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난민, 그들은 왜 ‘머나먼 대한민국’을 선택했을까?

우리 곁에서 함께 살고 있는 난민들은 누구일까. 그들은 왜 하필이면 머나먼 동방 끝 나라 ‘대한민국’을 선택했고, 어떤 사연으로 자신의 조국을 떠났을까.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 사람들의 난민에 대한 태도, 그리고 한국 정부의 난민정책은 어떨까. 뉴스메이커는 난민 세 사람과 난민인정을 받지 못해 현재 소송 중인 두 사람을 만나 그들의 사연과 주장을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난민 인정 | 버마민족민주동맹자유지역 한국지부 총무 내 툰 나잉

“버마가 민주화되면 꼭 돌아가렵니다”

2003년 난민지위를 인정받은 내 툰 나잉씨가 자신의 난민여행증을 보여주고 있다. <김영민 기자>

“버마 민주화를 지지하는 젊은 사람들,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법무부로 가서 난민신청을 하라고 했어요. 우리는 비자 없는 외국인이었지만 난민신청을 원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우리에겐 ‘조국’이 있거든요. 2~3년 후 민주화되면 ‘버마’에 다시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어요.”

내 툰 나잉씨. 한국 나이로 39세, 노총각이다. 그의 휴대전화 바탕화면엔 여자친구 대신 두 사람의 초상이 깔려 있다. 버마 독립운동의 영웅 아웅산과 그의 딸 아웅산 수지 여사. 아웅산은 동료의 손에 암살당했고, 그의 딸은 중간에 잠시 해제되기도 했지만 현재 11년 8개월째 가택연금 중이다. 1991년, 그녀는 버마 민주화운동의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지만 수상식장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녀가 이끌던 NLD(버마민족민주동맹)는 1990년 총선에서 82%의 지지율로 압승했지만, 군사정권은 지금까지도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NLD 당원과 국회의원들을 체포·투옥했다.

우리나라에 1980년 ‘서울의 봄’이 있다면 버마에는 8888민주항쟁이 있다. 1988년 8월 8일, 수도 랭군 및 버마 전역에서 학생들을 선두로 시민들이 나선 민주화 요구시위다. 랭군 대학 심리학과 86학번이던 내 툰 나잉씨도 이 항쟁에 참여했다. 1만5000~2만여 명의 젊은 선혈이 거리에 흩뿌려졌다. 그 시위 참여 때문에 내 툰 나잉씨는 감옥에 갔다. 폐쇄됐던 학교는 다시 문을 열었지만 그는 ‘친구들이 사라진’ 학교에 돌아가기 싫었다. 아버지와 약속 때문에 그는 다시 학교로 발길을 돌렸다. 1993년 졸업할 때까지 그는 민주화투쟁에 앞장섰다. “군사정부의 비밀경찰들이 항상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어디에 갔고 누구를 만났는지 조사했죠.”

또 다시 체포된다면 이번에는 15년 혹은 20년형을 받을지도 몰랐고, 소리소문 없이 살해될 수도 있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버마는 위험하니 가고 싶은 다른 나라로 가라’고 말했다.

그때 내 툰 나잉씨의 눈에 들어온 나라가 한국이었다. “버마 학생들 사이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았어요. 군사독재정부 때문에 고통받은 역사도 비슷했고, 1980년 광주 민주화항쟁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어요. 한국에서 착실히 성장하고 있는 ‘민주사회’도 배우고 싶었고….”

그의 선후배 동료들은 세계 각국에 나가 버마 민주화운동의 불씨를 지피고 있었지만 한국에는 아직 그런 흐름이 없었던 것도 그가 한국을 택한 이유 중 하나다. 1994년 마침내 한국 땅을 밟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당장은 생계문제가 걱정이었다. “1994년에 온 우리 친구들은 가구회사나 사출업체, 실리콘 회사 등으로 뿔뿔이 흩어졌어요. 지금까지 공장에 다니는 친구도 있어요.” 민주화운동을 한다고 하면 흘겨보는 공장 사장도 적잖았다.

1999년 5월 마침내 NLD-LA(버마민족민주동맹 자유지역) 한국지부가 결성되었다. 그리고 그해 7월 이제는 ‘미얀마’로 나라이름을 바꾼 서울 버마대사관 앞에서 버마 민주화를 요구하는 첫 시위를 벌였다. 정통성이 없는 정부이기 때문에 NLD를 비롯한 버마 민주화세력은 미얀마라는 새 이름을 거부한다. “반응은 없었어요. 대신 2층이나 3층에서 사진도 찍고 비디오도 찍더군요. 아마도 버마 정부에 보내기 위한 것이었겠죠.”

그들의 활동에 대해 주한 미얀마대사관 측은 “그런 단체를 모른다”는 반응을 보였다.
버마에 남아 있는 그의 가족들에게 위협은 없었을까. 현재까지 큰 탈은 없었지만, 한 달이나 두 달 간격으로 비밀경찰이 집으로 찾아와 ‘아들이 한국에서 반정부운동을 하고 있으니 하지 말라고 전하라’고 말한다고 한다. “떠나올 때 누나에게 말했어요. 민주화가 빨리 안 된다면 나는 돌아올 수 없으니, 부모님을 저 대신 모셔달라고요. 누나는 ‘걱정 마라. 하고 싶은 일만 해라’고 말했어요.”

난민신청을 결심한 계기는 친구 2명이 체포된 사건. 1명은 버마로 강제 송환될 위기에 처했다가 가까스로 태국에 내려 한국으로 돌아왔다. 또 한 명은 인천출입국사무소에서 체포되었지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과 시민사회단체들의 도움으로 풀려났다. 2000년 5월 그를 비롯한 NLD 회원 20여 명은 서울출입국사무소에 난민인정 신청을 했다. 그러나 3년 후 난민 인정된 사람은 총무를 맡고 있던 내 툰 나잉씨와 회장, 부회장뿐이었다. 나머지 회원들의 난민 인정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한국사회의 난민정책에 대해 그는 할말이 많다. “사회복지제도가 부족한 것 같아요. 난민으로 인정된 사람도 건강이 좋고 돈을 벌 수 있다면 건강보험도 낼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고 직장도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거든요. 보통 직장 다니고 그런 사람을 지원해달라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건강이 안 좋고 회사에도 못 다니는 사람들에게 30만~40만 원 정도의 기본적인 지원이 있다면 마음 편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 꼭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OECD 가입국인 한국의 국제적 위신을 생각해서라도 그렇게 됐으면 좋겠어요.”(내 툰 나잉씨의 지적에 대해 정부 당국은 “난민 인정이 되면 한국 국민과 똑같이 기초생활수급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현장집행단위인 동사무소 등지에서 간혹 그런 규정을 잘 모르는 경우가 있어 관련 부처간 협조를 통해 홍보에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내 툰 나잉씨는 올해부터 성공회대 NGO대학원의 ‘아시아시민사회 지도자과정’을 밟고 있다. 그는 자신이 다니고 있는 성공회대가 어떤 대학보다 민주주의와 사회에 대한 관심이 많고, 버마 민주화를 위해서도 노력을 많이 한다고 덧붙인다.
그의 꿈은 무엇일까. 빨리 장가도 가야 할 텐데.

“원한다면 한국에서 편하게, 죽을 때까지 살 수도 있겠죠. 하지만 민주화가 이뤄지면 버마로 돌아갈 겁니다. 꼭 갈 겁니다. 민주화 이후에 해야 할 일이 오히려 많을 거예요. 어떤 일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공부한 아시아 민주주의에 대한 지식을 쓸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