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秘錄환경운동25년]원주에서 온 이상한 쌀가게 주인

한살림(1)

1970년대 반독재투쟁의 거점 ‘원주 캠프’… 다른 운동권보다 빨리 ‘생명운동’ 눈뜨다

한살림이 매년 실시하는 단오잔치 한마당은 소비자 및 생산자 회원들이 한데 어울리는 장이다. 회원들이 유기농 오리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논에다 오리를 풀어놓고 있다.

박재일(현 한살림 회장)이 서울 제기동에 쌀가게를 연 것은 50살을 코앞에 둔 1986년 12월 4일이었다. ‘한살림농산’이라는 간판을 내건 이 가게는 겉으로 봐서는 평범한 동네 쌀집에 불과했다. 목도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고 눈길을 끌 만한 장식이나 근사한 선전 문구 하나 없었다.

그런데 속은 그렇지 않았다. 쌀가게는 쌀가게인데 어마어마한(?) 쌀가게였다.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어마어마한 과정을 거쳐 어마어마한 뜻을 갖고 창업한 것이었다. 무려 15년의 경험과 시행착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인사들이 포함된 70여 명이 집단으로 ‘발기’해서 만든 것이었다. 이 이상한 싸전의 정체가 무엇일까.

눈썰미 있는 사람이라면 개업식에 참석한 인사들의 면면부터 파악했을 것이다. 재야 서예가 장일순(1994년 작고), ‘전논’(전환시대의 논리)의 저자 리영희(전 한양대 교수), 노동운동가 김규벽(전 노총 위원장), 농민운동가 이길재(현 한국농수산방송 회장)…. 당대의 쟁쟁한 민주인사들이 주요 하객이었다. 눈치 빠른 사람은 무릎을 칠 것이다. 그러면 그렇지! 둘 중 하나가 틀림없다. 뭔가 일을 꾸미기 위한 위장업소이거나 주인이 아주 대단한 거물이거나….

6·3학생운동으로 투옥 경력

당시 시국은 극도로 어수선했다. 5·3인천사태와 10·28건국대사태 등의 여파로 정국 분위기가 험악했지만 이듬해 6월항쟁을 향한 민주화 열기가 고조되던 시기였다. 굳이 위장을 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활동할 공간이 있었다. 위장업소일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렇다면… 비밀의 열쇠는 쌀가게 주인에게서 찾을 수밖에 없다.

1986년 12월 4일 서울 제기동 ‘한살림농산’ 개업식. 박재일 등은 이 쌀가게를 거점으로 본격적인 생명실천운동에 나섰다.

서울대 문리대 지리학과 60학번, 6·3학생운동으로 투옥, 출소 후 농촌으로 들어가 농민운동에 헌신, 가톨릭농민회 회장 역임…. 쌀가게 주인 박재일의 간단한 이력이다. 6·3세대의 핵심 중 한 명으로서 청춘을 지역운동, 농민운동에 바친 그가 뒤늦게 쌀가게 경영에 나선 것은 무슨 연유일까. 뭔가 기막힌 사연이나 깊은 내막이 있을 게 분명하다.

‘쌀가게 미스터리’를 푸는 일은 그가 투옥된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가 시작해야 한다. 경북 영덕에서 태어난 박재일은 1959년 경북고를 졸업하고 이듬해 서울대에 진학했다. 재수해서 60학번이 됐고 곧바로 4·19혁명을 맞았다. 평범하게 살 수 있었던 그의 인생은 여기서 크게 바뀐다. 4·19혁명의 중심 학년(59학번)이 그의 경북고 동기들이었다. 이듬해 5·16군사쿠데타가 나서 이들 4·19 주역들이 대거 투옥됐다. 친구들이 다 잡혀가는 바람에 학교에 다니는 게 재미가 없었던 그는 군에 자원입대했다.

‘빵빵군번’(학보병)으로 군대생활을 마치고 복학한 때가 1963년이었다. 고교 동기 김중태, 1년 후배 현승일(전 국민대 총장) 등 61학번과 같이 학교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공교롭게 61학번은 6·3학생운동의 중심 세대다. “중태와 승일이가 없었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지…”라는 그의 최근 회고처럼 그가 6·3사태에 휘말린 것은 재수, 4·19, 5·16, 군입대라는 시대사와 개인사의 굴절 때문이었다.

6·3사태 때 용케 도피했던 그는 이듬해인 1965년 7월 검거됐다. 이른바 제2차 민비연 사건(일명 몰로토프 칵테일 사건)으로 김중태·최혜성·이수용·송철원·진치남과 함께 구속됐다. 김도현·김지하 등은 검거를 피해 기소중지됐다.

