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자유주의진보연합 ‘진보간판’ 성공할 수 있을까

뉴라이트전국연합 출신 조직… ‘국회의원 감시’ 등 활동계획

7월16일에 창립한 자유주의진보연합. 공동대표는 뉴라이트전국연합 사무처 사람들과 뉴라이트운동에 참여해 온 기업인들이 맡고 있다. <자유주의진보연합>

"민주노동당 논평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다음 아고라에 ‘청원’을 냈던데, 자유주의진보연합이라는 이름을 쓰는 것을 반대한다는 겁니다. 진보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나눠쓰든지…. 아니면 자신들도 진보라고 이름에 넣든가.” 변철환 자유주의진보연합 공동대표의 말이다.

지난 7월 16일, 보수일간지에 실린 한 광고가 눈길을 끌었다. ‘21세기 자유의 종을 울려라! 자유주의가 진정한 진보다’라는 타이틀을 내건 이 광고는 민주당, 진보신당·민노당, 민주노총, 전교조, 진보연대가 과연 진보냐는 도발적인 질문을 내던졌다. 광고를 낸 이들은 자유주의진보연합. 이날 오후 한국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창립식을 알리는 광고였다. 출범식은 성황리에 열렸다. 이날 출범식에 참여한 서정갑 국민행동본부 본부장은 “오늘은 내 생애에 있어 가장 기쁜 날”이라며 “나는 항상 진보적이었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항상 ‘나만큼 진보적인 사람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말하고 다닌다”고 말했다. ‘진보’로 커밍아웃한 셈이다.

자유주의진보연합의 진보는 ‘어드밴스’
이날 행사 참석자들은 임헌조 공동대표의 ‘자유주의’ 선창에 따라 ‘진보연합’을 외치는 퍼포먼스를 했다. 광고처럼 자유주의가 곧 진보라는 주장이다.

반향은 인터넷에서 먼저 나왔다. ‘한가혜’라는 블로거는 ‘자유주의 진보연합? 너 뭐야~?’라는 짧은 논평 글에서 “보수라는 단어도 붙여주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이제 진보마저 삼키려 든다”며 “그래 삼켜라, 진보. 그까이꺼 즐쳐드삼”이라고 비아냥했다. 누리꾼들은 ‘진보’라는 화두를 두고 우파진영이 벌이는 프레임전쟁을 한때의 헤프닝으로 간주하는 듯 했다.

이날 출범식에 참석한 이들의 면면을 보면 서정갑 대표와 임헌조 전 뉴라이트전국연합 사무처장뿐 아니라 뉴라이트전국연합 활동으로 알려진 얼굴이 여럿 눈에 띈다. 자유주의진보연합은 누가 만들었고, 또 앞으로 어떤 활동을 펼칠 계획일까.

Weekly경향은 출범식 직후 자유주의진보연합의 변철환·최진학 공동대표를 각각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단체 출범 이전에는 뉴라이트전국연합 중앙사무처에서 대변인과 정책실장을 각각 맡았던 인물들이다. 변철환 대표는 “‘진보’라는 이름을 두고 벌어지는 프레임 전쟁”이라는 지적을 부인했다. 처음 단체를 구상할 당시엔 진보라는 단어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변 대표가 “포함시키자”고 하여 논의를 주도했다는 것이다. 다음은 변 대표의 말. “대한민국을 위해서도 진짜 진보를 해보자는 거다. 진보라는 타이틀을 걸고도 국민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보자는 것이 우리 의도다.”

