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당신의 작은 생각이 독도를 지킨다

지구촌 곳곳서 벌이는 자발적 홍보… 우호적 국제여론 조성에 더 효과적

독도 문제로 한·일 관계가 또다시 요동치고 있다. 지난 14일 일본 문부과학성이 중학교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 영유권을 강화하는 주장을 명기하자, 여론의 분노는 순식간에 비등점을 향해 치달았다. 정치권은 소란스럽게 대책을 쏟아냈지만 실속 없이 생색만 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일본의 도발에 일희일비하는 대신 장기적인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하는 것은 오히려 정치권이 아니라 시민들이다. 열정 하나로 독도 문제를 공론화하는 데 힘쓰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들은 독도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의 열쇠는 한국에 우호적인 국제여론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해외언론에 난 한국 홍보 광고
7월 9일자 뉴욕타임스 A15면에 “DO YOU KNOW?(당신은 알고 계십니까)”라는 제목의 광고가 실렸다.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알리는 내용이었다. 인기 가수 김장훈씨가 광고 비용을 전액 부담한 것으로도 화제가 된 이 광고는 고려대 환경생태공학과 대학원에 재학 중인 서경덕(34)씨의 작품이다. 이번 광고가 처음은 아니다. 그는 2005년 7월에도 “DOKDO IS KOREAN TERRITORY(독도는 한국 영토다)”라는 제목의 광고를 냈다.

지난 9일 뉴욕타임스에 독도 광고를 낸 서경덕씨. <우철훈 기자>

두 차례 독도 광고로 일반인들에게 ‘독도 지킴이’라는 인상을 심어주었지만, 그는 자신을 “독도 전문가가 아니라 한국 홍보 전문가”라고 소개한다. 그가 해외 언론에 낸 다른 세 번의 광고를 보면 과장이 아니다. 2005년 11월 월스트리트저널에 동해 표기 광고를, 2007년 4월에는 워싱턴포스트에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 광고를 냈고, 올해 2월에는 뉴욕타임스에 동북공정을 반박하는 광고를 실었다.

성균관대 조경학과 93학번인 그가 대외적인 한국 홍보의 절박함을 깨달은 것은 1996년. 배낭여행을 하는 동안 만난 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서 너무나 모른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어떤 이는 “한국에도 독자적인 언어가 있느냐”라는 말까지 했다. 한 번이라도 그를 만나본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적극성과 과감성이 발동했다. ‘에펠탑 아래 광복절 행사’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이다. 그는 여행하며 만난 한국인 여행자를 일일이 붙들고 “8월 15일에 에펠탑 아래에서 행사를 연다”고 입소문을 퍼뜨렸다. 놀랍게도 당일 500여 명이 모였다. 그는 “에펠탑 아래 모여 애국가를 불렀다. 사람들의 눈빛이 정말 맑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한국에 돌아와 PC통신에 이 소식을 올렸고, 이후 행사는 여행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매년 열렸다. 1990년대 중·후반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던 이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보았을 에펠탑 아래 광복절 행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2001년 제대 후 서씨의 행보는 더욱 과감해졌다. 그는 한 TV 프로그램에서 잔디로 된 옷을 입고 다니는 미국인을 보고 무작정 뉴욕으로 떠났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개막식에 김대중 대통령이 잔디로 만든 재킷을 입고 나타난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번개처럼 떠오른 것이다. 뉴욕 한복판에서 잔디옷의 주인공을 수소문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는 “넉 달 동안 전단지를 돌리다가 포기하고 사설탐정을 고용하니 하루 만에 찾았다”고 말했다.

서씨는 독도 문제와 관련해 일본의 전략에 휘말리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씨는 “일본 문부성의 독도 영유권 강화 명기는 후쿠다 총리가 일본 우익의 지지를 받으려는 정치적인 꼼수”라며 “독도 문제든 동북공정이든 해외에 우리 쪽 주장을 많이 알려 국제 여론을 우리 편으로 만드는 게 유일한 해법”이라고 말했다. 현재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 진행 중인 희망 모금으로 모인 돈은 서씨가 내년 크리마스 시즌을 겨냥해 준비 중인 CNN과 BBC 광고에 쓸 예정이다.

지구를 한 바퀴 돈 ‘독도 라이더’
‘독도 라이더’ 김영빈(25·서울대 경제학 4)씨는 2006년 3월 2일부터 10월 19일까지 모터사이클을 타고 지구를 한 바퀴 돌았다. 미국 주요 도시를 시작으로 중부 유럽과 동유럽을 거쳐 터키, 이란, 파키스탄, 중국을 관통하는 238일간의 여정이었다. 버클리 대학 계절학기에서 만난 김상균(27)씨, 모터사이클 동아리 후배 홍승일(23)씨, 군복무 시절 선임병이었던 이강석(27)씨가 함께 했다.

