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오세훈 ‘3% 정치실험’에 빠지다

깨끗한 이미지로 당선된 오세훈 시장. 한강프로젝트와 맑은 공기를 약속하며 클린시장 이름을 굳혔다. 하지만 그 이미지는 곳곳에 허점을 간직한 설익은 것이라는 비판이 많다. 제대로 된 브랜드가 없다는 따가운 시선. 결국 취임 8개월 만에 ‘공무원 3% 퇴출’이란 브랜드를 제시했다. 철밥통을 깨려는 실험실의 오세훈. 그가 꺼내든 칼은 개혁의 칼일까, 부메랑으로 돌아올 설익은 칼일까.

오세훈 서울시장, 그는 제4기 16개 광역지방자치단체장 중 어느 누구보다 주목받고 있는 사람이다. 1200만여 명이 사는 수도 서울의 행정사령관이라는 정치적 상징성과 행정적 비중 때문만은 아니다. 오세훈 시장 탄생이 ‘이미지 정치’의 대표적 사례여서 그렇다. ‘서울시민에게 잃어버린 수명 3년을 찾아주겠다’는 게 그의 선거 캐치프레이즈였다. 환경시장의 이미지를 정책화하겠다는 약속이었다. 선거운동 50일 만에 서울시장 당선이라는 초유의 사건도 ‘오세훈=깨끗함’이라는 이미지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이미지는 ‘오세훈 선거법’은 물론 ‘오세훈 정수기’ ‘환경전문 변호사 오세훈’으로 형성된 것이다.

물론 이미지 정치가 전부 나쁘다거나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성공하지 못한 ‘이미지 정치’의 부작용과 역풍은 감당하기 어려운 대가를 요구한다. 그렇다면 취임 10개월에 들어서는 오세훈 서울시장은 과연 이미지 정치에서 자유로운가. 이미지에 집착하지 않고 시민의 바람에 부응하는 시정을 펴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변을 자신 있게 내놓기에는 시장 집무 기간이 너무 짧다. 좀더 두고 봐야 한다는 대답이 많은 게 사실이다.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낸 정두언 의원(한나라당)은 “당선되는 데 이미지가 작용했다”고 인정하면서도 “이미지에 고착되지 않고 시정을 잘 운영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한강이나 서울의 공기에 정책을 집중하는 것은 이미지 집착이 아니라 필요하니까 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부연 설명했다. 대기의 정화, 한강 개발 등은 서울시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라는 얘기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 재임시절 서울시에 근무했던 한 인사도 “한강 개발은 이명박 전 시장의 임기 말부터 시작된 것”이라면서 “한강 사업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오 시장의 핵심정책인 ‘한강 르네상스’가 새삼스러울 게 없다는 얘기다.

박기태 경주대 교수(언론학)는 이미지 정치를 “뚜렷한 목표가 없이 대중의 심리를 자극해서 인기를 얻으려는 정책”이라고 정의했다. 이미지 정책이 입안되는 과정에서 정책의 공공노출 빈도(Publicity) 확대→대중적 관심 집중→목표한 군중심리 자극→정치권력의 개입과 같은 절차를 밟게 된다.

노들섬 민자유치 계획대로 안돼

한강 노들섬 오페라하우스 설계 공모 당선작품. <경향신문>

오 시장의 임기 4년 동안 추진할 시정 계획 프로젝트는 모두 471개 단위사업이다. 여기에는 모두 27조7739억 원의 예산이 소요된다. 이들 사업 대부분은 서울시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하지만 이미지 정치의 색채가 곳곳에서 엿보이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한강 노들섬 문화콤플렉스 조성사업이다. 서울시 예산 5000억 원을 들여 노들섬에 오페라극장을 건립한다는 게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계획이었다. 오 시장이 취임하면서 민자 유치로 오페라 외에 다양한 공연·전시 행사를 소화할 수 있는 문화콤플렉스를 조성하는 것으로 사업을 확대했다. 심층검토 결과, 민자유치가 만만치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 때문에 이 사업은 당초 계획대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박기태 교수는 “전임 시장 그것도 대권에 도전하는 전임시장의 정책을 바꾼다는 것 자체로 언론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것”이라면서 “어떻든 재검토 발표 자체가 엄밀한 세부계획이 세워져 있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실행계획이나 예산집행 계획 없이 정책발표를 먼저 공표했다는 의심이 든다는 얘기다.

