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지금 대학은 권력·시장에 종속됐다”

이명박 정부 들어 3개 대학서 교수 자리 잃어 진중권씨 심정 토로

“대학은 정치와 경제가 잘못 돌아갈 경우 경고 메시지를 날려야 하는데 시장권력이 강해지면 그게 안 된다. 교수들도 할 말을 하는 게 아니라 국가나 기업에서 원하는 말만 해주게 된다. 그렇게 길들여지는 거다.”

진중권씨는 <미학오디세이>처럼 대중이 쉽게 읽을 수 있는 미학책을 써온 저술가이자 날카로운 현실 풍자로 유명한 논객이다. 그러나 그는 유독 ‘중앙대 겸임교수’로 불리기를 원했고, 언론도 그를 그렇게 불러왔다. 진씨도 언론도 앞으로는 더 이상 ‘중앙대 겸임교수’라는 타이틀을 사용할 수 없게 됐다. 중앙대가 최근 진중권씨에 대한 겸임교수 재임용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진씨는 이명박 정부 들어 3개 대학에서 교수 자리를 잃었다. 그는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자신에 대한 개별 대학 차원의 압박이 아니라 ‘좀 더 큰 그림’을 읽고 있었다. 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한 이튿날인 8월19일 진중권 전 중앙대 교수를 그의 거처가 있는 김포시에서 만나 저간의 심경을 들었다.

어제(8월1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가 나온 게 김 전 대통령 임기 첫해인 1998년이었다. 그때와 지금의 글쓰기 환경을 비교한다면 어떤 차이가 있나.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모두 심하게 비판했다. 거의 불경스러울 정도의 어조로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래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이 정부 들어 황당한 게 치사하게 보복이 들어온다. 예컨대 우익 매체들이 떠들면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는 게 아니라 권력이 그쪽과 손을 잡고 물리적으로 보복을 한다. 이 정권 들어서 카이스트, 중앙대, 한국예술종합학교 세 곳의 교수 자리가 날아갔다. 카이스트에서 잘릴 때도 권력의 입김이 작용했다.”

중앙대 재임용 탈락 소식은 언제 들었나.
“3주쯤 전이다. 당황스러운 게 나는 중앙대가 나를 필요해서 불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학교를 도와준다는 생각으로 갔고, 7년 동안 강의했다. 그런데 갑자기 더는 안 된다는 거다. 얘기를 듣고 나서 내가 더 이상 필요가 없나 보다, 그럼 관두자 라고 생각했다.”

학교 측에 항의했나.
“할 필요가 없다. 겸임교수라는 게 한 달에 100만원 받는 자리다. 택시비와 밥값을 빼고 나면 남는 게 없다. 경제적으로 의미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문제는 중앙대가 마치 내게 시혜를 준 것처럼 얘기한다는 것이다. 그게 아닌데 그렇게 말하니 불쾌하다. 하여튼 그냥 잊자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뉴스에 나오고 학생들이 항의를 하고….당혹스럽다.”
탈락과 관련해 ‘겸직기관 없음’이라는 이유 이외에 다른 이유도 있었나.
“그게 표면적인 이유이다. 나는 좀 더 큰 그림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방식이 한예종 때와 비슷하다. 한예종에서도 우익매체가 먼저 치고 나중에 권력이 들어왔다. 내 강의안까지 다 빼내고 주제 넘게 시비를 걸었다.”

박범훈 총장이 친MB 인사라는 것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좀 더 큰 그림이 있다. 자기 제자들을 데려다 정치인들 앞에서 공연하게 하고, 토종이 어쩌고 감칠맛이 어쩌고 하는 이런 말을 한다는 건 황당한 거다. 학생이 무슨 정신대인가. 내가 그걸 비판한 건 사실이지만 총장도 나중에 학생들에게 사과했다. 내가 총장을 비판했다는 것만이 다는 아닌 것 같다. 카이스트, 한예종, 중앙대를 연관시켜 보면 더 큰 그림에서 생긴 일이다.”

한예종 소송건은 어떻게 됐나.
“학교 측에서 1700만원을 반납하라고 했다. 그건 행정소송을 할 생각이다. 학교 측은 승산이 없다. 설령 문제가 있더라도 귀책사유는 학교에 있다. 정연주 KBS 전 사장 사건이나 미네르바 사건과 같다고 본다. 이기는 게 목적이 아니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해서 망신을 주겠다는 게 목적인 것 같다.”