모터사이클로 238일간 독도를 알리는 세계일주를 한 독도 라이더들. 왼쪽부터 홍승일·김영빈·김상균·이강석씨. <사진제공 독도라이더>

대장정의 씨앗이 뿌려진 때는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정하면서 논란이 벌어진 2005년이다. 국내 여론은 들끓었지만 국제사회의 관심은 미미했다. ‘세계를 일주하면서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알리는 동시에 세계인과 만나면서 라이더 개인의 정신적 성장을 도모한다’는 원칙을 정하고 준비하기 시작했다. 모터사이클을 택한 것은 그것이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자신들의 열정과 역동성을 드러내기에 알맞은 수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준비하는 데만 꼬박 1년이 걸렸다. 우선 독도 문제를 천착하는 학자들과 독도수호대 등 시민단체를 찾아 관련 지식을 축적했다. 어느 정도 지적인 토대를 마련했다는 판단이 든 다음부터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한편 두 달 동안 사물놀이를 배웠다. 모터사이클에 익숙하지 않았던 김상균씨와 이강석씨는 모터사이클 운전을 따로 연습해야 했다.

해외 거주 한국인과 외국인에게 큰 호응을 받긴 했지만, 라이딩 내내 육체적인 피로와 수면 부족에 시달렸다. 특히 당시 월드컵이 열리고 있던 독일에서는 경기 일정에 맞추느라 5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었다. 2006년 9월 무렵 이란을 거쳐 파키스탄으로 넘어갈 당시에는 대원들이 모두 고열과 설사에 시달렸다. 김씨는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었다면 일정을 소화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처음에는 그저 세상을 좀 더 많이 알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는데, 라이딩을 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하는 일에 신념이 생겼다”고 말했다.

김씨는 애국청년이라는 수식어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애국적 파시즘에는 반대한다. 거기에는 전체를 위해 개인을 희생한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라이딩은 희생이 아니었다. 일본의 제국주의적 야욕도 문제지만, 한국인들에게도 제국이 되고 싶은 욕망이 있지 않은지 자문할 필요가 있다. 지난 몇 년 사이 한·중·일 삼국이 역사 문제로 서로 협력하지 않고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역사 문제와 관련하여 일국 중심주의를 경계하는 그의 문제의식은 한·중·일 청년이 참여하는 아시아 연합 프로젝트(Asian Union Project)라는 이름으로 현실화하고 있다. 김씨는 “독도 라이딩을 하면서 배타적 민족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유럽인처럼 아시아 공동체라는 인식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내년에는 한·중·일 청년들이 환경, 에너지, 빈곤 등의 문제를 놓고 대화하는 모의정부를 꾸릴 계획이다.

해외교포 대상 독도 아카데미
반크와 독도수호연대 등 기존 시민단체도 해외 홍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지난 18일 개교한 독도수호연대 주최 독도아카데미 5기에는 이전과 달리 해외 유학생과 해외 교포가 대거 참여했다. 고창근 독도수호연대 집행위원장은 “일본이 전 세계를 상대로 체계적인 홍보 활동을 펼쳤음을 감안할 때 우리도 이제는 마케팅 차원에서 독도 문제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유학생이나 한국인 2세 청년들이 각 대학 도서관의 관련 도서에 독도와 동해 표기를 압박할 수 있다”며 “5기 과정에 참여한 학생들이 돌아가서 이 운동을 동시다발적으로 전개한다면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독도 아카데미 5기 과정에 참가하고 있는 김기홍(20·노스웨스턴대 재료공학과 2)씨는 2005년 시마네현 조례 제정 파문 때 외국 친구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해 아카데미에 참석한 사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해온 그는 “아직 한국 정부는 준비가 많이 부족한 것 같다”며 “미국으로 돌아가면 도서관에 청원하거나 교내 신문에 기사를 싣는 방법으로 독도 문제를 알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방학 동안 반크 사무실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심유경(19·인디안 스프링스 스쿨)양과 남예지(19·밀 크릭 하이스쿨)양도 민간 외교관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미국에서 태어난 심양은 고등학교 기숙사의 외국인 친구들에게 한국 음식을 만들어주고 플룻으로 아리랑을 연주하면서 동해와 독도 표기 문제를 바로 알리는 일을 해왔다. 남양은 “외국인 중에는 아직도 한국이 일본이나 중국의 속국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이들도 있다”며 “일본인 친구들과 독도 문제를 토론하다 독도 관련 지식이 부족하다는 걸 알고 반크 사이버 외교관 과정을 이수했다”고 말했다. 남양은 현재 반크 사무실에서 해외 웹사이트에서 독도 및 동해 관련 표기 오류를 찾아내는 일을 하고 있고, 심양은 반크 외국인 회원들에게 나눠줄 영문 책자를 만들고 있다.

독도의 유일한 정주민인 김성도·김신열씨 부부와 손자 김환군을 중심 인물로 다큐멘터리 ‘미안하다 독도야’를 제작 중인 최현묵(47) 감독도 시민 독도 지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독도가 왜 한국 영토인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다”며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지만 제3자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김장훈씨가 내레이션을 맡기로 한 이 영화의 제목에 왜 “미안하다”는 말이 들어가 있는 것일까. 최 감독은 “독도는 뉴스가 사라지면 금방 잊히는 섬으로 독도를 지킨다는 말은 낯간지럽다”며 “먼저 미안하다고 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독도에 대한 관심은 거대담론 속에서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 실천해야 한다는 뜻이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