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5만원권 등장 3년, 무슨 변화 가져왔나

10만원권 자기앞수표 줄고 경조사비 등으로 인기… 환수액 낮아 비자금용 보관 의심

만원권 지폐는 가고, 5만원권 지폐가 대세가 됐다. 2012년 말 화폐발행잔액(시중에서 유통되는 화폐 액수)은 54조3340억원이고, 이 중 5만원권이 32조7660억원을 차지했다. 전체 화폐금액 중 5만원권이 60%를 넘어선 것이다. 2009년 6월 발권 이후 3년 만에 5만원권이 ‘대세’가 됐다. 많은 사람들이 5만원권은 설이나 추석 등 명절에만 본다고 생각하지만, 5만원권은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셈이다. 한국 최고액 지폐인 5만원권이 나오면서 우리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경북 경산 한국조폐공사 화폐본부 직원들이 5만원권을 제조하며 품질을 점검하고 있다. | 경향신문

전체 화폐액 중 5만원권이 60% 넘어
3월 21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지급결제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말 현재 화폐발행잔액은 전년 말 대비 11.7%가 늘어난 54조3340억원이다. 5만원권은 2011년에 비해 발행잔액이 26.2%나 증가했지만, 오랫동안 지폐의 대명사였던 만원권의 발행잔액은 2011년에 비해 7%나 줄어들었다. 5만원권이 만원권을 대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5만원권이 대세가 되면서 한국 경제와 우리 삶에 다양한 변화가 생기고 있다. 5만원권은 만원권과 함께 자기앞수표까지 대체하고 있다. 5만원권이 발권되기 전까지 고액권의 대명사였던 10만원권 수표의 이용규모는 2010년 2조4000억원, 2011년 1조9000억원, 2012년 1조4000억원으로 줄어들고 있다. 한국은행은 5만원권의 이용이 늘어나면서 10만원권 자기앞수표의 이용이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유통업계는 5만원권을 이용한 마케팅 기법을 내놓았다. 4만9000원 마케팅이 대표적이다. 부모가 자녀 선물용으로 많이 사는 대표적인 물품이 완구다. 부모가 자녀를 위해 완구를 살 때 기준이 되는 것이 캐릭터와 가격이다. 유통업계는 4만5000~5만5000원을 부모가 부담 없이 지출할 수 있는 완구 가격으로 분석한다. 요즘 아이들 선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레고 닌자고 가마트론’의 경우 4만9900원 가격으로 나왔고, 변신 로봇 제품인 ‘또봇 W실드1’의 경우 4만5000~4만6000원 가격대를 유지하고 있다. 유통업계는 세트 선물로 구성되는 상품 가격대도 대부분 4만~5만원으로 책정하고 있다. 이마트의 경우 4만~5만원 이하 세트 상품이 630여종을 차지하고 있고, 전체 세트 상품 중 35%를 차지하고 있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완구는 시즌이 아니더라도 연중 선물용으로 판매하는 상품이다. 가격대가 완구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라며 “완구나 세트 선물용은 5만원이 넘으면 소비자가 가격 부담을 많이 느낀다. 이 때문에 3만원대에서 5만원대 상품을 주력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통기업 5만원 마케팅 기법 등장
결혼이나 장례식장에서도 5만원권 지폐가 많이 사용되고 있다. 통계청의 자료를 통해서도 5만원권이 경조사비로 많이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월 18일 국세청이 발표한 ‘가계동향’을 보면 전국 2인 이상 가구의 월 평균 경조사비가 2010년 이후로 꾸준하게 5만원을 기록하고 있다. 2003년 3만6400원을 시작으로 5만원권이 발행된 2009년에도 4만9653원이었다. 2010년 5만2131원을 기록한 이후 2012년까지 5만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경조사비도 5만원권 발행으로 5만원으로 굳어진 셈이다.