여기서 그에게 묘한 일이 벌어진다. 학생운동을 ‘강제 졸업’당한 것이다. 즉 7월에 구속됐는데 8월에 졸업이 돼 학생이 아닌 ‘무직’ 신분으로 재판을 받게 됐다는 얘기다. 1966년 대책없이 사회로 배출(?)된 그는 고향으로 내려가 농사를 지으며 살기로 했다. 그런데 이마저 뜻대로 되지 않았다. 농민의 아들이지만 농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이미 서울 물을 먹은 그의 서투른 솜씨로는 농사를 망치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서울로 올라온 그는 다시 농촌으로 가되 고향이 아닌 곳으로 갈 작정을 했다. 이 계획은 현실성이 없었다. 본격적인 이농이 이뤄지기 전이라 갈 만한 곳이 마땅찮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그의 앞에 운명적인 유혹이 찾아왔다. 김지하(시인·현 한국예술종합학교 석좌교수)의 안내로 장일순 선생을 만나게 된 것이다.

‘원주 캠프’ 는 1970년대 민주화운동의 본거지였다.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됐던 지학순·김지하가 1975년 2월 석방되고 있다. 김지하는 한 달도 안 돼 재구속돼 옥중에서 생명사상에 눈떴다.

김지하의 ‘원주 귀향’ 제안 받아들여

김지하와 그는 묘한 인연으로 연결돼 있었다. 1964년 ‘5·20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 조사를 쓰면서 학생운동에 본격 데뷔한 김지하는 뒤이은 서울대 문리대 단식농성을 주도, 주동자의 수배로 꺼져가던 6·3학생운동의 불씨를 살렸다. 박재일은 막후에서 6·3학생운동을 지원한 서울대 문리대 운동권의 핵이었다. 그가 제2차 민비연 사건으로 구속된 혐의는 ‘반공법 위반’이었다. 그 근거는 발표되지 않은 ‘3·24 제2선언문’이었다. 이는 김지하가 기초한 것이었는데 그가 대신 이 죄목을 뒤집어썼다.

“1964년인가 지하의 안내로 장일순 선생을 만난 적이 있다. 지하는 중학교 때부터 원주에서 살았다. 고향 갔다가 안 돼서 서울로 왔다가 또 잘 안돼 시골로 가야겠다고 생각하던 중에 원주에서 제안이 왔다. ‘원주에 와서 같이 살지 않겠느냐’고…. 그래서 원주로 내려간 것이다.”

박재일의 최근 회고다. 그가 장일순 선생을 중심으로 한 ‘원주 멤버’의 일원이 된 것, ‘제기동 쌀가게의 역사’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이때가 1969년이었다. 원주는 ‘70년대 원주, 80년대 광주’라고 할 정도로 1970년대 민주화운동의 가장 강력한 진원지가 된다. ‘원주 캠프’, 심지어 ‘원주공화국’이라고까지 불린 원주의 막강 재야 인맥이 뒷날 환경운동사에서도 새 장을 열게 되는데, 그 열쇠가 박재일의 쌀가게에 있었던 것이다.

원주가 1970년대 반독재 투쟁의 거점이 된 배경에는 장일순 선생과 지학순 주교(1993년 작고)가 있었다. 장일순 선생은 원주에서 대성학원을 설립, 교육운동에 전념하고 있었고 지학순 주교는 1967년 창설된 가톨릭 원주교구의 초대 교구장으로 원주에 부임했다. 여기에 김지하가 있었고 박재일이 가세하면서 1970년대를 맞은 것이다. 박재일은 장일순 선생의 부름을 받아 지학순 주교가 세운 진광중학교 교사로 취직해 원주 생활을 시작했다.

파란은 1971년에 찾아왔다. 그해 10월 한국 천주교 사상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원주교구가 데모를 한 것이다. 박재일의 기억을 잠시 빌려보자.

“주교가 앞장서고 천주교가 행동으로 나온 게 처음이었다. 원주교구와 5·16장학회가 합작해 원주문화방송국을 설립했는데 자체 감사에서 문제가 드러났다. 교구에서 시정을 요구했는데 묵살됐다. 개인이 아닌 교구가 참여하는데도 부정이 저질러지니 다른 것은 어떻겠느냐, 이런 게 고쳐져야 한다는 식의 아주 구체적인 문제를 갖고 데모를 한 것이었다. 원주 사회에서 교회와 권력이 이때부터 긴장관계에 돌입했다.”

뜻이 있어 시대가 길을 만들어주는 것일까, 시대가 길을 내니 뜻이 생기는 것일까. 두 번째 파란이 이듬해 또 찾아왔다. 1972년 8월 19일 강원지역에 집중폭우가 내렸다. 병자년(1936년) 홍수 이래 처음이라고 할 정도로 큰 피해가 발생했다. 정선·황지에서 평창·영월을 거쳐 서울·인천까지 남한강 수계의 광산촌과 골짝골짝이 초토화됐다. 그 대부분이 원주교구 관할이었다.