그렇다면 먼저 개념 규정이 필요하다. 변 대표에게 ‘진보’란? “100이 있으면 100을 다 진보시키겠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 역량엔 한계가 있다. 세상의 3%만 바꿔도 변화는 온다. 일단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국회의원 개개인 감시에 역량을 집중시킬 것이다.” 변 대표에 따르면 자유주의진보연합이 선보일 ‘새로운 진보’의 단초는 국회의원 개개인에 대한 사실에 근거한 감시다. “이를테면 천정배를 보라. 인권을 말하면서 대한민국 인권을 자기가 다 한 것처럼 말하는데 이명박 대통령에게 이명박씨가 뭔가. 그건 존중해 부르는 것이 아니다. 인권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할 말이 아니다.” 그 다음으로 볼 인사는 추미애 의원이다.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으로 비정규직의 권리를 위한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재 비정규직 문제는 이미 참여정부 때부터 시작됐는데 마치 현 정권의 잘못처럼 몰아간다는 주장이다. 추 의원의 과거 발언 등을 조사해 자유주의진보연합 홈페이지에 ‘공익을 위한 사실’만 공시할 계획이다. 그렇다면 자유주의진보연합의 활동 방향은 야당 의원들의 과거 조사? 변 대표는 야당 의원뿐 아니라 여당 의원 감시도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덧붙였다. “참여연대와 같은 좌파단체가 말하면 한 귀로 듣고 흘리지만 우리 같은 우파 단체가 비판하면 저쪽(한나라당)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자유주의진보연합이 보수일간지에 낸 광고. 인터넷 반응은 한때의 해프닝으로 치부하는 분위기다.

최진학 대표는 자유주의진보연합이 내거는 진보는 프로그레시브(progressive)가 아니라 어드밴스(advance)라고 말했다. 단체 영문이름도 그래서 Freedom Advance Association으로 정했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진보를 프로그레시브로 해석하고 비판하는 것은 잘못”이라는게 그의 주장이다. 최 대표는 ‘잘못된’ 보수-진보의 대립구도가 한국사회에 만연해 있다고 주장했다. 이 프레임에 갖혀 있는 것은 조·중·동도 예외가 아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진보의 역사는 정확히 말하면 대한민국 공산주의 좌파의 변천사라고 해야 한다. 진보라는 개념을 두고 좌파들은 스스로 혼란을 자초했다. 과거 ‘좌파=진보’라는 등식은 어느 정도 인정한다. 그러나 현실사회주의가 무너진 뒤 여전히 사회주의에 집착하는 그들을 진보라고 할 수 있는가. 우리는 자유와 번영을 담보하는 자유주의만이 진정한 진보라고 주장한다.”

“촛불시위는 좌파의 주도면밀한 작품”
그는 대한민국 ‘좌파’가 퇴보·수구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선출된 이명박 정부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세력을 어떻게 ‘대한민국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헌법1조’ 노래가 끊임없이 울려 퍼진 지난해 촛불시위는? 최대표의 답. “좌파 세력이 주도면밀하게 계획한 작품이었다. 전교조는 이미 촛불시위 이전에 반FTA, 쇠고기 수입 반대를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전교조가 어린 학생들을 선동한 것이다.” 그는 덧붙여 “지난해 진보연대가 제시한 사업계획서를 보면 날짜별로 단계적으로 투쟁 수위를 올린다는 계획이 있다”고 말했다. 과연 촛불시위는 진보연대의 ‘각본’에 따라 진행된 시위였을까. “자기들도 통제 못할 판을 만든 것이다. 나도 저렇게 될지 몰랐다는 것은 책임 회피다. 지식인이나 시민사회 단체 리더라면 그런 식의 불법집회는 만들어내지 말아야 했다.”

최 대표는 국회의원 감시와 아울러 ‘진보주의자’로서 이승만을 재발견하는 사업 역시 자유주의진보연대가 앞으로 할 중요한 과제라고 밝혔다. “조봉암 선생이 진보당을 만들어 ‘진보’를 가져갔는데, 조봉암의 진보도 거짓 진보다. 대한민국의 공산화를 막아낸 이승만 대통령이야말로 진보다. 그에 앞서 무엇보다도 가장 진보적인 행위는 대한민국의 건국이다. 그동안 좌파들에 의해 왜곡됐던 이 분에 대한 모든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 말하자면 ‘이승만 바로알기’ 사상운동을 벌일 것이다.”

