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태안 환경복원 지금부터 시작이다

해양오염평가단 현장조사 마무리, 신중한 처방과 장기적 모니터링 지적

굴삭기로 만리포 백사장의 모래를 파내고 있다.

지난 1월 9일 충남 태안군 소원면 만리포 해수욕장. 한 달 전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호에서 새어나온 검은 기름띠가 남긴 참혹한 풍경의 흔적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공기에는 기름 냄새보다 소금기가 더 진했고, 백사장은 제 빛깔을 회복한 듯했다. 하지만 말끔해진 것은 외양뿐이다. 백사장에서는 굴삭기 넉 대가 군데군데 구덩이를 파고 있었다. 굴삭기 삽의 크기만큼 파인 구덩이마다 검은 기름이 고여 있었다. 파도를 타고 백사장 아래로 스며든 기름이다. 그 아래로 얼마나 더 많은 기름이 섞여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이날 오후 4시쯤 태안군 교육청 건물 3층 대회의장. 지난해 12월 29일 캐나다 전문방재인력 및 국내 전문가, 지역주민, 환경단체 사람들을 중심으로 모인 해양오염평가작업단에 소속된 해양연구원 이준호 연구원이 가의도를 둘러본 결과를 브리핑했다. 그는 “주변 둘레 12㎞인 가의도 북단은 어느 정도 깨끗해졌지만, 남단 지역은 조류와 바람 등 기상조건 때문에 오염도가 심각했다”고 발표했다. 이날 발표는 모두 5개 팀으로 이뤄진 평가작업단이 소원면 파도리, 근흥면 가의도, 내파수도 등 도서 지역에 대한 현장 조사를 한 결과물이다.

캐나다 전문가들 몇 가지 방법 제시

위_굴삭기로 모래를 파낸 자리에 기름이 검게 고여 있다.<br>아래_기름유출 사고 후 한 달이 지난 만리포 해수욕장.

위_굴삭기로 모래를 파낸 자리에 기름이 검게 고여 있다.
아래_기름유출 사고 후 한 달이 지난 만리포 해수욕장.

‘태안의 기적’이라고 불린 연인원 96만4000여 명 자원봉사자의 물결이 눈에 보이는 기름은 걷어냈지만, 본격적인 방재작업과 생태계 복원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일단 사고 초기 정부 대응을 보면 미덥지 못한 구석이 많았다. 지난해 9월 7일 ‘국정브리핑’이 연중 기획 ‘국민생활 속 국가위기 관리’ 시리즈의 일부로 올린 기사를 보면, 정부는 지난해 8월 24일 울산 앞바다에서 10만t급 유조선의 충돌사고에 대비한 가상 방재 훈련을 실시했다.

이 가상 훈련에서 정부는 사고 발생 15분 만에 사고수습대책본부 및 방재 대책본부 구성을 완료하고 신속하게 충돌 유조선 근방에 4회에 걸쳐 오일펜스를 설치해 2시간 만에 방재를 완료했다. 이번 허베이 스피리트호 충돌 사고에서 정부가 보여준 미숙한 대응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사고 발생 당일인 12월 7일 의항리 일대 지역 주민들이 방재 장비를 요청했으나 지급되지 않았고, 해경과 지자체 사이의 연락체계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환경위해성평가 전문기업 ‘네오엔비즈’ 이종현 소장은 지금까지의 정부 대응에 대해 “씨프린스 사고 이후 재정과 인력이 충분히 투입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번 사고를 보면 잘 준비돼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정부에서 뒤늦게나마 본격적인 방재와 복원을 위한 기초 조사에 들어간 것은 이런 점에서 고무적인 일이다. 해양수산부는 지난 12월 21일 2차 오염 예방과 생태계 조기 복원을 위한 전문방재 체제 수립 필요성에 대한 국제 공동조사단의 권고를 받아들여 캐나다 해안오염방재평가기술팀(SCAT) 6명을 초청하고 국내 전문가, 지역주민, 환경단체 등이 참가하는 해양오염평가작업단을 구성했다. 평가작업단은 12월 30일부터 1월 9일까지 피해 지역 40여 곳에 대한 현장 조사를 실시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방재와 생태계 복원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까. 지난 11일 오전 10시 해경, 방재조합, 방재업체, 국제유조선선주오염협회(ITOPE), 한국해사검정(KOMOS) 등이 참석한 자리에서 캐나다 전문가들이 제안한 방법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사고백서 만들어 연구자 공유토록
캐나다 전문가들이 제안한 복원 방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방벽이나 제방 등 해안 인공구조물에 대해서는 고온고압 세척방식을 적용하여 기름을 제거한다. 일반적으로 고온고압 세척방식은 생태계에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큰 바위나 인공구조물을 제외하고는 최대한 사용을 제한하는 것이 원칙이다. 인공구조물의 경우 생태계 피해 우려가 적고 날씨가 풀리면 구조물에 스며든 기름이 새어나와 추가 오염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방법을 사용해서 미리 기름을 걷어낼 필요가 있다.