‘생명’ 이라는 새로운 운동 영역을 일군 ‘원주 캠프’ 인사들. 왼쪽부터 장일순·지학순·김영주·김지하·박재일.

재해대책 사업서 출발한 사회개발

지학순 주교는 전 세계 가톨릭에 지원을 호소했다. 여기에 응답한 곳이 독일 가톨릭 기관이었다. 미네레올과 카리타스라는 재단이 한화로 약 3억6000만 원을 지원했다. 1973년 연초에 원주교구가 주축이 돼서 재해대책사업위원회(위원장 지학순)가 구성됐다. 박재일이 교사생활을 접고 전업활동가의 길로 들어선 계기가 이것이었다.

원주의 재해대책 사업은 전국의 뜻 있는 인사들을 원주로 모으는 장을 만들었다. 수해지역에는 농촌뿐 아니라 광산촌도 포함돼 있어 농민·노동자를 모두 사업대상으로 삼을 수 있었다. 그래서 농촌문제 전문가인 이우재(현 한국마사회장),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의 김금수(현 KBS 이사장)·천영세(현 민노당 의원) 등이 자문단으로 참여했다. 활동조직인 집행위원회는 신협 운동가이자 ‘원주 멤버’의 일원인 김영주(전 신협 전국교육원장)가 담당했고, 박재일은 농촌 부문을 맡았다.

재해대책 가운데 가장 시급한 것이 식량 지원이었다. 그 다음은 유실되고 황폐화된 집과 농토의 복구였다. 좀 더 욕심을 낸다면 이 기회에 농민의 생산소득을 높일 수 있는 일을 찾아 지원하는 것이었다.

농가의 생산소득을 높일 수 있는 길은 입지 조건에 맞춰 좋은 품목을 선택하는 것과 서로 협동하는 것일 터이다. 동일한 작목을 할 수 있는 생산협동체를 구성하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기술·생각·경험·노동을 나누면 시행착오가 줄어들어 효율이 증대되기 때문이다. 이를 확장하면 수송수단이나 농기계도 공동으로 이용하는 시스템이 마련된다. 즉 이용협동조직이 생겨난다.

시스템이 잘 가동하면 그것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새로운 진화를 하게 된다. 협동을 하다 보면 마을총회와 같은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가 구축된다. 그 속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 협동조직이 구성돼 운영되면 기금이 생기고 이를 잘 관리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신용협동조합이 만들어진다는 얘기다. 이처럼 재해대책 사업에서 출발한 사회개발 사업이 발전해 나가는 과정을 박재일은 최근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마을에 신뢰가 생겼다. 신뢰가 쌓이니까 자금이 모이고… 버선 속에 사장됐던 푼돈들이 햇빛을 보면서 목돈이 됐다. 사채, 고리채로 고생하는 사람을 우선적으로 대체했다. 고리채로부터 해방의 가능성이 보였다. 그러자 인근 마을에서도 ‘같이 하자’고 했다. 자연스럽게 마을 연대가 이뤄졌다. 몇 개의 신협이 모여 지역 단위의 신협이 결성됐다.”

박재일에 따르면 당시 농촌과 광산촌에 74개의 신협이 생겼다. 3개 도, 13개 시·군, 47개 읍·면, 129개 리(농촌)와 17개 광업소(광산촌)가 사회개발위원회(재해대책사업위원회의 후신)에 참여했다고 한다. 생협·신협의 경험이 축적되면 소협(소비자협동조합)은 그리 어렵지 않다. 좀 더 넓은 단위의 지역협동운동도 일어났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겉으로는 들판에 불 번지듯 빠르게 확산되던 협동운동이 안에서는 허물어지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사회 정의, 민주화, 가난 극복이라는 3가지 과제 외에 ‘원주 캠프’에 안겨준 새로운 숙제가 무엇이었을까. 그의 얘기를 직접 들어보면….

“에너지 정책이 석탄에서 석유로 바뀌면서 광산이 폐쇄되고 사람들이 떠났다. 농촌도 그랬다. 처음에는 청소년이 공장으로, 청년·장년이 도시로, 그 다음에는 가족 전체가 이농했다. 강원도에서는 (이농이) 굉장히 빨리 진행됐다. 1974년에 화전 정리 정책을 폈다. 일정 표고 이상은 이주비 주면서 다른 군으로 이주시켰다. 광산은 문을 닫으면서 일거에, 농촌은 이농으로 서서히 무너져갔다.”

장일순 선생과 지학순 주교를 중심축으로 한 ‘원주 캠프’는 농촌·광산촌 운동 외에 가톨릭노동청년회(지오세)의 이창복(전 국회의원)이 노동운동, 김지하가 청년운동의 총대를 메고 있었다. 이 영역에서 또 하나의 큰 줄기가 만들어진다.