중앙대 겸임교수 자리에 미련을 두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래도 강단을 떠나면 잃는 게 있을 텐데.
“학생들은 보고 싶다. 애정이 있었다. 학교는 ‘강사로 강의할 수 있는데 왜 겸임교수를 하려고 하느냐’라고 하는데 기가 막힌다. 한예종은 객원교수였다. 때깔 나는 걸로 치면 카이스트다. 하지만 나는 늘 ‘중대겸임교수’라는 타이틀을 썼다. 이번에 강사로 하라는 걸 하지 않은 이유는 서류를 또 내라고 해서이다. 중앙대 강사료가 시간당 2만5000원이다. 그 돈이면 택시비다. 난 차도 없고 면허도 없다. 그래서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2학기에는 연세대와 홍익대에서 강의한다.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은 많이 받는다. 그 중에서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만 한다. 대학 강의를 하면 강의와 세미나, 토론을 통해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다. 그걸 토대로 책이 나온다. 그런데 일을 (중앙대처럼) 그런 식으로 하면 내가 할 수 있겠는가.”

요즘 대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실 내 문제만은 아니다. 내 경우는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두 가지 권력이 있다. 국가권력과 시장권력이다. 국·공립은 한예종 사태가 대표적이다. 국가권력이 대학의 자율성을 해치고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교권까지 마구 무시했다. 사립은 시장권력이 문제다. 대학들이 완전히 정신을 잃은 것 같다.

갑자기 도서관을 크게 짓는다든지 시설이 좋아진다든지 하는데 요즘 대학에 가면 대학인지 쇼핑몰인지 알 수 없을 정도이다. 도서관에서 중요한 건 내용물이다. 정보 접근성을 어떻게 높이느냐가 핵심이다. 그런데 외형만 그럴 듯하다. 도서관에 고시준비나 취업준비만 한다. 참 안타깝다. 대학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거다. 대학은 국가와 협력을 하기도 하지만 국가를 비판해야 할 의무가 있다. 시장과도 협력을 해야 하지만 감시도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대학이 국가권력에 종속되고 시장에 종속돼 자율성을 잃고 국가와 시장이 원하는 일만 해주고 있다. 이렇게 되면 장기적으로 국가에 굉장히 큰 피해를 주게 된다. 국가권력이나 시장이 내다보는 미래는 5년이다. 근시안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교양은 10년, 20년, 100년을 쌓아야 하는 거다. 21세기가 콘텐츠 시대라고 하지만 우리가 일본을 따라가지 못한다. 일본 만화만 보더라도 그냥 만화가 아니다. 이런 차이는 인문학적 소양의 차이에서 나온다. 장기적으로 이런 콘텐츠를 육성할 시야를 확보하지 못하고 당장 쓸 수 있는 콘텐츠만 가져와라하는 식이면 소재가 고갈되고 미래를 대비할 수 없다. 시장의 근시안적 안목을 국가가 장기적 프로젝트를 세우고 극복하는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다. 딱 5년이다. 정권을 유지하거나 뺏는 것만 생각한다. 이러니 국가와 시장이 모두 근시안이 된다. 장기적으로 굉장히 큰 피해가 있을 것이다.”

정권이 바뀌면 국가권력의 문제는 완화되지 않을까.

“국가권력의 개입은 약해지겠지만 시장권력은 다르다. 김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의 문제는 경제정책이 한나라당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학은 정치와 경제가 잘못 돌아갈 경우 경고 메시지를 줘야 하는데 시장권력이 강해지면 그게 안 된다. 교수들도 할 말을 하는 게 아니라 국가나 기업에서 원하는 말만 해주게 된다. 그렇게 길들여지는 거다. 앞으로 중요한 건 제품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과 결합된 콘텐츠와 내러티브이다. 이건 인문학적 소양이 실용화되면서 나오는 건이다. 지금 인문학은 다 사라지고 있다. 어떻게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가. 기껏해야 삽질해라 하는 수준밖에 안 된다.”

올해 들어 일어난 일들 때문에 화병이 나지는 않았나.
“화는 잘 내지 않는다. 짜증은 많이 낸다. 지금도 짜증이 난다. 지금 이야기되고 있는 것 자체가 짜증이다. 마치 자기네들이 무슨 시혜를 준 것처럼….그런 틀 자체가 짜증이 난다. 가끔씩 미움 같은 게 일 때가 있다. 그때는 미워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미움은 자기 인격만 왜곡시킨다.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될 문제다 라는 생각으로 여유를 가지려고 한다. 진실은 언젠가 드러날 테니까.”