암벽에 대해서는 최대한 수작업을 통해 1차 방재를 하고 자연정화에 맡긴다. 모래사장에는 필링(pilling) 기법을 적용한다. 필링 기법이란 백사장에 해안선과 나란한 방향으로 여러 줄의 고랑을 파서 모래 속에 스며 있는 기름이 모이게 한 다음 파도에 씻겨나가게 하는 방법이다. 이때 파도에 쓸려나간 기름을 흡수하여 제거할 수 있도록 바깥 해안에는 펜스를 설치하고 오일 흡수제를 사용해야 한다. 바닷가의 자갈 지역에는 저압의 물을 뿌리는 플러딩(flooding) 기법을 사용한다. 이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펜스와 오일 흡수제를 사용하여 물에 씻겨 흘러나온 기름을 걷어낸다.

기름을 분해하는 능력을 가진 미생물을 도입하는 방법도 있다. 이날 브리핑에 참가한 방재협회 관계자는 기름을 분해하는 능력을 가진 미생물 도입에 대한 견해를 묻기도 했다. 캐나다 전문가들은 미생물 사용의 경우 국제적으로 성공한 사례가 보고된 적이 없어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정부 차원의 대책안이라고 하지만, 시안일 뿐 최종안은 아니다. 여러 가지 방재와 복원 방법 가운데 어떤 것을 결정할지는 주민들이 결정해야 한다. 결정 과정에서는 지역 주민들의 이해관계가 엇갈릴 우려도 있다. 구체적인 방법에 따라 적용 가능한 지역과 시기가 달라지는데, 태안 지역의 경우 환경 복원은 곧 주민들의 경제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국내 전문가들의 견해는 복원을 서둘러서는 안 된다는 것과 장기적인 모니터링을 통한 데이터 축적의 필요성으로 모아진다. 전남대 지구환경과학부 전승수 교수는 전문방재에 대해 “아직 조금 이르다”고 평가했다. “초기 방재의 종료 시점은 정의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지만, 대체로 손으로 닦아낼 수 있는 작업이 끝난 상태를 기점으로 삼을 수 있다. 초기 방재가 종료되면 몇 달간 정밀조사를 통해 상황을 진단한 다음 전문방재에 들어가야 한다. 기름 유출로 인한 피해에 대해서는 국제적으로 공인된 복원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닌데다 각 나라의 환경과 기후 조건에 따라 대응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충분한 시간을 두고 협의해야 한다.”

녹색연합 백용해 박사는 1995년 씨프린스호 사고 후 12년이 지났는데도 제대로 된 데이터가 축적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씨프린스호 사고 때 충분한 데이터를 축적해두었어야 한다. 환경 복원은 몇 년 안에 끝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장기적인 변화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면서 데이터를 만들어야 한다. 내가 알기로 정부는 물론이고 학계에서도 그런 자료가 없다.” 인하대 해양학과 홍제상 교수도 이번 기회를 통해 기름유출 사고에 대비한 자료를 만들어야 할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번 사고를 경험으로 백서를 만들어야 한다. 사고 발생 시점부터 시작해서 피해 상황과 복구 상황을 꼼꼼하게 기록해야 하고, 이를 최대한 많은 연구자가 공유할 수 있도록 개방해야 한다.”

주민과 자원봉사자들의 노력으로 눈에 보이는 기름띠는 사라져가고 있다. 그러나 기름과의 싸움이 언제 끝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전승수 교수는 “1989년 엑슨 발데즈호 사고가 났던 지역에서는 아직도 기름이 흘러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태안┃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