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위키리크스 혁명’ 불똥 어디로 튈까

기밀문서 폭로로 밝혀진 권력부패실상에 시민들 폭발

2010년 11월 28일 일요일. 어쩌면 훗날의 역사가들은 21세기의 역사를 거론할 때 이 날짜를 전후로 역사시기를 구분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날 폭로된 ‘사실들’은 이후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맨 먼저 변화가 촉발된 곳은 중동이었다. 튀니지에서 시작한 시민봉기는 이집트를 거쳐 리비아, 이란, 요르단…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그 다음의 불똥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

7일 줄리안 어산지의 재판이 진행 중인 영국 런던의 법정 밖에서 영화 <브이 포벤데타>의 가이포스트 가면을 쓴 지지자들이 지지 시위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바로 이날, 위키리크스는 cablegate.org에 “1996년부터 2010년 말까지 미 국무부가 전 세계 274개 미 대사관과 주고받은 공식 외교문서”라는 설명이 붙은 220개의 문서들을 공개했다. cablegate.org는 이번 폭로를 위해 위키리크스가 별도로 마련한 도메인. 영국의 <가디언>, 스페인의 <엘파이스>, 프랑스의 <르몽드> 그리고 독일의 주간지 <슈피겔>이 이날 ‘폭로’에 보조를 맞췄다. 보통 토요일 발행되는 <슈피겔>의 온라인판은 외교문서 폭로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 발행일을 하루 늦췄다.

220개는 시작이었다. 전체 25만1287건의 문서가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한 달 뒤 튀니지. “첫번째 위키리크스 혁명이 시작되었다.” 지난 1월 15일, 온라인 신문 데일리메일이 튀니지의 대통령 벤 알리가 국외로 탈출한 소식을 전하며 붙인 제목이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미국 외교문서 중에는 튀니지 미국 대사관이 본국에 보내는 튀니지 핵심권력의 부패 실상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노래 제목으로도 패러디된 “네 것은 내 것”(주간경향 913호 관련기사 참조)이라는 제목의 외교문서 작성일은 2008년 6월 28일. 원래 비밀유지 기간은 10년이었다. 미국 대사 로버트 고덱이 작성한 이 문서는 대통령 벤 알리 일가, 특히 대통령 영부인과 친인척 ‘가족’의 부패실상에 대한 이야기가 적나라하게 담겨 있었다.

여기에 과일노점상 청년 부아지지의 분신이 튀니지 혁명의 ‘방아쇠’ 역할을 한 것이다. 튀니지 사람들은 위키리크스의 자료 중 튀니지와 관련된 자료를 별도로 정리한 사이트를 개설했다. 사이트 이름은 튀니리크스. 위키리크스의 자료공개가 아직 끝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튀니리크스의 업데이트는 지금도 계속되는 중이다.

튀니지, “첫번째 위키리크스 혁명”

