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대선책꽂이]경제민주화 관건은 능력있는 정당과 정부

민주적 시장경제 정책 정당과 투명하고 효율적인 정부 있어야

붉은 노을이 하늘에 흩뿌려지며 석양이 지면, 곧 어둠이 온다. 어둠이 세상을 덮치기 시작할 때, 그 어둠을 간파하고 새벽을 예고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세상은 그러한 사람들로 인해 어둠 속에서도 새벽을 준비하게 된다.

2007년 출간된 <금융 세계화와 한국 경제의 진로>는 한국 사회에서 신자유주의가 도입되던 바로 그 시점부터 신자유주의의 문제점들을 파헤친 학문적 성과들을 한 권으로 집대성한 책이다. 약간 과장해서 표현하면, 약 10권의 책에 해당하는 내용이 한 권의 책에 담겨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조영철 지음·후마니타스

현재 국회 예산정책처에서 예산분석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조영철 박사는 사실 국내에서 ‘제도주의 경제학’을 한 번쯤 공부한 사람들이라면 마니아층이 있을 정도로 강력한 ‘이론적 내공’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뿐만 아니라 매우 실사구시적인 접근을 하며, 동시에 매우 건조한 논리 전개를 하고 있지만, 논리 너머에 세상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동시에 느껴지는 글쓰기를 하는 분이다. 조영철 박사는 전창환 교수, 성낙선 교수 등과 함께 IMF 구제금융을 맞이하던 시기를 전후하여 ‘제도주의(경제)연구회’라는 연구모임을 만들어 약 10여년 간에 걸쳐 공동연구를 전개하게 된다. 그리고 그 연구 성과들을 해마다 꾸준히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자유주의 비판>, <위기 그리고 대전환>, <미국식 자본주의와 사회민주적 대안>, <한국 경제, 재생의 길은 있는가>, <미국 자본주의의 해부>, <위기 이후 한국 자본주의> 같은 책들이 모두 이 같은 ‘제도경제연구회’의 학문적 성과가 반영된 것들이다. 이 책들은 지금 읽어도 이론적·학문적 생명력이 살아 있다. <금융 세계화와 한국 경제의 진로>는 기왕의 이러한 성과를 집대성한 책으로, 실제로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에 대한 책을 문의해오는 사람들에게 필자가 0순위로 추천하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북유럽 사민주의적 시장경제가 모델
저자는 1987년 절차적 민주주의가 확립되었지만 실질적 민주주의는 오히려 후퇴했다고 진단한다. 그 배후의 주범으로 저자가 지목하는 것은 금융자유화와 자본자유화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 구조재편이다. 신자유주의적 구조재편은 선거로 선출된 정치인으로부터 권력을 빼앗아 금융투자자에게 넘겨버렸다. 해법은 경제정책에서 ‘민주국가의 정책적 주도’를 확립하는 것이다. 민주적 시장경제를 지향한다고 할 때 한국이 모델로 삼을 수 있는 것은 미국 모델이 아니라 북유럽의 사민주의적 시장경제 체제다. 한국은 수출에 의존하는 소규모 개방경제의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미국과는 달리 시장의 자동조정기구에 의존해 외부 충격을 흡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민주의적 시장경제 모델처럼 국가가 시장 실패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정책을 취하려 할 때 공공부문 강화에 대한 국민의 동의와 신뢰를 얻어낼 수 있느냐다. 저자는 우리 국민들 사이에 “공공부문이 공익을 위한 조직이라기보다는 공공부문 종사자와 이해관계자들의 집단 이익을 위한 조직이라는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민주적 시장경제 모델을 신자유주의의 현실적 대안으로 내세울 수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거시경제와 금융개혁에 관련된 구체적인 정책 방향들을 제시하는데, 총론적인 차원에서의 방향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민주적 시장경제를 구체화하는 정책 기획 능력을 갖춘 민주정당”과 “공공부문 비효율을 제거하고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투명하고 효율적인 정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경제민주화의 요체는 능력 있는 정당과 능력 있는 정부라는 얘기다.

최병천 <복지국가 소사이어티 정책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