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원어민 영어강사 ‘품귀현상?’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취업비자 강화하자 학원가 ‘볼멘소리’… 시민단체 “불법· 자격미달 강사 여전”

"원어민 영어 강사 지원자가 현저히 줄었습니다. 반발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미국 같은 경우 ‘우리가 무슨 범죄자냐’는 입장인 것 같습니다. 또 영사 인터뷰 제도가 문제되고 있습니다. 어떤 곳은 하고 다른 곳은 안 하고…. 하려만 다 하든가. 영사들이 그 일만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최창진 한국학원총연합회 외국어교육협의회(이하 외교협) 총무이사·건대 민병철어학원 원장이 전하는 학원가의 불만이다. 외교협에 속해 있는 학원은 서울에만 1200여 개. 지방까지 합하면 6500여 개에 달한다.

법무부가 관련 제도 강화 조치를 발표한 것은 지난해 11월 30일. 원어민 회화지도(E-2) 사증 인정서 발급 때 범죄경력증명서와 건강진단서 제출을 의무화한 것이 골자다. 새 제도는 12월 15일부터 실시되었고, 종전에 비자를 받은 경우는 올해 3월 15일까지 유예되었다. 무자격 강의 및 마약 흡입 등 탈법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 법무부 쪽 설명이다.

범죄경력증명서 등 제출 의무화
학원가의 주장에 따르면 이 조치 이후 원어민 영어 강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워졌다. 특히 지방에서는 원어민 강사를 구하지 못해 문을 닫는 학원도 늘어나고 있다. 제한된 인력을 두고 학원 간 유치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현재 E-2비자로 국내에 취업하고 있는 원어민 강사인력은 1만7000여 명. 인원 수급이 안 되다 보니 리쿠르팅 업체들도 실적을 올리기 위해 ‘학교에 있든, 학원에 있든’ 좀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해 인력을 빼돌리는 데 급급하다고 주장한다. 학원가의 원어민 강사 부족 현상에 대해 외국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해결책은 간단하다. 한국 학원들이 탈세하지 않은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고,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 등 법적 혜택을 보장하고, 좀 더 많은 휴가기간을 주고 임금을 올리면 된다.” 한 한국 취업 관련 사이트에서 가장 많이 지지를 받은 의견이다. 또 다른 외국인은 “한국 정부의 E-2비자를 둘러싼 소동은 나온 지 하루 만에 철회된 차량용 유아탑승장치 의무화 조치를 떠올리게 한다”고 말한다. 학원가의 반발로 강화된 비자제도가 무력화되지 않을까 하는 관측이다.

E-2비자 제도 강화는 한국 내 외국인 직업 관련 커뮤니티에서 가장 큰 이슈다. 범죄경력증명서를 받기 위해서 외국으로 출국해야 하는지, 온라인으로 처리하는 것이 가능한 지 수백 건의 토론이 현재 진행 중이다. 시행 한 달. 범죄경력증명서와 건강진단서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을 얻고 있다.

하지만 유예기간 없는 시행이 문제라는 것이 학원가의 주장이다. 최 이사는 “외교협 회원사들로부터 지금도 계속 관련 문의 전화가 오고 있다”고 말한다. “회원사들도 그렇지만 출입국관리사무소도 변화한 내용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제도 변경 전에 E-2비자를 발급받은 원어민강사는 비자 연장 신청 때 서류 제출을 3월 15일까지 유예하는 조치를 받았거든요. 그런데 ‘출입국에서 어쨌든 떼어오라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는 문의입니다. 사실 제대로 교육할 시간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조치를 환영하는 단체들의 시각은 다르다. 네이버에 개설된 카페 ‘불법 외국어 강사 퇴출을 위한 국민운동’(이하 국민운동) 운영진과 회원들은 ‘저질·부적격 원어민 강사’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이 카페의 매니저 이은웅씨(38)는 “학원 측에서는 범죄경력증명서를 떼어오는 데 2개월이 걸린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제도 시행 전 들어와 있는 경우 3월 15일까지 시행을 미룬 것 아니냐”라며 “학원 강사 수급에 문제가 있다고 실시된 제도를 흔들어 부적격 강사의 범죄가 나타난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이냐”고 반문했다. 김영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정책기획과 사무관은 “E-2비자와 관련된 제도 개선도 몇 년 전부터 검토해온 것이며 외교통상부·교육인적자원부 등 정부 당국과 학원연합회·학교 측 등 이해 당사자와 의견 조율을 거쳐 온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부적격 영어 강사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E-2비자의 자격요건 강화는 최소한의 안전망인 셈이다. 여행이나 기타 비자로 입국한 외국인에 의한 불법 과외나 학원 행위는 여전히 큰 규모로 존재한다. 관련업계에서는 원어민 영어 강사로 활동하는 인력규모를 3만여 명으로 추산한다. E-2비자를 받아 학교나 학원 등에 취업한 1만6000여 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거의 전부 불법이다. 문제는 이들의 단속이 쉽지 않다 보니 대부분 ‘첩보’에 의한 단속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이씨와 국민운동카페 회원들은 정책적 개선과 함께 불법·부적격 강사에 관한 제보를 받아 관련기관에 수사를 의뢰하는 활동을 해오고 있다. 이씨는 “여행 비자를 통해 들어와 불법 파트타임을 하는 경우나 관광비자로 입국해 불법 강습을 하는 경우 등의 사례가 지금도 종종 제보되고 있다”며 “국적을 속이고 불법 체류하다 적발되는 경우, 학원들은 당장의 이익에만 관심이 있지, 피해를 입는 학생들의 보호에는 관심을 별로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양질의 인력 확보 방안에 입장차
‘양질의 원어민 영어 강사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를 놓고는 정부당국, 학원계, 관련단체 모두 다른 해법을 내놓고 있다. 김 사무관은 “원어민 강사의 규정에 해당하는 영어가 모국어인 나라는 미국이나 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 7개에 지나지 않는 반면 공용어로 채택한 나라는 40여개국에 달한다”며 “원어민 영어 강사 수급이 항상 어려울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들 공영어권 나라들까지 확대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비자정책에 한해 ‘시장원리’에 맞춰 제한을 풀겠다는 복안이다. 여기에 최근 무라드 알리 파키스탄 대사가 “자격 있는 파키스탄인에게도 영어 강사용 비자를 내달라”고 법무부 장관에게 편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그러나 학원계의 입장은 회의적이다. 최 이사는 “현재 국민정서상 영어문화권 중 뉴질랜드나 호주도 영국식 액센트가 강해 기피하는 상황인데 다른 국가 출신 강사를 누가 쓰겠는가”라며 “인력이 없어 피치 못해 쓸 수는 있지만 정상적 영어 교육기관이라면 학원의 경우 고용할 가능성이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은웅씨는 “사실 양질의 강사 수급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영어 구사 능력에 따라 계급이 갈리는 사회 풍조에서 원어민 영어 강사 우대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며 “공교육에서 이런 수요를 흡수해서 모든 사람이 영어를 배울 수 있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바로가기

주간경향 댓글 정책에 따라
이 기사에서는 댓글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