자유주의진보연합의 공동대표는 이들 이외에도 김종규 전 한국청년회의소(JC) 인천지부 수석 부회장, 이용원 동서디지털방송 대표이사(전 뉴라이트 방송통신정책센터 인터넷정책위원장) 등이 맡고 있다. 이들은 어떤 관계일까. 임헌조 대표와 최진학 대표는 인천대 85학번 동창(섬유공학과, 철학과)이다. 김종규 대표는 다시 최 대표와 막역한 친구 사이다. 이용원 대표와 관련해 최 대표는 “뉴라이트운동을 할 때부터 친분을 쌓아왔던 분”이라고 소개했다. 변철환 대표는 재수를 한 87학번이다. 그는 “1987년에도 데모에 한 번도 참여하지 않았다”며 “날 때부터 우파였는 모양”이라며 웃었다. 그는 “임헌조·최진학 공동대표는 전향한 극렬운동권 출신이고, 기업인 출신인 김종규·이용원 공동대표가 서로 걸어온 길이 다르다. 그래서인지 단체 입장을 놓고 토론을 벌일 때 생산적인 결과가 나온다”고 말했다. 또 하나 이들을 묶는 고리가 있다. 바로 김진홍 목사다. 이들 모두는 직·간접적으로 김 목사와 인연을 맺고 있었다.

뉴라이트 김진홍 측근의 조직적 이탈?
김 목사는 지난 2005년 11월 뉴라이트 전국연합 결성을 주도했다. 그런데 지난 4월 김 목사는 뉴라이트 전국연합 상임공동대표 자리에서 고문으로 물러났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은 이후 집단지도체제로 돌아섰다. 변 대표는 “(자유주의진보연합은) 6월 한 달 간 준비 과정을 거쳐 만든 단체”라고 말했다. 표면적으로는 뉴라이트전국연합에서 김 목사 측 인사들의 조직적인 탈퇴다.

자유주의진보연합은 창립을 주도한 김진홍 목사 측 인사가 조직적으로 이탈해 만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사진은 2005년 11월7일 뉴라이트전국연합의 창립식. <박민규 기자>

그 과정을 지켜본 한 보수인터넷 매체 관계자는 “그동안 ‘뉴라이트’라는 이름에 ‘쭉정이’가 너무 많았다”고 말했다. 뉴라이트전국연합 주위로 정치 지향 인사들이 너무 모여들다보니 내부 잡음이 심각했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전언이다. 뉴라이트전국연합 현 집행부의 공식 입장은 “1기 집행부 체제가 끝났고 2기 집행부 체제를 모색 중”이라는 것이다. 김진수 뉴라이트전국연합 대변인은 “1기 집행부들이 부문운동으로 매진하겠다고 해서 나간 것”이라며 “이후 도울 것은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속사정은 다르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의 한 관계자는 “자유는 그렇더라도 진보라는 아젠다가 집단과 조직이 그쪽에 들어간다고 바꿀 수 있는 내용인지, 진보를 표방하면서 보수가 마치 낡은 것처럼 이미지화되는 것 등이 우려된다는 원로의 지적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어찌됐던 ‘자유주의진보연합’의 ‘진보간판’은 시민권을 얻을 수 있을까. 일단 낙인처럼 드리워진 ‘뉴라이트=친일파’ 도식을 넘어서야 한다. 뉴라이트전국연합 시절부터 이들은 ‘뉴라이트운동은 곧 친일파’라는 비판을 억울해 했다. 변 대표는 “뉴라이트라고 다 뉴라이트가 아니다. 우리는 교과서포럼 등을 이끌고 있는 뉴라이트싱크넷·시대정신 그룹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강조했다. 일반적으로 시대정신 그룹은 사상운동, 뉴라이트전국연합은 대중운동을 각각 중심으로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양자 모두 관련성을 부인해 왔다. 심지어 뉴라이트운동 초기에는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에 대한 입장차로 서로 비난전을 벌이기도 했다. 시대정신 그룹에 속하는 한 인사는 ‘자유주의진보연합’의 출범과 관련해 “개인적으로 모르는 사이는 아니지만 그들이 진보를 표방했든 자유주의를 표방했든 간에 선택하는 것은 그들의 자유”라며 “각자의 길이 다르다”고 말했다.

