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미술시장은 위축되지 않았다”

큰손들은 매매 기피… 일반인 경매낙찰률 70%로 고무적

아라리오 갤러리가 중국 베이징에 문을 연 아라리오 베이징 전시관. 사진은 전시관 외부와 내부.

학력위조와 권력비리 의혹으로 미술계를 강타한 신정아씨, 삼성가에서 비자금으로 고액의 미술품을 구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김용철 변호사, 이중섭·박수근 대규모 위작사건 등 올해 미술계는 꽤 시끄러웠다. 지난 2, 3년간 급속도로 성장한 미술시장에서 일련의 사건으로 위축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미술계의 큰손들은 삼성의 비자금 사건 여파로 고가의 미술품 매매를 피하고 있다고 알려진다. 화랑 관계자들도 이 사건의 여파가 얼마나 오래갈지 초조해하며 지켜보고 있을 정도다. 경매시장의 낙찰률도 많이 떨어졌다. 지난 11월 28일 실시한 K옥션의 마지막 경매에서 낙찰률은 70.7%를 기록했는데, 지난 5월 정기경매의 낙찰률 86.2%와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가 난다. 지난 11월 5일 서울옥션의 낙찰률은 73.2%에 낙찰총액이 90여억 원이었지만, 9월 낙찰총액 203억 원과 비교하면 초라해 보인다. 특히 이우환, 김종학, 이대원 등 올해 경매시장을 이끌었던 인기작가들의 작품들도 대거 유찰되거나 낮은 경매가로 낙찰되기도 했다. 또한 장 샤오강, 요시토모 나라 등 인기 있는 해외작가의 작품도 유찰되는 경우가 많이 생겼다. 미술시장의 양대축인 화랑과 경매회사 모두 고전하고 있는 셈이다.

“낙찰률 80%는 거품이었다”
갤러리 다임의 신혜영씨는 “경매시장과 화랑에서 거래량이 많이 줄었는데, 대기업에서 고가의 컬렉션을 구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면서 “이런 분위기에서 어느 누가 고가의 컬렉션을 구입할 수 있나”라고 반문한다. 하지만 이런 현상 때문에 ‘미술시장의 위축’이라고 단언하기에는 섣부르다고 덧붙인다. 신씨는 “과거와 달리 서민들이 미술품 구매를 많이 하면서 미술시장의 활황을 이끌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면서 “삼성 비자금 사건의 영향은 큰손에만 해당되는 얘기다”라고 설명한다.

한국미술경영연구소 김윤섭 소장 역시 “미술시장은 위축되지 않았다”고 단언한다. 경매시장의 낙찰률만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 K옥션과 서울옥션에서 유찰된 작품 중에는 가격에 거품이 끼어 있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우환씨의 작품 중에서 호평을 받았거나, 젊은 유망작가들의 좋은 작품은 높은 가격에 낙찰됐다. 김 소장은 “미술계에 사건이 터졌는데도 70%의 경매 낙찰률을 보였다는 것은 굉장히 고무적인 현상이다”면서 “80~90%의 낙찰률을 보이던 때가 이상 과열 징후였다”고 분석한다. 과거에는 미술시장을 큰손들이 좌지우지했지만, 이제는 허리 역할을 하는 대중들이 미술시장을 든든히 받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좋아진 것이라는 평가다.

그리고 경매회사의 설립 소식도 계속 들려오고 있다. 경기 분당에서 화랑을 운영하던 백선숙 대표가 미술경매회사 꼬모옥션을 설립하고 회원을 모집하고 있다. 또한 쌈지의 천호균 대표는 세아제강, 톰보이 등의 기업과 손잡고 경매회사 옥션별을 설립했다. 로또 복권사업자인 KLS의 남기태 대표도 인터알리아라는 경매회사를 세웠다. 수입가구업체 엠로이아의 정연석 회장 역시 D옥션을 설립해 사업을 시작했다. 신천개발의 구천서 회장은 지난해 말 미술품 경매 전문회사인 KU옥션의 설립인가를 받았고, 내년 상반기 중에 미술품 경매를 실시할 계획이다. 또한 미술품 경매사이트 포털아트에 미술품을 구입하기 위해 사전에 적립해놓는 적립금이 12월 7일 현재 15억 원을 돌파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연초에 8800만 원이었던 적립금이 11개월 만에 약 16배 이상이나 늘어난 셈이다.

