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석·티켓이 아닌 꿈·희망을 판다”
미국 유학 13년 만에 지사장으로 돌아와 ‘100달러 성공 신화’ 일궈

노스웨스트항공편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단돈 100달러로 박스 포장부터 시작해 13년 만에 노스웨스트항공 한국지사장으로 돌아온 하태우 지사장. 그는 “신문사가 신문지를 파는 회사가 아니듯 항공사는 좌석과 티켓을 파는 곳이 아니다”며 “직원들에게도 우리는 고객에게 꿈과 희망을 파는 곳이라고 강조하고 있다”고 밝혔다.
'THINK BIG, F`OCUS’
노스웨스트항공 한국지사장 방 한쪽 벽에 매직으로 투박하게 써 있는 문구다. 하태우 한국지사장의 요즘 고민이자, 노스웨스트항공 한국지사의 진로이기도 하다. 두 자릿수 성장세의 여세를 몰아 한국 시장에서의 부활을 꿈꾸는 하 지사장의 고민은 예전에 비해 떨어진 노스웨스트항공의 인지도와 신뢰를 높이는 것. 그래서 그는 바로 눈앞의 이익보다 ‘더 큰 것, 핵심을 생각’하려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 노스웨스트항공 한국지사는 한국 취항 60주년, 그러니까 환갑을 맞았다. 1926년 운송 업무를 시작했으며 미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운영하고 있는 항공사인 노스웨스트항공은 세계 최대 항공사 중 하나로, 디트로이트, 미네아폴리스, 멤피스, 도쿄 및 암스테르담을 거점으로 매일 1400여 편의 항공편을 운항하고 있다.
1968년 대한항공이 출항하기 전까지 노스웨스트항공은 한국 내 유일한 항공사였다. 1947년 첫 비행은 여의도공항을 출발한 96석 규모의 DC-4 항공기. 이 프로펠러 항공기는 도쿄, 알류산 열도, 앵커리지, 에드먼턴(캐나다)을 경유한 끝에 미네소타 주 미네아폴리스에 도착했다. 비행 시간은 무려 40여 시간이었으며, 요금은 편도가 약 1000달러로 당시 1인당 GDP는 57달러 안팎이었다.
첫 항공편 취항 이래 노스웨스트항공은 한국 항공계에 많은 이정표를 만들었다. 하태우 지사장은 “노스웨스트항공은 1947년부터 국적기 출범 이전까지 대한민국과 전 세계를 연결하는 중요한 가교 역할을 담당해왔다”며 “한국 항공운송산업의 기초 구축뿐 아니라 무역·관광의 성장으로 이어진 한국의 경제 발전 및 문화 발전에 기여했다”고 밝혔다. 현재 노스웨스트는 미국 항공사로서는 유일하게 서울과 부산에서 매일 항공편을 띄우고 있다.
소매점 창고 박스지기로 사회 첫발
하 지사장은 항공업계에서 ‘100달러 성공신화’로 불린다. 군 제대 후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그는 복학 대신 미국행을 선택했다. 당시 1986년으로, 노스웨스트항공 미국행 티켓을 사고 나니 그의 수중엔 100달러뿐이었다.
미국에서 그의 첫직장은 소매점 창고의 박스지기였다. 박스를 쌓고 조립하는 일은 몸을 괴롭혔지만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불평 가득한 워싱턴의 한 흑인 청소부에게 건넨 “형제여, 그대는 지금 도시의 더러운 뒷골목을 쓸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원을 청소하고 있는 것입니다”는 말을 상기하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무엇을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게 하 지사장의 신념이다. 그는 “인생에 사는 목표는 뭐가 되겠다는 목적의식보다 맡은 일을 하루하루 수행하다 보면 기회가 오는 것이고, 그때 기회를 잡아 또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이라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며 “당시에도 창고에서 뭐가 되어야지 하는 것보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박스지기의 삶은 고단했다. 과로로 맹장이 터졌으나 보험이 없는 그는 7000달러의 치료비를 3년에 걸쳐 할부로 내야 했고, MBA를 해도 별 성과 없다는 주변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스이스턴 일리노이 대학 경제학과에 입학하면서 주경야독했다. 그 결과 1991년엔 4.0만점에 4.0학점을 받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이 선정한 ‘올해의 우등생상’(Wall Street Journal Student Achievement Award)을 수상했다. “주일학교에서 한국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그들에게 부모 모델이 부재하다는 것을 보고 공부하기로 작정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입사 5개월 만에 시간당 5달러를 받는 창고관리직에서 창고관리 과장, 2년 후엔 컴퓨터시스템 부장으로 승진하고, 마침내 사장실 직속 부서까지 오른 그는 이후 노스웨스트행을 선택했다. 대학에서 전공한 재무관리를 마음껏 발휘해보고 싶었던 그는 캐피탈 분야가 튼튼한 분야인 항공사, 그 중에서도 공격적인 채용 프로그램을 펼치던 노스웨스트를 본 것이다.
