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효도정’ ‘땅박이’ ‘원조 철새’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대선후보 별명 인터넷 만개… 정치 진정성 회복이 우선

현재까지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인 이명박 후보는 여러 별명을 가지고 있다. 사진은 한 네티즌이 이 후보의 부동산 의혹을 풍자해 만든 패러디 이미지.

‘컴도저’와 ‘땅박이’, ‘개성동영’과 ‘효도정’.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와 정동영 통합민주신당 후보의 별명이다. 전자는 후보 스스로 불리기 원하는 별명이고, 후자는 네티즌이 이들에게 부여한 별칭이다.

정동영 후보가 민주신당의 대선후보로 선출된 직후, 정 후보 캠프는 보도자료를 내 “‘개성동영’이 ‘운하명박’을 물리친다고 확신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신당 측이 바라는 대로 국민들이 그를 ‘개성동영’으로 부를지는 미지수다.

본인들은 ‘개성동영’ ‘컴도저’ 원해

이명박 후보도 마찬가지. 서울시장 이전부터 따라다닌 ‘불도저’라는 별명을 이 후보 자신은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긍정적 의미로는 추진력 등을 상징하겠지만, ‘독단적으로 밀어붙인다’는 부정적 이미지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후보는 기회 있을 때마다 ‘컴퓨터가 달린 불도저’라며 ‘컴도저’를 자신의 애칭으로 주장했다. 하지만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가 만들어낸 ‘늙빠’(늙은 오빠)처럼 국민 공감대를 형성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글날을 맞아 국립국어원이 펴낸 ‘사전에 없는 신조어 사전’에서 ‘놈현스럽다’라는 단어가 논란이 되면서 새삼 정치인을 비롯한 유명인들의 인터넷 별명도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인터넷에서 이들 대선 후보의 별칭은 더 적나라하다. 정 후보가 선출되던 날, 정 후보를 두고 가장 많이 언급된 별명은 ‘곶감’이다. ‘곶감’이라는 별명은 지난 9월 6일 MBC 100분 토론의 민주신당 대선 후보 토론에서 유시민 후보가 “정 후보에게 참여정부는 곶감 항아리 비슷하다”고 지적한데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 가끔 와서 빼가시기만 하고 의리는 안 지킨다는 생각이 든다.” 이어진 유 후보의 뜻풀이다. ‘효도정’은 말할 것 없이 2004년 총선 당시, “노인들은 집에서 쉬셔도…”라는 발언에 대한 역설적 풍자다. ‘구정물 동영’이라는 별명도 나왔다. 후보 경선 과정에서 불거진 불법선거 논란에서 비롯한 별명이다.

현재까지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인 이명박 후보에게는 더 많은 별칭이 있다. 서울시장 당시 이 후보가 얻은 별명은 맨슨 공(公). 이명박 후보의 외모가 미국의 록 가수 마릴린 맨슨과 닮았다는 하마평 끝에 나온 별명이다. 인터넷에는 마릴린 맨슨의 공연사진에 이 후보를 합성한 패러디 사진이 여럿 나와 있다. 명바기, 명박 , MB는 그나마 친근한 별칭. 가장 치명적인 별명은 도곡동 땅 의혹, BBK사건 등을 거치며 나온 ‘땅박이’, ‘양파명박’ 등의 별명이다. ‘양파명박’은 “까도 까도 (비리 의혹이) 또 나온다”는 데서 붙은 별명이라고 한 네티즌은 설명했다. ‘놈현스럽다’에 이어 ‘명박스럽다’는 신조어도 나왔다. ‘끝까지 거짓말만 하고 이중인격인 사람’이라는 뜻이란다.

손학규 민주신당 경선 후보도 한나라당 탈당 직후부터 ‘손학새’라는 별명이 붙었다. 철새 정치인이라는 비난이 담겨 있다. 경선 도중 칩거에 들어가면서는 ‘쇼학새’라는 별명도 추가됐다. 이 밖에 이해찬 후보는 ‘버럭해찬’,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는 ‘듣보잡 문국현’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각각 ‘불같이 성질을 낸다’, ‘들어본 적 없는 정치 신인’이라는 뜻에서 붙은 별명이다. 정작 본인이 원하는 별명은 ‘숫자해찬’ 및 ‘증권전문가’다. ‘숫자에 강하다’, ‘137억 재산 대부분은 증권에 투자한다’는 자기해석이다.

