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어디까지 신화이고, 어디까지 역사일까

주몽 기록 사료 희귀, 연구학자도 소수… 대부분 삼국사기·삼국유사 기록에 의존

고구려 시조인 주몽의 묘로 알려진 동명왕릉. 427년 장수왕이 길림성에서 평양으로 천도할 때 옮겨온 것으로 알려진 동명왕릉은 2004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인근에 조성된 소나무는 제주도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김세구 기자>

2000년간 신화라는 베일에 가려 있던 고구려 건국 시조 주몽. 역사서에 ‘추모’ 혹은 ‘추’로 기록돼 있기도 한 주몽이 최근 깊은 잠에서 깨어나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신화 속 주몽이 역사 속 주몽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하지만 최근 불어닥친 주몽열풍은 명백하게 드라마라는 픽션장르에 기반을 두고 있다. 실증적 고증이 생명인 역사학계 입장에선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하늘의 기를 받아 유화부인 몸에서 알의 형태로 태어난 주몽이 갖은 시련을 딛고 기적같이 고구려 건국에 성공한다’는 얘기는 뭇 사람이 쉽사리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 신화 그 자체다. ‘부화되기 전 주몽의 알이 버려지자 소나 말이 피해 다녔고, 대소에게 쫓겨 달아나던 주몽이 엄호수에서 물고기와 자라의 도움으로 무사히 강을 건넜다’는 대목에 이르러선 혀를 내두르게 된다.

“부여 시조 동명왕을 자신과 동일시”

이쯤 되면 과연 어디까지가 신화이고 어디부터 역사인지 호기심이 발동할 만하다. 사실 주몽에 관한 역사기술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로 한정돼 있다. 이중 ‘삼국사기’ 기술이 더 신빙성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주몽은 동명성왕으로도 불린다. 하지만 부여 건국신화를 전하는 중국 문헌은 부여 건국시조를 동명이라 부른다.

‘옛날 북이 탁리국 왕의 시비가 임신을 하였다…’로 시작되는 ‘논형’ ‘길험’ 편 기록도 주몽의 그것과 동일하다. ‘하늘의 기에 의한 임신’ ‘태생한 동명을 왕이 버림’ ‘돼지와 말이 동명을 보호함’ ‘활을 잘 쏘고 소와 말을 치는 일을 함’ ‘물고기와 자라의 도움으로 엄호수를 건넘’ 등의 대목이 그렇다.

이를 두고 역사학자들은 “부여 시조인 동명 관련 신화가 고구려 건국 시조인 주몽 관련 신화와 결합됐다”고 해석한다. 일각에선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하며 예맥족 계통 국가의 정통성을 확립하기 위해 자신과 부여 건국 시조인 동명왕을 동일시했다”는 주장도 있다.

그렇다면 주몽신화는 신화의 형식을 빌려 역사를 서술한 것일까. 송호정 한국교원대 교수는 “사실 주몽의 출생담과 건국이야기는 신화적 요소보다 설화에 가깝다”며 “단군신화보다 신성성이 줄어들고 있다”고 해석했다. 송 교수에 따르면 주몽신화는 역사적 사실을 유추할 수 있는 다소의 단서를 지니고 있다.

부여의 왕실이탈 세력이 새로운 국가를 건설했으며 물고기와 자라떼가 다리를 이뤄 큰물을 건넜다는 것은 북방 동절기 결빙기와 춘계 해빙에 따른 환경적 특성을 반영한다는 식이다. 즉 북방계통 부여국 출신 주몽이 갈등을 겪다가 남하해 고구려를 건국했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이로 인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동명과 달리 중국 사료는 거의 주몽을 언급하지 않는다. 다양한 시각에서 접근이 어렵다는 얘기다. 임기환 서울교대 교수는 “주몽을 기록한 역사서는 제한돼 있고 이마저도 수백 년 뒤 후세 역사가의 주관이 개입돼 있다”고 밝혔다. 부족한 사료와 불과 10여명 안팎의 연구자로 인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 역사해석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주몽은 성은 고씨, 이름은 주몽(朱蒙)으로 기록돼 있다. 또 추모 혹은 중해라고도 불리는데 해모수와 유화가 그의 부모로 나온다. 특히 ‘삼국유사’는 주몽의 아버지 해모수를 북부여의 시조로, 어머니 유화는 하백의 딸로 전하고 있다.

해모수와 유화의 만남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동일하다. 천제의 아들을 자처한 해모수가 압록강변 한 오두막에서 유화를 범한 뒤 동부여왕 금와가 그녀를 왕궁으로 데려와 극진하게 살핀다. 유화가 얼마 뒤 아이를 낳는데(기원전 58년, 삼국사기) 그가 바로 주몽이다. ‘삼국사기’는 유화가 기원전 24년 사망하자 금와가 태후의 예에 준해 장례를 치렀다는 기록도 담고 있다.

실존에 대해 시비 걸 수 없는 인물

엇갈리는 연대와 서술에도 불구하고 일단 주몽이라는 인물의 실존에 대해선 시비를 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광개토대왕비나 ‘모두루묘지’와 같은 고구려 당대 자료에는 ‘추모’로, ‘삼국유사’ 왕력에는 ‘추몽’이란 이름으로 등장하기 때문. 신라본기 문무왕 19년조에는 ‘중모’라고도 표현됐다.