지난 2월 11일, 이집트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을 축하하는 구호를 예멘 시민들이 외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리고 이집트. 온라인 매체 메디에이트가 지난 1월 28일 정리한 기사에 따르면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외교문서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집트 정부는 언론인과 블로거, 그리고 아마추어 시인 등에 대한 ‘선별적인 조치’를 취해왔다. 그 시인은 무바라크 대통령을 비난한 혐의로 3개월 동안 감옥에 구금되었다. 이집트 정부당국은 한 블로거를 공항에서 13시간 동안 억류했는데, 당국은 그가 소지했던 노트북을 압류했다. △2010년 1월 31일, 일단의 이집트 군부 핵심인사들이 회합을 가졌다. 이 회합에서는 미국의 대 이란 전략, 중동의 세력균형, 특히 핵무기 전략이 재조정되어야 한다는 논의가 이뤄졌다. △무바라크의 아들 가말 무바라크는 자신을 비방하는 사람들과 정치적 경쟁자를 숙청하는 작업을 해왔다. 숙청대상에는 탄탄타위 국방장관과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이 포함된다. 가말은 권력승계를 위해 이론적으로는 군부 쿠테타도 가능한 방법으로 고려하고 있다. △이집트의 경찰은 자백을 받기 위해 고문을 동원한다. 고문을 받은 사람들 중에는 시위 참가자와 활동가들, 무슬림형제단 활동가들이 포함된다. △이집트의 고위관리들은 미국이 이집트의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것에 대해 불편해하고 있다. 특히 UN의 인권관련 회의에서 미국 활동가들이 이집트 인권실태를 거론하는 것에 대해 불쾌하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이 매체는 “카이로 주재 미 대사관이 작성한 이 외교문서들은 이집트 정부가 불쾌하게 여길 내용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는데, 위키리크스가 이 문서들을 인터넷에 공개하면서 이집트 사람들은 미국의 ‘속내’를 엿봤을 뿐 아니라 그동안 언론을 통해서는 접할 수 없던 ‘조국’의 실상을 알게 되었다”며 “이것이 지금 진행되고 있는 이집트 시민봉기의 배경(background)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진한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정보공개센터) 사무국장은 “정보 비대칭으로 요약할 수 있는 권력관계를 대칭으로 바꾸려는 몸부림이라는 측면에서 위키리크스의 활동을 높게 평가한다”고 말했다.

이집트 비밀문서 공개 총력전
위키리크스의 미 외교문서 폭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위키리크스의 설립자 줄리안 어산지는 지난 2월 13일 언론과 인터뷰에서 “튀니지의 대통령 벤 알리의 퇴임에 위키리크스가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튀니지가 이집트나 예멘, 그리고 요르단 등 현재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위에 하나의 사례가 될 것이라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위키리크스의 미러사이트에서 진행되는 문서공개작업을 보면 지금 중동에서 진행되는 상황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인상이다. 2월 16일, 위키리크스는 다시 473개의 카이로 발 미 외교문서를 추가로 폭로했다. 대외비(confidential)뿐 아니라 다수의 비밀(secret) 문서도 포함되어 있다. 어산지가 언급한 ‘영향력’의 극대화를 노리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위키리크스의 탄생과 운영 과정의 우여곡절을 담고 있는 책 <위키리크스(inside Wikileaks)>. 지은이 다니엘 돔샤이트 베르크는 위키리크스 대변인을 맡다 줄리안 어산지로부터 ‘해고’된 뒤 별도의 웹페이지 오픈리크스(openleaks.org)를 개설했다.

‘인터넷에 풀린 핵폭탄급 시한폭탄’으로 거론되는 위키리크스 발 미 외교문서의 후폭풍은 앞으로 어디를 향하게 될까. 전체 25만1287건의 문서 중 2월 18일 현재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문서는 4525건에 불과하다. 최근 출판된 위크리크스의 전 대변인 다니엘 돔샤이트 베르크의 책 <위키리크스(Inside Wikileaks)>에 따르면 웹에 공개된 자료는 원본 그대로가 아니다. 민감한 내용들은 위키리크스와 함께 자료를 공유하고 있는 언론사들만 볼 수 있다. 웹에 공개된 버전에는 혹시 이 폭로로 피해를 입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개인정보를 수정한 형태로 나가고 있다. 실제 상당수의 자료에서 실명이 거론되는 대목은 xxxxx로 처리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위키리크스가 이번에 폭로한 기밀문서를 보면 외교관들이 어떻게 정보를 수집하는지 일단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하지만 한편으로 사실 왜 이런 정보들이 기밀인지 납득이 되지 않는 정보들도 많다”며 “위키리크스의 폭로는 특정집단이나 국가에 의한 정보독점이 앞으로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동시에 개인 프라이버시 문제나 정부 비밀에 대한 고려 등 숱한 쟁점을 남기고 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특히 정보가 있는 그대로 공개되지 않고 취사선택되었으며, 특히 어산지 본인의 성추문 문제 등을 덮거나 특정한 이념적 목표를 위해 정보들이 사적으로 이용되고 있지 않은지 면밀한 검토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특히 누구나 지식의 참여와 공유가 가능한 위키피디아 모델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며 “어찌됐든 위키리크스의 전 대변인이 별도의 유사한 정보공개 사이트인 오픈리크스(openleaks.org)를 개설했듯, 위키리크스가 한계에 봉착했을 때 비슷한 종류의 운동이 뒤를 잇게 될 것은 분명하다”고 전망했다.

