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호가 만난 사람]문용식 민주당 유비쿼터스위원장

“소셜미디어로 민주당을 젊은 정당으로 탈바꿈”

도둑처럼 찾아왔다. 통일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PC통신에 빠져 있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인터넷 세상이 돼 있었다. 도스에서 윈도로, 삐삐에서 모바일로, 2G에서 3G로, 싸이월드에서 트위터로… 변화는 늘 그렇게 우리 삶 속에 도둑처럼 찾아왔다.

지난 20년간 사회 변화를 이끈 가장 강력한 도구 가운데 하나가 정보기술(IT)일 것이다. IT환경은 산업구조는 물론 사회 시스템, 심지어 정치 지형까지 바꿔놓고 있다. 그 혁명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IT환경에서 정치는 어떻게 생존하고 진화할 것인가. 멀게는 2002년 대통령선거, 가깝게는 지난 4·27 재·보궐선거가 극적인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17대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 반등과 승리를 이끈 중요한 동인 가운데 하나가 인터넷임은 잘 알려져 있다. ‘천당 아래 분당’이라던 한나라당 표밭을 갈아엎은 4·27 분당을 보궐선거의 결정타가 SNS라는 것 또한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바다.

최근 정치권에 이런 흐름을 반영하는 ‘사건’이 있었다. 문용식 전 나우콤 사장이 민주당 유비쿼터스위원장을 맡은 것이다. 나우콤은 고려시멘트·한창그룹·두루넷 등 모기업이 부도나는 상황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았고, PC통신·인터넷·모바일로 사업 트렌드가 세 번이나 바뀌는 상황에서도 변신에 성공한 ‘IT업계의 신화’ 가운데 하나다. 지난 20년간 그 변화무쌍한 과정을 헤치고 나우콤을 지금의 중견 IT기업으로 키운 문 위원장은 그래서 ‘IT업계의 블랙박스’로 불린다.

그의 정치권 진입에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고 갸웃거릴 수도 있다. 성공한 CEO로 남을 수 있음에도 뒤늦게 험한 정치판에 발을 담근 것이 의아한 부분이다. 학생운동 전력이라든가 정치·사회적 발언이나 행동을 마다 않는 ‘개념 사장’이라는 평판을 감안하면 고개를 끄덕일 만하다.

따지고 보면 그는 2002년 대선국면의 ‘인터넷 선거 혁명’과도 깊숙한 관련이 있다. 당시 그는 온라인 정당을 표방한 개혁국민정당의 온라인위원장이었다. 그에게 ‘개념 사장’이라는 별명을 안겨준 지난 4·27 재·보선에서 그는 숨은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그는 나우콤 직원에게 2시간 유급휴가를 주며 투표를 독려했고, 이런 내용이 SNS를 통해 퍼져나가면서 투표율 상승에 한몫 했다.

2008년 6월 광우병 사태 때 나우콤이 운영하던 인터넷 방송 아프리카TV가 촛불집회를 생중계한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가 뒤에 불법 복제된 영화 파일의 유통을 방조한 혐의로 구속된 데는 촛불집회 생중계에 대한 ‘괘씸죄’가 작용했다는 논란을 낳기도 했다. 2009년 10월 기업형슈퍼마켓(SSM)과 관련해 정용진 신세계 회장과 ‘트위터 논쟁’을 벌여 주목을 받기도 했다.

지난 6월 29일 서울시내 한 음식점에서 문 위원장을 만났다. 이제는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정치와 IT. 정치권은 그 도둑처럼 찾아온 새로운 환경을 헤쳐나갈 제대로 된 ‘임자’를 이제야 만난 것 같아서다. 그는 어떤 변화를 읽고 있을까. 어떤 변화를 꿈꾸고 있을까.

유비쿼터스위원회가 어떤 조직입니까.
“본래 있던 조직이에요. 최문순 강원도지사가 위원장을 맡고 있었는데, 보궐선거에 나가서 공석이 되는 바람에 제가 온 거죠. 제가 국회의원이 아니고 외부에서 영입됐으니까 새로 만든 것처럼 느껴지는데, 그런 건 아니고요. 쉽게 말하면 SNS 등 뉴미디어를 통해 당원이나 지지자, 국민 간의 소통과 홍보를 책임지는 당 조직입니다.”

적임자가 맡은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유비쿼터스위원회를 맡아서 잘 할 사람은 저라고 생각했죠. 제가 자원했어요. 제가 맡으면 국민도 적임자가 갔다고 판단할 거라고 말했죠.”