이런 주몽은 여느 설화 속 주인공처럼 총명하고 무예가 뛰어났다고 기록들은 전한다. 사서들은 주몽이 활을 잘 쏘고 용맹했다고 밝혔다. 특히 일곱 살에 보통 아이와 다른 풍채를 지니고 스스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쏘았다는 대목은 드라마와는 딴판이다.

결국 금와의 7명 아들과 함께 성장한 주몽은 태자 대소가 자신을 해치려 하자 어머니 유화의 충고에 따라 졸본땅으로 건너간다고 ‘삼국사기’는 전한다. 주몽은 오이, 마리, 협보 등 세 친구와 동행한다. 주몽이 도피한 졸본부여는 일명 ‘구려국’으로도 불렸다. 학자마다 의견이 엇갈리지만 ‘고리’ ‘구리’로도 불렸으며 부여와 마찬가지로 고조선 말기 형성된 국가로 유추된다. 위치는 길림성 통화, 장자강, 요하 유역과 요동 등으로 역시 해석이 분분하다.

어쨌든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는 주몽이 모둔곡에서 만난 재사, 무골, 묵거 등을 신하로 삼아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고구려로, 도읍을 졸본으로 정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기원전 37년으로 주몽의 나이 22세다.

이후 주몽은 약 18년간 재위하며 대대적인 영토확장에 나선다. 변방 말갈 부락을 평정하고 비류국을 복속시켰으며 도읍 졸본성을 완성한다. 이밖에 해인국, 북옥저를 멸망시키며 대제국 건설에 매진한 뒤 재위 18년 만인 기원전 19년 가을 승하한다. 그의 나이 40세. 용산에 장사 지내고 동명성왕이란 왕호가 주어졌다고 고구려본기는 전하고 있다.

소서노 어떤 여인이었나

소서노란 이름은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등장한다. 백제본기는 ‘시조 비류왕의 아버지는 우태이니, 북부여왕 해부루의 서손이다. 어머니는 소서노이니 졸본 사람 연타취발의 딸이다. 그가 우태에게 시집와 두 아들을 낳았는데 첫째는 비류, 둘째는 온조였다’로 시작된다. 우태가 죽은 뒤 부여에서 도망온 주몽이 졸본에 도착한 후 소서노에게 장가들었다는 내용도 덧붙여졌다. 두 번째 황후 연씨로 기록된 소서노는 29세쯤 여덟 살 아래 주몽과 재혼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소서노는 왜 주몽과 재혼하게 됐을까. ‘삼국사기’ 편자들은 ‘주몽이 졸본부여에 이르렀을 때 그곳 왕에게 아들이 없어 주몽을 만난 후 자신의 딸을 아내로 주었고 주몽이 왕위를 이었다’고 기록했다. 이 내용은 주몽이 3명의 동지와 함께 나라를 세웠다는 기술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다. 즉 주몽이 자신의 야망을 위해 정치·경제적 기반이 탄탄했던 소서노와 결혼해 그녀의 자제를 돌봤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조력자였던 소서노는 첫 부인 예씨의 아들 유리가 태자로 책봉되고 주몽이 죽은 뒤 비류, 온조 두 아들과 함께 남하해 백제를 세우게 된다. 결국 소서노는 역사 속 정략결혼의 희생양으로 고달픈 인생을 마감한 비련의 여인일 가능성이 높다.

해모수와 주몽은 부자 사이?

해모수, 해부루, 유화, 주몽 등의 관계에 대해선 전승들이 분분하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선 해부루와 금와의 부자관계를 먼저 시기적으로 서술한 뒤 다시 해모수와 유화의 관계를 언급하고 있다.

반면 ‘삼국유사’ 북부여조 인용 ‘고기’에선 해모수와 해부루 양인을 부자관계로 서술했고 같은 책 고구려조 인용 ‘단군기’와 ‘제왕운기’ 인용 ‘단군본기’에는 단군과 하백의 딸 사이에 해부루가 태어난 것으로 되어 있다. 심지어 ‘삼국유사’ 왕력에선 주몽이 단군의 아들이라 인식되고 있다. 이쯤되면 족보가 헷갈릴 만도 하다.

참역사문화연구회 김종서 박사는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주몽은 기원전 58년 태어나 기원전 37년에 고구려를 건국한다. 대소왕자 등 7명의 금와왕 자제들과 주몽이 함께 놀았다고 기록돼 있으니 금와는 최소 주몽보다 20세 이상 나이가 많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식으로 금와는 기원전 78년 이전 태어났음을 추정할 수 있다. 또 해부루왕은 늙도록 후사를 이을 아들이 없어 바위 틈에서 금와를 얻었다고 했으므로 금와보다 최소 40세 이상 나이가 많았을 것이란 추정도 가능하다.

결국 해모수가 해부루의 아버지가 될 경우, 최소 80여 년 정도의 격차가 발생한다. 실제로 해모수가 주몽의 아버지가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얘기다.

<오상도 기자 sdoh@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