소위 기존의 ‘진보진영’ 반응은 어떨까.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대표는 “진보 개념이 상대적이라는 데는 동의한다”라면서도 “과거 국가사회주의체제였던 동유럽에서 자유주의는 개혁의 의미를 지닐 수 있었지만 현재의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다툼의 여지가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보수는 말 그대로 현 상태가 행복하니 지켜야 한다는 것”이라면서 “과거 자기들과 같은 사람들이 한국사회를 진보시켜 왔다는 주장은 동의할 여지가 있을진 몰라도 과연 앞으로도 미래를 보면 그쪽이 진보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라고 덧붙였다.

보수·진보 담론과 관련해 여러 연구서를 펴낸 손호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일반적으로 진보는 프로그레시브를 의미한다. 서구 어느 나라에서도 자유주의자에게 프로그레시브라고 하는 경우가 없다”라며 “차라리 선진이라고 하면 또 모르되 진보라고 하는 고유명사 개념을 두고 시비를 거는 것은 무지의 소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승만 다시보기를 하기 전에 적어도 친일파를 척결하지 않고 반민특위를 해체한 것은 역사적 사실 아니냐”라며 “앞으로 나아간다는 의미로 진보를 내세웠더라도 과거에 집착하는 것이 과연 진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한국 진보세력연구> 책 펴낸 남시욱 전 문화일보 사장
“진보가 없으면 보수도 없다”

임석빈 인턴기자

남시욱 문화일보 전 사장은 대표적인 보수논객이다. 그런 그가 광복 직후부터 최근까지 ‘한국의 진보세력’을 연구한 책을 펴냈다. 건준과 인공, 남로당뿐 아니라 여운형·조봉암 등 근현대사의 대표적 좌파·진보인사를 비롯해 1980, 1990년대의 NL/PD논쟁과 비합법 전위조직까지 망라한 방대한 연구서다. 기자는 왜, 하필이면 지금, 그가 진보세력 연구서를 펴냈는지 궁금했다.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커피숍에서 남 전 사장을 만났다.

자유주의진보연합 사례에서 보듯이 보수와 진보 개념이 흔들리고 있다.
“보수와 진보와 관련, 내가 정의하는 것은 이념이 아닌 변화에 대한 태도다. 이를테면 사형제 폐지론에 찬성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대개 진보다. 동성동본 혼인금지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여성운동가이거나 대체적으로 진보다. 그렇다고 보수도 변화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가치를 지키며 발전하자는 것이다. 진보는 다시 많이 바꾸자는 쪽과 점진적으로 바꾸자는 쪽이 있다. 전자는 혁명적 진보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혁명적 진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마르크스주의 유물사관을 주장하는 사람들이었다.”