이 밖에도 이인제 민주당 후보와 김민석 최고위원은 철새 논란을 벌여 한 인터넷 언론에서 ‘오리알 0번지’라는 닉네임을 붙였다.

정치인들뿐이 아니다. 신정아씨의 학력위조 논란이 불거지면서 나온 별명은 ‘여자 황우석’. 여기에 신씨가 평소 특정 상표의 명품 선물을 즐겨했다는 이야기가 돌면서 ‘에르메스녀’라는 닉네임도 덧붙여졌다. 신씨와 같이 도마에 오른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소환시간을 칼같이 지킨다고 기자들로부터 ‘칼양균’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공인들의 별명이 항상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단적인 예가 ‘바보 노무현’이다. 부산에서 총선에 출마했다 낙선하며 개인 홈페이지에 몰려든 자발적 지지자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바보라는 별칭은 정치적 일관성과 신념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말이었다. 그러나 ‘놈현’에 이르면 일관성은 아집 혹은 독선의 이미지로 변한다.

정치인, 부정적 이미지 별명이 득세

공인들의 별명은 왜 붙는 걸까. 연세대사회발전연구소 고동현 박사는 “권위를 가진 사람들은 사실 대중과는 떨어져 있는 사람인데, 대중들은 별명을 통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그런 공적인 인물을 자기 가까이 끌어내릴 수 있다”고 설명한다.
별명 붙이기가 일종의 이미지 메이킹이라면 자신이나 주변 인물들이 스스로 붙이는 ‘위로부터의 이미지 메이킹’과 대중들이 만들어내는 ‘아래로부터의 이미지 메이킹’이 있다. 두 가지 이미지 메이킹이 경합을 벌이면서 그 사람에 대한 대중적 상(像)이 형성된다는 것. 고 박사는 “공인의 성격·행동·사건들로부터 특정 이미지가 추출되어 별명이 만들어지지만 일단 하나의 프레임이 만들어지면 스스로 발전하며 그 사람을 파악하는 인지적인 틀이 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한 번 각인된 그 사람의 ‘이미지’는 재생산되는 별명을 통해 거꾸로 그 사람을 규정하는 틀이 된다는 것이다.

정치인의 경우 특히 부정적 이미지를 주는 별명이 많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일종의 ‘그레샴의 법칙’이 작동하는 걸까. 다시 말해 이명박 후보는 ‘땅박이’를, 정동영은 ‘효도정’을, 이인제는 ‘원조 철새’라는 별명을 극복할 수 있을까.

“자신의 별명으로부터 어떤 포인트를 잡아 확산시키는 데도 전략이 필요하다.” 노장오 인워드브랜딩 대표는 “별명도 정치홍보”라고 단언한다. 그는 최근 닉네임 마케팅을 다룬 ‘10초의 매직, 닉네임’(더난출판)이라는 책을 펴냈다. 그에 따르면 아예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닉네임으로 성공한 경우도 있다. 포청천을 내세운 조순 전 서울시장이 단적인 예다. 노 대표에 따르면 부정적인 이미지도 잘만 활용하면 좋은 이미지로 변화시킬 수 있다. 이를테면 샤넬이 신제품 향수를 출시하면서 ‘포아종(독)’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그와 같다.

한국의 현실정치에 이를 적용하면 어떨까. 예를 들어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 박근혜는 ‘수첩공주’라는 닉네임에 시달렸다.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비아냥이 담겨 있는 별명이다. 만약 박근혜의 지지자들이 ‘박근혜의 수첩이 되어주는 모임’이라는 마니페스토 그룹을 만들고 같은 색깔의 수첩을 흔드는 광경이 연출되었다면, 전혀 다른 이미지 변화가 가능했을 것이라는 것이 노 대표의 설명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덕목은 ‘진정성’이다. 결국 부정적으로 보든 긍정적으로 보든 대중을 움직이는 힘은 그 사람과 동떨어진 그 어떤 실체나 이미지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고 박사는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정치인 또는 정치라는 직업이 존경과 신뢰가 아닌, 풍자와 조롱의 대상이 된 연원을 따라가보면 그들이 보인 태도나 행동이 자리 잡고 있지 않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현실 정치인들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