1974년 발생한 민청학련 사건으로 ‘원주 캠프’는 국제적 주목을 받는다. 지학순 주교의 구속과 양심선언, 김지하의 투옥은 1970년대 민주화운동사의 최대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 이것으로 끝났다면 환경운동사와는 무관한 사건으로만 남았을 것이다. ‘원주 캠프’에 부과된 새로운 숙제를 푸는 또 하나의 열쇠가 여기서 만들어진다. 1974년 2월 지 주교와 함께 석방된 김지하가 약 한 달 만에 재구속되면서였다.

“민주화 다음의 화두는 생명”

이때부터 5년여 수형생활 동안의 고뇌 어린 탐구의 결과물로 김지하가 찾아낸 해답이 ‘생명’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민주화라는 접근법으로는 한계에 봉착한 ‘원주 캠프’가 구한 답도 역시 이것이었다. 박재일의 말을 들어보면….

“농민운동을 해보니까 이제 민주화는 되는데 정작 마을이 다 깨지는 거야. 사람이 땅과 관계를 맺는 게 아니라 기계가 다 하고, 농약 뿌리고…. 민주화가 안 됐을 때는 농민이 품종 선택도 못 한다고 해서 거기에만 신경을 썼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래서 방법을 찾아낸 것이 ‘이게 가치관의 문제이고 문명의 문제구나. 인간이 생태계의 일부다. 인간의 필요대로 재단하는 것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었다. 지하도 감옥에서 나와서 일성이 ‘생명이다’였다. 우리는 밖에서, 지하는 자기 생명이 끊기느냐 아니냐는 상황의 기나긴 독방생활에서 함께 ‘생명’을 본 것이다.”

‘원주 캠프’가 처음 생명운동을 생각한 것은 이보다 앞선 1977년쯤인 것으로 알려진다. 한살림 운동의 역사에 정통한 윤형근(현 모심과살림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장일순 선생이) 1977년쯤에 이미 ‘종래의 방향으로는 안 되겠다’는 걸 깨닫고 그동안 해오던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을 생명운동으로 전환할 것을 주문했다”고 술회했다(박재일 회장이 들려주는 무위당 이야기, 언제나 생명 가진 모든 존재와 함께).

1980년대 재야·운동권이 노동운동과 정치투쟁에 모든 노력을 쏟을 때 ‘원주 캠프’가 생명운동으로 방향 전환을 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최열(현 환경재단 대표)조차 ‘환경’보다는 ‘공해’를 주종목으로 해서 운동을 펼친 때였다. ‘원주 캠프’는 이미 1982년 생명운동에 대한 입장 정리를 하고 있었다.

“원주의 지역사회 개발운동을 주도했던 운동 주체들은 농촌이 급격히 축소되고 있는 외부 환경 변화에 좌절하지 않고 자신들의 운동 방식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통해 새로운 운동을 구상한다. 그 성찰과 구상은 1982년 ‘생명에 관한 원주 보고서’라는 글로 김지하 시인에 의해 정리되었다. 이들이 착안한 새로운 운동방식은 바로 생활협동운동의 전망 아래 농촌과 도시를 잇는 도·농 직거래운동이었다.”(모심과살림연구소, 스무살 한살림 세상을 껴안다, 그물코, 2006년)

이쯤이면 ‘제기동 쌀가게’의 베일이 어느 정도 벗겨진 셈이다. 박재일은 입이 아닌 손과 발과 몸으로 운동을 해왔다. 그는 고민했다. 이제는 농민이 땅이나 메뚜기를 보는 관점이 바뀌어야 한다. 경제적 관점으로는 안 된다. 환경문제에 대한 기술공학적 접근으로도 근본적인 해결을 할 수 없다. 근원적인 것은 사람의 가치관과 문명, 살아가는 양식의 문제다. 모두를 죽이고 사람마저 병들고 만다. 제3자가 아닌 우리 스스로 실존적으로 보자. 이 운동은 템포가 느리더라도 생활실천운동이 돼야 한다….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종로에서 청량리로 가던 그에게 불현듯 떠오른 단어가 있었다. 모두를 살리는 것, 그것은 한 마디로 ‘한살림’이 아닌가! 농촌과 도시가 ‘다 하나’다. 사람도 자연도 ‘하나’다. 죽임이 아니라 ‘살림’이다. 막연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을 통한 것이다! 한살림은 생명의 순우리말이기도 하다.

秘錄환경운동25년

이렇게 어마어마한 쌀가게의 상호로 채택된 ‘한살림’이 더욱 어마어마한 모습으로 세상에 나타난 것은 그로부터 얼마 후였다.

<신동호 NIE연구소장 hud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