미공개 한국문서, 어떤 내용 담겼을까

위키리크스의 설립자 줄리안 어산지. |AP연합뉴스

그런데 우리로서는 궁금할 수밖에 없는 것이 위키리크스가 앞으로 공개할 한국 관련 외교문서다. 전체 문서 중 서울발 외교문서는 1700여건. 서울 주재 미 대사관에서 나온 문서이기 때문에 이 숫자에는 중국이나 일본 등 인접국에서 생산된 한국 관련 문서들은 포함되지 않는다. 위키리크스가 밝히고 있는 현황에 따르면 현재까지 공개된 위키리크스의 서울발 문서는 10건에 지나지 않는다. 문서가 원래 만들어진 시기는 2007년 5월 23일부터 비교적 최근인 2010년 2월 22일까지다. 가장 최근 공개된 문서는 지난 2월 1일 나온 문서다. 문서는 지난 2010년 1월, 방한 중이던 마이클 시퍼 미 국방부 동아태담당 부차관보와 저녁만찬 자리에 참석한 국회의원들의 발언 내용을 담고 있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 자리에서 노무현 정부 당시 추진했던 전시작전권 환수 작업에 대해 비판하는 입장을 밝혔다.(하지만 자리에 동석한 박선숙 의원은 이 문서의 신빙성에 관한 언론 질문에 “동석한 미 대사관 측이 박 대표의 발언을 잘못 통역한 것”이라고 밝혔다. ‘전작권 환수와 관련한 합의를 그렇게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것이 박 대표의 발언 내용이라고 박 의원은 밝혔다: 편집자 주) 문서에 따르면 이 자리에는 민주당 서종표 의원도 참석했는데, 서 의원이 “북한 핵문제는 김정일 체제가 붕괴할 때만 해결가능하다”고 발언하자 박 대표는 “서 의원은 강경보수”라고 말해 좌중을 웃겼다.

지금까지 공개된 자료에 비춰볼 때 위키리크스가 보유하고 있는 한국 관련 자료는 참여정부와 이명박 정부에 걸친 시기에 집중적으로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문서의 상당수는 북한 핵무기 등 한국정부의 대북정책과 관련된 정보일 것이지만, 기타 BBK, 도곡동 땅 문제 등 2007년 대선 당시 쟁점, 촛불시위, 대운하와 4대강 사업, 민간인사찰 등 민감한 사안 역시 이 문서철에 다수 포함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 문서들이 공개된다면, 지금 중동에서 진행 중인 것과 유사한 사건이 한국에서도 벌어질 가능성이 있을까.

이항우 충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내용이 각 사회가 처한 상황에 따라 수용되는 맥락은 다를 수밖에 없다”며 “아직까지 정밀하게 연구가 된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정치적 억압이 강한 곳에서 상대적으로 반발도 큰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설혹 예를 들어 BBK와 관련한 다른 증거가 새로 제시된다고 하더라도 그게 사회운동, 예컨대 제2의 촛불의 도화선이 될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며 “모든 집합행동은 하나의 단일한 요인만으로 일어나지는 않으며 구체적인 사회적 경제적 불만과 결합될 때만 이뤄질 수 있는데, 설사 현정부의 큰 비리가 드러난다고 하더라도 최근 경험상 선거적 제도적 대응을 더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