정치권에 들어가니까 어떻습니까. 기업문화와 다른 점을 느낄 텐데요.
“한 달 정도 됐는데 아직 낯설어요. 기업은 결과에서의 효율만 만들어내지만 정치는 과정에서 모두를 만족시켜야 하는 부분이 다른 거예요.”

그래서 ‘봉숭아학당 같다’고 말한 것이로군요.
“봉숭아학당은 모든 국민이 즐거워하는 개그 프로그램 아닙니까. 선생이 뭐라 하든 간에 학생들이 자기 할 일 다 하잖아요. 여기가 그래요. 눈치도 안 봐요. 자기 이해관계가 걸려 있으면 끝까지 고집하고 주장한단 말이에요. 봉숭아학당과 똑같죠. 문제는 거르고 걸러서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거죠. 그걸 이해하고 감내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잘못됐다는 얘기가 아니라….”

민주당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입니까.
“내년 총선에서 민주세력이 과반수를 확보하고 그 힘을 바탕으로 대선에서 이겨야 합니다. 선거에서 이기려면 정당의 입장을 국민에게 전달해야 할 것이고, 그건 미디어를 통해서 할 수밖에 없습니다. 민주당의 입장에서 매스미디어 환경은 지극히 불리해요. 조중동과 지상파 3사는 물론이고 종편 4사까지 한나라당에 비해 9대 1로 불리하다고 봐요. 이래가지고는 백전백패예요. 여기에 맞서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미디어가 소셜미디어라고 생각해요. 이를 통해 지지자를 결집하고 소통함으로써 민주당을 젊고 역동적인 정당으로 탈바꿈하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제일 중요한 역할이 아닌가 싶습니다.”

매스미디어와 소셜미디어의 가장 중요한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사람들이 오해하는 게 소셜미디어에서도 홍보전략이 있는 줄 알아요. 매스미디어는 과장하거나 숨기는 PR전략이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소셜미디어에서는 홍보전략보다 관계전략이 중요하죠. 인간관계를 맺을 때 가식이 있으면 안 되잖아요. 불쑥불쑥 필요할 때만 해서도 안 되잖습니까. (소셜미디어에서도) 똑같습니다. 본질은 관계를 맺는 겁니다. 꾸준히, 진심으로 해야 합니다. 그 이상의 답은 없다고 생각해요.”

소셜네트워크의 단점이나 부작용도 있지 않겠습니까.
“집중적이고 장기적인 지적 노동이 필요한 일을 할 때 방해가 되는 건 사실이지만 그걸 부작용이라고 말할 건 아니에요. 원고 쓸 때 전화기를 꺼놓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고 해서 전화기의 부작용이라고 하지 않잖아요. 오히려 소셜네트워크의 부작용이라면 너무 많은 정보가 올라와서 원하는 정보를 찾기 어렵다거나 허위 정보가 무분별하게 유통될 수 있어서 예기치 않은 선의의 피해가 생길 수 있다는 거죠. 그러나 잘못된 정보가 유통될 때조차 자체 검증을 통해 효과적으로 즉시 교정되죠. 이는 대중의 집단지성을 통해 충분히 극복해나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민주당이 문 위원장을 임명한 것 자체가 소통의 중요성이라든가 소통 방식의 변화를 충분히 인식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떤 소통 전략을 갖고 있습니까.
“민주당의 SNS를 이용한 소통전략… 이건 비밀인데… 한나라당이 알면 따라 할 텐데요.”

아, 그렇겠군요.
“하하하.(웃음) 농담입니다. 소통을 기능적인 걸로 생각하면 잔머리나 술수가 나오잖아요. 한나라당은 SNS가 중요하다는 것까진 알아요. 하지만 소통이 어떤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절대로 (소통을) 할 수 없는 집단이에요. 아르바이트생 10만명 구하면 SNS에서도 여론을 장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죠. 정말 부질없는 짓이에요. 소셜네트워크의 가장 큰 특징은 정보를 받은 사람이 공감할 때 다른 사람에게 (그 정보를) 전달해주는 것이에요. 10만명이 똑같이 얘기한다고 하더라도 공감받을 만한 주장이 아니면 우물 안에서 내는 소리에 불과하고, 단 한 명이 내는 미약한 목소리라도 공감받을 만한 내용이면 수백만명에게 삽시간에 퍼집니다. 이게 소셜미디어 소통의 핵심이에요.”

한나라당 정책은 공감할 게 없고 민주당 정책은 공감할 수 있는 것이라는 뜻입니까.
“한나라당의 정책이나 행태와 민주당의 그것 가운데 뭐가 공감을 받을까요? 한나라당은 소셜미디어 안에서 공감받을 만한 정책을 내놓거나 행태를 보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민주당은 부족하지만 가능성이 있고요.”

