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국내 내부고발자 ‘파면과 징계’

개인적 고통의 연속 ‘조직의 보복’… 정신적 충격에 끝내 자살까지

"저의 작은 힘으로 부정부패를 조금이라도 막아보고 싶었습니다.”
이 말은 1990년 5월, 삼성 등 23개 재벌 계열사의 비업무용 부동산 보율비율이 43%로 드러났는데도 업계 로비를 받은 상부 지시로 감사가 중단됐다는 사실을 고발한 이문옥 전 감사원 감사관이 했던 말이다.

1987년 이후 민주화 진전과 함께 본격적으로 표출돼 세상을 바꾸고 사회를 뒤흔든 내부고발의 역사는 이 전 감사관의 양심선언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조직 구성원이 내부의 부정부패, 비리, 불법, 비윤리 행위를 알리는 행위’로 정의할 수 있는 내부고발은 1990년대 초만 하더라도 양심선언자라는 표현이 더 익숙했으며, 그때 내부고발 선구자인 1세대가 자리 잡고 있다.

1990년대 초 양심선언이 1세대

1990년에 재벌의 비업무용 부동산 보유 실태를 언론에 누출시켜 구속기소된 이문옥 전 감사원 감사관.

이 전 감사관, 1990년 10월 국군보안사령부의 민간인 사찰을 폭로한 윤석양 이병, 1992년 3월 제14대 총선 때 군 부재자투표 부정을 고발한 이지문 중위(필자), 같은 해 8월 제14대 총선 당시 자행되던 관권선거를 폭로한 한준수 전 충남 연기군수가 바로 그들이다.

공무상 비밀누설죄로 구속되고 파면처분 받은 이 전 감사관은 6년간의 법정 투쟁 끝에 1996년 4월 대법원으로부터 고발 내용이 직무상 얻은 비밀로 볼 수 없으며, 당시 부동산 투기 문제가 심각하던 상황에서 국민의 알 권리 등에 비추어 볼 때 이를 공개하는 것이 공익에 부합하다면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이 전 감사관은 같은 해 파면처분청구 소송에서도 승소하여 감사원으로 복직하여 감사교육원 교수로 근무하다가 1999년에 정년퇴직했다. 이후 경실련 경제부정고발센터 대표, 민주노동당 부대표 및 부패추방운동본부장, 공익제보자와함께하는모임 대표 등을 맡으면서 반부패 운동에 앞장서 왔다.

윤석양 이병은 “고문 협박에 굴복해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에 동참한 나약한 나에 대한 양심의 자책으로 인한 산물”이었다고 자신의 양심선언의 이유에 대해 밝힌 바 있다. 그는 당시 기자회견 후 특수군무이탈 혐의로 수배됐다가 2년 만인 1992년 9월 체포돼 이듬해 군 사법부에서 2년 실형을 선고받고 만기 복역 후 출소했다. 당시 윤 이병의 양심선언으로 보안사는 기무사로 개편되는 등 역할이 대폭 축소됐다.

필자는 군 부재자투표 부정 고발 직후 연행돼 구속됐다. 이 뿐 아니라 이등병 파면 조치됐다. 이후 4년 동안의 법정 투쟁 끝에 같은 부대 전역 장병들의 증언에 힘입어 1995년 2월 파면처분취소확정 판결을 받아 중위 신분으로 명예전역했다. 부정 시비가 끊이지 않던 군부재자투표제도는 같은 해 대선 때부터 영외투표로 개선됐다. 필자는 공익제보자와함께하는모임 부대표, 국민권익위원회 반부패 청렴교육 강사로 내부고발의 필요성을 전파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한준수 전 충남 연기군수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신분 보장을 위해 양심선언을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법원은 되레 선거법 위반 이유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1년의 유죄를 확정했으며, 파면처분취소 소송에서도 패소 판결을 내렸다.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아 복직 권고가 됐지만 행정안전부가 수용하지 않았다.

내부고발 제1세대가 ‘민주화’와 함께했다면 1990년대 중반 이후 2000년대 중반까지 제2세대 내부고발은 무수한 생명을 앗아간 성수대교 붕괴와 삼풍백화점 참사, 화성씨랜드 화재 사고를 겪으면서 공공 다중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 안전·환경·보건 문제 내용이 중심을 이룬다.