1월 1일에도 회사에 나와 근무하며 수익 창출 모델에 통계학을 접목시켜 사내외에서 주목받는 직원이 된 그는 이후 놀라운 분석력과 창의력을 인정받아 5년 동안 네 번 진급해 치열한 경합을 뚫고 최초로 노스웨스트 한국인 지사장으로 발령받았다. 인사에서는 보수적이라고 평가받는 노스웨스트항공에서 아시아인으로서 지사장이 된 첫 사례였다. 대학도 중도에 포기하고 달랑 100달러만 든 채 노스웨스트항공기에 올랐던 그가 13년 만에 노스웨스트항공 한국지사장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활발한 강의 활동과 이웃 돕기 열심
애정이 있는 곳엔 실천이 따른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순환근무를 실시해 예약은 예약부서, 공항은 공항부서끼리만 자리를 옮기는 관행을 깨고, 직원들의 타성을 무너뜨렸다. 또 직원 상호간에 직급이 아닌 애칭을 부름으로써 오픈마인드, 오픈도어 정책을 실현했다.
하 지사장은 이 같은 자신의 역사를 바탕으로 성균관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특임교수,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겸임교수 등 대학과 중소기업인을 상대로 강의를 활발히 하고 있다. “너무 어려워서 희망이 없는 학생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 강의를 나간다”는 하 지사장은 소년소녀가장 돕기에도 열심이다. 노스웨스트항공 한국지사는 매년 부산·경남 지역의 소년소녀가장들을 일본 및 미국으로 보내 현지 문화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일본과 미국이 주 관광지인데, 물론 어린이들의 꿈의 장소인 디즈니랜드 견학도 포함되어 있다.
하태우 지사장이 보는 항공업계의 트렌드는 양극화다. 편하게 가겠다는 수요와 여전히 싼 표를 찾는 수요가 존재한다는 것. 또 하나의 트렌드는 자사의 고객 확보를 넘어 스카이팀처럼 얼라이언스를 만들어 고객을 함께 유치하고 있는 것으로, 마일리지제도가 그 첨병이다. 최근에는 항공업계 내부를 넘어 타 업종과 사업과 포인트를 교류하는 항공사가 많다.
하 지사장은 “항공사가 맨 처음 도입한 마일리지 프로그램의 강점은 고객의 정보를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나는 지난 여름에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가 되는 것인데, 이를 바탕으로 펼칠 수 있는 서비스가 다양하다”며 “예를 들어 1년에 5번 이상 항공기를 탄 승객의 개인 정보, 즉 행선지와 기내식 선호도 등에 맞는 서비스까지 발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글·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약력 1961년 경남 합천 출생/ 1986년 쥬얼리아웃렛스토어 물류팀 과장/ 1990년 쥬얼리아웃렛스토어 전산팀 부장/ 1991년 미국 노스이스턴 일리노이 대학 경제학 학사/ 1994년 시카고 경영대학원 재무학 석사/ 1994년 노스웨스트항공 입사, 상임재정 분석 담당/ 1997년 노스웨스트항공 수익예측부 부장/ 1998년 항공노선 수익분석팀 부장/ 1999년 노스웨스트항공 한국지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