민주당이 문 위원장을 영입한 취지가 소통에도 있겠지만 미래지향적인 정책 개발에도 있을 텐데요.
“민주당의 지금 구조와 지지층을 보면 영원한 비주류예요. 지역적으로 호남, 계층 가운데는 자영업자, 정치적으로는 민주화운동세력이죠. 다 비주류입니다. 비주류로 나라를 안정적으로 다스릴 수 없잖습니까. 주류 전략이 있어야죠. 미래사회의 중심이 될 세력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세력입니까.
“비록 당장은 조중동, 반공, 대기업 같지만 이들은 퇴화하는 주류입니다. 성장하는 주류는 30~40대 화이트칼라층, 즉 직장인이라고 생각해요. 이 계층을 민주당의 견고한 지지층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비전이 지식문화강국 아닙니까. 지식산업, 문화산업, 서비스산업이 커야 하는 거죠. 지식산업 중에 가장 덩치가 큰 게 IT산업입니다. 제가 IT업계에서 20년간 일해왔고, 오너가 아니라 직장인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그 애로사항이나 절절한 것들을 잘 알잖아요.”

문 위원장은 “이미 대한민국은 산업구조상 2000만 가까운 고용노동자 중에 블루칼라보다 화이트칼라 수가 훨씬 많아졌다”고 말했다. 이 말이 비수처럼 귀를 찔렀다. 그의 이력으로 봐서 결코 간단치 않은 의미가 담겨 있다고 느껴서다. 79학번인 그는 1980년대 학생운동의 본진에 있었다. 이른바 현장론, 준비론이 득세하던 시절이었고, 사회 변혁의 기반은 당연히 노동자, 즉 블루칼라였다.

무림 계열이면서 1981년 3·19시위를 주동한 내막이 궁금했습니다.
“(준비론에) 반대했어요. 적극적으로 투쟁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시위를 한 거죠.”
당대 학생운동가로서 문 위원장만큼 드라마틱한 사연과 곡절을 겪은 이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1980년 12월 발생한 무림사건은 준비론의 반대편에 서 있었던 학림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물타기 시위에서 비롯됐다. 말하자면 ‘데모하지 말자는 데모’였다. 이 사건으로 서울대 운동권은 궤멸됐다. 수사기관에서조차 “최소한 3년 동안은 서울대에서 데모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할 정도였다. 그 석 달여 만에 그는 이런 수사기관을 비웃기라도 하듯 3·19시위를 감행했다.

이를 시작으로 그는 1982년 전남대생 시위사건, 1985년 민추위사건(일명 깃발사건) 등에 연루돼 20대의 절반인 5년 1개월을 감옥에서 보냈다. 부인과도 ‘옥중결혼’했다. 그는 1981년 자신이 불붙인 시위국면에서 투신사한 김태훈, 깃발 조직원으로서 의문사한 우종원, 깃발 조직원의 소재를 캐는 와중에서 고문사한 박종철 등 세 죽음을 지금껏 특별히 가슴에 묻어두고 있다고 한다. 깃발사건 조사과정에서 고문에 못 이겨 ‘김근태…입니다’라고 말한 것 또한 평생 마음의 빚이다.

출소 후 다른 학생운동가와는 다른 길을 택한 사연 또는 까닭이 궁금합니다.
“징역 5년여 살면서 결심한 것이 있었어요. 운동을 이렇게 하면 안 되겠다, 대중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정치엘리트로 붕 떠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반성을 했어요. 직업 속에서 인정을 받아야 자발적인 권위가 생긴다는 생각을 출소 전에 정리하고 나왔죠. 그 뒤에 주변에서 권유도 있었고 영입 제의도 있었지만 다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20년이 지나서야 뒤늦게 정치에 뛰어든 건 뭡니까.
“그동안은 때가 아니었는데 작년 말부터 사정이 달라졌어요. (회사를) 코스닥에도 올려놨고 사옥도 새로 마련했죠. 이젠 내가 회사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하라고 해도 못 하겠다, 이런 상태가 된 거죠.”

앞으로 20년 정치를 할 것이라고 했는데, 왜 20년입니까.
“저는 대한민국이 정의와 상생의 수레바퀴가 제대로 굴러가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20년이라고 한 것은 대한민국이 남과 북, 재외동포 합쳐 인구 8000만인 큰 나라이기 때문이에요. 문제가 얼마나 복잡하겠어요. 똑딱선이 아니라 항공모함인데, 방향을 바꾸려면 크게 돌아야 하는 거죠. 정의와 상생의 방향으로 20년은 꾸준히 바꿔야 흔적이 남을 거라고 생각해서 말했던 겁니다.”

<글·신동호 선임기자 hudy@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