1998년 열차 보수품 유용과 하자보수의 문제점 등으로 열차 탈선사고 위험을 고발한 철도청 검수원들, 2000년 인천국제공항 터미널 부실시공을 폭로한 정태원 감리원, 한국 최고 흥행 영화 <괴물>의 소재가 된 용산 주둔 주한미군의 포름알데히드 한강 무단 방류를 환경단체에 제보한 2000년 주한미군 군무원, 2003년 적십자사 혈액사업본부가 에이즈와 간염·말라리아 바이러스에 감염된 혈액을 유통한다는 사실을 언론에 알린 적십자사 직원들이 대표적이다.

“내 가족이 감염된 피를 수혈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끔찍했습니다.” 혈액유통 문제를 고발한 적십자사 동부혈액원 임재광씨가 방송 인터뷰에서 한 이 말처럼 철도청 검수원들과 정태원 감리원이 내부고발에 나선 이유는 ‘나, 내 가족’ 역시 안전 불감증의 피해자가 될 수 있고, 침묵으로 인한 대형 참사를 예방하겠다는 소박한 생각에서 비롯됐다.

전교조 이후 교육계 비리고발 다수

1990년에 보안사 민간인 사찰자료를 갖고 탈영한 후 기자회견을 한 윤석양 이병.

그러나 시민의 안전을 우선시하는 이들에게 돌아온 것은 보복성 인사였다. 철도청 검수원들에게는 파면과 정직·전출이라는 개인적 고통의 연속이었고, 최우수 감리원으로 선정되기도 한 정태원 감리원은 평생 업으로 삼던 건설업계에서 더 이상 일할 수 없게 되는 현실뿐이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검수원 가운데 한 명은 정신적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이다. 적십자사 직원들 역시 징계 대상이었다. 다행히 부패방지위원회(현 국민권익위원회)가 이들을 부패방지법에 따른 내부공익신고자로 인정해 조직의 보복을 피할 수 있었으며, 보건복지부에 혈액안전관리 전담부서인 혈액정책과가 신설되는 등 혈액 안전 관리에 진전이 있었다.

이 시기에는 전교조의 참교육 운동 및 학내 민주화와 맞물려 교육계 비리에 대한 내부고발 역시 다수를 차지했다. 1998년에 초등학교 행정실장으로 퇴직한 정경범씨가 학교급식을 둘러싼 비리, 학교 비자금 조성 방법 등 교육 현장 부조리를 <나의 공직생활 31년, 부끄러운 부정부패 일기장>이라는 책을 통해 자신의 비리를 포함해 고발했다. 2004년에는 김이섭 강사가 대학 홈페이지에 ‘나는 고발한다’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Y대학 교수들의 학술진흥재단 연구비 횡령 의혹을 폭로했다. 2003년부터는 D여고 교사들의 각종 회계부정 고발을 비롯해 거의 매년 교사, 교육공무원들의 학내 비리 내부고발이 이어졌다.

“아이들 앞에 부끄러운 교사가 될 수 없다”는 교사로서 당연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D여고 교사들의 고발을 계기로 16억원의 회계비리가 적발되고 이사장을 포함한 관련자들이 형사 고발되기도 했다. 그러나 오히려 그 중 한 교사는 결국 해임돼 제자들 곁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됐다. 김이섭 강사 역시 고발 대상인 교수들이 벌금형과 학교 자체 징계를 받았음에도 정상적인 강의를 진행하고 있지만 정작 내부고발자인 김 강사에게는 더 이상 강의가 주어지지 않아 다른 대학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1992년에 관권부정선거를 폭로해 민주당사에서 강제구인되는 한준수 전 연기군 군수. <경향신문>

2002년 1월부터 부패방지법이 시행되고 나서는 예산낭비, 횡령, 민간기업의 공공기관 상대 편취 등 ‘돈’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부패행위 신고와 함께 기업 비리와 관련된 경제 분야 내부고발이 주를 이룬다.

