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방콕족, 나홀로족에 귀차니스트까지

외톨이 유형과 실상… 일본 ‘히키코모리’ 한때 사회문제로

‘은둔형 외톨이’의 개념은 다양하다. 정신의학적 차원의 분류도 있지만 대중에게 친숙하게 알려진 것은 집단적 증후군의 분석을 통해서다. 대표적인 것이 일본의 ‘히키코모리’다. ‘히키코모리’는 ‘틀어박히다’라는 뜻의 일본어 ‘히키코모루’의 명사형으로,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 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1970년대부터 입시과열로 인한 일본 청소년들의 등교 거부에서 시작해, 1990년대 중반 은둔형 외톨이들이 나타나면서 사회문제로 떠오른 용어다. 현재 일본 전체 인구의 약 1%를 히키코모리로 분류한다. 일본 후생성은 2001년부터 6개월 이상 이러한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을 ‘히키코모리’로 분류하고 있다.

일본의 ‘히키코모리’와 거의 유사한 개념이 한국의 소위 ‘방콕족’이다. 1990년대 말부터 한국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방콕족’(방 안에 틀어박혀 사는 사람들)은 최근 극단적인 사례가 보고되면서 사회문제로 부상했다. ‘히키코모리’와 ‘방콕족’은 스스로 사회와 담을 쌓고 외부세계와 단절된 채 생활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람에 따라 3~4년, 심하게는 10년 이상을 방 안에 갇혀 지내는 경우도 있다. 히키코모리, 즉 방콕족의 대표적인 증상은 다음과 같다. ▲ 집안 사람들은 물론 어느 누구와도 대화를 하지 않는다. ▲ 낮에는 잠을 자고, 밤이 되면 일어나 텔레비전을 보거나 인터넷에 몰두한다. ▲ 자기혐오나 상실감 또는 우울증 증상을 보인다. ▲ 부모에게 응석을 부리고, 심할 때는 폭력까지 행사한다.

최근에는 ‘귀차니즘’이라는 신조어가 태어났다. ‘귀찮은 일을 몹시 싫어하는 태도나 사고방식’이란 말로 국어사전에 등재될 만큼 두드러진 사회현상이 됐다. 매사에 의욕이 없고, 꼭 해야 할 일조차도 건성건성 시늉만 하면서 때워 넘기는 증상을 일컫는 조어다. ‘귀차니즘’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귀차니스트’로 부른다.

일선 교사들은 상당수 아이들이 ‘귀차니즘’에 빠져 있다고 진단한다. 매사에 호기심이 없고 ‘시험에 나오지 않는 것’에는 일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히키코모리’처럼 심각한 병리현상으로 보지 않지만 히키코모리 정신세계의 저간에는 ‘귀차니즘’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교사들의 지적이다. 서울 성북구 소재의 한 고등학교 교사 ㄱ씨는 자신의 경험담을 이렇게 털어놨다.

“한 학생의 부모가 상담을 신청해서 만났다. 아이가 늘 ‘만사가 귀찮고 싫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고 하소연했다. 칼에 발가락을 베어 상처가 난 것이 엄청나게 큰 염증으로 발전했는데도 2주일이나 방치했다는 것이다. 나중에 그 학생에게 물어보니 ‘의사 만나기가 싫고 부모님에게 잔소리 듣는 것이 싫었다’고 대답했다. 자신의 신체에 대해서까지 극단적인 무관심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2005년 방영한 KBS ‘추적60분 은둔형 외톨이 실태보고’ 의 한 장면.

은둔형 외톨이를 지칭하는 용어 중엔 일본 사회의 ‘오타쿠’를 꼽을 수 있다. 특정 문화 분야나 취미에 집착하는 사람들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세계에 몰입하면서 고립된 것이므로 히키코모리보다는 그 양상이 덜 심각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일본의 ‘오타쿠’족을 일본 문화의 또 다른 저력으로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오타쿠는 서양의 ‘코쿤’과 비교하기도 한다. 누에고치에 빗댄 코쿤족은 취미생활에서 다른 사람과 접촉을 피하고 나홀로 즐기는 사람이다. 코쿤족이 의도적으로 혼자만의 취미생활을 즐기는 데 비해 오타쿠들은 취미생활만 같다면 덜 배타적인 게 다르다.

