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제2의 카드대란 불씨’ 안심할 수 없다

카드사 분사 후 과열 경쟁 무분별한 발급… 실질연체율 건전성 판단 무의미

금융감독원은 최근 6개월 간의 카드 발급 실태 전수조사를 실시했다. 아직 조사 결과는 발표되지 않았다. 금감원 관계자는 “가계부채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저신용자에 대한 무분별한 카드 발급이 경제 위험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며 “이를 관리하는 차원에서 조사를 실시했다”고 말했다.

2002년 카드대란 당시 참여연대 회원들이 무책임한 신용카드 발급을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김정근 기자

2003년 신용불량자 400만명을 양산한 카드대란은 카드사의 무분별한 카드 발급이 원인이었다. 당시 신용카드 발급 수는 1998년 4200만장에서 2002년 1억400만장으로 4년 만에 두 배 이상 급증했다. 이용금액 역시 1998년 63조5000억원에서 2002년 622조9000억원으로 10배 증가했다. 경제활동인구 1인당 카드 수는 1999년 1.8장에서 2002년 4.6장으로 늘었다.

최근 신용카드업이 활성화되면서 2003년의 사례에 비추어 ‘제2의 카드대란’이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신용카드 발급 수는 1억1659만장이었다. 경제활동인구 1인당 신용카드 보유 수도 평균 4.7장으로 2003년 카드대란 시기보다 높다.

신용카드업이 활성화된 배경에는 카드사 분사가 있다. 2003년 카드대란 당시에 카드사들은 부도위기에 직면하면서 구조조정을 했다. 국민카드는 모기업인 국민은행 사업부로 흡수됐고, 외환카드와 우리카드도 모두 모은행에 흡수됐다. 그러다 다시 2009년 하나SK카드를 시작으로 카드사업부는 모은행으로부터 독립했다. 작년 3월에는 KB카드가 국민은행으로부터 분사했고, 우리카드 및 농협도 현재 카드사 분사를 추진 중에 있다. 그 결과 2003년 이전처럼 카드사 중심으로 경쟁구도가 재편됐다. 또다시 회원 유치 과열 경쟁에 따른 무분별한 카드 발급이 이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실제로 최근 들어 카드사들로부터 카드 발급 권유 전화를 받았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금융업 전문가는 “2003년과 상황이 달라 크게 우려할 수준은 아니다”라며 “카드대란 당시보다 정부나 기업의 관리 규제가 엄격한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건전성 강화방안을 발표하는 등 관리 및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며 “카드사도 리스크 관리역량을 강화했고, 충당금 적립도 늘려 놓아서 카드대란까지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1인당 신용카드 보유수 4.7장
카드대란은 없을 것이라는 측에서는 실질연체율을 그 근거로 든다. 2003년의 카드대란과 지금의 상황이 다르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가 실질연체율이라는 것이다. 2003년 카드대란 당시 신용카드 실질연체율은 28.3%였다. 현재, 2010년 말 실질연체율은 1.68%로 역대 최저치다. 연체율 수치로는 2003년과 달리 어느 정도 건전성이 확보돼 안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연체율이 보여주는 수치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제윤경 에듀머니 이사는 “연체율이 낮게 나타나는 이유는 2003년에 비해 리볼빙 서비스나 카드론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빚을 빚으로 메워가고 있기 때문에 연체가 지연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제 이사는 “현재 카드사들이 저신용자, 저소득자들에게까지 공격적으로 카드 발급을 하고 있는데, 이제 한계상황에 다다랐다”고 말했다.

카드론이나 리볼빙 서비스는 낮은 신용등급 때문에 은행대출을 받지 못한 저신용자들이 이용한다. 나이스신용평가정보에 따르면 2010년 말 신용등급의 최하단을 이루는 9, 10등급의 각각 13.03%, 16.36%가 카드대출을 쓰고 있다. 결제를 다음으로 미룰 수 있어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위험이 있는 리볼빙 이용도 9, 10등급이 차지하는 비중이 36.4%다. 이들은 상환능력이 낮은 만큼 언제든 위험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저신용층의 상환능력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는 것은 햇살론 연체율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7월 말 출범한 햇살론의 올 4월 말 기준 연체율은 2.9%다. 지난해 9월 말 0.007% 수준이던 연체율이 7개월 만에 400배 이상 치솟은 것이다.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신용협동조합의 연체율도 평균 3.7%로 작년 말 대비 3배 가까이 늘었다. 새마을금고도 연체율이 조금씩 상승하는 추세다. 제윤경 이사는 “정부에서 받은 햇살론을 카드대출로 갚아나가는 저소득층도 있다”며 “당장 지표상으로 문제가 불거지지 않을 것 같지만 현실은 이와 다르다”고 말했다.

리볼빙 서비스, 카드론으로 카드빚 메워
홍종학 경원대 경제학과 교수도 “연체율에 잡히지 않는 부실채권이 많아 연체율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2003년 카드사태 때도 빚은 늘어났지만 연체율은 안정적으로 유지가 됐다”며 “안정적으로 보이던 연체율도 문제가 생기면 갑자기 폭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저축은행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이다. 저축은행 부실사태가 발생하자 6개월 만에 저축은행 PF대출 연체율은 급증했다. 한 저축은행의 경우 지난해 말 22.58%였던 연체율이 48.57%로 무려 두 배가 넘게 오르기도 했다. 홍 교수는 “연체율은 후행지수이기 때문에 향후 위험을 판단하는 데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카드대란이 발생하게 되면 2003년보다 더 심각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10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대출 때문이다. 정부는 6월 29일 ‘가계부채 연착륙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현재 가계부채 문제가 개선되지 않을 경우 심각한 경제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이 가계대출 또한 신용카드 대출과 연계돼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홍종학 교수는 “가계부채가 높은 상황에서 신용카드 대출은 다른 가계부채와 연계된 경우가 많다”며 “제2의 카드대란이 불거지면 2003년보다 파장이 더 클 수 있는 이유가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저소득층 중에서는 이미 다른 대출이 많은 상황에서 대출이자를 갚아나가기 위해 신용카드 대출을 받는 사람들이 많다”며 “이게 터지기 시작하면 바로 가계부채에 옮겨붙게 된다”고 말했다. 가계부채 1000조는 저소득층뿐만이 아니라 중산층까지 연결돼 있다. 카드대란이 발생하게 되면 신용경색은 물론 중산층까지 포함한 가계부실로 이어져 장기침체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제윤경 이사는 “호주의 경우 얼마 전 신용카드 사용 한도가 소득을 뛰어넘지 못하도록 규제책을 마련했다”면서 “전세계적으로 규제를 강화하는 분위기인데 우리나라의 관리·감독은 아직도 미흡하다”며 관련 규제가 시급함을 지적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