라인이다. 이런 점에서 한나라당의 핵심 라인이 이 의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박영준, 박형준, 정다사로, 이동관(왼쪽부터).

주 의원의 대구 능인고 동기로, 주 의원을 대신해 한나라당에서 불교 관련 일을 맡고 있는 조문환 의원(비례)도 친이상득계로 분류된다. 조 의원은 최근 이명박 정부와 조계종의 불협화음 과정에서도 막후에서 많은 역할을 했다. 기독교 신자인 이상득 의원은 조계종과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후인 11월 초 주호영 의원과 함께 조계종 총무원을 방문할 정도로 불교에 많은 관심을 쏟았다.

비례대표 의원에서도 일부가 이 의원 계보로 분류되고 있으나 분명하지 않다. 6월 정두언 의원이 박영준 전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을 비판하며 이상득 의원과 대치할 때, 정 의원을 비판한 그룹 역시 이상득계가 아닌가 하는 시선이 있었으나 뚜렷한 실체가 없었다. 6월 12일 현장경제연구회 모임에서 고승덕·이철우·강석호·이은재 의원 등은 정 의원의 발언을 비판했다. 이철우 의원(경북 김천)은 “당시 내가 먼저 그 말을 꺼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그 이후 이상득계로 분류되기도 하는데 나는 지역적으로 친박 정서가 강한 지역의 의원이고 이 대통령·이 의원과는 경주 이씨 종친이라는 인연을 갖고 있다”면서 어느 계보에도 속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날 모임에 참석한 다른 의원들도 현장경제연구회 모임 멤버로 참석했을 뿐이어서 친이상득계로 분류하기 힘들다.

이춘식·조해진·강승규·김영우·김효재·백성운·정태근 의원 등 안국포럼에 속한 초선의원 일부도 범이상득계로 분류된다. 이들 안국포럼 멤버는 11월 초 이상득 의원과 회동하려다 언론에 공개되는 바람에 만남이 취소됐다. 안국포럼은 친이 직계로 사실상 이 대통령의 뜻이 그대로 반영될 수 있는 멤버다. 때문에 언제든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 의원과도 뜻을 같이할 수 있다.

당내에서는 안국포럼 외에도 친이 중 이재오계를 제외한 인사를 모두 범이상득계로 보기도 한다. 사실상 이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되는 중요한 결정에서 이 의원의 손을 들어주기 때문이다.

박영준 전 비서관, 1기 청와대 조각
이재오계는 3월 당내 공천 과정에서 이 의원의 불출마를 요구하며 이 의원과 맞섰다. 의원 후보 55인에는 친박 의원도 포함돼 있지만 주류가 이재오계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정두언 의원이 6월 이상득 의원과 맞설 때도 정 의원 편에 서서 이 의원을 비판했다. 하지만 박희태 대표를 선출한 7월 전당대회에서는 공동전선을 펴는 등 필요에 따라 ‘친이’라는 공동의 이익을 도모하고 있다.

청와대에서도 이 의원의 영향력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정두언 의원이 힘을 발휘했다면 1기 청와대 조각에서는 이상득 의원이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할 수 있다. 그 영향력의 중심에는 박영준 전 기획조정비서관이 있었다. 이 의원을 오랫동안 모신 박 전 비서관은 ‘왕 비서관’으로 통했다. 이 의원이 구상을, 박 전 비서관이 실제적인 조각 작업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기 내각 중 류우익 전 비서실장·곽승준 전 국정기획수석·이주호 전 교육과학문화수석·박영준 전 기획조정비서관 등 핵심 인물은 이 의원의 영향권 안에 드는 인사라고 할 수 있다. 정두언 의원의 비판 발언 이후 2기 청와대 인사에서는 대거 새로운 인물이 들어왔지만 초기 청와대를 구성했던 행정관급들은 여전히 이 의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나라당 보좌관 출신으로 박 전 비서관과 가까운 인물들이 청와대에서 행정적인 실무를 사실상 장악했기 때문이다.

이 의원의 국회 부의장 시절 비서실장이었던 장다사로 민정1비서관이 대표적인 이 의원계 인사다. 정부를 비롯해 공기업 인사까지 다루는 인사비서관실에는 박영준 전 비서관과 가까운 이상휘 행정관이 인사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때문에 박 전 비서관이 청와대 외곽으로 밀려났지만 여전히 박 전 비서관의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한나라당 내부에서 공공연하게 거론된다. 청와대든, 정부 부처든, 기타 공기업이든 한 자리를 얻으려면 박 전 비서관을 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박 전 비서관과 가까운 청와대 행정관으로는 총무비서관실에 이순모 행정관, 문화체육관광비서관실에 박광명 행정관, 방송통신비서관실에 장훈 행정관, 정무기획비서관실에 장경상 행정관, 정무비서관실 김오진 행정관 등이 손꼽힌다. 이밖에도 조해진 의원의 동생인 민정1비서관실 조해구 행정관도 박 전 비서관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청와대에서 대언론쪽은 이상득 의원과 오랜 친구 사이인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인맥도 많이 뿌리내렸다. 이들도 사실상 이상득계로 볼 수 있다. 최 위원장의 서울대 정치학과·동아일보 정치부장 후배인 이동관 대변인 외에도 이 대변인의 서울 신일고 후배인 박흥신 비서관, 주간동아 기자 출신인 김시관 행정관이 범이상득계 인물로 분류된다. 대구·경북 지역 신문 기자 출신인 이상곤·김좌열 행정관은 기자 시절 이 의원과 가까운 사이였다. 박영찬·김길성 행정관은 박 전 비서관과 한나라당 보좌관 시절 가까운 인물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기 청와대에서 홍보기획관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형준 전 의원도 임태희·주호영 의원처럼 이상득계로 분류할 수 있는 인사다. 대선 캠프 활동 당시 박 전 의원은 수시로 이 의원의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