설이나 추석 등 명절 때도 5만원권 발행액이 급격하게 늘어난다. 한국은행은 매일 지폐와 주화를 발행하고 있다. 매일 발행액은 시장 수요에 따라 달라진다. 평상시에는 비슷한 액수가 발행되는데, 설이나 추석 등을 앞두면 평상시 발행액의 5배가 넘어간다. 한국은행 발권국 관계자는 “5만원권이 경조사비로 많이 쓰이는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설이나 추석 등의 명절 때 가장 많이 발권되는 지폐가 5만원권이다. 명절 때 용돈으로 많이 사용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5만원권의 사용이 늘어나면서 부작용도 늘어났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만원권에 비해 5만원권의 환수액이 낮다는 것. 환수액이 낮다는 것은 5만원권이 은행에 예치되는 액수가 적다는 것이다. 2012년 말 현재 환수된 만원권은 18조5240억원인데, 5만원권은 10조9730억원에 그쳤다. 시중에 풀린 5만원권이 34조원인데, 이 중 33%만이 은행으로 돌아온 것이다. 나머지 24조원은 기업과 개인이 보유하고 있다.

물가상승 영향을 줬는지 여부 연구 중
한국은행 관계자는 “발행잔액 34조원 중 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10조원을 뺀 나머지는 기업과 개인사업자가 소유하고 있다. 작은 상점을 운영하는 개인사업자라도 현금이 100만원씩은 있어야 한다. 5만원권으로 많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면서 “이에 비해 개인들이 소유하고 있는 5만원권은 그리 규모가 크지 않다고 본다.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5만원권은 거래용 현금이 대부분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 전문가들은 5만원권이 비자금용으로 보관되고 있다는 의심을 하고 있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카드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지갑 속에 들어 있는 현금 대부분은 만원권이다. 5만원권은 구경하기도 힘든데, 그 이유가 기업과 개인사업자들이 5만원권을 쌓아놓기 때문”이라며 “미국의 경우 100달러 화폐는 시중에서 유통이 잘 안 된다. 일반인들은 소액 달러를 많이 쓴다. 미국도 고액권이 비자금으로 쓰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5만원권 발권 이후 한국은행이 가장 신경을 쓰는 것이 ‘5만원권으로 물가가 올랐다’는 비판이다. 5만원권 발행 초기부터 5만원권 발행이 물가상승에 영향을 주는지 여부가 이슈였다. 하지만 이에 대한 연구는 미진하다. 한국은행 측은 “5만원권 발행이 물가상승에 영향을 줬는지 여부는 아직 연구가 되지 않았다. 현재 연구 중이지만 아직 결과물은 나오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지난 해 11월 한국은행과 경찰청은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에서 ‘화폐 위조범죄 근절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한 뒤 명동 일대에서 시민들에게 5만원권 위조지폐 식별법을 홍보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뇌물사건의 주인공도 만원권에서 5만원권으로 바뀌었다. 만원권으로 사과박스를 채우면 보통 2억원 정도지만, 5만원권으로 사과박스를 채우면 10억원 정도다. 요즘 뉴스를 채우고 있는 뇌물사건의 경우 대부분 5만원권 지폐가 사용되고 있다. 위조지폐 발견 건수는 해마다 줄어들고 있지만, 5만원권 위조지폐 발견 건수만 늘어나는 것도 우려스러운 점이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2009년 1만2252장, 2010년 9298장, 2011년 2011년에는 1만7장, 2012년 8626장의 위조지폐가 발견됐다. 2011년에는 5만원권 위조지폐 115장이 발견됐지만, 2012년에는 329장이 발견됐다. 이에 비해 천원권, 5천원권, 만원권 위조지폐는 계속 줄어들었다. 고액권 발행의 부작용이다.

5만원권 한 장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얼마나 될까. 한국은행 측은 “제조 원가를 밝히기는 어렵다. 다만 천원권부터 5만원권의 지폐를 만드는 데 장당 평균 120원이 든다”고 밝혔다. 지폐 중에서 제조 단가가 가장 높은 것은 5만원권이다. 다른 지폐에 비해 사이즈가 크고, 위조를 방지하기 위해 들어간 장치가 다른 지폐보다 많기 때문이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