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문화와 경제가 통하면 ‘컬처노믹스’

기업·공공기관 등에서 문화콘텐츠 적극 활용 고부가가치 창출

서울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에서 설치된 설치미술가 고우석의 작품 '콘크리트 시계가 된 하나은행'.<br>하나금융그룹은 해마다 하나은행 본점 건물을 랩핑기법을 통해 하나의 거대한 미술작품으로 탈바꿈시켜 시민들에게 문화적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하나금융그룹제공>

서울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에서 설치된 설치미술가 고우석의 작품 '콘크리트 시계가 된 하나은행'.
하나금융그룹은 해마다 하나은행 본점 건물을 랩핑기법을 통해 하나의 거대한 미술작품으로 탈바꿈시켜 시민들에게 문화적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하나금융그룹제공>

새해 들어 ‘컬처노믹스’라는 신조어가 부상하고 있다. 컬처노믹스(cultunomics)란 문화(culture)와 경제(economics)의 합성어로, 마케팅 전문가들 사이에서 ‘문화를 경제적으로 활용하는 현상’을 뜻하는 말로 사용된다. 1990년대 피터 듀런드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 교수가 처음 사용한 말로, 문화를 먼저 알아야 경제적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최근 기업들이 국내외 유명 예술작가나 작품을 소재로 상품의 철학을 광고하거나 음악회를 개최하는 등 문화 콘텐츠를 비즈니스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새해에도 미국 상업미술가 앤디 워홀을 소재로 해 기업 광고를 내보내는 하나금융그룹은 올해 예술을 통한 기업 마케팅을 대대적으로 전개할 예정이다.

KT&G도 ‘상상예찬’이라는 광고 공모전과 음악회, 인라인 국토대장정 등 문화활동을 기업 마케팅의 주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고, 문화기업 이미지가 강한 금호아시아나그룹 또한 기업 이미지 개선 차원을 넘어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디자인 공모전을 진행하는 등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 마네의 ‘페르 라튀유의 정원’, 드가의 ‘발레무대의 리허설’, 앵그르의 ‘목욕하는 여인’ 등의 명화에 자사의 노트북이나 에어컨, 목욕제품을 넣어 광고하는 LG도 컬처노믹스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팝아트 거장 내세운 하나금융그룹

컬처노믹스를 리드하는 곳은 서울시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신년사에서 "서울을 창의·문화도시로 만들어 도시경쟁력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서울시청 건물 외벽이 무궁화로 장식된 가운데 서울시립교향악단의 광복 62년 기념 전야음악회가 열리던 모습. <서성일 기자>

마케팅 전문가들은 “이미 활성화한 문화 마케팅을 넘어 문화를 소재로 부를 만드는 컬처노믹스가 새로운 마케팅 기법으로 활용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기업들이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가 경쟁력이 되는 시대라는 점과 문화가 경제적 부가가치로 돌아온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컬처노믹스 개념에 가장 가까운 기업은 하나금융그룹이다. 하나금융그룹은 광고에 미국 팝아트의 거장을 내세워 “앤디 워홀처럼 다른 생각, 금융계에서는 누가 하나?”라는 질문을 던지며 문화 콘텐츠를 매개로 부를 창출하는 컬처노믹스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돈 버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예술이다”라는 발언으로 유명한 앤디 워홀은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작품을 대량 생산해 대중예술과 순수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현대미술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로, 하나금융그룹이 추구해온 문화와 경제의 접목에 딱 맞는 콘셉트라는 것이 그룹 측의 설명이다.

그룹의 이강휴 홍보팀장은 “하나은행은 1991년 설립 직후 은행지점 객장에 미술작품들을 전시해 은행을 찾는 고객들에게 미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를 제공했다”며 “이것은 은행지점을 ‘길을 걷다 만나는 미술관’이라는 개념으로 생각한 발상의 전환에서 나온 것으로, 미술에 대한 체험을 선사함으로써 경쟁 회사들과 차별화한 서비스를 제공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나금융그룹은 최근 서울시향 등을 후원하는 형태를 넘어 금융과 문화예술의 직접 결합을 시도한 ‘뮤지컬 펀드’를 국내 최초로 출시해 고객에게는 운용수익률을, 뮤지컬 제작자에게는 제작재원을 안정적으로 조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 미술품 구입과 고객 공간에의 전시를 넘어 미술품 경매회사인 K옥션 설립에 출자자로 참여, 국내 미술품 거래시장 활성화에도 기여했다는 평을 받았다.

