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난민지위 인정에 인색한 대한민국

난민 돼도 선진국처럼 복지혜택 없어… 일용직·건설현장 전전

지난 3월 13일 ‘버마 인권의 날’ 을 맞아 버마민족민주동맹(NLD-LA) 회원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미얀마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05년 4월 한 시민단체가 법무부를 상대로 ‘난민인정업무 내부처리 지침’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답신은 공개 불가. 그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첫째는 “국가안전보장, 국방, 통일, 외교관계 등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국가에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기에….” (중략) 둘째는 “국내외로 유출될 경우 테러 등 국가안보 문제 또는 외교문제가 발생할 소지 및 직무수행을 현저히 곤란하게 할 위험이 있기에….”(중략)

법무부의 입장을 그대로 읽어 내려가면 난민신청을 하는 사람들은 테러위협 인물 리스트 일순위로 등장할 수 있는 존재다. 국제적 불순분자들이거나 잠재적 범죄자들로 간주되기에 충분하다.

난민(難民)이란 말은 그 뜻을 그대로 풀면 ‘어려움과 곤란에 처한 사람’이다. 그 어려움의 근저에는 무력분쟁, 정치·경제적 불안, 자원부족, 국내·국제 이주민의 증가 등의 요인이 깔려 있다. 심각한 환경문제로 인한 이주도 새로운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런 이유로 한국에서 난민 신청을 하는 이들은 대개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이다.

난민지위 받은 사람 모두 62명뿐

특히 많은 이주노동자가 와 있는 아시아 각국의 내전, 민주주의 탄압과 분쟁의 심화는 집단적 이주와 난민이 증가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한국에서 난민 신청을 하는 사람들의 수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2006년 1067명, 2007년 현재 1400명이 넘었다).

이들 중 난민지위를 받은 사람은 모두 62명, 인도적 체류 인정을 받은 사람은 48명이다.
이주노동자들이 가족과 돈, 가난 때문에 낯선 줄 알면서도 ‘이주’라는 어려운 선택을 하듯 난민신청자들은 자신의 적극적 믿음과 행위가 정부 탄압의 빌미가 되고 때론 위협이 되기에 난민 지위를 얻으려고 한다.

난민이 되려는 이들은 자신의 신념이나 믿음을 지켜 나가는 삶을 유지하고 싶어서 고난이 예상된 삶을 기꺼이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래서 이들의 삶은 더 정치적일 수도 있고 더 종교적일 수도 있다. 소수이지만 독립을 원하는 소수 민족의 적극적 구성원일 수도 있다. 국가는 이들을 심사한다. 그 눈과 마음은 인도주의에 기초하고 있을까?

경기 문산에 사는 파키스탄 노동자 한 명이 지난달 법무부에 난민신청을 했다. 그의 고향에서는 지금 내전 속에 집단테러, 집단자살이 이어지고 있다. 고국을 떠나온 지 오래되었지만 이전부터 자신을 괴롭혀온 부패한 정당의 인물들이 여전히 가족들을 통해 그를 찾는다. 집단 테러까지 예상되는 상황에서 그에게는 안전한 땅이 필요했다. 그러나 법무부 직원은 그가 준비한 서류를 제대로 읽기에 앞서 미등록 신분인 것을 확인하자마자 “잡아넣을 수 있다”는 말부터 했다. 법무부 직원의 눈에 비친 그는 비자 하나 받아서 한국 땅에 눌러 앉으려는 놈 정도였을까?

7년째 난민 지위를 얻기 위해 싸우고 있는 버마 민족민주전선(NLD) 한국지부 사무국장 모아씨 역시 “너 도와주는 NGO 놈들에게 가서 돈 받아라”라는 심한 말까지 들어가며 오늘도 법무부 출입국을 오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몇 년에 걸쳐 심사 결과를 기다리다 어렵게 난민 지위나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았어도 한국에서는 더 이상 난민으로 살고 싶지 않은 것이 그들을 기다리는 현실이다.

난민이 되면 이들은 의료보험 혜택과 2년에 한 번씩 갱신하는 비자, 해외여행과 국내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 외에 다른 선진국처럼 거주지원과 복지혜택이 없다(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은 사람은 1년씩 허용되는 거주 도장을 찍어주는 것뿐이다). 지위를 인정한 후 경제적 지원은 라면 두 박스, 운 좋으면 쌀 포대 하나 정도였다. 난민을 지원하는 정부예산이 2004년 1000만 원이었고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하니 기대조차 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일자리라도 알아보려고 하면 ‘이상한 행동을 한 문제아’라는 시선 때문에 면접도 제대로 못 보고 쫓겨난다. 그래서 지금도 난민들은 단순노무직, 일용직, 건설현장을 전전긍긍한다. 미등록 노동자나 합법적인 신분으로 체류할 때보다 더 살기 어려운 현실만이 남는다. 선진국에서 난민들을 위해 제공하는 기술교육따윈 기대하기도 어렵다.

난민조약에 가입한 지 몇 년이 지나 아시아 사람 한 명이 난민신청을 하려고 법무부를 찾아가니 직원이 “그게 뭐냐?”고 물었다고 한다. 신청 서류도 없어서 급한 대로 옆에 있던 A4 종이를 사용해 신청용지를 대신했다. 지금은 그래도 나아져서 법무부 안에 ‘국적난민과’라는 부서도 생겼다. 그러나 난민 담당 부서가 법무부로 있는 한 난민 신청자들은 처음부터 심리적·인도적 대우를 받기 어렵다. 불온한 관계의 역사 때문이다.

과거 탄압받은 명백한 증명 있어야

지난 20년 동안 법무부는 이들을 단속하고 추방하는 기관이다. 이들의 눈에 비친 아시아, 아프리카인들은 인도적 처우나 대우를 받아야 할 권리가 있고 이동의 자유, 거주의 자유, 노동의 자유가 있는 보편적 세계 시민이 아니었다. 법무부는 오늘도 근심한다.

이중에 가짜는 누구일까? 진짜 난민대우를 받을 과거 경력과 조건이 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과거에 탄압을 받은 명백한 증명만이 여전히 심사의 주요 수단인 난민심사대. 이 앞에 선 사람들의 현재 처지와 결단은 그들의 심사 기준이 아니다.
인식의 출발부터 체류 지원까지 국제적 기준과는 너무나 먼 한국에서 살아가는 난민은 그저 떠돌아다니는 이방인일 뿐이다.

이런 천박한 난민 처우 수준에서 벗어나려면, 지금부터라도 한국정부는 법무부에서 독립된 난민부서 설치를 고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열악한 지원만이 문제가 아니다. 6명의 공무원이 지금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의 서류를 접수·심사하고 결정한다.

난민지원 업무 15년을 돌아보며 평가할 시점이다.
객관적 심사는 과거와 오늘의 역사와 현실을 제대로 보려는 정치적·사회적 안목에서 키워질 수 있다. 그러나 시련과 고통을 헤아리며 살아가려는 삶에 대한 이해는 결국 인간의 심장에서 시작된다. 국가주권으로 경계인이 처한 상황과 선택을 함부로 재단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차미경〈아시아의친구들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