코쿤은 그러나 오타쿠처럼 취미생활 분야에 광적으로 빠지지는 않으며, 히키코모리처럼 극도의 사회성 결여를 수반하지도 않는다. 코쿤은 취미생활 이외의 업무에 관해서는 정상적인 사회성을 유지한다. 은둔형 외톨이인 히키코모리는 오타쿠나 코쿤과 달리 엄청난 사회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많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은둔형 외톨이의 대물림

혼자 있는 것을 편하게 생각하는 세태는 청소년들만의 문화가 아니다. 주로 텔레비전과 컴퓨터 게임에 골몰하는 30~40대도 부쩍 늘었다. 이들은 20대 시절, PC통신 활황기에 ‘단군의 땅’으로 온라인 머드 게임을 시작했고 ‘스타크래프트’ ‘리니지’ 같은 온라인 네트워크 게임을 시작한 첫 세대이기도 하다. 경제적으로는 첫 직장을 얻은 뒤 10년을 채 못 견디고 IMF 외환위기를 맞아 생계의 부침이 심했던 비운의 세대다.

이들이 결혼해 낳은 아이들이 또한 은둔형 외톨이로 성장하고 있다. 자폐에 가까운 인터넷 게임 중독에 빠진 초등학생 아들을 둔 회사원 김은수씨(41·가명)는 이렇게 말한다.

“나도 집에 오면 게임에 빠져 새벽 2~3시에 잠자리에 든다. 직장 내 스트레스를 잊기 위한 방편이다. 아들의 상태가 절망적일수록 나도 ‘절망적’으로 게임에 매달린다. 아들을 설득할 권위를 상실했고, 가족을 추스릴 힘과 의지가 점점 약해진다.”

한국청소년상담원은 지난해 말 전국의 청소년 약 3000명을 대상으로 위기청소년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은둔형 청소년으로 파악되는 수치가 초등학생 2.1%, 중학생 3.3%, 인문계 고등학생 6.0%, 실업계 고등학생 8.7%, 학교 밖 청소년 12.9%로 조사됐다. 학령이 높아질수록 은둔 청소년이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의학적 개념의 ‘은둔형 외톨이’는 통상 6개월 이상 가족 외의 사람과 대화를 하지 않으면서 집에서 나오지 않고 지내는 사람들로 규정한다. 외모 콤플렉스, 과도한 입시 스트레스, 인터넷 가상 공간으로의 몰입이 그들의 ‘방어기제’를 형성한다. 자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현실 도피와 차단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들을 오래 방치하면 다른 사회적 조건과 맞물려 ‘울분형 외톨이’가 탄생한다.

은둔형 외톨이 자체를 정신병자로 부를 수는 없다. 외톨이들이 반드시 반사회적 범죄에 가담하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상당수 은둔형 외톨이들이 정신과적 치료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우울증, 사회공포증(대인공포증), 정신분열증, 인격장애 등을 일단 의심해봐야 한다.

우울증은 우울한 기분에 빠져 의욕을 상실한 채 무능감, 고립감, 허무감, 죄책감, 자살충동 등에 사로잡히는 일종의 정신질환이다. 이로 인해 외부에 관심이 없어지고 무감각해진다.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피해의식을 갖고 세상의 모든 것을 원망하게 된다.

사회공포증(혹은 대인공포증)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상황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사람과 접해야 하는 상황이 올 때는 미리 불안해지고 긴장을 하게 된다. 심하면 아예 사람을 만나는 것을 회피하고 은둔해버린다.

한국형 외톨이는 사회구조의 문제

정신분열증은 인격의 와해와 현실로부터의 후퇴가 주증상이다. 심하면 피해망상, 관계망상, 환청, 환시 등을 동반하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도 일어난다. 다른 사람의 접근이나 접촉을 모두 자신에 대한 박해나 공격으로 여긴다. 망상에 근거한 불안이 극심해지면 공격적이고 충동적인 행동을 통해 자신을 방어하려 하기도 한다.

인격장애에 해당하는 편집성 인격장애, 정신분열성 인격장애, 반사회적 인격장애, 회피형 인격장애 등은 모두 사회적 고립과 회피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특히 편집성 인격장애는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의심을 많이 해서 사람을 믿지 못하고, 지나치게 과민반응을 나타내 주변 사람과 자주 다툼이 일어난다.

그러나 한국형 은둔자들의 진정한 문제는 사회·경제적인 요인에서 나온다. 입시과열, 경제 위기, 취업난 등의 사회적 원인이 은둔형 외톨이를 양산하는 국가적 시스템이다. 실업자의 수가 60만 명에 이르고, 이로 인해 니트(NEET)족이 생겨나고 있다. 학교를 졸업하고도 진학이나 취업을 하지 않고 그럴 의사도 없이 무위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의욕상실은 고립을 부르고, 그 고립감은 영혼을 갉아먹는 무서운 병이 되고 있다.

<한기홍 편집위원 glutton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