공공기관에서는 서울시가 가장 선두에서 컬처노믹스에 대한 개념 정리와 함께 로드맵을 짜고 있다. 서울시장 취임 당시부터 ‘문화 서울’을 주창해온 오세훈 시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서울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해법을 ‘문화’에서 찾고자 한다”고 밝혔다. 오 시장은 “도시가 문화의 옷을 입으면 관광객이 찾아오고, 외국인 투자가 늘어나고, 그 도시에서 만든 제품의 상품 가치가 올라간다”며 “2008년을 서울이 ‘창의·문화도시’로 새롭게 태어나는 해로 삼고자 한다”고 말했다. 마스터플랜은 3월쯤 선보일 예정이다.

서울시 경쟁력 ‘문화’에서 찾아
서울시의 컬처노믹스 구상 산실은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이다. 나도삼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문화연구센터 연구위원은 “도시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선진 도시의 여건을 갖추어야 하는데, 압축성장을 해온 우리 도시의 경우엔 문화적으로 상당히 낙후해 있다”고 지적하며 “설탕공장에서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성장한 CJ그룹처럼 기관이나 기업들도 마케팅에 아트를 결합해야 세계 경쟁력이 살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에서 목표로 하는 창의·문화도시는 “문화를 삶의 질, 기업·국가 경쟁력으로 어떻게 연관시킬 것인지의 연결고리에 디자인이 있다”는 오 시장의 생각처럼 디자인을 통해 문화산업 등 상위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우선 문화예술 장르별로 창작 스튜디오를 조성해 창의적인 인재를 육성하고, 노들섬 문화콤플렉스 등을 통해 서울을 상징하는 문화아이콘을 만들어나가는 한편 디지털 콘텐츠 산업을 집중 육성하겠다는 계획이다. 또 민선4기 핵심 사업인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와 동대문디자인파크 및 광화문광장 조성 사업에도 속도를 내겠다는 것이다. ‘2010년 세계 디자인 수도’로 선정된 도시답게 디자인올림픽 개최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서울시는 도시의 곳곳 틈새에 창의공간을 만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새로운 시설을 건설하기보다 낙후한 지역을 활용하는 방안으로, 젊은 예술인이 모여드는 영등포구 문래동과 문화 인프라가 부족한 금천구 독산동에 아트팩토리(Art Factory)를 조성할 예정이다. 공장지역의 독특한 이미지에 예술을 접목해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문화 명소로 발전시킨다는 구상으로, 낡은 화력발전소를 미술관으로 리모델링해 런던 최고의 관광명소로 만들어 ‘테이트 효과(Tate effect)’라는 말을 만들어낸 테이트모던 미술관에서 차용해온 아이디어다.

하지만 아직은 컬처노믹스의 개념이 명확하게 정립되지 않은 상태다. 업계의 논의도 부족하고, 최근 몇 년간 관심을 끌었던 ‘아트 마케팅’의 개념이나 활용 방안과도 큰 변별력을 갖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다. 그나마 삼성경제연구소가 운영하는 사이트 세리(www.seri.org)에서 그 논의가 활발한데 “이미 소비자들에게 기업의 이미지와 상품을 팔기 위한 수단으로 각인되어 있기 때문에 차별화하지 않은 정책이나 내용은 그리 큰 효과를 거둘 수 없다.

따라서 진정으로 문화콘텐츠산업에 대한 장기적인 목표를 세우고 이것에 대한 기업·제품을 접목시키려는 노력이 오히려 필요하다”(이한섭), “컬처노믹스가 바람직한 현상이긴 하나 이제까지 보여준 것(showing)이나 일회성 또는 어쩔 수 없이 하는 행보들은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이다”(박원철) “컬처노믹스가 대중성을 띠기 위해서는 대중이 원하는(Needs), 그러면서도 대중의 문화수준을 높일 수 있는 문화 콘텐츠를 많이 생산해 대중의 적극적인 참여와 관심을 불러 일으켜야 할 것”(전길수)이라는 지적들은 공공기관이나 기업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