국내를 넘어 해외로 뻗어나가고 있는 화랑들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지난해부터 국내 화랑들이 중국 베이징을 중심으로 해외 전시장을 열고 있다. 이음갤러리, 아라리오갤러리, 표화랑, 공화랑 등이 베이징에 전시장을 열었다. 또한 국제갤러리, 선컨템포러리, 아라리오 갤러리는 미국 뉴욕에 진출했거나 진출할 계획이다. 화랑의 해외 진출은 한국작가와 작품들이 해외에 직접 소개된다는 점에서 미술시장에 큰 영향을 준다. 그리고 작가 이불을 중심으로 국내 작가가 해외에서 주목받고 있다는 점도 미술시장에 좋은 소식이다. 두산갤러리 디렉터 윌리엄리는 “지금까지 한국 화랑은 폐쇄적으로 운영했기 때문에 작가들이 해외로 나가는 것이 어려웠다”면서 “한국 화랑의 해외 진출은 작가에게도 좋은 기회가 된다”라고 설명한다.

미술품에 투자하는 아트펀드의 활성화도 눈에 띈다. 지난해 굿모닝신한증권이 서울명품아트펀드를 처음 선보였을 때 2시간 만에 접수 마감이 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아트펀드는 1년 만에 4개로 늘어났다. 한국투자증권의 서울아트사모특별자산2호, 골든브릿지자산운용의 스타아트펀드, 굿모닝신한증권의 SH명품아트펀드 등은 누적수익률 10% 정도를 기록하면서 순항 중이다.

아트펀드 1년 만에 4배로 늘어
하지만 미술시장이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견고한 시스템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가장 시급한 것이 1차시장(화랑)과 2차시장(경매)의 올바른 정착이다. 경매회사에서 작품을 산 후에 그 작품을 경매에서 되파는 일 때문에 화랑 관계자와 얼굴을 붉히는 일도 많았다고 전해진다. 윌리엄리는 “중견 기업에서 경매회사를 차리기 시작했는데, 미술시장에 얼마나 충실히 할까라는 생각이 든다”면서 “작품의 가격만 올려놓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한다.

또한 작가들을 보호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팝아트’가 유행하면서 화랑이 전속작가에게 유행하는 작품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화랑의 횡포’로 작가들이 고통받고 있는 것이다. 미술평론가 반이정씨는 “화랑주 입맛에 맞게 작품을 만드는 작가가 팬시 상품을 만드는 사람과 뭐가 다른가”라면서 “지금은 집이나 사무실에 걸어놓을 수 있는 그림이나 사진 등 평면 작품만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라고 지적한다. 즉 작가들에게 필요한 실험정신이나 반골 기질은 사라지고 있다는 얘기다. 잘나가는 작가와 그렇지 못한 작가가 확연하게 구분되면서 작가들 사이에서 ‘양극화’ 현상이 일어나는 것도 시급히 풀어야 할 문제다.

전문가들은 미술시장의 규모를 3000억~4000억 원이라고 추산하면서 규모는 더욱 더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한다. 김윤섭 소장은 “4~5년 내에 미술시장 규모는 1조 원까지 커져야 한다”면서 “세계시장에서 1000억 원이 넘는 작품도 많기 때문에 현재의 미술시장 규모는 매우 작은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전문가들은 미술시장의 규모가 커질수록 일반인들이 미술작품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국큐레이터협회 장동광 부회장은 “50억~60억 원을 쓰면서 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들여와서 비싼 가격으로 관람하게 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면서 “많은 사람이 저렴하게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미술의 공공성 회복도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내의 젊은 작가를 적극 육성해야 하는 과제가 남은 셈이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