1320억원이라는 국고 낭비를 막은 2004년 ○○훈련기 사업 관련 보상금 산출시 부적정 처리 내부고발자, 2007년 상수도관 납품 비리로 83억원 부당이익 편취 신고자, 2005년 KT의 불필요한 공사 시행으로 국고 600억원 예산낭비를 고발한 여상근 KT 대구동촌지점장은 부패방지법에 따라 신고된 전자의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자신이 근무하는 상수도관 납품업체에서 중국산 반제품 상수도 주철관을 들여와 국산으로 둔갑시켜 정부에 납품해 83억원 부당이익 편취하고, 그 과정에서 공무원 120여 명이 연관된 6억8000만원의 뇌물상납 비리를 사회에 알린 내부고발자는 부패방지법 시행 후 신고자의 비밀보장으로 신분이 사회에 알려지지 않았다. 2001년에 마련된 부패방지법에 따라 내부고발자는 부패행위 신고시 비밀 및 신분 보장, 신변보호, 책임감면 및 비밀준수 면책, 포상 및 보상 등 일정 부분 법적 보호를 받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파면의 불이익에서 자유롭지 못한 내부고발자 역시 존재하고 있다.

고속철도 노선 주변에서 필요 없는 잡음전압 대책 공사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회사에 낭비된 600억여 원의 예산을 국가에 반납해야 한다고 건의했다가 묵살된 여상근씨는 국가청렴위원회(현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했다가 파면됐다. 감사원은 향후 공사에서 예산 낭비가 우려되니 관련 규정을 개정하고 국가로부터 받은 예산으로 구매한 부동산을 국가에 되돌려 주라는 처분을 내리고, 청렴위가 KT에 파면 취소를 권고했다. 그러나 파면 취소는 수용되지 않았다. 최근 검찰이 KT 임직원 147명의 비위 사실을 적발해 낸 초유의 사건이 일어났다. 이를 계기로 KT는 내부고발자에게 최대 5000만원의 보상금 지급 제도를 마련했다. KT가 윤리경영을 추구한다면 먼저 여씨에 대한 파면 취소부터 해야 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삼성그룹 비자금 세상에 알려

2002년에 차기 전투기 사업과 관련해 구속된 조주형 공군 대령의 부인이 조 대령의 육성녹음테이프를 공개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2007년 10월에는 삼성그룹의 구조본부 법무팀장이던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그룹 차명계좌 50억원 비자금을 폭로했다. 여기에는 조성한 비자금으로 고위 검찰 간부들에게 로비를 지속적으로 해왔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특검 수사로 이건희 회장 등 10명이 기소되자 이 회장은 결국 회장직을 내놓고 퇴진했다. 지난 8월 이 전 회장은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 발행으로 배임혐의 유죄가 인정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원을 확정받았다. 고발 당시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한 악의적인 보도로 인신공격에도 시달리기도 했던 김 변호사는 “삼성그룹의 비리를 공론화시킨 것으로 나의 역할은 끝났다. 더 이상 내가 할 말도,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이제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면서 변호사가 아닌 제과점 사장으로 살고 있다.

김 변호사처럼 공개적인 형태의 내부고발은 아니지만 2003년에 촉발된 SK그룹의 1조5000억원 분식회계와 2006년의 현대자동차 비자금 사건(1200억원 비자금 조성 및 횡령, 4270억원 회사 손실) 역시 내부고발로 회장이 구속되고 형사처벌을 받으면서 사회출연금을 약속하기에 이르렀다.

이 밖에 서울대 의대 김용익 교수는 1998년에 “애써 가르친 제자들이 도둑질하는 의사가 되는 것을 더 이상 볼 수는 없다”는 신념으로 의약품 구매 관련 비리를 고발해 의료보험약가 평균 30.7% 인하를 끌어냈다. 또 2002년에 공군 F-X 사업 선정시 국방부 핵심인사가 미국 정부 지원의 특정기종 선택을 기정사실화하고 이를 위해 시험평가 과정과 결과 보고에 대해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외압을 고발함으로써 자신은 군사기밀 누설과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 등으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이 확정됐지만 폭로 계기로 국방부가 미국 보잉사와 벌인 가격협상에서 2억 달러 낮추는 데 기여한 조주형 대령 역시 내부고발 역사에서 빠뜨릴 수 없다.

지난 20년 간의 내부고발 역사를 돌아보면 이러한 내부고발이 없었다면 이들이 제기한 부정과 비리, 예산 낭비, 불법이 과연 세상에 제대로 알려졌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부고발은 누구보다 문제와 잘못을 잘 아는 내부인에 의한 고발이라는 점에서 ‘적발’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부고발의 중요성은 사후 적발의 의미보다 누구든지 비리나 부패 등을 저지르면 언젠가는 적발된다는 사실을 각성시킴으로써 사전 예방의 의미가 더 크다는 데 있을 것이다.

이지문<공익제보자와함께하는모임 부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