공해 경유차량 4대문 안 진입 제한도 똑같은 의심을 받는 정책이다. 오 시장은 “서울 대기오염의 76%가 차량에서 발생하고 그 중 미세먼지는 100% 경유차에서 나온다”며 “대기개선 사업비 중 4조 원을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부착하는 데 쓰겠다”고 밝혔다. 4조 원은 서울시 올해 예산(16조9000억 원)의 4분의 1 수준이다. 미세먼지는 발암의 원인물질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예산규모와 정책의 민감성을 고려할 때 서울시민이 당연히 귀기울일 만한 정책이었다. 하지만 수도권 미세먼지 배출원에 대한 사전검토도 없이 정책을 제시했음이 드러났다. 서울대 보건대학원이 제시한 ‘환경오염질환 모니터링을 통한 위해성 관리방안’ 연구보고서에서 따르면 수도권의 미세먼지 발생량은 경유차 1.4%, 휘발유차 13%에 불과했다. 이에 따라 이 정책의 실효성 자체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한강 ‘모세의 기적’도 또 다른 예라는 지적이다. 한강 ‘모세의 기적’은 하이서울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추진된다. 한강에 ‘부표’를 조밀하게 띄워 걸어서 한강을 건널 수 있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이름 밝히기를 꺼려한 한 교수는 “새로운 것에 대한 시민의 관심이 커질 것이고 어느 정도 관광수입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전제를 달면서도 “그러나 구조화되지 않은 이벤트는 결국은 큰 범주에서 이미지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민 상상 오아시스’도 마찬가지다. 훈련되지 않은 시민들로부터 서울시의 미래를 결정하는 시정의 아이디어를 얼마나 얻겠느냐는 물음이다. 이에 대해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즉흥적이고 정교하지 않은 제안이 있지만 상당히 전문적이고 식견 있는 제안도 적지 않다”면서 “공공의 이성(전문가집단)을 통해 제2, 3의 가공작업이 가미된다”고 말했다. 시민의 눈길 끌기 이벤트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경유차량 진입제한 실효성 의문

어떻든 오 시장의 정책에 대한 갖가지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아예 ‘콘텐츠 없는 이벤트뿐’이라는 비난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오 시장은 본격적인 정치실험에 착수했다. 공무원 3% 퇴출이 그것이다.

서울시청 공무원들이 ‘퇴출 후보 3%’ 선정 중에 있던 3월 15일 점심식사를 위해 청사를 나서고 있다. 평가하는 간부나 평가대상인 직원 모두 하루 종일 뒤숭숭한 분위기에 싸여 있다. <남호진 기자>

사실 ‘국·실별 3% 퇴출론’은 박맹우 울산시장이 불씨를 지폈다. 박 시장이 공무원의 ‘철밥통 깨기’ 인사실험을 감행한 것이다. 사실상 공무원의 신분보장 제도에 메스를 댄 것이다. 공무원은 범죄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거나, 파면 등의 사유가 아니면 공무원 신분을 박탈할 수 없다. 철저한 신분보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박맹우식 공직개혁’의 요지는 업무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거나 무사안일한 공무원을 선별, 일정 기간 동안 단순 노무작업 등을 시키면서 관찰하되 끝내 개선이 되지 않을 경우에는 퇴직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서울시가 이 정책을 그대로 원용해서 적용했다. 서울시는 무능력 공무원에 대한 퇴출 대상자 명단 작성을 일단 마무리한 상태다. 국·실별로 사무관 이상 고위직 1명 이상을 포함시키라는 명령도 하달됐다. 또 퇴출자 선정과정에서 직원투표로 퇴출자를 선정한 부서장 2명을 징계처분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인민투표’(Plebiscite)로 퇴출자를 선정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서울시의 의지가 엿보인다. 이같은 획일적 잣대는 결국 소방공무원들에게도 적용됐다. 소방공무원의 숙원은 3교대업무다. 소방직들은 일반직들과 달리 24시간씩 2교대로 주 84시간을 근무해야 하는 실정이다.

오 시장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강약의 조절은 가능하겠지만 앞으로 인사 때마다 계속 (퇴출제도를)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단지 “정교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전제를 덧붙였다. 퇴출명령은 다소 늦어질 수 있음을 암시했을 뿐이다. 사실 ‘3% 퇴출정책’은 오 시장이 입안 단계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한 사업이 아니다. 서울시 내부적 검토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오 시장이 사후적으로 책임을 떠안고 나섰다는 게 서울시 관계자의 설명이다.

어떻든 오 시장의 ‘결단’에 대해서도 찬반 양론이 엇갈리고 있다. 정두언 의원은 “잘한 일이다”면서 “철밥통을 스스로 깨는 용기를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공무원 사회의 무사안일을 뜯어 고칠 수 있는 유효한 처방이라는 주장이다. 반면 한나라당 이원복 의원은 “뜻이 좋다고 모든 것이 용납되는 것은 아니다”고 전제하면서 “포퓰리즘 행정의 전형”이라고 비판했다. 구조조정 방법이 지나치게 인위적이고 과격하다는 얘기다.

어떻든 오 시장은 ‘개혁의 칼’을 빼들었다. 설익거나 어설픈 검법이라면 그 칼끝은 결국 오 시장에게로 돌려질 것이이다. 인기와 이미지만으로 ‘50일의 성공’(선거당선)은 거둘 수 있겠지만 결코 ‘1460일의 승리’(4년·시정평가)를 담보하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김경은 기자 jjj@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