왜 진보세력을 연구하게 됐나.
“2005년 12월에 <한국보수세력 연구>라는 책을 펴냈다. 연구를 하다보니 보수나 진보가 상대적 개념이다. 우리나라엔 1920년대부터 사회주의 사상이 들어왔다. 1925년에는 아서원이라는 중국집에서 조선공산당이 발족했다. 1920년대만 하더라도 조선지식인들은 소련의 혁명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였다. 3·1운동 후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실망한 지식인들이 소련과 코민테른의 민족해방이론에 솔깃했다. 실제 한국의 민족주의 지도자들은 레닌도 만나고 자금을 지원받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좌우대립이 생겼다. 나는 진보가 없으면 보수가 없고, 보수가 없으면 진보가 없다고 믿고 있다. 이를테면 김구와 이동휘 선생의 대립 같은 것이다. 보수세력을 연구하다 보면 항상 진보세력이 따라 나온다. 그러다 보니 별도로 연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보는 어떤 길을 지향해야 하는가.
“마르크스·레닌주의 진보사관이 소련 붕괴로 파탄나니 ‘좌도 우도 아닌 진보’, 우파 진보 등 여러 진보가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서도 복지·분배주의를 표방하는 진보가 일찌감치 나타났다. 그러나 정통적인 좌파에서는 ‘저거는 가짜 진보다’라고 비판했다. 정통적인 이념진보가 파탄나니 이 사람 저 사람 모두 진보라고 한다. 일단 현재의 진보 연구에서 큰 줄기를 보면 우선 노무현식 진보를 예로 들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죽기 전까지 진보 연구를 했다. 유고를 보면 본인 스스로 ‘참여정부는 진보정부인가’라고 묻고 ‘역시 한계가 있다’라고 답했다. 다음으로는 뉴민주당플랜으로 대표되는 민주당의 신 진보 노선이다. 미디어 정국 때문에 토론도 못했지만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상대적으로 전통적인 낡은 진보 노선이다. 전 세계적으로는 앤서니 기든스가 정립한 제3의 길로 대표되는 유럽식 진보와 미국 민주당 및 진보정책연구소가 주장하는 미국식 진보가 있다. 한국의 진보도 분배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세계사적 조류에 눈뜰 필요가 있다.”

진보 세력에 대한 관심은 개인사로 보면 훨씬 더 오래전부터 시작된 걸로 보인다.
“학번이 54학번이다. (한국)전쟁 직후다. 서울대 정치학과에 들어갔는데 구두시험에서 공산주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더라. 동아일보(그는 동아일보 수습기자 1기생이다)에 들어갈 때도 그걸 물었다. 사실 우리에게 공산주의는 금단의 영역이었다. 내 친구 중에 심취한 사람도 있었다. 동기생 중에서도 이북으로 건너간 이가 있다. 6·25 당시 보도연맹사건으로 사람들이 처형 당하는 것을 봤다. 내가 고등학교를 대구에서 나왔는데 10.1 폭동 관련자를 처형하는 것을 봤다. 정치학은 결국 이념문제 아닌가. 관심을 안 가질 수 없었다.”

기자 시절에 조봉암 진보당 사건을 경험했을 텐데.
“경찰에 출입한지 3개월 정도 됐을 때다. 그때 재판소에 갔는데 ‘이것은 무리한 사건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기자이기 때문에 소문을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북한의 애국열사릉에 조봉암의 묘가 있기 때문에 대법원이 판단을 망설이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과거 북에서는 그를 배신자로 봤다. 과거사 위원회의 결론은 사건의 증인을 고문해 조봉암 선생에게 불리한 허위진술을 하게 했다는 것이다. 대법원에서 빨리 재심했으면 좋겠다.”

다른 대표적인 조직사건은 어떻게 보나. 통혁당 사건의 김질락씨는 과 후배인데.
“김질락씨는 잘 모른다. 책에 자세히 썼지만 통일혁명당 사건은 북에서 충분히 이용했다. 북에서는 체제 선전 목적에서 통혁당 인사들을 사형 받지 않게 하려고 여러 방면으로 구명 활동을 했다. 김종태의 경우 학교 이름까지 만들어졌다. 김질락씨는 배신자라고 제외됐다. 김씨는 죽을 때는 통혁당 당원으로 안 죽는다고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안됐다.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도 요새 같으면 사형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혁당 사건도 마찬가지다. 당시 사형을 막 시켰는데, 집권자 입장에서는 극약처방하지 않으면 좌익세력이 번진다고 판단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