스페인으로 유학간다는 보도가 있었다.
“유학은 아니다. 출판사 도움을 받아 스페인에 가서 화가 프란시스 고야에 대한 책을 준비하려고 한다. 제목도 정해놨다. ‘솔로 고야’라고. 고야의 그림 제목이다.

스페인 체류 기간에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할 계획인가.
“2학기 강의가 끝나면 바로 출발할 생각이다. 일단 어학코스에 등록해 스페인어를 익힐 생각이다. 3개월에서 6개월 사이가 될 것 같다. 그 책이 끝나면 창작을 해볼 생각이다. 그동안 정치에 관한 글만 쓰느라 내면의 창작 욕구를 억눌러왔다. 문학과 철학과 과학과 미술이 하나로 융합된 책을 쓸 생각이다. 지금은 문자문화 시대가 아니라 영상문화 시대다. 책의 미래에 대해 하나의 전범이 될 만한 책을 쓰고 싶다. 문학이나 미술을 막론하고 여러 분야 작가들과 공동으로 작업하는 형태를 구상하고 있다.”

이 기간에 정치에 관한 글쓰기는 중단하는 것인가.
“모르겠다. 인터넷에 글쓰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작업하게 되면 글을 더 많이 올리게 될지도 모른다. 작업 모드에서 인터넷 서핑 모드로는 클릭 한 번이면 넘어간다. 게다가 해외에 나가면 더 자유롭게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은 블라인드 처리니 명예훼손이니 하여 짜증이 나서 차라리 돌아오지 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남미를 돌아다니거나 세스나 비행기 면허를 따서 아프리카 대륙을 횡단하고 싶기도 하다. 하고 싶은 일은 많다.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있었다. 한국은 재미있지만 피곤하다. 외국은 편한데 심심하다.

정권 때문에 한국 사회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나.
“요즘은 그런 생각을 좀 한다. 저 사람들이 이번에 나를 구속시키려고 하는 것 같다. 지금도 계속 소송이 몇 개나 걸리고, 학교에서 쫓겨나고. 이런 식으로 나를 억누른다면 내가 여기 있을 수 없다. 나도 표현욕이 있는데 이런 스트레스를 받으면서까지 여기 있고 싶지 않다. 그래서 망명할 생각도 했다. 일종의 내적 망명 같은 거다. 지금 저쪽에서 자를 수 있는 건 다 잘랐다. 그 다음에 뭐가 들어올지 모르겠다. 저치들 하는 일이 상상을 초월한다. 이 정도로 치고 들어오겠지 라고 생각하면 항상 그걸 넘어서 들어온다. 상식적으로 예상 가능한 수준을 훌쩍 넘어선다. 그 사람들의 몰상식이라는 건 거의 양아치 수준이다. 여기 있다 보면 피곤할 것 같다. 할 일도 못하고. 그래서 나가자는 생각을 자주 했다. 마침 또 나가게 됐다. 황당한 건 내가 투사는 아니지 않은가. 내가 뭘 했는가. 조직을 만든 것도 아니고 진보신당 게시판에 글 좀 올린 것 뿐이다.”

진 전 교수는 미학자다. 세상을 미추의 관점에서 보는가 선악의 관점에서 보는가.
“진·선·미가 다 중요하다. 참이냐 거짓이냐, 선이냐 악이냐가 다 중요하다. 그러나 나는 선악 코드로 보는 건 불편하게 생각한다. 그건 어떻게 보면 폭력적일 수도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데는 종교적 측면도 있다. 한 사람이 악한지 선한지는 인간이 판단하는 게 아니라 죽은 뒤에 신이 판단할 문제다 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선악의 기준이 굉장히 다르지 않는가. 자기에게는 선인 게 타인에게는 악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김 전 대통령 서거가 어떤 사람은 종교적인 경외의 대상이 되지만 어떤 이는사탄처럼 생각하기도 하지 않는가. 이렇게 다르기 때문에 선악을 말하기는 어렵다. 나는 그것보다 미학적 풍자를 택한다. 나쁘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촌스럽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한편으로 덜 폭력적이고, 그러면서도 강한 구속력이 있다. 니체의 말처럼 최고의 비판은 그 사람의 이상을 비웃어주는 것이다.”

<글·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